복스!
햐쿠타 나오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알라딘 중고서점엘 들러 진열된 책을 찬찬히 살피던 중에 하쿠타 나오키의 소설 <복스>가 “방금 고객이 판 책” 코너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쯧, 누군지 몰라도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책을 여기다 팔다니 어지간히 안목이 없구나.’라며 혀를 차는 동시에 ‘어라 이 소설의 분량이 이 정도였었나.’ 라고 새삼 놀라버렸다. 분량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가독성이 좋다는 것. 그래서 650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텐도 아라타의 소설 같은 케이스가 아니라면 왠만해서 그만한 분량의 일본소설을 읽을 기회가 전무 하다시피...) 작년에 처음, 올해 다시 찾아 읽어버렸다. 그리고 서평은 이렇게 뒤늦게나마 올리고.

 

요즘 스포츠가 관람에서 실제 체험하는 것 이외에 문학의 형태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지라 대세인 아구 소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새삼스러울 것은 없겠다, 하지만 이 소설처럼 권투라면 약간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과연 권투 시합을 글로도 완벽히 재현해 낼 수 있을지,의문스럽고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은 선입견마저 든다. 도대체 어떻게 글러브가 교차하는 현장을 그려낸단 말인가? 그것은 읽고 나면 기우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될거다. 정말 재미있다는 점, 그리고 리얼하다는 점...

 

의문을 일단 덮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햐쿠타 나오키의 소설 ‘복스!’는 고등학교 권투부를 배경으로 챔피언이 되기 위한 소년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그들만의 진한 우정,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소년들이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 건강하고 올바른 자아를 확립하고 커나가는 과정들은 어른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비웃듯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열정을 뜨겁게 일깨운다.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으로도 정상의 자리에 올라설 수는 있는 걸까? 무엇이 이 시절을 쉼 없는 열정으로 인도하는가? 그리고 과연 결과는 행복했느냐며 독자들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물음표에 대한 해답을 쥐고 소설을 끌고 나가는 쌍두마차는 기타루와 가부라야이고 얘네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변인물들이 소설에 싱싱함과 풋풋함을 더해주는데 에비스 고등학교 1학년 특별진학반의 기타루는 재능은 뛰어나지 않지만 우직하게 연습에 또 연습을 통해 강펀치를 보유하게 된 진정한 노력파. 그에 반해 기타루의 오랜 절친인 가부라야는 체육부 권투부 소속의 천재적인 복서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자만심에 노력을 게을리 하는 상반된 스타일로 대비시켜 소설의 재미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이렇게 상반된 스타일의 두 주인공을 내세워 고교 권투부 시합을 손에 땀에 쥐게 할 만큼의 생생함으로 압도적인 현장 생중계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들의 연승 기록을 막아 설 도내 강자 몬스터 이나무라를 전진 배치시켜 숙명적인 승부의 재미를 맘껏 즐기게 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이나무라와의 진검승부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점쳐 보는 것도 이 소설을 즐기는 또 하나의 포인트라고 하겠다. 불꽃 튀는 명승부 속에서 현란하면서도 순간 전율케 하는 권투 기술이 만들어낸 승자와 패자의 명암은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 정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훈이라는 것을 모두가 가슴 속에 심으며 1장의 막은 내려간다.

 

그렇게 시합이 끝나고 다시 1년이 지나고 다시 세월이 흐른 뒤 권투부원들이 졸업해서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공백은 후배들이 물려받아 뒤를 잇게 되고 기타루와 가부라야가 전설로 남는다는 후일담은 후회 없는 그 순간들을 살았던 청춘들에게 보내는 최상의 청춘찬가이자, 뜨거운 스포츠소설의 명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극적인 소재나 전개 없이도 체험하고 싶다면 이만한 작품은 드물기에 비정한 승부를 착하고 우직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오늘을 즐기고 충실하자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복스>는 2009년 일본 서점직원들이 선정하는 서점대상 베스트5에 올랐고 일본 TBS ‘왕의 브런치’에서 매년 말 선정하는 브런치북 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치하라 하야토, 고라 겐코, 가시이 유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지만 솔직히 영화는 원작의 진솔한 쾌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지루한 범작이었으니  원작만한 것은 역시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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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2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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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 속 주인공 이그나티우스는 전날 밤새 부어라 마셨고 다음 날 아침에 숙취로 머리 지끈한 상태로 일어났더니 머리 양쪽에 돋은 뿔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전날 밤에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질렀다지만 뿔이 상징하는 악마적 상징성을 감안했을 때 신이 그에게 가한 형벌이라고 받아들이기엔 뜬금없는 변신이다. 이렇듯 뿔이 생긴 배경과 이유 등을 과감히 생략한 채 바로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되는 인상적인 도입부는 이 소설을 지루하다 느낄 겨를이 없이 이야기의 힘에 매료되어 굴복 당하게 만든다.

 

그런 뿔은 언뜻 전형적인 형벌 같기도 하지만 이그에게 부여한 힘으로 인하여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선물이자 축복이 될 수도 있는 이중성을 내포한다. 그 점은 “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모른다.”는 카프카의 명언처럼 헤어진 여자 친구를 성폭행 한 후 살해한 누명을 쓰게 된 이그에게는 자포자기의 심정과 세상을 향한 원망과 악의로 가득한 활로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처음에 그 힘의 위력을 깨닫기 전까지는....

 

여기서 뿔이 가진 초자연적인 힘이란 상대방과의 신체접촉 시 그 사람의 추악한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고 이그와 만나는 순간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추악한 속내를 양심고백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도록 하는 불가사의한 마력이다. 어찌 보면 굳이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었던 사람들의 위선과 기만은 이그를 점차 불행에 빠뜨리게 되는데 아무도 그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저주하고 혐오하고 있었다는 사실, 특히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들마저 등 돌리고 외면하게 되었을 때 그가 느꼈을 상실감과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남게 된다. 그것이 너무나도 잔인한 순간이라 독자의 입장에서는 폐부를 깊숙이 찌르고 들어오는 불편함과 당혹감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

 

 

이쯤에서 가족 내 이그의 존재에 대한 부재와 소외감에서 느꼈던 쓸쓸함은 이윽고 살해당한 여친 메린이 이그와의 관계에서 권태와 속박을 느껴 다른 남자와의 새로운 만남을 원했다는 또 다른 진실과 치환되어 쓸쓸함이 분노와 좌절로 이어지게 된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한 몸에 짊어진 것 같은 이그의 가혹한 행보에 눈을 질끈 감고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현실과 몽환적 세계를 넘나들며 최악이라고 믿게 만들었던 진실들이 어느 새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끊임없이 마음을 뒤 흔들더니 끝내 최후의 진실과 조우하는 순간은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극적인 감동에 다다르게 한다. 아! 강렬한 사랑을 펼쳐 보이기에 이만큼 최적화된 소설은 찾기 힘들 것 같아.

 

어쩌면 뿔이 가진 악마성과 대척점을 이루는 메린의 목걸이가 보여준 구원이라는 상징성이 이 같은 결말로 안내하기 위한 복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던 것이고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수호자로서의 메린의 헌신은 그래서 더 절절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이 뒤 바뀐 한 남자의 운명적인 이야기는 불면의 밤을 달래 줄 궁극의 수작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 로맨스가 다채롭게 조화된 비빔밥으로 무척이나 맛있다.

 

그렇게 글 속에는 무수한 상징적인 은유들이 담겨있고 그것들의 의미를 이해해가는 과정들도 퍼즐풀이 마냥 기묘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가슴시린 여운이 남는데 잊지 못할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애틋함과 참회하는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써내려간 조 힐은 아버지의 후광에 기대지 않더라도 이야기꾼으로서 탁월한 재능을 멋지게 뽐냈다. 아마 <스노우맨> 이후 올해 출간된 비채의 신작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작품일 듯 싶다.

 

마지막 여담으로 비채에서도 뿔이 양족 2개인 것을 감안했는지 센스 있게 책도 2권을 보내주었는데 비로소 책 속에 뿔이 우뚝 설 수 있게 되어 맘이 흡족하다. 그리고 이벤으로 같이 받은 뿔 머리띠는 잘 때 쓰고 자니까 꿈자리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좋아 ㅎㅎ 좋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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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1
황태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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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 문학이란 장르 자체가 장르문학에 관해선 열악하고 척박한 국내현실을 감안한다면 보편적으로 인지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 싶다. 이번처럼 <아버지들의 죄>와 함께 우수 서평자에게 증정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더군다나 한국형 좀비소설이라니 생경하지 않은가? 아! 그렇다, 상반기 중에 <웜 바디스>로 생애 최초의 좀비소설을 이미 접한 적이 있었지. 당시에는 좀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발상 자체가 신선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읽는 좀비문학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1회 당선작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2회 당선작과의 비교는 불가할 터이고 해외 좀비물들은 영상으로도 그렇고 <웜 바디스>의 경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을 닮아가는 좀비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반해 이번 당선작들은 한국사회의 내부에서 빚어지는 계급구조의 파생적 변화와 갈등 등이 특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좀비와 인간과의 대결구도 같은 액션 시퀸스가 아니라 고립된 공간과 심리에 분열을 꾀하는 장기말 같은 도구로 좀비가 활용되고 있어 다분히 정적인 기운이 강한 것도 이채롭기는 하다. 그래서 좀비보다 더 두렵고 끔찍한 존재는 인간 그 자체라는 메시지도 여전히 유효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들이 도심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한 4층 건물에 일곱 남녀가 고립되어 있다. 외부에서 좀비들이 건물로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면서 이들은 한 번씩 옥상에다 헬기로 공수하는 비상식량에 명줄을 부지하고 있는 현실, 식량을 둘러 싼 독점과 분배문제가 불거지면서 작은 신체를이용하여 유일하게 좁은 통로를 드나들며 식량을 내부로 공수하는 성국, 그에게 빌붙어 얻어먹으려는 사람들, 성국이 식량을 빼돌리지는 않는지 의심하는 종수와 그의 연인 희원, 나중에 좀비를 피해 건물내부로 피신한 모자까지 각자의 처지에 따라 관계를 맺었다가 끊기도 하면서 계급과 권력의 서열이 돌고 돌아 쳇바퀴를 돌기 시작한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그들에 의해 인간군상의 변화가 보여지면서 한정된 공간이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평상시에는 핸디캡이 되었을 성국의 왜소증이 작금에 와서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 권력서열을 역전시킨다는 설정도 다분히 재치 있는 도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변치 않는다는 설정만큼은 여전히 씁쓸하면서도 기억의 단면에 획을 긋고 끝낸다. 수록작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다.

 

<연구소 B의 침묵>은 좀비물로써 보편적인 취향과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일 것 같다. 다른 수록작들이 좀비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내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만큼은 좀비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요리재료로 삼고 있다, 친구라는 관계와 그 속에 잠재해 있는 콤플렉스, 오만함, 이해 타산적 처신 등에다 남녀 간의 삼각관계를 접목해서 삐뚤어진 집착과 광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자신을 실험도구로 삼아 좀비 테스트를 시험하는 과정들은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라는 자문자답에 일침을 놓는다. 인간과 좀비의 경계를 이슬아슬 하게 넘나드는 두 남자의 시도는 그래서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호불호가 엇갈릴 듯하다. 무모하거나 신나거나.....

 

그 밖에 <나에게 묻지 마>나 <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닥 인상적인 작품들은 아니었다. 그나마 <나에게 묻지 마>는 좀비의 창궐을 도시가 아니라 농촌으로 옮겨 구제역과 교묘히 엮은 아이디어 자체는 신선했지만 스토리의 흐름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얼개가 느슨해지고 장황한 맛이 있어 아쉬웠고 <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냥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순애보에 그쳐 왜 좀비물로 차용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평범하고 단순했다. 선정작 중 하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 흡사 별이 빛나지 않고 지는 밤의 분위기에 모든 것이 고즈넉이 가라 앉아 바닥을 쳐 버린다.

 

그렇게 해서 한국형 좀비문학의 현 주소를 과감 없이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좋은 착상을 끝까지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 속에 무궁무진한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었으니 해외 좀비문학과는 차별화된 고유의 색깔들을 잘 살려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국 좀비문학의 소재적, 주제적 한계는 어디까지 가능한지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고 그 점에 대해서는 작가들의 고민이 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좀비 자체를 무대의 중앙으로 불러내어 한 바탕 풍악을 울리는 화끈한 소동극도 만나봤으면 한다. 금기와 영역을 극복한 보다 역동적인 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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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죄 ㅣ 밀리언셀러 클럽 12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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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추리작가협회의 그랜드 마스터 로렌스 블록은 <앨프리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AHMM)>에서 창간 50주년을 맞이하여 출간했던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에서 처음으로 작품세계를 접한 적이 있었다. 볼록의 초기단편으로 <쇼핑백을 든 아줌마>라는 짧지만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탐정 스커더(매튜가 아니라 조라는 이름이었다)가 살해된 한 노숙자 아줌마로부터 뜬금없이 유산 일부를 물려받게 되자, 그냥 수혜받기가 꺼림칙해서 살인범을 찾아나선다는 이야기였다. 정작 범인을 잡고 보니 범행 동기 자체는 보잘 것 없었는데 유산 때문에 살해당한 것이 아니었다는 진실 앞에서 어쩌면 “우리는 아무도 섬이 아닌지도 모르고, 누구나 다 섬인지도 모른다.”는 책 속 구절처럼 산다는 것 자체의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이제 그의 진정한 데뷔작 <아버지들의 죄>로 본격적인 블록 월드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민완경찰이었지만 은퇴한 사립탐정 매튜 스커더에게 한 중년남자의 의뢰가 들어온다. 그 남자의 딸 웬디라는 여성이 살해되고 그녀를 살해한 범인은 동거남 리처드 밴더폴로 피를 뒤집어 쓴 채 사건현장 근처에 있다가 체포된다. 하지만 리처드 밴더폴은 수감 중 곧 자살해버리고 그렇게 사건은 종결되려는 즈음에 딸의 죽기 전 행적에 대해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매튜 스커더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은 명백히 밝혀졌고 더 이상의 조사는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닫힌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입장을 거절 못하고 수임을 맡기로 한다.

 

사건조사를 시작한 이상 절대 포기하지 않는 남자, 자신은 고집이 센 것이 아니라 ‘끈질기다’... 아니, 그냥 끈질긴 사람으로 부르는 편이 좋겠다는 매튜 스커더의 가상 인터뷰대로 별 다른 단서나 정황을 찾기 어려워보였던 사건의 내막의 꺼풀을 벗겨낸 것은 역시 그의 장기인 적당한 타협과 거래, 윽박, 내면의 심리를 응시하는 거울로 변신하자 이야기의 흐름은 조용한 끈기 앞에 백기를 들고 속살을 드러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남자는 내가 상상했던 거랑 달리 결코 정도만을 추구하는 고지식함은 없었다. 자신에게 흉기를 들어 위협하던 남자에게 가한 응징을 보라! 그에게서 돈도 뺏고 보복 차원에서 손가락도 부러뜨린다. 냉혹하면서도 실리도 고려할 줄 아는 매튜 스커더의 사실적인 면들은 이 시리즈가 뒤로 나아가면 갈수록 믿음을 고조시킬 거라는 기대감을 품게 하는 것이고 물리적인 타격이 아니더라도 등장인물의 대화에서는 인장을 찍듯 마음 한 구석을 꾹꾹 눌러 담는 힘이 있다. 그 우아함이란 최근의 추리소설들이 시각적인 쾌감에 치중할 때 정서적인 성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기에 많은 독자들과 작가들이 추종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뛰어난 이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를 들자면 스커더가 이야기 중반을 넘어선 시점에서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 법의 사각지대를 빠져나간 미꾸라지 한 마리를 자신의 방식대로 처단했던 과거사를 털어놓는 대목을 들 수 있겠다. 이것은 심경고백 차원이 아니라 웬디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눈치 챈 그가 마지막에 선택하게 될 집행방식이라는 복선을 암시하고 있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미처 표현 못했던 감탄을 뒤늦게라도 하게 된다. 다 쓸 만한 구석이 있었다는 점...

 

그렇다면 책의 제목과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인가? 지켜주든가 아니면 죽이든가”라는 구절은 어쩌면 시대가 변하면서 위상도 달라지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족들에게, 그 중에서도 아들과 딸에게는 어떠한 존재와 역할로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되짚어 보게 만드는데 탁월한 주제요, 난제다. 최근 독거로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신인수를 자식들이 거부했다던 뉴스를 인터넷에서 보고 분노하며 탄식했던 내게는 <아버지들의 죄>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이지 않게 연결하는 통로이자 참을 수 없는 아픔이다. 왜 이다지도 슬픈지? 결코 외면하지 못할 현실 앞에서 숙연해지고 반성하게 할 누아르적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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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자들 ㅣ 메두사 컬렉션 2
제프리 디버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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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릴러 작가를 2명 정도 꼽는다면 마이클 코넬리와 그리고 제프리 디버이다. 제프리 디버의 소설들은 RHK에서 나오는 링컨 라임 시리즈 및 스탠드 얼론들, 모클에서 나오는 캐트린 댄스 시리즈로 접해왔는데 메두사클럽에서 나온 스탠드 얼론도 있다는 것을 한 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임팩트 없는 제목에다 역시 임팩트 없는 표지는 과연 제프리 디버 신화에 흠집을 내진 않을지 의구심마저 드는 것은 당연한 거고... 그리고 누군가가 이 소설 <남겨진 자들>을 링컨 라임 시리즈 중 하나라는 근거 없는 허위정보를 블로그인지 카페인지에다 게시한 것을 보기까지 했다. 링컨 라임 시리즈를 타 출판사에서 내놓을 리 만무하지, 게다가 전담역자도 따로 있는데 말이다. 난 왜 잠시 잘못된 정보에 혹했던 것인지? 반성 또 반성....

 

이 소설은 여름별장에서 걸려온 911긴급전화를 받고 여 경관 브린 맥켄지가 현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수롭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현장에는 부부의 시체가 발견되고 브린은 두 명의 살인자로부터 갑자기 쫓기게 된다. 낯선 남자들의 다음 타깃이 자신이 되리라는 직감에 달아나다 또 다른 여성을 만나 함께 쫓기면서 이야기는 긴박감 넘치게 흘러간다. 숲 속으로 도망간 두 여자를 두 남자는 포기 대신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숨 가쁜 추격전으로 전개하게 만든다. 브린은 다른 여자와 그리고 자신의 목숨도 건지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시간을 벌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면서 탈출을 꾀하는 것뿐이다.

 

추적자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다양한 도망 루트와 위장전술, 그리고 각종 기만전술을 총 동원해보나 살인자들은 용케도 간파하고 시시각각 생명을 위협해오는데 한 치의 오차, 잠깐의 방심도 용납지 않는 치밀한 두뇌싸움 속에 서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엎치락뒤치락하는 대혼전은 짜릿한 스릴과 쾌감을 던져준다.

 

그렇게 중반까지 흡입력 있던 전개가 어느새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계속된 숲에서의 추격전은 한정된 공간과 환경적 특성으로 인하여 곧 지루함이 엄습하면서 그때부터 이야기의 흐름을 나도 모르게 놓쳐버리게 되는데 숲을 탈출하여 도시로 도주경로를 옮겼다면 집중력을 유지한 채 새로운 공간 설정으로 이채로운 전개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드는구나. 

 

<곤충소년>에서도 숲을 도망다니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누명인지, 진범인지 알 길 없는 의문 속에 먼저 이 같은 공간 스타일을 접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현대적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더 선호하는 나로서는 영원히 숲 속 미아가 될 것 같은 설정 속에서 스릴과 반전 모두 놓쳤다는 점은 디버의 열렬한 독자로서 처음 겪는 상황이라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렇기 때문에 디버가 착안하고 의도한 시도는 별로 공감되지 않는다. 올해만큼은 제프리 디버의 고난기가 아닌지, <도로변 십자가>도 끝까지 집중해서 읽고도 아쉬운 반전으로 실망을 남기더니 이번 소설도 이래서 대략 난감했다.

 

좀 더 분발하시우~~ 디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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