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1
황태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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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 문학이란 장르 자체가 장르문학에 관해선 열악하고 척박한 국내현실을 감안한다면 보편적으로 인지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 싶다. 이번처럼 <아버지들의 죄>와 함께 우수 서평자에게 증정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더군다나 한국형 좀비소설이라니 생경하지 않은가? ! 그렇다, 상반기 중에 <웜 바디스>로 생애 최초의 좀비소설을 이미 접한 적이 있었지. 당시에는 좀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발상 자체가 신선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읽는 좀비문학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1회 당선작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2회 당선작과의 비교는 불가할 터이고 해외 좀비물들은 영상으로도 그렇고 <웜 바디스>의 경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을 닮아가는 좀비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반해 이번 당선작들은 한국사회의 내부에서 빚어지는 계급구조의 파생적 변화와 갈등 등이 특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좀비와 인간과의 대결구도 같은 액션 시퀸스가 아니라 고립된 공간과 심리에 분열을 꾀하는 장기말 같은 도구로 좀비가 활용되고 있어 다분히 정적인 기운이 강한 것도 이채롭기는 하다. 그래서 좀비보다 더 두렵고 끔찍한 존재는 인간 그 자체라는 메시지도 여전히 유효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들이 도심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한 4층 건물에 일곱 남녀가 고립되어 있다. 외부에서 좀비들이 건물로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면서 이들은 한 번씩 옥상에다 헬기로 공수하는 비상식량에 명줄을 부지하고 있는 현실, 식량을 둘러 싼 독점과 분배문제가 불거지면서 작은 신체를이용하여 유일하게 좁은 통로를 드나들며 식량을 내부로 공수하는 성국, 그에게 빌붙어 얻어먹으려는 사람들, 성국이 식량을 빼돌리지는 않는지 의심하는 종수와 그의 연인 희원, 나중에 좀비를 피해 건물내부로 피신한 모자까지 각자의 처지에 따라 관계를 맺었다가 끊기도 하면서 계급과 권력의 서열이 돌고 돌아 쳇바퀴를 돌기 시작한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그들에 의해 인간군상의 변화가 보여지면서 한정된 공간이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평상시에는 핸디캡이 되었을 성국의 왜소증이 작금에 와서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 권력서열을 역전시킨다는 설정도 다분히 재치 있는 도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변치 않는다는 설정만큼은 여전히 씁쓸하면서도 기억의 단면에 획을 긋고 끝낸다. 수록작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다.

 

<연구소 B의 침묵>은 좀비물로써 보편적인 취향과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일 것 같다. 다른 수록작들이 좀비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내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만큼은 좀비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요리재료로 삼고 있다, 친구라는 관계와 그 속에 잠재해 있는 콤플렉스, 오만함, 이해 타산적 처신 등에다 남녀 간의 삼각관계를 접목해서 삐뚤어진 집착과 광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자신을 실험도구로 삼아 좀비 테스트를 시험하는 과정들은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라는 자문자답에 일침을 놓는다. 인간과 좀비의 경계를 이슬아슬 하게 넘나드는 두 남자의 시도는 그래서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호불호가 엇갈릴 듯하다. 무모하거나 신나거나.....

 

그 밖에 <나에게 묻지 마><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닥 인상적인 작품들은 아니었다. 그나마 <나에게 묻지 마>는 좀비의 창궐을 도시가 아니라 농촌으로 옮겨 구제역과 교묘히 엮은 아이디어 자체는 신선했지만 스토리의 흐름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얼개가 느슨해지고 장황한 맛이 있어 아쉬웠고 <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냥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순애보에 그쳐 왜 좀비물로 차용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평범하고 단순했다. 선정작 중 하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 흡사 별이 빛나지 않고 지는 밤의 분위기에 모든 것이 고즈넉이 가라 앉아 바닥을 쳐 버린다.

 

그렇게 해서 한국형 좀비문학의 현 주소를 과감 없이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좋은 착상을 끝까지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 속에 무궁무진한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었으니 해외 좀비문학과는 차별화된 고유의 색깔들을 잘 살려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국 좀비문학의 소재적, 주제적 한계는 어디까지 가능한지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고 그 점에 대해서는 작가들의 고민이 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좀비 자체를 무대의 중앙으로 불러내어 한 바탕 풍악을 울리는 화끈한 소동극도 만나봤으면 한다. 금기와 영역을 극복한 보다 역동적인 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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