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뿔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2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소설 속 주인공 이그나티우스는 전날 밤새 부어라 마셨고 다음 날 아침에 숙취로 머리 지끈한 상태로 일어났더니 머리 양쪽에 돋은 뿔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전날 밤에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질렀다지만 뿔이 상징하는 악마적 상징성을 감안했을 때 신이 그에게 가한 형벌이라고 받아들이기엔 뜬금없는 변신이다. 이렇듯 뿔이 생긴 배경과 이유 등을 과감히 생략한 채 바로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되는 인상적인 도입부는 이 소설을 지루하다 느낄 겨를이 없이 이야기의 힘에 매료되어 굴복 당하게 만든다.
그런 뿔은 언뜻 전형적인 형벌 같기도 하지만 이그에게 부여한 힘으로 인하여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선물이자 축복이 될 수도 있는 이중성을 내포한다. 그 점은 “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모른다.”는 카프카의 명언처럼 헤어진 여자 친구를 성폭행 한 후 살해한 누명을 쓰게 된 이그에게는 자포자기의 심정과 세상을 향한 원망과 악의로 가득한 활로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처음에 그 힘의 위력을 깨닫기 전까지는....
여기서 뿔이 가진 초자연적인 힘이란 상대방과의 신체접촉 시 그 사람의 추악한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고 이그와 만나는 순간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추악한 속내를 양심고백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도록 하는 불가사의한 마력이다. 어찌 보면 굳이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었던 사람들의 위선과 기만은 이그를 점차 불행에 빠뜨리게 되는데 아무도 그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저주하고 혐오하고 있었다는 사실, 특히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들마저 등 돌리고 외면하게 되었을 때 그가 느꼈을 상실감과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남게 된다. 그것이 너무나도 잔인한 순간이라 독자의 입장에서는 폐부를 깊숙이 찌르고 들어오는 불편함과 당혹감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

이쯤에서 가족 내 이그의 존재에 대한 부재와 소외감에서 느꼈던 쓸쓸함은 이윽고 살해당한 여친 메린이 이그와의 관계에서 권태와 속박을 느껴 다른 남자와의 새로운 만남을 원했다는 또 다른 진실과 치환되어 쓸쓸함이 분노와 좌절로 이어지게 된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한 몸에 짊어진 것 같은 이그의 가혹한 행보에 눈을 질끈 감고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현실과 몽환적 세계를 넘나들며 최악이라고 믿게 만들었던 진실들이 어느 새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끊임없이 마음을 뒤 흔들더니 끝내 최후의 진실과 조우하는 순간은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극적인 감동에 다다르게 한다. 아! 강렬한 사랑을 펼쳐 보이기에 이만큼 최적화된 소설은 찾기 힘들 것 같아.
어쩌면 뿔이 가진 악마성과 대척점을 이루는 메린의 목걸이가 보여준 구원이라는 상징성이 이 같은 결말로 안내하기 위한 복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던 것이고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수호자로서의 메린의 헌신은 그래서 더 절절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이 뒤 바뀐 한 남자의 운명적인 이야기는 불면의 밤을 달래 줄 궁극의 수작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 로맨스가 다채롭게 조화된 비빔밥으로 무척이나 맛있다.
그렇게 글 속에는 무수한 상징적인 은유들이 담겨있고 그것들의 의미를 이해해가는 과정들도 퍼즐풀이 마냥 기묘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가슴시린 여운이 남는데 잊지 못할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애틋함과 참회하는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써내려간 조 힐은 아버지의 후광에 기대지 않더라도 이야기꾼으로서 탁월한 재능을 멋지게 뽐냈다. 아마 <스노우맨> 이후 올해 출간된 비채의 신작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작품일 듯 싶다.
마지막 여담으로 비채에서도 뿔이 양족 2개인 것을 감안했는지 센스 있게 책도 2권을 보내주었는데 비로소 책 속에 뿔이 우뚝 설 수 있게 되어 맘이 흡족하다. 그리고 이벤으로 같이 받은 뿔 머리띠는 잘 때 쓰고 자니까 꿈자리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좋아 ㅎㅎ 좋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