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ㅣ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1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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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본격 미스터리에서 괴기 환상소설로 독서와 취향이 바뀌었느냐는 료코와의 대화를 한 번 곱씹어 본다. 미쓰다 신조의 자전적 요소가 과연 포함되어 있느냐는 것도. 괴담을 좋아하지만 일부러 체험을 목적으로 특정 장소를 찾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아니 일가족 참살사건이 과거 발생했던 흉가란 점을 사전 인지 못했다며 부동산 주인을 원망하지만 한눈에도 불길한 기운이 꿈틀거리는 그 저택에 기거하며 괴기소설을 쓰겠다고 착안한 것부터가 정상의 범주에 벗어난 일이다. 괴담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는 미쓰다 신조는 단지 즐기고자 할 뿐이지 괴이가 반드시 일어나란 법은 없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창작의욕을 불태운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기에 처음부터 무섭다는 감정이 어디서 촉발하는 것인지 실체가 없다.

 

 

그래서 호러라는 공포는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 같은 음습하고 서늘한 느낌이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나중에는 조금씩 무감각해진다. 무섭지가 않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미스터리로 몰고 가서 결말에서 호러와 결합한 후 두 가지 다 원만한 선에서 해몽을 해 주었더라면 효과만점이었을 텐데 결말은 소문대로 맘에 들지 않았다. 액자식의 색다른 구성과 전개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만족했지만 미스터리는 봉인되고 호러만 남는구나. 

 

 

확실히 “괴이”라는 정체에 대해서는 개인별로 체감온도가 다르겠지만 미쓰다 신조의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라면 그것의 유형이랄까,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지간해서는 참신하게 받아들여지기가 힘들다. 익숙해진 공포는 “괴이”를 미지로 간주하고 모든 현상의 원인이 되어버린다면 논리적으로 납득은 불가하다. 이제까지 미쓰다 신조는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을 통해서 분석이 가능한 원흉과 그렇게 할 수 없는 원흉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서 현실이 누리고 있는 부조리를 적정한 수준에서 추정해내었다.

 

 

그러한 안배가 이번에는 완전히 깨어졌기 때문에 원성이 자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가이드라인에 관한 협상에서 처절히 실패한 이유는 기시감의 반복 때문이고 단서는 실종되었으니 잔혹함으로만 승부를 걸기에는 욕구불만이 상당하다. 최소한 영국과 일본에서 벌어진 일가족 참살이 일어난 시간적 주기 ‘7’이라는 수학적 공식만이라도 의문을 해소해 주었더라면 좋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이 모든 원인은 문제의 서양식 저택에 홀려서 그렇단다. 무엇에 씌었다는 이상한 느낌이란다. 

 

 

그리고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 같다는 건 이 시리즈의 특성이라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미심쩍은 의문은 남는다. 동인지 “미궁초자”에 수록된 단편 중 “안개저택”과 “오락으로서의 살인”은 <작자미상>에서 이야기를 먼저 읽었기에 언급은 반갑지만 <기관>의 미쓰다 신조와 <작자미상>의 미쓰다 신조는 별개의 인물인 것일까? <기관>에서는 직접 해당 소설을 집필한 작가지만 <작자미상>에서는 해당소설을 읽은 독자로 나오기에 신분과 역할은 다르고 괴이를 직접 체험한다는 공통점만이 두 작품을 연결했다가도 구분 짓게 만드는 착각이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호러적 분위기에 길들이는 감각으로 등장하는 괴이하고 섬뜩한 웃음소리, 발자국 소리, 문이 열리고 닫히고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 ‘문을 열어 봐, 나야’. 같은 청각적 요소들은 과거에 일어난 참극에 대한 기억을 되돌리게 하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망상, 악몽, 작품해설까지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일정부분 진실처럼 보이는 부분과 동·서양 호러 대중문화에 대한 마니아적 지식의 나열도 나중에 다시 확인하고픈 흥미를 돋운다는 점에서도 좋은 점수를 추가로 주고 싶다.

 

 

결국 이 소설을 즐길 수 있느냐의 판단여부는 작가의 의도대로 현실에 가깝게 믿도록 하기 위한 교묘함에 얼마나 흥을 느낄 수 있는지, 그 함정에 얼마나 깊게 빠질 수 있는지를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허구를 즐기는 방법 외에는 더 이상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일단 이번만큼은 “미쓰다 신조 월드”가 연착륙 못하고 불시착 했다는 개인적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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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케 전설 살인사건 ㅣ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우치다 야스오 지음, 김현희 옮김 / 검은숲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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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 추리소설에서 3대 국민탐정이라고 하면 '긴다이치 코스케','가미즈 쿄스케' 그리고 '아사미 미쓰히코'를 지칭한다고 한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일부 읽어 보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읽어본 적도 없거니와 그렇게 영예스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으니 아직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는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는 셈이다. 뒤늦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시간이 허락하는 한 차츰 찾아서 읽어나가 보자.  

 

  

프리랜서 작가 '아사미 미쓰히코', 당년 33세. 아니 영원한 33세이던가? 왜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인지... 마치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에 등장하는 형사들이 늙지도 않는 것처럼 꽃미남 이미지를 계속 고수하고 싶은가 본 데 상큼한 허우대와는 달리 어딘가 어설픈 구석이 좀 보인다. 은근 마마보이인데다 경찰청 국장인 형에 대한 컴플렉스가 상당히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사건현장에서는 항상 누구네 동생으로 통하다보니 그건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탐정으로 활동하는데 상당히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어 필요시에는 즉각 굽히고 들어와 협조하는 경찰들에게 내놓을 카드로 최적이다. 이렇게 든든한 보험을 본인이 꺼려해서 문제지만.

 

 

사건발생은 계절의 여왕 5월, 고치 현으로 가는 호화 쾌속선 '시 플라워'에서 한 남자가 실족사 한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이 배의 항해사 '호리노우치'였고 그의 증언에 따라 남자의 미망인에게 거액의 사망보험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시체는 발견되지는 않은 상태에서 2년이 지난 후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 맨션에서는 또 다른 남자가 추락사한다. 그런데 2년 전 죽은 남자랑 이번에 죽은 남자가 그 당시 여객선의 승객이었음을 '호리노우치'가 기억해낸 것이다. 단지 우연의 일치라기엔 이상하다 싶어 친구인 '아사미 미쓰히코'에게 두 사건의 연관성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한다. 2년 전의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고자 '시 플라워'의 종착지인 고치 현을 찾아간다. '아사미 미쓰히코'는 숨겨진 마을이라는 '오추도 마을'에서 죽은 두 남자의 고향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뜻밖의 이야기도 듣게 되는데....

 

 

현실과 허구의 미묘한 조화가 이 시리즈의 성공을 이끈 주요 원동력 중 하나라고 하는데 소설 속 주인공의 집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주변 건물들은 실제로 존재해서 '아사미 미쓰히코'라는 인물에 대한 동경과 소설 속 트릭들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사실 '아사미 미쓰히코' 라는 캐릭터는 스스로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독자적인 느낌마저 주기 때문에 이번 '헤이케 전설 살인사건'처럼 처음부터 범인을 드러내고 범행을 모색하는 단초를 먼저 밝혀서 결과를 원인으로 되짚어 가도록 유도한 역행은 의도하지 않은 수순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사미 미쓰히코'의 추리과정을 따라가며 범인들이 자신했던 "완전범죄"와 "안전범죄"의 구별을 어떻게 해낼 것인지 예측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정서를 관통하는 흐름은 '고향'이다. 산업화라는 예견된 구조 속에서 물질만능주의가 가치관으로 자리 잡은 젊은 층들이 고향을 벗어나 도시라는 시공간을 먹이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되어 떠돌 때에는 남겨진 자의 회한과 떠난 자의 망향으로 인한 상실감이 다스리기 힘든 슬픔으로 다가온다. 떠날 때는 쉽게 떠나서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각오였지만 '헤이케' 일족이 '겐지'의 추적을 피해 숨어든 오추도 마을에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고자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를 끊을 수 있게 준비해 두었다는 전설처럼 후손들은 더 이상 돌아갈 방법이 없다.

 

 

'헤이케'의 후손으로 태어나 터전을 지키지 않은 그들에게 과거라는 뿌리와의 단절은 슬픈 애환이 되어 가슴 먹먹하게 한다. 결국 트릭을 깨뜨리는 망치가 '아사미 미쓰히코'라면 반전이라는 가면은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개탄이다. 사회문제를 여행이라는 여정을 통해서 만나는 달달한 로맨스도 참 좋고 바깥의 어둠보다도 더 칠흑같은 어둠을 응시하는 진실에 대한 동정도 아릿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쁘다고 비방하는 사람을 약자로 간주하고 옹호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남자 '아사미 미쓰히코'에게는 여백이라는 매력과 섬세한 감성이 살아 숨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꽃미남이라 질투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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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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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911 테러로 인해 아내 모니카를 잃고 삶의 방향을 상실한 채 살아가던 FBI 요원 사이먼 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그런데 발신일자는 바로 십 년 전 오늘. 편지가 배달되는 날부터 매일 한 명씩 죽게 될 것이고 그들을 제거하는 이유는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로막는 공공의 적이기 때문이니 뉴저지에 사는 엘리슨 로자를 찾아 그녀의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으라는 내용에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여겼지만 이윽고 편지는 현실이 된다. 세계적인 곡물 기업의 총수 나다니엘 밀스타인이 암살된다. 정작 용의자는 십 년 전 죽은 한 남자로 밝혀지는데 엘리스의 눈앞에서 권총 자살을 한 한국 남자 신가야였던 것이다. 십 년 전 자살한 남자가 용의자로 지목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거물급 인사들이 연달아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모든 사건의 용의자는 신가야이다. 현재 벌어지는 사건과 관련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하여 사이먼은 엘리스의 과거 기억을 더듬어간다. 그리고 이들의 뒤를 따라오는 어떤 조직이 있다. 

 

 

저장하였으므로 사라지는 것이 기억이라고 한다. 정보 자체는 기억하지 못하고 정보 공간만 기억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과잉 기억 증후군’이라는 현상은 희귀한 존재이다. 망각 능력이 상실되어 기억을 통제할 수 없다면 머릿속이 기억으로 가득 차 과거라는 철장 속에서 평생 갇혀 살아야 한다는 끔찍한 형벌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줄 재능을 망각하고 예상치도 못한 급류에 떠 밀려가 버린 엘리스와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사랑을 의심하고 열등감이라는 패배에 평생을 자학했던 사이먼 켄의 비극은 911 테러에서 기인했다. 둘만의 공통점!

 

 

미래를 본다는 능력 또한 정답을 알고 있는 거랑 같을 수는 없다. 읽을 수 없는 미래가 분명 있다. 미래를 바꿀 수도 있고 알면서도 손을 대면 안 되는 미래도 있을 수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답을 구할 수 없다면 어설픈 대응은 돌이킬 수 없는 결말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점을 절묘하게 예측하고 대비한 신가야의 복수는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기억하는 ‘궁극의 아이’들을 이용하여 돈과 권력을 쥐고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악마 개구리’라는 집단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 된다. 그렇다면 수천 년 전부터 발견되어 온 ‘미래를 기억하는 아이들’이라는 신비스러운 존재가 이 모든 탐욕의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은 어떤 존재이던가? 열 살 전후로 능력에 징후가 포착되며, 고대에는 한 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끄는 기여도로 어린 나이에 신관으로 추앙받는다. ‘궁극의 아이’들은 오드아이가 신체적 특징이고 존재 자체는 베일에 가려져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정신병자 취급을 당한다. 천재도 거시적인 차원에서 트레이닝을 못시키면 평범한 구성원으로 전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 중요하듯이 ‘악마 개구리’ 가문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한 수 앞을 내다보는 뛰어난 수완으로 세계를 좌지우지 했으니 그런 그들의 배후에는 궁극의 아이가 존재했던 것. 보통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고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들은 그래서 항상 타인의 질투, 시기, 호기심에 보호받지 못한 채 오히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용에 혈안이 되는 세력 앞에서 불행이라는 운명을 거부하지 못한다. 

 

 

신이 되고 싶었던 괴물과 신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수천 년 동안 관계를 이어오며, 어쩌면 영원할 수도 있었다. 신가야가 짜놓은 퍼즐조각을 10년간에 걸쳐 하나씩 맞추다보면 완성된 퍼즐에서 악연을 붕괴시킬 단서가 발견될지는 그 누구도 예상 못했으리라. 아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림자를 키워온 어둠의 실체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 못한 상태에서 음모론이 파생하는 거대한 게임이 풍부한 상상력의 극치 속에서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워싱턴에서 벌어진 계속된 암살 사건, 911 테러, 고향 티벳으로 돌아가는 14대 달라이 라마 으뜬 갸초, 센카쿠 열도 분쟁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 그리고 이 모든 상황들에 연계되어 있는 한반도의 안보까지. 한국 추리소설의 한계를 넘은 글로벌적인 스케일 과 숨 가쁜 서스펜스들은 분명 한국 장르소설이 한 단계 일취월장한 파급력이라 놀랍기만 하다. 장용민이라는 작가는 정유정 작가와 더불어 주목할 만한 가치가 분명 있는 장르소설의 대가인 것 같다. 정유정 작가의 이번 신작 <28>도 그런 기대감에 주문했으니까.

 

 

또한 신가야가 모든 계획을 수립하고 시나리오를 짜며 복수극을 주도했던 탓에 엘리스는 얼핏 수동적인 역할에 나태하고 패배에 찌든 여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가야가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은 복수극만이 아니다. 꿈을 포기하지 말고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 딸 미셀과 함께 기다렸던 행복을 놓치기 싫다면 운명이라는 뿌리를 바꾸라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구원적 메시지에 포함되어 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의 의도대로 거대한 음모론이 나무라면 숲은 사랑 이야기이다. 꿈꾸면서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랑이 스릴러라는 집에서 멋지게 태어난 것이다. 글쓰기는 집을 짓는 것과 흡사하다는 작가의 소감대로. 물론 신가야와 엘리스의 사랑 이야기는 진심 오글거리기는 했다만. 그 점만 제외한다면 즐거운 독서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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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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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는 <관 시리즈> 전 권 인증 이벤트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전에도 "신본격 추리"의 기수중 한 명으로 아야츠지 유키토의 명성은 익히 들어 왔으나 당시에는 읽어보고 싶다는 간절함은 들지 않았던 것이 시리즈 전 권 인증샷 응모 열기를 확인하고 나니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지금이 적기라는 신호에 올초 <기면관의 살인>으로 드디어 <관 시리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우선 신간으로 만나보고 맘에 들면 나머지 시리즈도 차근차근 찾아 읽어보자는 계획이었다. 그런 기대감을 안고 읽은 <기면관의 살인>은 나카무라 세이지의 기이한 건축물에서 벌어지는 악몽같은 상황들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호감도를 바탕으로 이 시리즈의 실질적인 최고작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시계관의 살인>을 읽었다.  

 

 

대츠노시마에서 벌어진 <십각관의 살인> 이후, 가와미나미는 가마쿠라에 있는 "시계관"이라는 저택에서 소녀의 원혼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듣고 정체를 파악하고자 월간지 "카오스"의 직원들과 W 대학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들, 초능력자 고묘지 마코토와 함께 시계관으로 초대받아 들어간다. 우연의 일치인지 "십각관"의 악몽이 잊혀지기도 전에 "시계관" 역시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건축물이었던 것. 시계바늘이 없는 시계탑, 구관과 신관으로 구성된 시계관, 죽은 소녀의 원혼과 교신하는 교령회가 열릴 장소는 그 중에서도 구관이다. 108개에 달하는 많은 시계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시계의 시간대를 상징하는 12개의 방과 시계추의 모양같은 "진자의 방"이라는 특이한 방을 갖춘 곳이다. 그런데 교령회가 종료된 후, 일행 중 실종자가 발생하고 참관자들은 차례 차례 시체로 발견된다.  

 

 

<시계관의 살인>을 읽고난 소감은 <기면관의 살인>보다는 몰입도 면이나 트릭, 반전, 그리고 뒷 이야기까지 모든 면에서 더 재미있었다는 확연한 느낌이다. 조금 미적지근하게 사건이 중단되고 만 것 같았던 <기면관의 살인>과는 달리 <시계관의 살인>은 일단 살인이 최대한 발생 가능한 부분까지 진행된다는 점에서 두터운 페이지를 의식하지 못할 만큼의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그것은 나카무라 세이지가 각처에 지어놓은 기괴한 건축물들이 구조자체도 놀랍고도 기이하지만 그 건축물들의 설계를 의뢰한 소유주들이 하나같이 숨겨진 사연들이 많고 병적인 집착이랄까 소유욕 또는 망상 같은 증상을 앓고 있던 인물들인지라 그들의 내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일정부분 해소하고 분출하는 무대같은 개념을 건축물들에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항상 피비린내는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들은 악몽이 되어 실현되니 보이지 않는 원념들이 운명처럼 덫을 치고 참관자들을 사육하고 있는 가축처럼 영문도 모른 채 도살장에 끌고 갈 준비를 하나보다. 애시당초 발을 들여 놓지 말았어야 했거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물들에 기묘한 끌림을 느끼고 있는 시시야 가토미만큼은 이 초대장은 거부할 길 없는 강렬한 유혹이다. 이번 <시계관의 살인>의 등장인물들에 담긴 사연들은 인간적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면이 많은데 시계관의 선대 주인 고가 정계사 회장 고가 미치노리는 시계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괴인같으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만큼은 다른 가장들과 결코 다를 바가 없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가 누리지 못한 가정이라는 행복을 물리적으로, 인위적으로 연장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왠지 이 남자는 무척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딸의 죽음에 얽힌 사연들은 그래서 동정과 연민들이 들지만 반전이라는 키워드를 쥐고 있는 은밀한 카드이기도 하다. 살인마는 살인동기를 추측컨대 두 사람으로 압축, 추정되지만 살인동기의 발단으로 알고 있는 일련의 사고는 세간의 이목을 호도할 뻔한 절묘한 눈가림으로 이용되면서 범인의 정체는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간다.  

 

  

살인수법에 대한 트릭은 또 어떠한가? <관 시리즈>를 두 번째 만나면서 이제는 이 시리즈에서 패턴화된 트릭을 어렵지않게 눈치채게 된다. 논리가 아닌 어떠한 물리적 안배는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게임이 아닌 변칙플레이라는 깜짝 카드가 되면서 혹자에 따라 실망과 반발, 나머지 시리즈의 전개에 대한 예측가능이라는 자충수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즐기기엔 문제가 없겠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적재적소에서 익숙한 패턴을 어떤 매뉴얼로 활용했는지에만 관심을 두면 되니까. 또한 예상했던 인물이 아닌 다른 사람이 범인이었다는, 범인의 의외성은 당연히 또 다른 트릭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를 때는 갑갑하지만 알고보면 기발하면서도 시계관의 특성을 감한하면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 감탄스럽다.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닌, 염두에 둘 필요도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항상 일정한 속도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되었고 인간의 하루는 그것의 엄격한 지배를 받게 된다. 인간은 이 메커니즘을 측정하고 지배하고 있단 생각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오히려 그것의 활용방식이 인간의 정신과 육신을 모두 구속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이 트릭이야말로 착각을 역이용하고 있는 멋진 시도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가 회장이 시계관에 배치해둔 안배의 실현과정들은 여타 일본 추리소설에서는 좀처럼 보기힘든 스펙터클한 스케일이 장관이라 눈 앞에서 그 장면들이 웅장하게 펼쳐지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다. 모든 면에서 추리소설을 읽는 기쁨을 배가시키는 각종 시도와 장치들은 충분하다. 쓸만하다. 사건을 직접 해결하기 보다는 인물의 사연을 뒤따라가면서 사건의 트릭에 치중하는 시시야 가토미식 추리는 지적인 게임을 선호하는 독자들을 최적으로 만족시키는 야심찬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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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 법정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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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라는 현상은 초자연적인 마술 또는 주술·심령 등과 같은 비합리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최근의 문화장르를 일컫는 말이다. 딱히 선을 그어 명쾌하게 정의내리기도 애매하니 현실 세계의 불안한 심리를 탈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적 이성과는 정면 배치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오컬트에 대한 과도한 탐닉과 번성은 이 사회가 정신적으로 현실도피 해야 할만큼 구조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는 징후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런 오컬트가 추리소설과 만난다면, 게다가 보너스로 현장이 밀실이라면 궁합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걸 기존의 추리소설들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는 물론이요, 미쓰다 신조 식 호러도 다 밀실 수수께끼와 불가능 범죄의 대가이자 오컬트 미스터리의 대가이기도 한 존 딕슨 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심지어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서도 카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더라. “시계관의 살인”에서 시시야 가토미가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인 후쿠니시 료타에게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를 물었을 때 두 사람 모두 카를 공통적으로 떠올리는데 이만하면 가히 전 방위적인 입지로다.

 

 

그런 까닭인지 “화형법정”은 카의 전성기를 대변하는 대표작 중 하나로, 역시 밀실 살인을 기본으로 사라진 시체, 벽 속으로 사라진 여인 등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도 놀랍지만 유럽의 실제 역사를 꺼내 들어 죽은 인물이 살아 있다고 해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만드는 연출 방식은 특별히 돋보이는 대목이다. 17세기 악명을 떨친 희대의 독살범 '브랭빌리에 부인'이나 루이14세 때의 마녀 사건으로 유명한 '몽테스팡 부인' 같은 인물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소설을 위해 가공된 인물로 오인하기 쉬운데 실존인물이라는 점에서 실제와 허구를 교묘히 믹스함으로서 소설의 분위기는 진실에 대한 계속된 오판으로 몰아가는데 성공했다고 인정해 주자.  

 

 

미국출신이지만 유럽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연출력은 완전범죄를 더욱 믿게끔 만든다. 완전과 불완전함의 경계 사이에서 기발하고 정교한 트릭이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결말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두고 호불호가 엇갈리는 독자들의 평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모두가 과학적 해석이 가능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밀실트릭은 숨겨진 비밀통로와 기계장치나 인간의 불안한 심리가 빚어내는 착시현상 등 해법이 정확히 제시되는 문제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과학과 논리의 힘으로도 해결 못 하는 현상도 분명 존재한다. 수학문제도 풀 수 있는 게 있고 못 푸는 문제가 있듯이...

 

 

에드워드의 아내 마리는 말한다. "가봐야 아무 것도 찾지 못할 거야." 라고. 마일스가 독살되었다는 전보를 들고 저택을 찾아온 경찰 '브래넌'과 홀연히 사라져버린 아내 마리. 사건이 안개 같은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 깜짝 등장하는 작가까지 하나의 의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걸 막고 배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갈등과 의심을 최대한 증폭시켜 나간다. 

 

사라진 시체에 대한 주의분산과 삽화의 배치를 통한 폐쇄성 강조, 살인 동기라는 거짓된 가면까지 추리소설에서 오컬트가 가진 순수한 두려움에 큰 그림을 보지 못했기에 거짓에 관한 낭만적인 감상에 빠지게 된다. 100% 가까운 명백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본격 추리소설을 읽어야겠지만, 아니 그 정도의 적중률을 자랑하는 추리가 있을까? 일부든 전부이든 추정이다. 가끔씩 잊고 기계적으로 읽을 때도 있지만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미스터리에 있는 이유처럼 카의 괴기적 취향도 충분히 머리에서 그리고 가슴에서 흡수 가능하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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