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911 테러로 인해 아내 모니카를 잃고 삶의 방향을 상실한 채 살아가던 FBI 요원 사이먼 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그런데 발신일자는 바로 십 년 전 오늘. 편지가 배달되는 날부터 매일 한 명씩 죽게 될 것이고 그들을 제거하는 이유는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로막는 공공의 적이기 때문이니 뉴저지에 사는 엘리슨 로자를 찾아 그녀의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으라는 내용에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여겼지만 이윽고 편지는 현실이 된다. 세계적인 곡물 기업의 총수 나다니엘 밀스타인이 암살된다. 정작 용의자는 십 년 전 죽은 한 남자로 밝혀지는데 엘리스의 눈앞에서 권총 자살을 한 한국 남자 신가야였던 것이다. 십 년 전 자살한 남자가 용의자로 지목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거물급 인사들이 연달아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모든 사건의 용의자는 신가야이다. 현재 벌어지는 사건과 관련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하여 사이먼은 엘리스의 과거 기억을 더듬어간다. 그리고 이들의 뒤를 따라오는 어떤 조직이 있다. 

 

 

저장하였으므로 사라지는 것이 기억이라고 한다. 정보 자체는 기억하지 못하고 정보 공간만 기억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과잉 기억 증후군이라는 현상은 희귀한 존재이다. 망각 능력이 상실되어 기억을 통제할 수 없다면 머릿속이 기억으로 가득 차 과거라는 철장 속에서 평생 갇혀 살아야 한다는 끔찍한 형벌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줄 재능을 망각하고 예상치도 못한 급류에 떠 밀려가 버린 엘리스와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사랑을 의심하고 열등감이라는 패배에 평생을 자학했던 사이먼 켄의 비극은 911 테러에서 기인했다. 둘만의 공통점!

 

 

미래를 본다는 능력 또한 정답을 알고 있는 거랑 같을 수는 없다. 읽을 수 없는 미래가 분명 있다. 미래를 바꿀 수도 있고 알면서도 손을 대면 안 되는 미래도 있을 수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답을 구할 수 없다면 어설픈 대응은 돌이킬 수 없는 결말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점을 절묘하게 예측하고 대비한 신가야의 복수는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기억하는 궁극의 아이들을 이용하여 돈과 권력을 쥐고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악마 개구리라는 집단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 된다. 그렇다면 수천 년 전부터 발견되어 온 미래를 기억하는 아이들이라는 신비스러운 존재가 이 모든 탐욕의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은 어떤 존재이던가? 열 살 전후로 능력에 징후가 포착되며, 고대에는 한 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끄는 기여도로 어린 나이에 신관으로 추앙받는다. ‘궁극의 아이들은 오드아이가 신체적 특징이고 존재 자체는 베일에 가려져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정신병자 취급을 당한다. 천재도 거시적인 차원에서 트레이닝을 못시키면 평범한 구성원으로 전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 중요하듯이 악마 개구리가문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한 수 앞을 내다보는 뛰어난 수완으로 세계를 좌지우지 했으니 그런 그들의 배후에는 궁극의 아이가 존재했던 것. 보통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고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들은 그래서 항상 타인의 질투, 시기, 호기심에 보호받지 못한 채 오히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용에 혈안이 되는 세력 앞에서 불행이라는 운명을 거부하지 못한다. 

 

 

신이 되고 싶었던 괴물과 신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수천 년 동안 관계를 이어오며, 어쩌면 영원할 수도 있었다. 신가야가 짜놓은 퍼즐조각을 10년간에 걸쳐 하나씩 맞추다보면 완성된 퍼즐에서 악연을 붕괴시킬 단서가 발견될지는 그 누구도 예상 못했으리라. 아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림자를 키워온 어둠의 실체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 못한 상태에서 음모론이 파생하는 거대한 게임이 풍부한 상상력의 극치 속에서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워싱턴에서 벌어진 계속된 암살 사건, 911 테러, 고향 티벳으로 돌아가는 14대 달라이 라마 으뜬 갸초, 센카쿠 열도 분쟁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 그리고 이 모든 상황들에 연계되어 있는 한반도의 안보까지. 한국 추리소설의 한계를 넘은 글로벌적인 스케일 과 숨 가쁜 서스펜스들은 분명 한국 장르소설이 한 단계 일취월장한 파급력이라 놀랍기만 하다. 장용민이라는 작가는 정유정 작가와 더불어 주목할 만한 가치가 분명 있는 장르소설의 대가인 것 같다. 정유정 작가의 이번 신작 <28>도 그런 기대감에 주문했으니까.

 

 

또한 신가야가 모든 계획을 수립하고 시나리오를 짜며 복수극을 주도했던 탓에 엘리스는 얼핏 수동적인 역할에 나태하고 패배에 찌든 여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가야가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은 복수극만이 아니다. 꿈을 포기하지 말고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 딸 미셀과 함께 기다렸던 행복을 놓치기 싫다면 운명이라는 뿌리를 바꾸라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구원적 메시지에 포함되어 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의 의도대로 거대한 음모론이 나무라면 숲은 사랑 이야기이다. 꿈꾸면서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랑이 스릴러라는 집에서 멋지게 태어난 것이다. 글쓰기는 집을 짓는 것과 흡사하다는 작가의 소감대로. 물론 신가야와 엘리스의 사랑 이야기는 진심 오글거리기는 했다만. 그 점만 제외한다면 즐거운 독서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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