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형 법정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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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라는 현상은 초자연적인 마술 또는 주술·심령 등과 같은 비합리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최근의 문화장르를 일컫는 말이다딱히 선을 그어 명쾌하게 정의내리기도 애매하니 현실 세계의 불안한 심리를 탈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적 이성과는 정면 배치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오컬트에 대한 과도한 탐닉과 번성은 이 사회가 정신적으로 현실도피 해야 할만큼 구조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는 징후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런 오컬트가 추리소설과 만난다면, 게다가 보너스로 현장이 밀실이라면 궁합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걸 기존의 추리소설들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는 물론이요, 미쓰다 신조 식 호러도 다 밀실 수수께끼와 불가능 범죄의 대가이자 오컬트 미스터리의 대가이기도 한 존 딕슨 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심지어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서도 카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더라. “시계관의 살인에서 시시야 가토미가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인 후쿠니시 료타에게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를 물었을 때 두 사람 모두 카를 공통적으로 떠올리는데 이만하면 가히 전 방위적인 입지로다.

 

 

그런 까닭인지 화형법정은 카의 전성기를 대변하는 대표작 중 하나로, 역시 밀실 살인을 기본으로 사라진 시체, 벽 속으로 사라진 여인 등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도 놀랍지만 유럽의 실제 역사를 꺼내 들어 죽은 인물이 살아 있다고 해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만드는 연출 방식은 특별히 돋보이는 대목이다. 17세기 악명을 떨친 희대의 독살범 '브랭빌리에 부인'이나 루이14세 때의 마녀 사건으로 유명한 '몽테스팡 부인' 같은 인물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소설을 위해 가공된 인물로 오인하기 쉬운데 실존인물이라는 점에서 실제와 허구를 교묘히 믹스함으로서 소설의 분위기는 진실에 대한 계속된 오판으로 몰아가는데 성공했다고 인정해 주자.  

 

 

미국출신이지만 유럽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연출력은 완전범죄를 더욱 믿게끔 만든다. 완전과 불완전함의 경계 사이에서 기발하고 정교한 트릭이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결말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두고 호불호가 엇갈리는 독자들의 평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모두가 과학적 해석이 가능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밀실트릭은 숨겨진 비밀통로와 기계장치나 인간의 불안한 심리가 빚어내는 착시현상 등 해법이 정확히 제시되는 문제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과학과 논리의 힘으로도 해결 못 하는 현상도 분명 존재한다. 수학문제도 풀 수 있는 게 있고 못 푸는 문제가 있듯이...

 

 

에드워드의 아내 마리는 말한다. "가봐야 아무 것도 찾지 못할 거야." 라고. 마일스가 독살되었다는 전보를 들고 저택을 찾아온 경찰 '브래넌'과 홀연히 사라져버린 아내 마리. 사건이 안개 같은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 깜짝 등장하는 작가까지 하나의 의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걸 막고 배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갈등과 의심을 최대한 증폭시켜 나간다. 

 

사라진 시체에 대한 주의분산과 삽화의 배치를 통한 폐쇄성 강조, 살인 동기라는 거짓된 가면까지 추리소설에서 오컬트가 가진 순수한 두려움에 큰 그림을 보지 못했기에 거짓에 관한 낭만적인 감상에 빠지게 된다. 100% 가까운 명백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본격 추리소설을 읽어야겠지만, 아니 그 정도의 적중률을 자랑하는 추리가 있을까? 일부든 전부이든 추정이다. 가끔씩 잊고 기계적으로 읽을 때도 있지만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미스터리에 있는 이유처럼 카의 괴기적 취향도 충분히 머리에서 그리고 가슴에서 흡수 가능하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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