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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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에 대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추천사에서 저자 그레이스 페일리의 팬이며 틀림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던 호언장담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렇다면 그의 표현대로 알 듯 모르듯 이상한 말을 재빨리 던지고는 얼릉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는 느낌으로도 정리될 것 같은데 소설을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모르겠지만 남성 독자들에까지 친절하게 다가오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갸우뚱 할 수밖에 없겠다.

 

 

인생은 어렵다. 이해하기 힘들고 무용하며 미스터리 투성이다. 예술가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전남편이 연체된 도서를 반납하러 간 도서관에까지 졸졸 따라와서는 결혼생활이 끝장난 이유는 당신이 잘 알거라 믿는다. 내겐 소망이 있었지만 당신은 그런 것조차 없었지 않느냐며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따갑게 쏟아내자 자신은 남들이 뭐라 하건 자아가 확실한 사람이라며 생각하던 여자가 소설에 들어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들이 짝사랑 하는 여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으로 반대한다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 능동과 수동이라는 양 극단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모든 것들이 시대를 살아온 엄마들의, 더 나아가 여성들 삶의 방향성이라도 되는 것일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들 속의 은유를 굳이 해석하려던 시도가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더 나아가지 않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토록 강조했던 신비한 중독성의 실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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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야상곡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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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악몽은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코시바 레이지는 전편인 <속죄의 소나타>에서 유년시절에 어린 소녀를 살해 유기하여 시체배달부라는 악명을 떨쳤었고 그 대가로 형벌을 받았었다. 그리고 세상을 나와 개명하고 과거를 감춘 채 변호사로 다시 악명을 떨치게 된다. 악몽에서 깨어나 보니 식은땀이 베개를 적시고 있던 그 느낌이 초반을 지배할 때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이다.

 

 

돈 많은 범법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수단이 목적에 우선시한다는 자세로 악랄하게 변호해서 거액의 수임료를 챙기는 그에게 사람들은 돈벌레라고 경멸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느닷없이 남편을 살해한 어느 주부의 변호를 자신이 맡겠다고 나선다. 피고인 아키코는 자신의 범행임을 자백했으며 살해동기를 보더라도 극히 죄질이 나쁜 것으로 판명 받아 선처 받을 확률은 극히 낮아 보인다. 한마디로 승산이 없는 이 게임을, 피고가 재력가가 아님을 감안하면 어떤 보상을 바라고 이러는 것일까.

 

 

미코시바 레이지가 아키코의 변호를 대신 맡았다는 소문이 법조계에 쫘악 퍼지자 과거 공판에서 맞대결을 펼쳤다가 패소한 적 있는 검사 미사키가 자존심 회복을 위해 자신이 재판에 나서겠다고 한다. 이번만큼은 그날의 수모를 되갚을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작된 재판에서 검사의 맹공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되는데 이대로라면 누가 봐도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해 보였다.

 

 

그런데 미코시바 레이지는 변칙에 능하다. 아키코의 과거행적을 뒤짐으로서 어떤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데 읽으면서도 여전히 종잡을 수가 없게 만든다. 기이하고 괴팍하다는 거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도대체 어쩌려고 이리도 장황하게 헤집고 다니는 거냐고. 채무자는 왜 만나고, 피고를 진료했던 의사는 어떻게 알고 조사하고 다니는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고비가 있다. 그런데 산을 넘고 나서 만난 그 뒤의 진실이 뜻밖에도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렇게 연결되는 인연은 악연이겠으나 우연이라도 눈 감아도 됐으련만 살을 내어주고 속죄한 상황은 무모하기까지 했다. 중간에 진실을 일부 눈치 채긴 했더라도 예상을 더 벗어난 파격적인 행보다. 마음의 빚을 덜게 된 것만으로 위안 삼아야 하나. 이제는 어떤 가면도 쓸 수가 없으니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보호할까.

 

 

그래서 근간이라는 <은수의 레퀴엠>에 더 눈길이 간다. 줄거리만으로는 아직 속죄가 끝나지 않았다는. 언제까지나 고통 받을 미코시바 레이지의 미래다. 돌아길 길이 없고 가시덤불은 피를 흘려서라도 돌파해야 하리라. 은사님 곧 우리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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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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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고양이를 단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다. 반려동물이라고 하면 언제나 개를 먼저 떠올리게 되고 소설과 영화로도 개를 가장 쉽게 접하곤 했다. 실제로도 개를 키운 적도 있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양이가 등장하는 소설과 영화가 부쩍 늘어난 것 같고 직접 감상하게 된 경우가 꽤 된다. 아마도 굳이 개가 아니더라도 인간과 고양이 사이를 잇는 외로움이란 단어가 필시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여기 도쿄 변두리 아오메 강에는 네코스테 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다. 이 다리 인근에 조성된 물류촌의 창고에는 쥐 퇴치용 고양이들이 많이 길러졌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를 버린다.’는 의미의 네코스테가 은어처럼 사용되었다. 물론 실제로 버려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고양이가 필요 없을 정도로 번창해서 신식 창고가 생기는 현상을 도둑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곳에서는 고양이들의 집회가 종종 열린다. 집고양이든 길고양이든 상관없이 평등하게 참여 가능한 집회로서 고양이의 관련된 주제라면 토의가 벌어지지만 특별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단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가장 먼저 등장한 요시오는 인간 여자인 사오리와 자신이 연인사이라고 착각하여 그녀의 곁으로 돌아가려다 이 강에 빠져떠내려가다 간신히 구조 된다.

 

 

나중에 자신의 몰골을 보고서 인간 남자가 아니라 고양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 인간과 고양이 사이의 교감은 말이 통해서가 아니라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과 함께 하고 사랑받고 싶은 고양이의 외로운 마음이 만나 서로를 필요로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고양이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간으로부터 이름이 붙여진 고양이와 이름이 없는 길고양이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란 고민도 따지고 보면 쓰잘 데 없는 도돌이표 일지도 모른다. 보통의 인간을 신뢰하지 않던 고양이도 딱 한 사람만큼은 의지하거나, 인간으로부터 사료를 제공받지 않아도 자유로운 객체로서 주거의 자유가 있는 고양이라면 속박 받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간과 공생하는 집고양이들의 사연에 더 눈길이 간다. 연작단편처럼 각 단편마다 이어지는 인연들을 따라가면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서로의 빈곳을 채우며,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가기에 잔잔한 감동이 있다. 인간의 행복과 고양이의 행복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서 체온을 느낄 정도로 꼬옥 안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화는 또 어떤 감성으로 다가올까? 작가와의 대담은 그런 만큼 호기심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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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괴물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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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로 공전의 히트를 거둔 스미노 요루 작가의 세 번째 소설 <밤의 괴물>이 나왔다. 이제는 청소년 라이트노벨의 선두주자로 나서는 것일까 할 정도로 이번에도 그 세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게다가 왕따를 소재로 했다면 조금은 식상하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염려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어느 날 원인불명으로 괴물이 된 소년 앗치가 등장하는 것이다.

 

어두운 방에서 나 혼자 있으면 눈에서부터 검은 알갱이가 눈물 한 방울처럼 떨어지더니 이윽고 양쪽 눈에서 쏟아지면서 전신을 덮고 흘러내려 뒤덮어 나간다. 검은 색 말고는 색깔의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물괴가 되어버렸는데 아직 가족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잠들어 있을 뿐이어서 밖으로 나가 동네 개도 위협하는 재미에 맛들렸나 보다.

 

이제 밤의 학교로 까지 가본다. 아무도 없어야 할 교실에 누군가가 있다. 누구지? 학교에 놔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 간 이유라도 있으면 납득하겠으나 대체 같은 반의 왕따 소녀 야노가 왜 있을까, 놀러왔다는구나. 이 야심한 시각에. 그 말이 왜 그리 슬프게 들리는지. 낮의 학교는 야노에게 암묵적인 합의에 의한 무차별 왕따 당하고 있어서 차라리 혼자 있는 밤이 편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야노는 참 이상한 아이다. 이유 없이 반 아이 중 누군가를 콕집어 괴롭힌다. 그것 때문에 반 아이들은 단죄라는 명목으로 집요하게 야노를 괴롭히고 왕따 시킨 것이다. 따지고 보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도 모르겠고 그렇게 당하고도 그냥 웃고 만다. 아야 하면 그만.

 

하필이면 그렇게 눈치도 없고 무신경한 야노에게 괴물의 모습과 정체를 들키고 말았을까, 야노는 그런 앗치를 경이의 시선으로 대하면서 정체를 까발리지 않으며 낮에도 밤에도 앗치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었다. 사실 낮의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도 있지만 무심코 편들었다가 같이 당하는 아이도 있는가 하면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며 조종하는 아이도 있어서 앗치는 진짜 괴물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에 빠져버린다. 비밀을 공유하면서도.

 

어른들이 이들의 세계에 개입하여 조정하기를 교묘히 거부하는 아이들 때문에 침묵하게 된 어른들, 그래서 아이들을 마냥 순수한 심성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 거 같다. 어른들 못지않게 어쩌면 오히려 더 악랄하고 교활하다고 판단될지도 모를 이들의 세계에는 잘못을 두려움으로, 질서를 깨뜨리면 제재를 가한다는 자신들만의 순화방식이 존재한다. 선악의 결정과 판단에 대한 공감을 보류하고서라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또 있을 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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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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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 책을 두고 인생소설이라고 까지 말한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분명히 내가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부산을 배경으로 한 건달들 이야기가 뭐 그리 잼날까 싶기도 했다. 단지 허세일 뿐이라고 섣불리 단정 지으면서도 그 입소문의 실체를 제대로 확인해 볼까 해서 무심히 펴들었다가 그때부터 제대로 된통 맞은 격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부산 변두리의 구암 바닷가와 그곳의 만리장 호텔로 잡혀있다. 구암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영도와도 가깝고 남부민동과 완월동과도 가깝다고 설명되고 있어서 송도 정도면 어떨까란 상상도 해보게 된다. 그곳에 살고 있는 희수는 마흔 살에 지금은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이자 구암 건달의 중간 보스 정도에 해당되고 구암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손영감의 가장 확실한 꼬붕이기도 하다.

 

 

소싯적은 한 가닥 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건달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구암 바다를 지긋지긋 해하면서도 정작 떠날 곳이 없어 눌러앉아 있는 형국이다. 첫사랑 인숙과 그녀의 아들 아미와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는 동안 구암 바다를 호시탐탐 노리는 영도 지역의 건달들의 위협에다 내부적으로도 지역 상권의 이권다툼에 이 곳은 잠시도 바람 잘 날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희수의 보스인 손영감은 건달이 양복을 입고 다니면 눈에 띄어 잡혀 들어가기 쉽다면서 건달다운 복장을 강조한다. 달리 말하자면 웬만해선 안팎의 도전과 갈등에 전면대응 하기보다는 협상과 관망자세로 가늘고 길게 조직생활을 하며 구암 바다를 오래 동안 지배하려 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건수습은 늘 희수의 몫이었고 최대한 몸을 사리려 해도 승냥이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기에 그의 일생이 시한폭탄 같이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강호의 정의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되었으니 제 아무리 처신을 잘한다 해도 비정한 조직 간의 암투는 음모와 피비린내는 사지로 내몰고 있어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개개인의 발악이 참 싸하더란 말이다. 배신과 회유는 종이 한 장 차이. 어떤 영달을 바란다고 이토록 처절하고 잔인하게 비수를 꽂아대는지 읽는 내내 가슴이 얼얼했고 머리엔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든다.

 

 

그 생존본능 앞에서 뜨거워지지 않을 도리가 없고 책은 이미 브레이크 풀린 논스톱의 고속열차였으니 그 피바람 속에서 정리되는 인연과 끈질기게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하는 결연한 의지마저 목도하게 된다. 그렇게 앞만 보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면 어쩔 수없이 겪어야 했을 이별과 상실감에 눈 질끈 감게 되면서도 살아남으라.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체념한 순간 휘몰아치는 폭풍 같은 후반이야말로 압권이었다. 진정한 느와르를 뒤늦게 만났다는 후회와 함께 필력과 흡입력의 어떤 합일된 경지를 만나 진정 행복한 소설이구나. 진짜로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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