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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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 책을 두고 인생소설이라고 까지 말한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분명히 내가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부산을 배경으로 한 건달들 이야기가 뭐 그리 잼날까 싶기도 했다. 단지 허세일 뿐이라고 섣불리 단정 지으면서도 그 입소문의 실체를 제대로 확인해 볼까 해서 무심히 펴들었다가 그때부터 제대로 된통 맞은 격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부산 변두리의 구암 바닷가와 그곳의 만리장 호텔로 잡혀있다. 구암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영도와도 가깝고 남부민동과 완월동과도 가깝다고 설명되고 있어서 송도 정도면 어떨까란 상상도 해보게 된다. 그곳에 살고 있는 희수는 마흔 살에 지금은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이자 구암 건달의 중간 보스 정도에 해당되고 구암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손영감의 가장 확실한 꼬붕이기도 하다.

 

 

소싯적은 한 가닥 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건달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구암 바다를 지긋지긋 해하면서도 정작 떠날 곳이 없어 눌러앉아 있는 형국이다. 첫사랑 인숙과 그녀의 아들 아미와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는 동안 구암 바다를 호시탐탐 노리는 영도 지역의 건달들의 위협에다 내부적으로도 지역 상권의 이권다툼에 이 곳은 잠시도 바람 잘 날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희수의 보스인 손영감은 건달이 양복을 입고 다니면 눈에 띄어 잡혀 들어가기 쉽다면서 건달다운 복장을 강조한다. 달리 말하자면 웬만해선 안팎의 도전과 갈등에 전면대응 하기보다는 협상과 관망자세로 가늘고 길게 조직생활을 하며 구암 바다를 오래 동안 지배하려 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건수습은 늘 희수의 몫이었고 최대한 몸을 사리려 해도 승냥이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기에 그의 일생이 시한폭탄 같이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강호의 정의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되었으니 제 아무리 처신을 잘한다 해도 비정한 조직 간의 암투는 음모와 피비린내는 사지로 내몰고 있어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개개인의 발악이 참 싸하더란 말이다. 배신과 회유는 종이 한 장 차이. 어떤 영달을 바란다고 이토록 처절하고 잔인하게 비수를 꽂아대는지 읽는 내내 가슴이 얼얼했고 머리엔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든다.

 

 

그 생존본능 앞에서 뜨거워지지 않을 도리가 없고 책은 이미 브레이크 풀린 논스톱의 고속열차였으니 그 피바람 속에서 정리되는 인연과 끈질기게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하는 결연한 의지마저 목도하게 된다. 그렇게 앞만 보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면 어쩔 수없이 겪어야 했을 이별과 상실감에 눈 질끈 감게 되면서도 살아남으라.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체념한 순간 휘몰아치는 폭풍 같은 후반이야말로 압권이었다. 진정한 느와르를 뒤늦게 만났다는 후회와 함께 필력과 흡입력의 어떤 합일된 경지를 만나 진정 행복한 소설이구나. 진짜로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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