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진실의 빛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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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후회와 진실의 빛 - 누쿠이 도쿠로

 

몇 개의 별이 쑥스럽다는 듯 반짝이는 컴컴한 밤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괜히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는 도입부, 도쿄의 한적한 변두리 어느 공터에서 한 여인의 사체가 발견된다. 피범벅으로 발견된 사체에는 집게손가락이 잘려나가고 없다. 연이어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인의 살인예고가 인터넷에 게시되면서 세상은 그를 "손가락 수집가"로 부르게 된다. 그리고 예고했던 대로 희생자들 모두 공통적으로 손가락이 없는 엽기살인이 발생하지만 이를 막지 못하는 수사당국에는 범인의 정체와 범행동기에 대한 각종 억측만 난무할 뿐 결정적 단서는 포착 못한 채, 혼선은 혼선을 낳고 분노와 자괴감만 늘어날 뿐이다.

 

<통곡>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이었는데 솔직히 기막힌 반전이나 트릭은 기대치를 미치지는 못한다. 흔히 추리소설이 독자들에 주는 즐거움이라면 의외성에서 비롯된 어긋난 범인의 정체나 예측을 가볍게 뛰어넘는 트릭이나 사건의 진실 등을 들 수 있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어느 것 하나 틀을 깨뜨리지 못하면서 통속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범인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도 범인은 항상 가까이에 있는 주변인물 중 하나라는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기에 의심스러운 용의자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용의자 제외와 특정인물의 범인 지목은 어떠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서라기보다 추리소설에서의 범인들은 그냥 직감에 의해 정체를 눈치 챌 수가 있기 때문이 아닐지.. 그래서인지 이번 소설의 범인도 왜? 그여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유년시절의 불행한 기억의 편린들에서 기인했다는 점도 무난한 설정이라고 보면 된다.

정작 흥미를 끄는 요소는 범인의 정체와 범행동기, 반전이나 트릭 같은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찰조직의 내부갈등과 개인사에 더 비중이 쏠린다. 수사권한을 두고 각 부서간의 권위와 자존심을 둘러싼 불협화음은 경직된 관료조직의 병폐가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에 대한 조롱과 함께 별개로 개개인의 끊임없는 신경전과 반목은 범인 검거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만 할 장애물이자 불편한 동거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중심을 끌고 나가는 주축은 단연 사이조일 것이다. 다른 동료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기지와 판단력 등 뛰어난 수사적 재능으로 진급도 상대적으로 앞선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고 있지만 동시에 그를 시샘하는 경쟁자들의 질투와 불행한 결혼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와 압박감 속에 많은 고충을 겪는다. 빛이 환할수록 그림자가 짙다는 표현은 이런 경우에 비유하면 적절할 것 같은데, 겉보기에는 완벽하고 똑똑한 사람이지만 이면에 가려진 인간적인 결함과 나약함은 누구나 완전할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결혼생활만 해도 그렇다. 애초에 아키호의 도도함과 억척스러움에 반해 일방적인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지만 남편을 단지 자신의 세속적인 성공이라는 욕망의 도구로만 이용하려한 뼛속 깊은 아내의 속물근성에 힘들어하다 불륜에 이른 사이조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맘이 씁쓸해진다. 물론 그의 불륜 자체를 무조건 정당화할 생각은 없지만 결혼이라는 시스템을 두고 여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결혼관은 또 다르겠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정 자신에게 어울리는 반려자 선택의 기준은 어떤 것인지 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인연을 먼저 만났더라면 행복했을 것 같은 사이조의 회한이 <후회와 진실의 빛>이 얘기하고자하는 그림자인 것 같다. 또한 두 번 다시 리셋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이조의 처지와 더불어 나만 잘났다는 유아독존적인 사고방식은 주위에 상처와 자신에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는 현실은 현명한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후회와 진실의 빛>이 얘기하는 또 다른 숨은 교훈이다.

 

그래서 추리소설로서의 쾌감은 비록 덜하지만 주인공 사이조의 처신에서 무수한 동정과 연민, 반성을 촉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여운이 짙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던 점이 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렇기에 뒷 담화가 던져주는 그 미묘함은 누쿠이 도쿠로의 추리소설 <후회와 진실의 빛>를 읽고 나면 소주 한 잔 털어놓고 싶은 씁쓸함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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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와이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9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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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 뇌에서 심장으로, 폐로 전달되는 자극 역시 전기다. 전기는 인간을 죽이기도 한다. 그것은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전류는 양심도 없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인간과 달리, 전류는 영원히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다. (본문 중에서)

 

최근 미국 수도권 일대의 정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기록적인 폭염 속에 굶주리는 주민들이 속출하는 등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현대문명사회에서 전기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필수불가결한 도구이자 수단이다. 대규모 정전이 한 번 발생하면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의 광범위한 손실과 피해를 겪을 수밖에 없고 때로는 안전 관리에 소홀하면 위협적인 흉기가 되기도 하는데 현대문명사회의 총아이자 탕아인 전기를 소재로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9탄이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뉴욕 시내에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는 앨곤퀸 전력회사의 제어실에 오류메세지가 연이어 뜨면서 모든 전기가 특정 변전소에 집중되기 시작하고 압력을 견디지 못한 변전소가 폭발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국토안보부는 이 사건을 테러로 간주하여 링컨 라임에게 사건 수사를 의뢰하고 라임과 색스는 이제껏 상대해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살인자와 대치하게 된다. 살인자의 수법은 일명 아크 플래시(Arc Flash), 즉 전기폭발에 의한 대규모 살상시도여서 형체도 없고 예측 불가능한 패턴에 고전하기 시작한다. 살인자의 계속되는 순환정전 요구에 앨곤퀸 전력회사는 수용 시 대규모 피해를 우려해 그의 테러시도를 저지하려 하지만 그때마다 살인자는 장소와 시간대를 바꿔가며 계속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이제 링컨 라임에게도 점점 살인자의 그림자가 접근하기 시작하고....

 

전기란게 그런 거 같다. 살인자나 그가 사용하는 흉기는 시각적으로 추적과 방어가 가능하지만 전기는 형체가 없어 볼 수 없다. 금속이 있는 재질과 장소라면 전류를 흘려보내 감전사를 일으킬 가능성이 다분하기에 수사팀은 극도의 주의 속에 현장탐문과 수색을 전개할 수밖에 없기에 독자들로 덩달아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이다. 살인자가 자산의 소재나 다음 목표물에 대한 단서조차 남기는 않은 용이 주도 함으로 범행동기에 대한 추측도 시시각각 수정되는 것도 당연지사!

 

게다가 라임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몇 년 전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 캐스린 댄스, 킨케이드 파커까지 드림팀이 총출동하고도 살인자를 놓쳐버린 미해결 사건이 있었는데 멕시코에 나타난 살인자의 살인청부 시도를 포착하고 다시 캐스린 댄스, 멕시코 경찰과의 공조를 통해 그를 잡기위해 필사적인 추적을 시도한다. 하지만 여우같은 살인자의 꾐수에 이번에도 번번이 놓치고 만다. 라임이 그동안 상대했던 살인자들 중 가장 영리한 자로 교묘함과 신출귀몰함을 자랑하는 최강의 범죄자를 잡기위한 라임의 집착은 본인에겐 힘들겠지만 읽는 즐거움은 배가된다. 어쩌면 곧 국내 출간될 신간에 앞서 캐스린 댄스는 사전에 국내독자들에게 곧 찾아뵙겠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아 반갑기까지 한데 예상보다 자주 등장한다.

 

어쨌거나 전기공도 상대하기 버거운데다 또따른 살인자까지 동시에 해결하려니 정신적으로 이중 스트레스를 겪던 라임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쇼크로 인한 충격에 생명의 위기를 종종 겪기도 하는데 이후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변화를 느끼게도 한다. 자살과 재활의 갈림길에서 많은 고뇌를 하지만 결국 그의 최종선택은 한줄기 희망이었다. 향후 라임의 신체활동에 많은 변혁이 예상되는 훈훈한 결말이기도 했고.

 

난 당신이 지금과 달라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라임, 그냥 건강하면 돼요. 내가 원하는 건 그게 다예요. 나머지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면 돼요” (본문 중에서)

 

그 밖에 라임의 간병인 톰의 풀네임이 처음으로 공개되기도 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의 풀네임은 한 번도 불린 적이 없어 많은 독자들이 그에게도 풀네임을 붙여주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뒷얘기도 예전에 본 적이 있는데 시리즈가 9편까지 오면서 톰도 색스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든든한 동반자로 이제는 라임의 투정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뿐만 아니라 그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진정성에 맘이 짠해진다. 이제는 앙숙처럼 토닥거리는 일도 줄어들어 예전같지 않은 두 사람의 관계변화에서 깨알 같은 재미가 일정부분 반감된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흐뭇함은 남는다.

 

그렇게 이래저래 계속되는 공방전 속에 이야기는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범인의 정체와 범행 동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게 되는데 최후로 맞닥뜨리게 된 범인의 실체는 예상을 벗어난지라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정말 뜻밖이라는 반응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다소 당혹스러운 반전이 될 것이라 생각되는데 뿌린 대로 거둔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 아니면 묵은 변비가 해소되는 상쾌한 기분이던지...

 

그래서일까? 이번 책에서 느꼈던 아쉬움이라면 그동안 이 시리즈 최대의 강점 중 하나인 범인의 시점에서 본 범행과 동기, 심리상태 등을 이번에는 거의 확인할 길이 없어 재미가 상당부분 반감되는 점이었는데 반전을 읽고 나면 그제서야 디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점은 범인노출을 최대 자자제해야만 깜짝 이벤트 같은 이번 반전의 효과가 제대로 먹힐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당연한 설정이었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리고 9편까지 나오면서 링컨 라임 시리즈의 익숙한 설정과 전개, 반전도입 등은 새로울 것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메마른 대지에 단비 내리 듯 갈증해소에는 더 이상 만족스러울 수 없었고 디버에 대한 굳건한 신뢰는 여전하다는 걸 입증하는 이번 시리즈이다. 왕의 귀환으로 쌍수들고 반기기에 손색없는 재미와 쾌감은 전기처럼 찌릿찌릿하면서. 무엇보다 앞서 말했듯이 인생관과 함께 전신마비 신체에도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는 링컨 라임은 후속작에서 지금보다 달라질 것이라 더욱 더 간절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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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곳에
도로시 B. 휴스 지음, 이은선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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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읽을 예정엔 없던 범죄소설이다. 단지 가입된 카페에서 모 회원님의 서평에 댓글을 달아드렸을 뿐인데 관심에 감사의 표시로 그 분이 선물로 보내주셨더랜다. 역시 무플은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더니 작은 성의에 호의로 되돌아 온 듯 해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 읽어내려간다. 그런데 말이지 그분 말씀이 기대는 금물이라신다. 불안한 전조가 드리우기 시작하면서 속도에 탄력이 붙지 않는다.

 

이 소설은 미국 출신 범죄 소설 작가이자 비평가이며,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하드보일드와 느와르 스타일을 표방했으며,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평가를 받고있는 도로시 B. 휴즈의 대표작으로 험프리 보가트 주연으로 헐리웃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단다. 그러한 이 소설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라면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고 시작한다는 점일 것이며, 약점 아닌 약점이랄수 있겠다.

 

2차 세계대전에서 귀환한 퇴역군인 딕스 스틸은 외국으로 떠나버린 친구의 집에 대신 머물며 범죄소설 집필을 준비 중인 예바작가인데 때마침 같이 군 복무를 함께 했던 친구 브루브를 만나서 술자리를 갖지만 그가 형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에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도시는 공포와 혼란에 빠지게 되고 딕스는 아름다운 연인 로렐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앞서도 말했듯이 범인의 정체를 드러내고 출발하는 이 소설은 범인의 시점에서 모든 상황을 보여주고 그의 심리변화와 행동을 감시 카메라처럼 24시간 밀착 중계하면서 독자들을 심리서스펜스의 전형적인 구도의 길에 동참하도록 하는데 결국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범행동기가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연이은 연쇄살인의 희생양만 언급될 뿐 단 한번도 범행과정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범인인 딕스와 형사인 친구 브루브의 상극관계가 어떠한 결말을 보여줄지에 대한 궁금점이 유발되는 것이다.

 

하지만 딕스는 연쇄살인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인의 사랑을 갈구하고 질투하는 한 남자로서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되기 때문에 범죄물로서의 흥미는 극히 반감되면서 로맨스물로 더 강한 인상이 남는다. 남녀간의 밀고 당기는 연애심리에 촛점을 맞추면서 범인의 정신적 공황과 번뇌로 정신세계가 점차 붕괴되는 과정이 서서히, 면밀하게 전개되고 결국 종착역에 하차하지만 범행동기에 대한 추궁에도 속 시원한 결말을 제시하지 못한다. WHO와 HOW, WHY , 어느 측면에서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밋밋한 소설이 되어버렸다. 정말 누군가의 표현대로 국물에 왕소금이라도 뿌려줘야 싱거운 맛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읽었던 누마타 마호카루도 그렇지만 도로시 B. 휴즈 또한 독자가 진정 원하는 갈증해결에 청량감 대신 힘에 부치는 아쉬움을 남긴다고 볼 수 있는데 두 사람다 왜 그 모양들인지 갑갑하기 그지없다. 불만작가 리스트 추가! 그래서인지 타 작가들과의 장르적 쾌감이라는 완력싸움에서 한계를 노출시킴으로서 무더운 여름에 체감온도를 더욱 상승시키고 있지나 않는지... 덥다 더워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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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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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출장을 갔다가 KTX 타고 부산으로 내려와서 개인적인 일을 좀 본 뒤 오랜만에 서점엘 들렀다. 집에 가는 동안 심심한 나를 달래 줄 소일거리가 필요했던 것인데 마지막 서점 방문일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할 정도로 낯설다. 무슨 소설을 살까? <악당들의 섬>?, <61시간>?, <수차관 살인사건>? 한참을 고민 끝에 선택한 소설은 누마타 마호카루의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이다. 요즘 이 작가는 <유리 고코로>와 함께 2종이 출간되면서 만만치 않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듯하다. 솔직히 처음엔 이 작가의 두 작품 다 관심 밖이어서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이 소설은 호평과 더불어 막장 논란까지 가열되는지라 저급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마냥 호평 일색이거나 마냥 혹평 일색이었다면 나랑 인연은 없었겠지만 이렇게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을 보면 과연 나는 어느 쪽에 서게 될지 확인하고픈 맘이 절로 드는거다.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바로 들기 시작한다. 최대 이슈였던 막장에 대한 논란에 불을 지폈던 단초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원래 일미들은 어느 정도의 막장을 밑밥으로 깔고 있는데 인간 내면의 깊은 어둠을 상당히 선정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해 일본 추리소설계를 발칵 뒤집은 충격의 베스트셀러"라는 홍보문구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막장 오브 막장-선정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는 점에서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이 진정한 지존이 아니던가? 읽어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읽던 도중에 지하철에서 뛰어내리고 싶게끔 할 정도라든지, 유해도서로 분류해 도서관에서 과감히 퇴출해야한다는 등의 극강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막장의 선두주자인 <살육에 이르는 병>에 비하면 이 소설은 그야말로 갓난아기 수준에 불과하단거다. 자! 막장을 보여주시오! 난 막장이 보고 싶었건 거다. 

 

주인공들을 살펴보자. 전 남편의 현재 부인이 데리고 온 딸이 사귄다는 젊은 강사와 육체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치코는 비도덕적인 행태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혼녀인 그녀의 남자관계는 불륜도 아닌 그냥 개인의지에 따른 이성관계일 뿐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여자 주인공 아사미는 어떨까? 과거에 오빠가 보는 앞에서 뭇 남자들부터 성폭행을 당한 끔찍한 상처에 고통 받는 가련한 여자이다. 물론 남자를 광견으로 만드는 여자, 스스로 만들어낸 광견의 이빨에 수없이 자신의 몸을 물어뜯기는 여자로 대변되는 복잡한 내면이 꽈리틀고 있는 그녀는 동정과 연민을 벗어난 이해불가적인 측면도 분명 있다. 사치코의 전 남편인 안자이 유이치로 외에도 배다른 남매간의 사랑 등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관계가 얽히고 섥혀있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이다. 이 소설에는 진정한 악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하고 싶어하는 보통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TV드라마에서 막장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 전개나 설정은 그동안 일본 소설에서 충분히 체험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이러한 패턴은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하다. 나를 불쾌하게 할 막장이 곧 나오겠지, 아니면 충격적인 반전이 결말에? 내내 고대했지만 마지막까지 나의 기대감에 배신을 때리고야 만다. 내내 안개 속으로 몰고 가다가 결정적인 한 방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냥 속 터질 정도로 모호하고 미련하다.

 

그래서하는 말이지만 흔히 일본소설의 특징은 극단적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한 남고생의 실종에 큼직한 미스터리를 심고 그 이면을 추적추적 들추어 나가지만 결국 집착이 가져온 자학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질질 끌더니 별다른 대안도 못 내놓고 허무하게 마무리하고 만다. 가독성도 물론 별로이다. 그러면서 텐도 아라타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의 유사한 질감이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한다. 집착과 자학, 설교적인 그런 느낌들 말이다. <애도하는 사람들>의 경우 집착과 자학 속에서도 일말의 슬픔과 인생이라는 배에 올라탄 사람들의 자기성찰도 확인할 수 있고 <영원의 아이>에서는 어두운 상처를 가진 이들이 늪 속에서 빠져 나오려다 힘에 부쳐 익사하고 마는 광기 속에서 처절한 아픔도 느낄 수 있었지만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은 집착과 자학에 대한 고통만이 있을 뿐 여운이 없다. 새롭지 않은 식상함으로 56세의 늦깎이 나이에 문단에 데뷔한 솜씨가 이 정도라면 후속작에서 한층 발전된 필력을 발견할 수 있을지 심히 의문스럽다.

 

예상했던, 기대했던 것만큼의 막장도 없고 재미는 더욱 발견하기 힘든 이 소설은 일본 소설을 읽을 때의 각자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일수도 있겠다. 나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을 밝혀내어 검거하는 과정을 가진 범죄물을 확실히 선호한다. 거기에는 최소한 감정이입에 따른 몰입과 권선징악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있다. 불안한 심리만을 묘사하고 있는 이 소설은 나를 허탈하게 한다. 그렇게 호들갑떨만한 케이스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엔돌핀이 팍팍 돌만한 소설이 그리워진다. 그렇다면 누쿠이 도쿠로의 <진실과 후회의 빛> 만큼은 기대치를 충족해줄 것만 같다. 출간이 임박해서 냉큼 신청해서 곧 수중에 들어올 테니 나의 빈속은 그때 채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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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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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야구 미스터리 소설 <마구>는 1964년 3월 30일 봄 고시엔 야구시합에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이요 고교와 아세아 학원의 시합이 9회말 2사만루라는 정체절명의 긴박한 상황을 맞이한다. 강호 아세아 학원의 마지막 공격을 막아내야만 하는 가이요 고교의 에이스 스다 다케시는 상대팀의 4번타자를 맞아 회심의 일구를 던지는데... 아! 그러나 이게 왠일?  스다가 던진 공은 포수 기타오카 이카라의 미트 앞에서 굴절을 일으키며 뒷그물까지 굴러가버린다. 상대 팀 주자는 역전주자까지 홈을 받으며 허무한 역전패로 시합을 끝난다.

 

이 시합이 끝난 이후인 4월 10일 이른 아침 제방길에서 가이요 고교의 포수 기타오카가 애견과 함께 칼에 찔린 사체로 발견되고 같은 야구부원인 스다 다케시가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수사망에 오른다. 천재투수인 스다의 강속구를 유일하게 받아낼 수 있는 기타오카의 죽음은 여러모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스다 마저 오른팔이 잘린 채 숲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되면서 경찰은 두 살인사건과 도자이 전기회사에서 발생한 폭파 미수 사건의 연관성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올해 프로야구가 당초 관객동원 목표인 700만을 넘어 800만까지 내다보는 등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추리소설에까지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꾸준히 출간되면서 새삼 야구의 인기를 재조명하는 시점에까지 이르고 있는 와중에 히가시노 게이고와 야구의 결합은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필독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고 <사우스포 킬러>에 이어 생애 두번째로 읽은 야구소설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읽은 이 소설은 연속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냐는 것과 함께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마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해나가는  점이 주요 포인트이다.

 

여기서 <마구>의 의미가 주요쟁점 사안이 된 것은 스다의 사체 옆 땅바닥에 새겨져 남겨진 의미불명의 개념이 사건해결의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롯데의 이용훈 투수가 스핏볼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투수들에게는 타자를 제압할 수 있는 마구 개발이 하나의 염원일 것이며 소설 속에서도 마구의 실체에 대한 갖가지 의혹들이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흥미로움이다. 오히려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범인은 항상 주변인물들 중에 있다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며 마구의 실체가 궁금한 것은 단지 야구팬으로서의 절대적인 호기심이다.

 

결국 실체가 밝혀진 마구는 개발을 의도하지 않은 미완성의 산물이며 거기에는 재기에 몸부림치던 어느 야구선수의 뼈를 깎는 절절한 아픔이 녹아있어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그렇기에 치밀한 추리과정과 반전은 기대하지 말자. 어차피 그런 것은 애초부터 작가의 관심대상이 아닐었을 터. 차라리 동기에 주목하는 것이 좋겠다. 소설의 주인공인 스다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서 힘들게 동생과 자신을 힘들게 키워주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따뜻함을 넘어 애절하며 절절하기까지 한데 사건의 출발점이 혼자서 인생의 고달픔과 싸워 이겨내려했던 한 남자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추리소설로서의 결핍을 다른 관점에서 보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구에 이용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하려 한 주인공의 죽음은 그라운드 내에서의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야구경기 이면에 땀과 더불어 눈물과 한숨이 한데 녹아있는 인간사가 숨어있음을 주목하게만드는 야구 미스터리 소설이 <마구>이다. 야구팬으로서 바라는 것은 야구가 꾸는 꿈은 그래도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한다는 사실도 빼놓지 말자는 거다. 그것이 바로 야구이다. 야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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