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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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칼손이 양로원 건물을 탈출할 때 심사숙고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설명은 곧 그가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타입이라는 걸 알려준다. 백살이 될 때까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장수만세로 퉁쳐 축하할 일인지 죽지못해 여태껏 살아왔다는 오욕의 세월이었는지 오로지 그의 1세기를 고스란히 따라 가 보는 방법밖에 없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교차전개로 인해 알란 칼손이라는 괴짜노인의 황당무계한 모험담은 수시로 진실일까? 아니면 노망기에서 비롯된 횡설수설일까 의심의 눈초리는 번뜩였다. 원래 이런 사람의 태생은 평범하지 않은데 알란도 역시나 였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차 있었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생뚱맞은 전쟁을 선포했다가 개죽음을 당했고 엄마 또한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실 정도 였으니 두 분 다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다 돌아가신 듯 하다. 

 

 

이 같은 상황을 토대로 보자면 정상적인 가정환경도 아니었고 변변한 정규교육도 수료못했던 알란이었지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면서 폭탄물 제조 및 관리에 관한 기술만큼은 남달랐고 그것은 그의 평생을 좌지우할 중대한 스킬이 된 셈이다. 그리고그는 우연과 행운을 번갈아 쥐며 세계 곳곳을 누비며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반드시 있었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연상하는 "포레스트 검프"의 그림자는 그리 진하게 투영되진 않았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랬다는 말이다. 그러했다고 단정짓기에 알란은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적 인물들과 교감과 친분을 쌓으며 의도했던 그러지 않았던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역사의 한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결코 그 자리에서 병풍으로만 남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약 그의 수명이 70세 정도였어도 이 기괴한 모험담에서 상당부분이 덜어내어 졌을 것이다. 유쾌하면서도 수시로 배꼽잡게 하지만 모든 여정들이 다 흥미진진 않다.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와의 만남, 마오쩌둥의 아내를 구한 일, 그리고 발리 이야기 등 몇 몇 일화등은 솔직히 많이 지루해서 세계사의 변혁에 끼친 영향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일화를 찾아 읽기 위해 재빠르게 훓고 페이지를 넘겨야 했을 정도였으니, 역시 재미있는 대목은 미국의 핵무기 제조에 관여한 일과 스탈린, 김일성 부자와의 만남이고 책이 선택한 세계사에서 대중적 관심을 끄는 지점에 관해서는 개인적 취향과 선호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리라.

 

 

그렇다면 루즈벨트 미 대통령 시절 핵무기 제조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지극히 우연적 요인이 너무 남발되는 단점은 있지만 역 발상 차원에서 보면 그 점이 이 소설의 엉뚱한 매력이자 스타일임을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부분에 독자가 될 수도, 우수수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포인트이다. 스탈린에게 거슬리는 콧수염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알란 칼손은 위기에 닥쳐서도 마냥 비관하지 않고 어떡해서든 낙관적인 자세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별종이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을 장수할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숨은 하나지만 무모할 정도의 모험정신 때문에 평생을 한 곳에 제대로 정착 못하고 역마살이 끼어 떠돌아 다닐 팔자였다. 방랑하는 보헤미안의 집시처럼.

 

 

솔직히 개인적으로 가장 중점적으로 읽은 대목은 사실상 한국전쟁 중 북한의 김일성과 그의 오른팔인 어린 김동무, 즉 김정일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인상적인 것은 어린 김동무의 성격 자체가 상당히 리얼리티하다는 것이다. 누구도 믿지 않겠다며 주위를 의심하고 맘에 안들면 생떼를 부리는 것은 얼핏 귀엽(?)기도 했지만 장차 일국의 독재군주가 될 만한 자질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웃음 뒤에 인정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상상했다. 어린 김동무가 성인이 되어 정권을 잡았을 때 알란과 재회하는 시나리오였으면 얼마나 박장대소 했을까 말이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바라 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방랑기에 대한 진지한 소감이자 양로원을 탈출하며 도주하는 길에 만난 여럿 사람들과 인생이라는 종착역으로 선택한 곳이 현실에서도 휴양자이기에 먼저의 바람은 과도한 요구였나 싶은 되새김도 있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을 고단하게 겪어왔으니 이제는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내야만 한다. 그래서 알란, 아만다. 율리우스, 베니, 예쁜 언니, 예르딘, 소냐, 아론손까지 지상최고의 낙원에서 마침내 그들은 행복을 찾았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님 만수무강 하소서. 남들은 이미 관에 들어갔거나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을 때 인생 제2막이 시작되려 하는구나. 나는 저 나이쯤이면(장수에 대한 헛된 욕심...)  멘붕없이 온전하게, 사람들 손가락질 받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려나. 아마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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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 프로젝트 3부작
다비드 카라 지음, 허지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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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때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11월 9일 폴란드의 유태인 강제수용소. 나치 SS의 수장 하인리히 힘러 이 곳을 극비리에 방문했다가 자신을 겨냥해 저질러진 암살테러 속에서 극적으로 살아남는다. 희생없는 대가는 없다고 숙청과 피바람 부는 검거 바람은 자동연계. 그리고 배경은 현재로 넘어간다.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던 주식중개인 제레미 노바체크란 남자가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이유도 없이 집을 나간 뒤 엄마랑 단 둘이 살았고 그때의 증오로 이름을 코빈에서 엄마의 처녀적 성을 따라 코빈에서 노바체크로 바꾼 것. 떼돈을 벌었지만 음주운전으로 한 아이를 치어 죽인 후 죄책감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어느날 미 공군으로부터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해듣고 엄마 병문안을 갔다가 엄마에게서 받은 펜던트에서 나치 표식의 열쇠를 보고 경악한다.

 

 

그때부터 찌질했던 제레미의 일상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회사대표인 버나드와 아버지는 CIA 요원이었다는 점, 자신과 엄마를 버렸다고 생각해왔던 아버지는 비밀임무를 수행 중이이서 부득이 가족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알게되면서 혼란에 빠지는 제레미. 하지만 정체모를 암살자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마저 죽이려 하는 정체절명의 순간,이스라엘의 모사드 내의 메차드 키돈에서 일하는 에이탄 모르그란 남자가 나타나 암살자들을 처치하고 자신을 구해준다. 여기에다 버나드가 제레미의 신변보호를 위해 파견한 CIA 여요원 재키까지 합류하면서 세 명은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 명명된 어떤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는 유태인 출신 빅터 블레이베르크 교수가 아리안의 우월성에 입각하여 인간을 초인으로 개조하고자 한 비밀 프로젝트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이 프로젝트는 SS의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 주도하에 인간을 생체실험도구로 삼아 실험을 계속했다. 그의 출신성분으로 따지자면 살아남기가 힘들었테지만 신분을 은연중에 숨긴 채 나치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마침내 실험체 중 살아남은 최후의 성공작 302호가 탄생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며 경이로운 생명체로 재탄생한 302호. 그것은  바로 죽음으로 연결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음모론을 바탕으로 한 팩션스릴러 <블레이베르크 포로젝트>는 정말 오랜만에 읽은 프랑스 스릴러. 어려서부터 미국의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의 이력답게 전형적인 헐리웃 액션스릴러물이다. 심리 묘사보다는 몸으로 부딪치며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특성이 있고 시로 프로젝트 3부작의 출발점으로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대국들이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패전국인 독일은 물론 경쟁국의 군사기밀을 빼돌리기 위한 물밑공작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실감나게 그려진다. 비단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선점의 우위를 누리기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만큼 컨소시엄이라는 비밀조직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현상은 없을 것이다.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컨소시엄의 파멸을 꿈꾸었던 기인 302호는 인격과 존엄성을 무참히 파괴하고 인위조작해버린 특정집단의 야욕을 누구보다도 분쇄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 분노는 인류의 존망에 위협을 가하는 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망령은 되살아나 선이 악의 유혹을 이겨내고 선한 자들을 수호해 줄거라는 믿음은 제레미 일행에게서 이 거대조직을 상대로 승산없어 보이는 무모한 투쟁을 이끌어내도록 한 원동력이 되는 진짜 이유이다. 그러하므로 컨소시엄의 음모는 나치의 극단적인 이론에 동조해 과학의 논리를 통해 인류를 진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으니 이 어찌 비극적이며 오만의 극치가 아니랄 수 있을까?  

 

겁도 없이 지옥의 문을 열고 유전자 변이를 통한 신인류의 탄생이라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극악무도한 만행을 그들은 거리낌없이 저지르려고 했다. 다만 계산에 포함시키지 못한 변수를 사전에 제거하지 못함으로서 결국은 우리가 익히 예상하고 있는 방식으로 일단 매듭짓는다. 하지만. 이제 빙산의 일각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본격적인 흥미진진함은 독자들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각오가 시작될 것이다. 기대치만 낮춘다면(특히 나치의 음모, 이런 걸 좋아한다면) 무난히 즐길작품이며 남녀주인공의 귀여운 로맨스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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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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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로어만으로 입항하던 라비니아D호의 선원들이 바다 위를 떠다니던 한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훼손 상태를 감안하면 몇 주 동안이나 방치된 상태로 표류했던 것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지난 성탄절 이전에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요크 해터라는 화학자로 밝혀진다. 자살로 판명되었지만 문제는 죽은 남자의 남은 가족들이다. 미치광이 해터가로 세상에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 후안무치한 가족들은 악명 높고 괴팍했으며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일삼는 문제적 인물들이었다 

 

가장인 요크 해터는 특히 아내인 에밀리 해터 부인의 전제적이며 광폭한 폭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런데 에밀리 해터 부인이 전 남편 사이에 낳은 딸 루이자 캠피언을 누군가 독살하려는 시도가 발견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서게 되고 섬 경감은 이들 가족들을 용의자로 의심한다. 집안 식구들이라면 누구나 루이자에 대한 살인동기를 가지고 있었을 터, 섬 경감은 은퇴한 노배우 드루리 레인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하여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데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이 집안에 발생했다. 루이자를 범인의 범행목표로 추측했건만 어찌된 일인지 고약한 에밀리 해터 부인이 실제로 살해당한다. 드루리 레인은 목격자인 루이자의 오감 중 시각을 제외한 후각과 촉각 등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추리의 천라지망을 펼치는데 그 발상이 실로 대단하다. 수학적 사고를 논리의 축에 둔 채 그가 머릿속에서 짜 나가는 전개는 자신 또한 귀가 들리지 않는 신체적 한계를 넘어선 신중함으로 촉발시켜 명쾌한 관찰과 분석으로 강화시킴으로서 드라마틱한 결말을 완성시켜냈다전신마비인 링컨 라임처럼 정상인들도 해내지 못하는 추리의 완성을.

 

산 자가 죽은 자를 움직인 사건은 냉정한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범인의 미숙한 자질과 착각 때문에 당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한 것은 합리성에 의구심을 심으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그것조차 간파해낸 드루리 레인이 범인의 정체를 시차를 두고 밝혀낼 수 없었던 이유는 놀랍게도 범인의 정체에 관한 의외성에 있다. 지금까지 추리소설을 수도 없이 읽어왔지만 이토록 충격적인 반전은 볼 수 없었다. 그가 범인이라니.... 마치 감옥이나 정신병동에 갇힌 죄수나 환자같이 광기에 짓눌려 저항과 변화를 포기한채 순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미치광이 해터가의 유전적 환경이 만들어낸 악이라는 본성 앞에서 드루리 레인이 대처방안을 놓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이해된다.

 

예상치 못한 범행동기와 트릭, 결말, 범인의 정체 등은 사회에 책임을 묻고 집행을 맡기기에는 너무나 잔혹한 운명이었고 드루리 레인으로써도 알고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안쓰러웠던 셈이다. 앞서 범인을 암시한 대목이 있었는데 설마 하고 넘겨 버렸던 방심을 비웃듯 예리하게 입증시켰기에 당황스럽기도 했고 범인에 대한 뒤늦은 처리를 두고 한동안 이해를 못해 어리둥절하다가 다른 서평들을 읽고서야 무릎을 탁 치게 되니 감탄에 또 감탄.

그런 거 였어 하며.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 속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뭔지 모를 몽롱한 기분이 들면서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토리가 뒤죽박죽인 황홀한 꿈을 꾸었던 것도 같다. 간만에 단 잠을 그렇게 잤다. 세계 3대 추리소설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나니 이런 포만감이 들 줄이야. 나머지 두 작품과 최소한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머리 한 뼘이 더 크다고 느껴지는 이 작품은 정밀함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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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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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적을 만들다>는 열네 편의 칼럼들이 공작새가 날개를 펼쳐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 열네 편의 면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된 주제나 일치하는 스타일이 발견되지 않아 공저가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과연 세계적인 지성이자 석학이라 불릴만한데 방대한 지식의 양과 깊이는 그가 얼마나 많은 공부와 끊임없는 열정과 끈기로 축적한 데이터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는 말 그대로 특별한 기회, 즉 학회나 간담회 등에서 발표한 내용을 위주로 실린 글들인데 철학, 미학, 역사, 기호학, 언어학 등등 다방면으로 사방팔방 뻗어나가며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무한한 상상력과 엉뚱한 호기심, 지적인 고찰로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을 도모한다.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써내려갔을지 충분히 짐작 가는 대목들이다

 

적을 만들다에서는 인류역사에서 민족과 인종, 국가와 계급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편을 가르고 증오를 키우며 성벽을 쌓았으며 분리와 차별을 시도했는지 세부적인 사례들로 조목조목 제시한다. 제일 인상 깊었던 사례는 유대인에 대한 지독한 반감이다. 나라가 없어 유목민처럼 떠돌며 방랑했던 민족 유대인은 고대 이집트 왕조로부터 히틀러의 대학살,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이어지는 고난과 박해, 투쟁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거쳐 왔다. 유대인은 어린 아이들을 살해하고 그 피를 마시는 적으로 규정된 내용에서 이 민족에 대한 지독한 혐오가 묻어난다. 용모는 흉측하면서 말의 억양은 몹시 거슬린다는 "히틀러"의 어조는 적을 만드는 과정들에서 반복되는 모델이다. 마녀신드롬 또한 이성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장벽이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에 대해서는 일단 가장 위대한 프랑스의 시인이라는 앙드레 지드와 자신이 빅토르 위고라고 믿었던 미치광이 장 콕토를 인용한 점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어떠한 경우에도 의심할 바 없는 위대한 작가였다는 의미로 이해시키고 있다. 그러나 위고의 문학을 관통하는 특성으로 과잉의 기술과 등장인물들이 전지적 시점에서 역사를 움직이며 바꾸려는 불굴의 시도를 하고 있음을 강조함에 따라 절대권위를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무수한 결점과 말도 안 되는 허풍쟁이로 둔갑시키려하는 표현은 에코만의 또 다른 독설이다. 그것이 밉거나 거부감 들지 않는 선에서 조근 조근 이야기된다. 충분히 흥미롭다 

 

<위키리스크에 대한 고찰>도 빼놓을 수 없는 칼럼이겠다.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으면서 새로운 형식이자 스캔들인 위키리스크는 사적인 뒷담화가 공공연한 담화가 되어 만천하에 드러남으로서 널리 알려진 사실을 다르게 확인시키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는데 그것은 밝혀진 비밀들을 단순히 기록 전달하기보다 침묵할 것인지, 권력과 협상할 것인지를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의결권이 된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면서 기술적 발전이 뒷걸음 칠 수 있다고 하는데 마타하리같은 미녀 스파이가 밀서를 전달하는 상황을 전망하는 이유도 전혀 근거 없지않음을 설명한다. 역시 인상적이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글이 망각 속으로 소멸되기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그래서 계속해서 버티고 살아남는 글쓰기에 주력하려 한다. 결국 “움베르토 에코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폭넓은 유연성을 지님으로서 가치를 측정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 사명이기 때문에 능동적인 글쓰기와 능동적인 책 읽기는 명백한 도전이자 즐거운 혼란의 한가운데 지점이란 사실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적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에게 외부의 적은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그 적들이 누구인지 의견의 합일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 싸워 왔기 때문이다. 피사는 루카와 맞서고, 궬피당은 기벨리니당과 맞서고, 북부는 남부와 맞서고, 파시스트들은 파르티잔들과 맞서고, 마피아는 국가와 맞서 싸운다. 그리고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사법부와 싸운다. 그러는 동안 로마노 프로디가 이끌었던 두 차례의 정권이 여전히 몰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리어 애석한 일이다. 만약 그러했다면, 나는 그 택시 기사에게 아군의 포격 때문에 전쟁에서 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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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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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알고 싶소?

  그리고 뭘 차라리 모르고 싶소?“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아멜리 노통브의 책이다. 앞서 읽었던 <오후 네시>는 그야말로 눈부시다 못해 휘황 찬란한 토크 배틀 이었으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롭고 신선한 문학적 형태이자 시도였던 셈이다. 그랬던 그녀가 풀어놓은 이번 재료는 사랑이다. 사랑을 낭만적으로 간주하며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하고, 사랑에 오래 동안 머물고자 하며 더 의존적인 쪽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속설을 기반으로.

 

그 사랑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던 남자가 있다. 이름은 "돈 엘레미리오". 마흔네 살로 에스퍄냐 귀족이다. 그는 에스파냐 사람이란 자부심이 상당하다. 세상 어떠한 품격도 자신을 따라올 자 없다 호언장담하면서 계란을 신격화하는가 하면 집도 크고 방이 많은 재벌이다. 18년 동안 완벽한 사랑을 꿈꾸며 8명의 여자들을 만났고 그녀들에게 방을 세놓았었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은 사랑이었나보다. 생각만큼 원하던 결말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평범한 벨기에 아가씨 "사튀르닌""엘레미리오"의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집에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암실이 있고 누누이 들어가지 마라는 그의 경고를 무시한 8명의 젊은 여자들은 모두 실종되었다. 이번에도 세놓은 방에 입주할 여자를 구한다는 공고에 지원자들이 몰리지만 그녀들은 처음부터 입주할 생각은 없었고 다만 그 소문에 대한 진실이 궁금해서 이 집을 찾아왔을 뿐. 

 

허나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튀르닌"은 사실상 무상이나 마찬가지인 입주조건과 호사스런 환대에 혹해 입주를 결정한다. 이제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사랑에 무지했고 결혼에 관심 없던 일상을 뒤흔들 아홉 번째 희생자라는 월계관이다. 머리에 씌워주며 사랑한다 말하는 "엘레미리오". 그는 장기간 외출한 적도 없어 외부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관계에 서툴다. 그래도 사랑을 꿈꾼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금단구역을 침범한 여자들이 치러야할 대가는 잔인했으니 각자 지켜야 할 자리와 위치를 넘어갈 때 산산 조각난 믿음과 불편한 호기심이 남는다.

 

아홉 번째 사랑 "사튀르닌""엘레미리오"와 티격태격하다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진다. 단지 지낼 방을 구하기 위해 이 집을 찾았을 뿐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 큰 소리쳤지만 "엘레미리오"의 말대로 되어버렸다. 이제 사랑은 그녀가 지금까지 믿었던 가설에 안대를 씌운다. 이 남자는 거짓됨이 없이 진실 되며 여자들이 알아서 자진퇴장을 했을 것이라 믿게 된다. 사랑에 의심이 싹트는 순간 그 때부터 더 이상 사랑은 아니다 

 

샤를 로페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푸른 수염>은 여전히 아멜리 노통브만이 창작해낼 수 있는 매력적인 유머와 속사포 같은 두 남녀의 대화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상황설명이나 행동보다는 대화에서 시작하여 대화에서 끝장을 보는 동안 잠시도 한눈을 팔 여유란 애시 당초 없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끊임없이 지적이고 철학적이며 호기심과 유쾌함까지 단정한 상태로 끝까지 달려간다. 그 힘의 원천이 대단하다. 정말 홀리듯 읽어 내려갔다. 중도에 멈출 수 없어. 그러면서 두 남녀의 구애와 사랑이 어떤 결말로 치달을지 궁금증은 증폭되는 구조를 유지하다가 마침내 그를 위해 금이 되는 그녀. 또 다른 의미의 연금 술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전 당신의 여자가 아니에요."내 여자요. 오늘 아침부터는.」 「천만에요. 전 계약서를 조목조목 읽어 보고 서명했어요.」 「그건 계약서에 담기에는 너무나 미묘한 문제지.」 「좋을 대로 말씀하세요. 전 당신한테 조금도 끌리지 않으니까.」 「나 역시 그렇소.」 「그럼 왜 절 당신의 여자라고 하시죠?」 「운명이니까. 오늘, 방을 얻기 위해 열다섯 명의 여자가 왔었소. 당신을 보는 순간, 난 즉시 당신과 함께라면 운명이 완수될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소.」 「내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완수되지 않을 거예요.」 「그렇긴 하오.」 「따라서 아무것도 완수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이해하오. 당신이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 당연하오. 난 매력적인 남자가 아니니까.」 「사람들에게 염증을 느꼈다고 하셨는데, 남자들에 대해 그렇다는 얘기였군요.」 「여자들도 지겹긴 마찬가지요. 하지만 그중 몇몇하고는 사랑이, 결코 싫증나지 않는 사랑이 가능하지. 거기에 미스터리가 있소.p.2425 

 

이제 그녀의 선택은 빗장을 열고 숨겨진 비밀을 연다. 그 남자는 자신의 욕망을 노란 색이란 색채의 완성을 통해 꿈꾸었으니 금이 된 것은 완벽한 실현이다. 하지만 그녀는 광기 대신 이성을 끝내 놓지 않았고 마침내 어둠의 심연과 마주하게 된 남자의 이상에 기꺼이 동참해준다.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쓸쓸한. 이것은 <오후 네시>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볼 수 있다. 벽으로 둘러싸인 자신만의 성에 갇혀있는 타자를 성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대화를 통해 설득하며 이미 단단해진 껍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대를 위해 족쇄를 풀어 해방시켜주는 시도야말로 최대의 미덕이다. 관용과 화해. 이미 늦어버려 안타까운 마음만은 금치 못하겠다. 너무나 숭고하다. 그리고 영원불멸의 수수께끼는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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