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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평점 :
“도대체
뭘 알고 싶소?
그리고 뭘 차라리 모르고 싶소?“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아멜리
노통브”의
책이다.
앞서
읽었던 <오후
네시>는
그야말로 눈부시다 못해 휘황
찬란한 토크 배틀 이었으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롭고 신선한 문학적 형태이자 시도였던 셈이다.
그랬던
그녀가 풀어놓은 이번 재료는 사랑이다.
사랑을
낭만적으로 간주하며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하고,
사랑에
오래 동안 머물고자 하며 더 의존적인 쪽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속설을 기반으로.
그
사랑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던 남자가 있다.
이름은
"돈 엘레미리오".
마흔네
살로 에스퍄냐 귀족이다.
그는
에스파냐 사람이란 자부심이 상당하다.
세상
어떠한 품격도 자신을 따라올 자 없다 호언장담하면서 계란을 신격화하는가 하면 집도 크고 방이 많은 재벌이다.
18년
동안 완벽한 사랑을 꿈꾸며 8명의
여자들을 만났고 그녀들에게 방을 세놓았었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은 사랑이었나보다.
생각만큼
원하던 결말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평범한 벨기에 아가씨 "사튀르닌"과 "엘레미리오"의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집에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암실이 있고 누누이 들어가지 마라는 그의 경고를 무시한 8명의
젊은 여자들은 모두 실종되었다.
이번에도
세놓은 방에 입주할 여자를 구한다는 공고에 지원자들이 몰리지만 그녀들은 처음부터 입주할 생각은 없었고 다만 그 소문에 대한 진실이 궁금해서 이
집을 찾아왔을 뿐.
허나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튀르닌"은 사실상 무상이나 마찬가지인 입주조건과 호사스런 환대에 혹해 입주를
결정한다.
이제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사랑에 무지했고 결혼에 관심 없던 일상을 뒤흔들 아홉 번째 희생자라는 월계관이다.
머리에
씌워주며 사랑한다 말하는 "엘레미리오".
그는
장기간 외출한 적도 없어 외부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관계에 서툴다.
그래도
사랑을 꿈꾼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금단구역을 침범한 여자들이 치러야할 대가는 잔인했으니 각자 지켜야 할 자리와 위치를 넘어갈 때 산산 조각난 믿음과 불편한 호기심이
남는다.
아홉
번째 사랑 "사튀르닌"은 "엘레미리오"와 티격태격하다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진다.
단지
지낼 방을 구하기 위해 이 집을 찾았을 뿐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 큰 소리쳤지만 "엘레미리오"의 말대로
되어버렸다.
이제
사랑은 그녀가 지금까지 믿었던 가설에 안대를 씌운다.
이
남자는 거짓됨이 없이 진실 되며 여자들이 알아서 자진퇴장을 했을 것이라 믿게 된다.
사랑에
의심이 싹트는 순간 그 때부터 더 이상 사랑은 아니다.
“샤를
로페”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푸른
수염>은
여전히 “아멜리
노통브”만이
창작해낼 수 있는 매력적인 유머와 속사포 같은 두 남녀의 대화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상황설명이나
행동보다는 대화에서 시작하여 대화에서 끝장을 보는 동안 잠시도 한눈을 팔 여유란 애시 당초 없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끊임없이 지적이고 철학적이며 호기심과 유쾌함까지 단정한 상태로 끝까지 달려간다.
그
힘의 원천이 대단하다.
정말
홀리듯 읽어 내려갔다.
중도에
멈출 수 없어.
그러면서
두 남녀의 구애와 사랑이 어떤 결말로 치달을지 궁금증은 증폭되는 구조를 유지하다가 마침내 그를 위해 금이 되는 그녀.
또
다른 의미의 연금 술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전
당신의 여자가 아니에요."「내
여자요.
오늘
아침부터는.」
「천만에요.
전
계약서를 조목조목 읽어 보고 서명했어요.」
「그건
계약서에 담기에는 너무나 미묘한 문제지.」
「좋을
대로 말씀하세요.
전
당신한테 조금도 끌리지 않으니까.」
「나
역시 그렇소.」
「그럼
왜 절 당신의 여자라고 하시죠?」
「운명이니까.
오늘,
방을
얻기 위해 열다섯 명의 여자가 왔었소.
당신을
보는 순간,
난
즉시 당신과 함께라면 운명이 완수될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소.」
「내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완수되지 않을 거예요.」
「그렇긴
하오.」
「따라서
아무것도 완수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이해하오.
당신이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 당연하오.
난
매력적인 남자가 아니니까.」
「사람들에게
염증을 느꼈다고 하셨는데,
남자들에
대해 그렇다는 얘기였군요.」
「여자들도
지겹긴 마찬가지요.
하지만
그중 몇몇하고는 사랑이,
결코
싫증나지 않는 사랑이 가능하지.
거기에
미스터리가 있소.」
p.24∼25
이제
그녀의 선택은 빗장을 열고 숨겨진 비밀을 연다.
그
남자는 자신의 욕망을 노란 색이란 색채의 완성을 통해 꿈꾸었으니 금이 된 것은 완벽한 실현이다.
하지만
그녀는 광기 대신 이성을 끝내 놓지 않았고 마침내 어둠의 심연과 마주하게 된 남자의 이상에 기꺼이 동참해준다.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쓸쓸한.
이것은
<오후
네시>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볼 수 있다.
벽으로
둘러싸인 자신만의 성에 갇혀있는 타자를 성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대화를 통해 설득하며 이미 단단해진 껍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대를 위해 족쇄를
풀어 해방시켜주는 시도야말로 최대의 미덕이다.
관용과
화해.
이미
늦어버려 안타까운 마음만은 금치 못하겠다.
너무나
숭고하다.
그리고
영원불멸의 수수께끼는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