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집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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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해던<빨간 집>을 읽었습니다. 세상으로 통하는 출구이자 시작인 가족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것이 여섯 달 전인, 그런 가족이 있습니다. “안젤라는 매주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 병문안을 가며 그분이 돌아가시면 후련할 알았는데 막상 현실이 되고부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이 됩니다. 덩달아 그 대목에서 저 또한 감정을 추스르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장례식 일주일 후 안젤라리처드남매는 느닷없이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두 사람은 그동안 소원했고 의례적인 사이로 남아 있었죠. 자매였다면 여자들 특유의 정서적 유대관계를 형성했을 확률이 높지만 성별 다른 남매 사이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서먹서먹한 관계인 경우가 일반적인 걸로 듣고는 있습니다.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렇게 블완전한 상태에서 여행을 출발합니다.

 

 

웨일스 국경 마을에 별장을 빌려놓고 그 곳으로 떠나는 기차여행, 가족이란 울타리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역할을 못한 채 아픈 기억만 공유해야 한다면 그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하는 것일까요? 그와 동시에 <빨간 집>은 왜 빨간 집이어야만 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 내내 신경이 쓰였어요. 그 와중에 두 남매는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대화를 이번 기회에 풀기 위한 작정을 했던지 아꼈던 말을 쏟아냅니다.

 

 

안젤라는 동생이 요양비용을 대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면서도 정작 자주 찾아가 돌봐 드린 건 자신이라면 울분을 토로하고 동생 리처드는 누나의 그런 격정에 심히 당혹했던 것이죠. 그렇게 두 사람의 마음은 누가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지 득실계산에 여념이 없었던 탓인지 평행선을 내내 달리는 기분이었어요.

 

 

그치만 문제가 있는 가족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안젤라의 남편 도미니크는 처음부터 아내의 여행 결정이 못마땅한데다 아내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변화가 못내 부담스럽다는 이유 만으로요. 심지어 바람도 피는 주제에... “리처드의 딸 멜리사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자유분방하다 못해 기가 세고 대마초를 피우는 등 문란한 생활을 하고 있는 등 전반적으로 개인적 문제가 많지만 크게 이 네 명이 가족들 중에 심한 듯 합니다.

 

 

관계회복을 도모하기 위해 시작된 여행, 그것도 가장 가까워야할 가족들과의 여행이 불편, 불완전하다면 감정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시밭길 같은 여정 끝에 도착한 집 한 채, 이 쓰라린 상처와 기억들은 이제 너무 오랫동안 같이 해 왔기 때문에 차라리 외부세계가 더 편할 것 같습니다. 고립, 고독, 무심 등등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공감되는 것입니다.

 

 

이들 가족의 여정의 결말은 어찌 보면 눈에 뜨일 정도의 화해나 발전모색 등은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어떤 변화들이 감지됩니다. 물론 서둘러 해결해야할 앙금들이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여행을 통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배울 점이 많았을 듯합니다. 그것을 지켜보며 따라 나섰던 독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가족은 바로 사랑이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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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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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들은 원칙적으로 매우 분명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매우 극소수이며,

이들 소수의 기득권층은 빚의 사용을 권장하는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어떤 시도도 관철되지 않도록 애쓸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지속 가능하지 않은

빚잔치를 벌이고,

국의 고통을 받고, 또다시 빚잔치를 벌이는 빚과

파국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P.272 -273> 

 

<빚으로 지은 집>이 미국에 초점을 맞춘 분석들에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한다지만 이것이 꼭 나쁘다 만은 할 수 없는 이유가 가계부채가 거시경제와 어떻게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최적의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라고 서두에 나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흔히 부채를 통해 소비하는 행위를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무서움을 간과하며 살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합니다. 하지만 부채란 녀석은 자산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손실, 즉 적신호가 켜지면 모기지 대출에 의한 금융시스템은 주택소유자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집값 폭락과 과도한 부채는 이미 벌어져있는 부의 불평등을 악화시켜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은 보유자산의 우선 청구권으로 손실을 적게 입는 등 가장 가진 것 없는 계층이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상황이 개선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한다는군요. 모두가 소득과 부의 불평등 추세를 논의해 왔지만 정작 빚이 가진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는 간과해왔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듯합니다.

 

 

 

우선, 채무자의 집값이 폭락하면 가계는 소비지출을 줄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2차적으로 지출이 줄어든 소비부문에 수입은 당연히 줄게 마련이라 투자비용은 감소되고 이것은 다시 감소분을 임금삭감으로 충당 또는 대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럼 임금삭감을 위해서는 인력감원 같은 정리해고로 돌입, 결국 실업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래 부채가 없었던 채권자들에게도 불똥 튀어 높은 실업률의 피해자가 된다는 나비효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나치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가장 가난한 주택 소유자들은 집 말고는 가진 자산이 거의 없었지만 상위계층은 금융 자산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음으로서 저소득층의 부채가 고소득층의 자산이기 된다는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값 하락에 따른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하위계층에게는 주택 자산에 대한 과도한 투자와 부채는 심각한위기 상황으로 초래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부채가 가진 무서운 파장은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이미 넘어섰다는 보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결코 미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심각성에 빨간 불을 붙이는 중입니다. 한국은 대외 부채는 IMF 위기를 겪은 후 슬기롭게 대처해왔지만 정작 가계부채는 여전히 계약 자체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를 공평하게 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불안에 떨고 있지요. 높은 가계부채가 불황의 장기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앞서도 지적한 바 있어 이에 의존한 성장은 위험하다는 설명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책적 대응방안에 큰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일까요? 불행히도 현재의 금융시스템은 부채로 인한 불황이 발생할 때 기대만큼의 효과적인 재조정이 쉽지 않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습니다. 다만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정책입안자들이 현명한 대응방안을 내놓으리란 순진한 발상은 버려두고 일단 빚으로 지은 집이 왜 위험한지를 지금에라도 각성할 수 있는 참고가 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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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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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기는 잠시 생각을 접어두고

 누드 빼빼로를 입에 물었다.

 이놈이 가장 위험할 확률이 높았다.

 전형적인 빼빼로와 모양새가 다르고

 그러면서도 달콤함은 배로 가중되었다."(p.14)

 

 

빼빼로 주고받는 날 1111빼빼로데이 숫자 ‘1’처럼 날씬해지라는 주술(?)적 의미가 담긴 의미를 제과업계가 마케팅으로 적시에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00데이 언제나 상술에 말려들게 한다며 투덜투덜 되지만 어쩔 수 없는 군중심리에 지갑을 열게 됩니다. 얇은 지갑 속의 지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나날이 사라져 가요.

 

그렇게 본다면 남들은 때가 되면 기꺼이 입에 물고 만다는 빼빼로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는 이 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는 가발하고 엉뚱한 발상으로 시작한다고 봐야겠지요. 어느 날, 심리 상담소에 한나리”란 미모와는 거리 먼 아가씨가 찾아옵니다. 피부는 창백하고 갓 스무 살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그녀가 털어놓는 고민이 바로 날씬스틱 빼빼로 병적으로 겁을 낸다는 남자친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증세를 일명빼빼로포비아라는 세상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희한한 신조어로 부르게 되는데요, 상술이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면 ‘아몬드 맛’, ‘딸기 맛’, ‘누드’, ‘다크’ 등등 종류별로 먹고 깊은 간식이빼빼로라서 상담사 “민형기”는 입에 물고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별의 별 사람 다 있구나 싶었는데 “한나리”의 남친인 스윗스틱’ 사장은 알고 보니 그 곳에서 알바를 하는김만철이라는 대학생의 창작소설 등장인물이라고 해서 좀 놀랐다가 진짜 황당무계, 기상천외한 제2라운드로 넘어가요. 처음엔 대형마트에빼빼로 불특정 구역에 불특정하게 쌓여 있어 그 점이 두렵다하더니 편의점의 빼빼로 용서가 된다는 식까지는 이해해 보려 했으나 사장님이 나는 지구인이 아니다. ‘실리칸이라는 머나먼 외계에서 왔다고 하는 순간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나 망상인지 무지 헷갈리게 되어요.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로

 손에 개똥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의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p.145146)

 

결국 빼빼로’에 대입된 인간은 개성이라는 색깔을 입기 위해 발버둥치는 스윗스틱 불과한 것이라는 접근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환상적이어서 현실의 경계는 어느덧 잊고 기묘한 판타지에 빠져들게 됩니다. 마치 천일야화를 듣는 것 같은... 또한 박진규 작가가 박생강이라는 필명으로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은 생산적인 창작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하여 새롭고 신선한 시도로 틈새를 찾아보려 했다는 자기고백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작가의 의도와 맞물려 각자는 개성을 원하지만 빼빼로’가 획일적으로 날씬한 것처럼 시스템화 되어 점점 생기를 잃어 말라가는 우리들의 존재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빼빼로 입에 물고 있지만 다양하게 더 먹고 싶어질 것 같네요. 읽고 난 후유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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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레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4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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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히메카와 레이코, 금기를 깨뜨리다 또 다른 금기와 조우하다.

 

야쿠자 조직인 야마토회 계열 이시도 조직 산하 진유회의 하부조직인 로쿠류회 조직원이 살해되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려는 찰나 야나이 겐토라는 남자가 범인이라는 의문의 제보가 날아드는데 이 남자에게는 9년 전 살해당한 누나가 있었고 피해자는 바로 누나의 애인이었던 것. 이것만이 아니다. 겐토의 아버지는 죽은 누나의 살해 용의자로 몰려 경관의 총을 낚아채어 자살했었다. 그렇다면 겐토는 어떤 의미에선 피해자에게 복수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금기... 만약 겐토 아버지의 죽음이 경찰의 잘못된 수사가 빚어낸 애꿎은 희생이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엄청난 파장이 있을 것을 염려한 경시청 고위층은 은폐를 위해 야나이 겐토에 대한 수사를 방해한다. 하지만 히메카와 레이코는 외압을 거부하고 은밀히 독자적인 수사를 진행한다. 이것은 무모하리만치 만용일수도 있었다. 들키기라도 한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찍히게 될 텐데 말이다. 하나의 금기를 돌파하고 나니 의도하지 않았으며 예상치도 못했던 제2의 금기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알지 못한다. 시키는 대로 했으면 또 다른 불행을 잉태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

 

 

야나이 겐토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가 어떠한 성장과정을 거쳐 누나의 죽음을 목격한 후 복수를 실행하려는 과정을 그려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레이코와 겐토의 시점만 있진 않다. 야쿠자 조직 교쿠세이회의 회장 마키타 이사오도 자신에게 주요 정보제공자였던 겐토의 죽음을 조사하다 레이코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래서 3인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여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맹렬히 돌진하지만 미스터리로서의 강점보다도 로맨스가 소설의 핵심 축이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레이코는 남자들만 득실한 경시청 조직에서 여성으로서 시기를 받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남자는 동료, 경쟁자, 범인이라는 3가지 타입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비록 부하직원인 기쿠타와는 어설픈 러브라인이 가동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의 신분도 모른 상황에서 마키타와 급격한 사항에 빠지다니 덩달아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다. 어떠한 조건이나 편견 없이 상대가 가진 원초적 매력에 한순간 빠져든 이 사랑은 세속적이며 조건부적인 사랑에 찌든 요즘 세태에 비하면 확실히 무결점의 본능이다.. 담배 냄새는 어느 순간 남성미의 상징이 되고 중년남자의 원숙함은 진짜 남자를 최초 체험케된 레이코가 정신없이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후끈해서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나아간다.

 

 

와다 과장도 이마이즈미 계장에게 한 말이 있지 않나. 레이코는 집중력이라고 보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고. 자기 안으로 쑤욱 빠져드는 듯 한, 그런 게 있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데에 이유가 없다는 말이 있을 때 지금 레이코의 심경은 그러했을 것이다. 사랑은 레이코 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겐토에게서 자신과 똑같은 동병상련을 느꼈나 보다. 둘이 되어 지독한 외로움을 사람의 정으로 채워 나가고자 한 여인의 지고지순한 면모도 사랑의 또 다른 이유로 설명 가능하리라. 그 밖의 이유라면 그때부터 내리는 빗물 속에 불순물이 조금씩 섞여 들어갈 것만 같다.

 

 

순수하지 않으면 자칫 탈모가 될 위험도 감수하겠다면 우산을 쓰지 말고 온 몸으로 비를 맞아야겠지만. 이 소설에서 사랑이란 동기는 비난하지 못하겠다. 단지 미워하는 것이 문제지, 사랑은 죄가 아니다, 라는 어느 동성애자의 말도 있지만 어떤 탐욕이 배후에 개입된 상황이 아니라 상대를 조건 없이 사랑하여 그를 위해 계획하고 자신을 희생하려한 배려심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건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이번에는 안쓰럽지만 잔인한 설정이 없었기에 약간의 불편만 감수한다면 읽기엔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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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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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시내 중심가에서 눈꽃축제가 성황리에 열리는 현장을 뉴스로 지켜보았다. 하늘에서는 눈꽃이 흩날리고 아이들은 빙판에서 썰매를 신나게 타느라 여념이 없으며, 연인, 친구들과 포토존에서 이쁜 추억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정취를 맘껏 누리고 있었다. 특정한 날이 가져다주는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데에는 종교적 의미는 이미 퇴색되어 있지만 모두의 마음에 따듯한 외투를 둘러준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프랑스어이자 탄생을 의미하는 <노엘>을 지금 읽는다면 그 분위기에 동참하게 될 것 같다. 미치오 슈스케라면. 그는 이미 동화풍의 소설도 낸 적이 있으니 미스터리가 아니라도 선뜻 손에 들어보게 될 것이다.

 

 

게이스케는 1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바로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어려서부터 글쓰기가 특기이자 취미였던 게이스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름 유명한 동화작가 되어있다. 동창생들을 기다리던 게이스케는 야요이의 참석여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중학생 시절 게이스케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아이들의 멸시와 학대를 당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일 때문에 늦으시는 엄마, 춥디추운 방에서 루돌프 사슴 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동화창작의 출발이었다. 아이들의 구타 속에서 점차 지켜가던 그에게 한 소녀가 다가온다. 야요이라는 이름의 소녀와 친해지면서 두 사람은 이성의 감정을 조금씩 느끼게 되는데 게이스케는 글을 쓰고 야요이는 그림을 그리는 협업을 통해 둘만의 동화책으로 위안과 동질감을 나누던 두 사람은 또 다른 여자아이까지 휘말린 어떤 불행한 사건에서 오해가 발생하여 그만 절교하고 만다. 그리고 지금, 그녀 생각에 호텔 문을 나선 게이스케는 갑작스레 택시에 치어 쓰러진다.

 

 

내내 그랬던가. 게이스케와 야요이는 부모의 부재에 따른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게이스케야 뻔한 것이고 야요이의 아버지는 엄마를 폭행하고 딸의 알몸사진을 찍는 등의 인면수심에 파렴치한이니 애초에 두 사람 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다른 친구들이 외면하는 게이스케에 눈길이 자꾸 가는 야요이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니 타인의 불행에 자연스런 연민이 생기 수밖에. 그렇게 둘 만의 공통 관심사로 동화책을 만들며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기를 응원하고 싶었는데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고 슈스케가 그냥 이쁜 사랑 하세요, 라고 배려할 사람이 아니지.

 

 

입만 놀리면서. 늘 내게 마음을 쓴다고, 배려한다면서 아무 것도 해주는 게 없다며 엄마를 원망하는 야요이의 말 한마디가 나비효과라도 불러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날의 불행한 사건에도 엄마의 무관심이 한 몫 했거니와 결과적으로 자신을 진정 믿어주지 않는 게이스케에 대한 원망이 포함된 것인지도 모른다. 야요이에게 등 돌려 절교하는 게이스케를 그저 고개만 숙인 채,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은 쓰라리다. 네가 힘들 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준 건 바로 나였어. 수업 중 게이스케를 깊은 눈길로 내내 응시하는 야요이의 모습은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계속 맴맴 돌 듯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진실을 알고서는 가책을 받고 대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데 너무 잔인한 설정에 심한 몰입에 빠져 버렸나 보다.

 

 

저기다. 야요이는 여전히 게이스케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표정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게이스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경멸이 담기거나 야윈 개를 동정하는 듯한 어두운 눈이 아니라 야요이는 그저 차분하게 게이스케를 시야 중심에 잡아두고 있었다. - p.29 -

 

 

그래서 나는 이야기의 향방이 14년 후에 재회하게 된 그와 그녀의 용서와 화해로만 전개되지 않을까 성급한 예상을 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리가 굽혀 지지 않는 장애와 엄마의 임신으로 짙은 소외감을 느끼다가 게이스케가 쓴 동화를 읽으며 상처를 극복한 리코, 은퇴 후 아내를 잃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려 자살을 계획하는 요자와도 게이스케의 동화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구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가 가지 의미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힐링이 된다는 가슴 따듯한 의도는 분명 나쁘지 않다.

 

 

그러면서 시한부 삶을 살며 투병 중인 리코의 할머니에게서는 오랜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을 떠올리며 간병에 지친 자녀들의 한숨은 크리스마스는 누군가에겐 기쁨이지만 누군가에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절망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 비록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구원의 손길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잘 알겠다. 루돌프 사슴 코 이야기는 대중에게 친숙한 캐롤을 대상으로 삼아 편하고 훈훈하게 다가오지만 그 후의 동화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따라간 것처럼 쉽사리 동화되기 어려웠다.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을 배제하고 계속 더 몰입할만한 구도는 없었을까? 중반까지의 몰입과 상반되는 중반 이후의 이탈은 그래서 불확실한 감상만을 남긴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에는 공감이 가나 해법을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진정한 힐링 스토리가 되기엔 많이 역부족이었다. , 뿜겠네. 그래도 올만에 읽은 슈스케의 소설인데 이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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