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 이브, 시내 중심가에서 눈꽃축제가 성황리에 열리는 현장을 뉴스로 지켜보았다. 하늘에서는 눈꽃이 흩날리고 아이들은 빙판에서 썰매를 신나게 타느라 여념이 없으며, 연인, 친구들과 포토존에서 이쁜 추억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정취를 맘껏 누리고 있었다. 특정한 날이 가져다주는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데에는 종교적 의미는 이미 퇴색되어 있지만 모두의 마음에 따듯한 외투를 둘러준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프랑스어이자 탄생을 의미하는 <노엘>을 지금 읽는다면 그 분위기에 동참하게 될 것 같다. 미치오 슈스케라면. 그는 이미 동화풍의 소설도 낸 적이 있으니 미스터리가 아니라도 선뜻 손에 들어보게 될 것이다.

 

 

게이스케는 1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바로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어려서부터 글쓰기가 특기이자 취미였던 게이스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름 유명한 동화작가 되어있다. 동창생들을 기다리던 게이스케는 야요이의 참석여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중학생 시절 게이스케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아이들의 멸시와 학대를 당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일 때문에 늦으시는 엄마, 춥디추운 방에서 루돌프 사슴 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동화창작의 출발이었다. 아이들의 구타 속에서 점차 지켜가던 그에게 한 소녀가 다가온다. 야요이라는 이름의 소녀와 친해지면서 두 사람은 이성의 감정을 조금씩 느끼게 되는데 게이스케는 글을 쓰고 야요이는 그림을 그리는 협업을 통해 둘만의 동화책으로 위안과 동질감을 나누던 두 사람은 또 다른 여자아이까지 휘말린 어떤 불행한 사건에서 오해가 발생하여 그만 절교하고 만다. 그리고 지금, 그녀 생각에 호텔 문을 나선 게이스케는 갑작스레 택시에 치어 쓰러진다.

 

 

내내 그랬던가. 게이스케와 야요이는 부모의 부재에 따른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게이스케야 뻔한 것이고 야요이의 아버지는 엄마를 폭행하고 딸의 알몸사진을 찍는 등의 인면수심에 파렴치한이니 애초에 두 사람 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다른 친구들이 외면하는 게이스케에 눈길이 자꾸 가는 야요이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니 타인의 불행에 자연스런 연민이 생기 수밖에. 그렇게 둘 만의 공통 관심사로 동화책을 만들며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기를 응원하고 싶었는데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고 슈스케가 그냥 이쁜 사랑 하세요, 라고 배려할 사람이 아니지.

 

 

입만 놀리면서. 늘 내게 마음을 쓴다고, 배려한다면서 아무 것도 해주는 게 없다며 엄마를 원망하는 야요이의 말 한마디가 나비효과라도 불러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날의 불행한 사건에도 엄마의 무관심이 한 몫 했거니와 결과적으로 자신을 진정 믿어주지 않는 게이스케에 대한 원망이 포함된 것인지도 모른다. 야요이에게 등 돌려 절교하는 게이스케를 그저 고개만 숙인 채,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은 쓰라리다. 네가 힘들 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준 건 바로 나였어. 수업 중 게이스케를 깊은 눈길로 내내 응시하는 야요이의 모습은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계속 맴맴 돌 듯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진실을 알고서는 가책을 받고 대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데 너무 잔인한 설정에 심한 몰입에 빠져 버렸나 보다.

 

 

저기다. 야요이는 여전히 게이스케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표정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게이스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경멸이 담기거나 야윈 개를 동정하는 듯한 어두운 눈이 아니라 야요이는 그저 차분하게 게이스케를 시야 중심에 잡아두고 있었다. - p.29 -

 

 

그래서 나는 이야기의 향방이 14년 후에 재회하게 된 그와 그녀의 용서와 화해로만 전개되지 않을까 성급한 예상을 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리가 굽혀 지지 않는 장애와 엄마의 임신으로 짙은 소외감을 느끼다가 게이스케가 쓴 동화를 읽으며 상처를 극복한 리코, 은퇴 후 아내를 잃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려 자살을 계획하는 요자와도 게이스케의 동화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구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가 가지 의미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힐링이 된다는 가슴 따듯한 의도는 분명 나쁘지 않다.

 

 

그러면서 시한부 삶을 살며 투병 중인 리코의 할머니에게서는 오랜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을 떠올리며 간병에 지친 자녀들의 한숨은 크리스마스는 누군가에겐 기쁨이지만 누군가에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절망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 비록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구원의 손길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잘 알겠다. 루돌프 사슴 코 이야기는 대중에게 친숙한 캐롤을 대상으로 삼아 편하고 훈훈하게 다가오지만 그 후의 동화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따라간 것처럼 쉽사리 동화되기 어려웠다.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을 배제하고 계속 더 몰입할만한 구도는 없었을까? 중반까지의 몰입과 상반되는 중반 이후의 이탈은 그래서 불확실한 감상만을 남긴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에는 공감이 가나 해법을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진정한 힐링 스토리가 되기엔 많이 역부족이었다. , 뿜겠네. 그래도 올만에 읽은 슈스케의 소설인데 이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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