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망명자 - 2017년 제4회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김주영 지음 / 인디페이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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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시간 이동"이야말로 닳고 닳은. 진부한 소재의 끝판왕이 아니겠는가.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이 미래의 운명을 바꾸고자 과거를 넘나든다는 소재에 더 이상 기대할만한 게 없겠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복기하 듯 "시간 이동"을 채택하되, 색다르게 비틀어 버린 한국형 SF 스릴러 <시간 망명자>는 그런 차원에서  즐기기에 무리가 없는 시도다.



모두가 야만의 시대라고 불렀던 19세기~21세기 중에서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겐 특별히 각인된 시대이기도 하다.군국주의의 만행을 부르짖다가도 돌아서면 스스로의 양심에 먹칠을 하다못해 부끄러워 얼굴을 차마 들 수 없게 만든 자존감 상실에, 수치와 오욕, 불의와 타협한 어둠의 시대였던 그 당시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이 직결된 생존을 결정하기 위해 선택했던 길은 각기 달랐다. 



독립 의용군 출신 "강지한"은 조국광복에 신명을 다바친 동포들과는 달리 사랑하는 여인 "이수향"을 살리기 위해 일본 공관에 대상으로 한 거사 직전 현장에 나타나지 않고 그녀의 안위만을 챙겼던 변절자이다.



중국 상해에서 인력거꾼으로 입에 풀칠을 하던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멀끔한 외모에다 정장에 특이한 배지를 달고 나타청년이 있었으니 "제"라는 이름의 그  청년은 "강지한"에게 죽음을 예고하고 죽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일을 반복한다. 



자신은 결코 적이 아니니 허둥대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허튼 소리로 넘겨 버리려던 "강지한""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어느 날 결국 날아든 총탄에 맞아 숨진다.



"강지한"은 그렇게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인가 싶었는데 눈을 떴을 때, 그는 전혀 낯선 미래의 세계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을 미래로 데려오려고 시도한 이가 바로 "수향"이었던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시간 이동"이 일시적인 체류만을 의미한다면 "강지한"이 미래로 전송된 방식"은 "시간 이민"이라는 개념이었다. 미래 어느 시기에 안드로이드의 공격으로 거의 인류 멸종  직전에 내몰렸던 인류는 소수의 VIP 들이 간신히 도피해서 살아 남았던 덕에 세상은 재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다수의 인류가 사망한데다 더 이상 개체 수를 확대할 번식력에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고육지계로 과거에 사망했던 사람들을 미래로 이민시켜 새로운 인구 확대의 원동력으로 삼는 다는 계획이 진행된다. 



원주민과 시간 이민자, 안드로이드가 공존하며 사는 미래사회는 얼핏 구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용납되지 않고  평화와 번영만 가득한 통합 진보적 세계같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늘 한 공간에서 대립하고 충돌한다. 과거의 해묵은 갈등이 미래로 시공간을 옮겼다고 용서와 화해로 누그러질 리 없다. 인류란 늘 그래왔던 존재. 이성적 사고로도 해결되지 않는 계층간 불만과 폭동은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대물림 된다. 



게다가 노화에 대응하여 인공 신체로 부품 교체하며 오래오래 살다가 그마저 한계점에 도달하면 육체는 죽고 의식체만 "네오 헤븐"이라는 세계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역시 불로장생에 대한 인류의 영원불멸한 욕망은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추악한 이기심과 탐욕은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것 같다. 언제나 갑과 을은 존재한다고.



그러던 어느 순간, 별족이라는 특수계층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기 시작하고 범인을 둘러싼 계층 간 증오와 의심, 불협화음이 극에 달한다. 분명 이 사건의 배후에는 살인을 조종하고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부류가 있게 마련인지라 끝까지흥미를 유발시키는 작가의 설계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범인이 누구냐에 초점을 맞춘다면 일찍 눈치챌만한 단서나 하다못해 직감을 통해 누가 위험인물이 누군지 어림짐작 하기는 어렵지 않겠다.



그보다 동기에 초점을 맞춰 읽는 다면 앞서 언급했던 작가의 설계에 좋은 점수를 주게 될 것이다. SF란 어차피 상상력의 경연장이요, 어떻게하면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는까 하는 포장의 역할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한국 장르소설에서 SF 스릴러는 일반 추리물에 비해서도 더 척박한 토대의 한계로 질과 양 모두 뜯어 먹을 살이 없는 치킨과도 같았음을 감안하면 이번 이 작품은 근래 보기 드문 성취감을 남긴다. 물론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면 누구나 접근 용이하며 궁극의 쾌거라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만 하거나 대단히 만족스럽거나 같은 구간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일 뿐,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외국, 특히 백인남성 작가라는 틀을 과감히 깬, 한국 여성작가의 인상적인 창작물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샤이닝 걸스>에게 "시간 이동" 어떻게 소재로 활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모범 답안을 보여주었다면 추리/스릴러물에 있어서 왜 여성 작가의 작품이 남성 작가의 작품에 비하여 산만한가에 대한 그 이유를 <달리는 조사관>에게 한 수 가르치고 있다고 간주된다. 이 작품이 결코 완벽해서가 아니라 방향 설정과 집중력에 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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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부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5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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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시 맥베스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 죽을 사람은??? 해미시의 주변 평판은 늘 왔다 갔다 하는데 자신을 싫어하는 진영의 선두주자 중 한명인 블레어 경감의 꼼수에 의해 로흐두 마을을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다. 부임지에서 파트너가 된 여경과의 사이는 끔찍할 정도로 나쁜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둘이 못 잡아먹어 안달 날 때에는 읽기 괴로울 정도이다. 뭐든 제자리에 있어야 말썽이 없다니까. 다행인 것은 현지주민과는 관계가 괜찮은 편이라는 점이 위안이 되지만 그가 떠난 빈자리는 감당이 안 된다는.
  
    
왜 가고 나니까 그때서야 잠잠하던 마을에 갖은 골칫거리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는 것이냐.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마을 사람들은 새로 이사 온 매기 베어드가 주축이 되어 해미시를 다시 이 마을로 불러들일 모종의 작당을 시작한다. 그냥 불러주십사 청원만 해서는 안 될 일이기에 도난신고를 해서 출동했더니 다시 찾았다는 둥, 마약은 베이킹 소다로 둔갑해 있는 둥 심각한 범죄가 아니라 일상의 자잘한 소동을 벌여 끝내 해미시가 이 마을에 복귀하게 된다.
 
 
대단한 마을사람들. 그러나 다시 불러들이면 뭐해. 여전히 게으르고 무능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모지리로 취급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한. 즐거움과 스트레스는 상존해야 한다. 그 점은 해미시가 감수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던 와중에 잠시 떠나있었던 매춘부 출신 매기는 거울 속 자신의 뚱뚱한 모습에 충격 먹어 의술과 돈의 힘을 빌려 젊고 매력적인 몸매로 극적 컴백하는데... 이제 절망이여 가라. 자신감도 되찾았으니 세 번째 결혼도 추진해 볼까나.
 
 
그럴라꼬 과거 자신과 사귀었던 네 명의 남자를 불러와 그 중 한명과 결혼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자동차가 고장 나 불길에 휩싸인 상황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해 버린다. 여기서 의혹이 증폭되는데 이모한테 유산 한 푼 못 받고 빈털터리 신세가 될 처지를 걱정하던 조카 앨리슨이 새로운 유언장에 의해 우산 상속 받게 되는 상황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이모사망 시 네 남자가 분할 상속 받게 된다는 기존 유언장도 있어서 머리 아픈 상황이 된다.
 
 
게다가 앨리슨은 자신의 차에 누군가가 브레이크를 조작해 두어 사고를 당할 뻔,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이로써 해미시매기의 죽음도 조작된 살인을 간주하게 되면서 돈이 필요했을 네 남자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게 진범 찾기 수사를 시작하는데... 역시 이 마을은 이 빨간머리 강백호 총각이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재확인 해 준거다.
 
 
사람이 꼬이면 파리가 꼬이는 것처럼 이기심과 허영심에 썩는 내가 진동한다고 다음 편이 <속물의 죽음>인 것과 상관없이 언제나 아 마을에 죽어나가는 사람은 모두의 존경과 신망을 한 몸에 받던 인기스타의 억울한 죽음이 아닌 것이다. 밉상들이라 해서 죽어 마땅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덜 안타까운 죽음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스크루지 영감과도 같다. 어쨌거나 영민한 우리 해미시 순경은 이번에도 진범을 잘 가려내었다. 기특한지고. 궁디 팡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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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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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 "제이미 모턴"은 말한다. 우리의 인생을 집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 누구냐고? 운명과 우연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그 틈새에서 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이자 동기라고 해도 좋겠고, 아님 구체적으로 사람을 지칭한다면 필시 "찰스 제이컵스""제이미"의 인생에 등장해서 맡은 역할을 판단해보건 대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제이미"도 유년시절의 일부만 뜯어보자면 형제 많은 중산층 가정의 막내로 태어나 또래 아이들처럼 다사다난하면서도 평범한, 추억 많은 나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41녀라는 조건에서 보자면 그렇겠다. 장난감 군인들로 2차 대전을 치루는 모습은 나 역시 그랬기에 그 시절들이 무척 그리워지고. 어느 날 평소처럼 혼자 미국 대 독일군 간 전투 시뮬레이션을 실습하던 중에 불쑥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타나 신묘한 전략전술을 알려주었던 젊은 목사 "찰스 제이컵스" 목사와의 첫 만남은 훈훈.

 

 

"찰스" 목사는 소년 "제이미"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신망 두터운 사람이었는데 친절하고 자상한 이 사람은 특이하게도 전기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흔히 과학기술은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 하여 종교와 때때로 불협화음을 빚는 경우가 상당한데 "찰스" 목사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전기를 이용하여 만든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시켜 주는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자동차사고로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이 사고만 아니었다면 모두의 인생은 정말 소박하면서 평범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들에 한해서는. 그러나 우리네 인생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오늘 살아 있음을 감사히 여겼어야 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

 

 

보통은 이런 경우에는 주변사람들이 어쭙잖게 위로랍시고 한마디씩 힘내시라는 말을 건넨다. 하지만 당사자에겐 죽은 아내와 아들이 되살아나지 않는 한, 맘처럼 쉽게 그 고통과 상처를 씻어낼 수가 없었기에 마을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무섭고 독한 설교를 작심하고 쏟아내어 버렸다. 하느님을 부정하고 원망하는. 모두가 충격과 경악에 휩싸였고 결국 그는 마을에서 추방당한다. "제이미" 만큼은 그를 마지막까지 믿고 지켜주려 했지만 신성모독의 죄는 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제이미"도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니 밴드에서 기타를 치기도 했고 약물에 빠지기도, 사랑에 빠져 뜨거운 섹스도 즐겼다가 그녀와 이별하기도 했으며, 가족들 중에는 병사도 있었고 불행한 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었다. 점점 피폐해지던 "제이미"를 구한 사람은 뜻밖에도 "찰스"였다. 목사가 마을에서 쫓겨나던 날, 마지막으로 그를 배웅해준 유일한 사람 "제이미"를 구해준 사람이 "찰스"였으니 이 얼마나 기묘한 인연이던가.

 

 

, 그러고 보니 "제이미"를 구한 방식이 예전 콘 형을 치료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찰스"가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전지전능한 아버지 전기였다는 사실에서 벌써 빛과 어둠의 양 갈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지나친 반응인 것인가, 예민한 반응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다시 만난 그 남자는 전기 쇼를 이용한 사기극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잡범처럼 생각해도 무방.

 

 

그런데, "찰스"가 무엇인가 꾸미기 시작하는 것 같다. 대단히 위험하고 두려운데다 해서는 안 될 금기의 영역에 도전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제이미"는 내심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자신과 함께 하자고 손길을 내미는 그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지금이라도 거절하고 무조건 말려야만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이미 늦었다. 가족을 끔찍한 사고로 잃은 전직 목사가 신앙심마저 잃고 광기에 휩싸여 벌였던 일의 대가는 무시무시하고 공포스러웠으니.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 없듯이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열어버려 눈앞에 펼쳐진 그 너머는 보지도 말고 알지도 말았어야 했고 누구에게도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 어떤 현상이자 세계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닿고자 했던 "찰스"의 집념은 처절했고 맘 아프기까지 했다. 무섭고도 슬픈데다 중반부의 루즈한 분위기를 일순 뒤집어 버리는 폭풍 같은 후반부에 강렬히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 초자연적인 호러의 마력은 상징적 느낌들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명징화하여 맴돌고 또 맴돈다. 쉽게 지워버리기 힘든. "스티븐 킹"의 이야기 풀어내는 솜씨에 이번에도 당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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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시선 - 합본개정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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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은 낮과 밤이 바뀌는 동안에도 늘 평온해 보인다. 종일 격무에 시달리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반기는 가족들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리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말없이 TV를 시청하기도 하고 시간이 되면 굿나잇을 속삭인 후 한 침대에서 잠이 들기도 하는... 무료한 듯 보이지만 닭장 같은 아파트 불빛들을 잠시 보노라면 가내 평안하신지 문득 쓸데없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 집에서 동거하는 가족이니까 서로에 대한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일까? 알고 있다면 듣고만 말았는지 적극적으로 고민상담도 해주고 속 시원히 해결까지 해주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린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숨겨진 비밀까지 미처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라면 사정은 좀 다를 거라 희망 섞인 전망도 해보지만 사람 마음, 그 깊은 심연을 온전히 들여다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레이스 로슨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다정한 남편까지 특별하진 않아도 단란한 가정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다만 한 가지 아쉽다면 과거 록 콘서트 현장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혼란에 빠진 관객들에 떠밀려 부상당한 몸이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정신적 트라우마도 극복해냈고 일상생활에 불편은 있어도 이만하면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


 

 

그런데, 잔잔한 일상에 파문이 인다. 가족들과 과수원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을 사진관에서 찾았는데 그중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좀 옛날 사진 같았는데 다섯 남녀가 서 있고 어떤 여성에게는 엑스 표시가 있는가 하면 남편 잭으로 보이는 남자도 포함되었었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더니 모른다 해놓고선 어딘가 통화를 하더니 갑자기 차를 몰고 사라진다. 그리고 며칠 동안 돌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다.

 

  

이렇게 놀라운 일이. 애타는 맘으로 그레이스는 경찰에 실종신고도 해보지만 경찰에서는 일시적인 가출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 하고 수소문 끝에 남편의 누나도 만나 보지만 모른다며 무엇인가 숨기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라는 한국인 남자가 돌아다니면서 누군가를 납치하거나 때론 살인도 서슴지 않는데 정체와 동기가 영 수상쩍은 이 남자와 주변의 피해자들 그리고 그레이스의 사연들은 나란히 평행선을 달리면서 각자의 시선과 각자의 사정을 담는다.

 

 

그렇게 별개의 줄기처럼 보이던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도가 어느 순간에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지는데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레이스가 사라진 남편을 찾기 위해 벌이는 탐문과정과 추리적 사고는 정말 불굴의 집념과 의지에 가깝다. 양파 껍질 벗기는 것처럼 까도 까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연속이었으니까. 그 진실의 실체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도 쉼 없이 페이지를 넘겨야만 한다.

 

 

남편인 은 아내에게 배신이었을 만큼 추악한 범법행위를 저질렀던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마침내 드러난 진실 앞에서 우리는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비밀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용서하며 때론 눈감아 줄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해법이 존재하리라 믿는다.  솔직히 "그레이스"였으니까 가능했을 전개이다. 현실에서도 많이 존재한다면 다수가 해피엔딩이겠지만. 그러나 현기증을 느끼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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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의 제주는 즐거워 - 심야 편의점에서 보고 쓰다
차영민 지음, 어진선 그림 / 새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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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 편의점은 참 조용하고 한가로울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나보다. "차작가님"이 알바로 뛰고 있는 애월읍에 대해 아는 게 전무하다 보니 그런 착각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일단 관광특구 제주도에 속해 있다면 국내관광객은 물론이요,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득실할거라는 사실조차 간과해서 "차작가님"한테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그래서 우연히 글쓰기를 시작했다가 적성에 맞는 일임을 알게 되면서 계속 하고 싶은 일이 되었지만 우선 최소한의 벌이가 있어야 꿈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법, 그런 마음가짐에 꽃길만 걸으시라고 응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사무실 근처 편의점을 자주 들르는 편이며, 조용히 먹거리만 구입해서 돌아가는데 그때마다 항상 그곳은 편안하고 무탈해 보인다.

 

 

그러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게 세상일수도 있으니 멀쩡한 사람들도 낮밤이 바뀌면 정신 줄 놓은 채, 취객이라는 망나니로 돌변하여 애꿎은 알바들을 대상으로 진상 짓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술을 샀으니 굳이 편의점에 죽치고 앉아 마시고 가겠다고 바락바락 우기기부터 시작해서 뭐 그리도 궁금한 게 많은지 남의 신상 캐기, 동업요청 등 주저리주저리 말도 참 많다.

 

 

그중에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갑질 횡포 부리는 진상이 특히 꼴 뵈기 싫더라. 손님은 왕이다.”를 악용하는 진상 앞에서 아무리 신사적으로 달래보아도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진정 모른다. 게다가 물건에 손까지 댄다. 매일 같이 시재와 재고 맞추는 일이 만만치 않을 터인데, 모자란 부분은 알바 스스로 채워놓거나 영업 손실로 고스란히 떨어지는 일이 다반사라 하잖나.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느 진상 손님이 몰래 편의점 물건들을 옷 구석구석 숨겨 빼돌리려다 "차작가님"한테 들켜 파출소로 연행 되고도 적반하장 격으로 날뛰었던 건이다. 어찌나 꼼꼼히 짱박았던지 옷을 뒤질 때 마다 마치 밀수품처럼 끝임 없이 나오던 물건들. 이제 더는 뒤져 나올 게 없겠다 싶던 찰나에 그 남자 손님의 바지 앞섶 부분에 불룩 삐져나온 소시지가 또 발견되었다는. 헉스.

 

 

거길 잡고 어서 내놓으라고 실랑이를 벌이는 통에 경찰들 눈에는 "차작가님"이 남자 손님의 똘똘이를 잡아당기는 모습으로 오해 살 뻔 했었던 명장면이다. 아무리 화나도 거길 잡으면 안 된다고 뜯어 말리는 경찰들과 "이것은 소시지입니다."라고 항변하는 "차작가님", 도둑 손님 간의 해프닝은 포복절도 그 자체. 그러게 제발 정직하게 좀 삽시다. 민폐 끼치지 말고.

 

 

그리고 앞서 시골 편의점이지만 중국 단체관광객들 때문에 홍역을 치른다고 말한 적 있다.말도 안 통하는 그들로 인해 상시 유체이탈 할 정도로 혼이 들락날락 했다는데 어느 중국 여자손님이 술에 취해 "차작가님"한테 자꾸 추근대어 진땀깨나 흘린 뒤로는 중국 여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았다는 불쾌한 경험도 있는가 하면, 어느 한국 아가씨 손님은 "차작가님" 이상형에 가까운데다 오히려 그녀가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며 다가왔다는 일화가 꽤나 심쿵하게 만든다.

 

 

그녀와 다시 연락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평소 노안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 그에게 이성으로서 어필되는 면이 보이는 것 같아 실제로 보면 은근한 매력이 넘치는 청년인 듯하다. 그렇게 이런 저런 에피소들의 재미에 푹 빠지다보면 일면식도 없는 "김사장님", "띠동갑 누님"도 살갑게 느껴지기도 하니 인간미 풍풍 풍키는 조력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차작가님"은 수년에 걸친 편의점 알바 기간 동안 건강도 좀 해치고 알바식 말투와 꿈자리까지 구석구석 점령당한 편의점 알바 라이프에 때론 지치기도, 때론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삶은 조각조각 파편처럼 흩어졌다 다시 결합하기고 한다. 제주 애월읍에 갈 일이 있다면 지금도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을 성실 알바 "차작가님"에게 이 책을 내밀며 수줍게 싸인을 받고 싶은 꿈을 언제쯤이면 이루게 될까? “작가님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과연 소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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