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망명자 - 2017년 제4회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김주영 지음 / 인디페이퍼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시간 이동"이야말로 닳고 닳은. 진부한 소재의 끝판왕이 아니겠는가.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이 미래의 운명을 바꾸고자 과거를 넘나든다는 소재에 더 이상 기대할만한 게 없겠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복기하 듯 "시간 이동"을 채택하되, 색다르게 비틀어 버린 한국형 SF 스릴러 <시간 망명자>는 그런 차원에서  즐기기에 무리가 없는 시도다.



모두가 야만의 시대라고 불렀던 19세기~21세기 중에서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겐 특별히 각인된 시대이기도 하다.군국주의의 만행을 부르짖다가도 돌아서면 스스로의 양심에 먹칠을 하다못해 부끄러워 얼굴을 차마 들 수 없게 만든 자존감 상실에, 수치와 오욕, 불의와 타협한 어둠의 시대였던 그 당시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이 직결된 생존을 결정하기 위해 선택했던 길은 각기 달랐다. 



독립 의용군 출신 "강지한"은 조국광복에 신명을 다바친 동포들과는 달리 사랑하는 여인 "이수향"을 살리기 위해 일본 공관에 대상으로 한 거사 직전 현장에 나타나지 않고 그녀의 안위만을 챙겼던 변절자이다.



중국 상해에서 인력거꾼으로 입에 풀칠을 하던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멀끔한 외모에다 정장에 특이한 배지를 달고 나타청년이 있었으니 "제"라는 이름의 그  청년은 "강지한"에게 죽음을 예고하고 죽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일을 반복한다. 



자신은 결코 적이 아니니 허둥대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허튼 소리로 넘겨 버리려던 "강지한""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어느 날 결국 날아든 총탄에 맞아 숨진다.



"강지한"은 그렇게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인가 싶었는데 눈을 떴을 때, 그는 전혀 낯선 미래의 세계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을 미래로 데려오려고 시도한 이가 바로 "수향"이었던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시간 이동"이 일시적인 체류만을 의미한다면 "강지한"이 미래로 전송된 방식"은 "시간 이민"이라는 개념이었다. 미래 어느 시기에 안드로이드의 공격으로 거의 인류 멸종  직전에 내몰렸던 인류는 소수의 VIP 들이 간신히 도피해서 살아 남았던 덕에 세상은 재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다수의 인류가 사망한데다 더 이상 개체 수를 확대할 번식력에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고육지계로 과거에 사망했던 사람들을 미래로 이민시켜 새로운 인구 확대의 원동력으로 삼는 다는 계획이 진행된다. 



원주민과 시간 이민자, 안드로이드가 공존하며 사는 미래사회는 얼핏 구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용납되지 않고  평화와 번영만 가득한 통합 진보적 세계같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늘 한 공간에서 대립하고 충돌한다. 과거의 해묵은 갈등이 미래로 시공간을 옮겼다고 용서와 화해로 누그러질 리 없다. 인류란 늘 그래왔던 존재. 이성적 사고로도 해결되지 않는 계층간 불만과 폭동은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대물림 된다. 



게다가 노화에 대응하여 인공 신체로 부품 교체하며 오래오래 살다가 그마저 한계점에 도달하면 육체는 죽고 의식체만 "네오 헤븐"이라는 세계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역시 불로장생에 대한 인류의 영원불멸한 욕망은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추악한 이기심과 탐욕은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것 같다. 언제나 갑과 을은 존재한다고.



그러던 어느 순간, 별족이라는 특수계층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기 시작하고 범인을 둘러싼 계층 간 증오와 의심, 불협화음이 극에 달한다. 분명 이 사건의 배후에는 살인을 조종하고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부류가 있게 마련인지라 끝까지흥미를 유발시키는 작가의 설계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범인이 누구냐에 초점을 맞춘다면 일찍 눈치챌만한 단서나 하다못해 직감을 통해 누가 위험인물이 누군지 어림짐작 하기는 어렵지 않겠다.



그보다 동기에 초점을 맞춰 읽는 다면 앞서 언급했던 작가의 설계에 좋은 점수를 주게 될 것이다. SF란 어차피 상상력의 경연장이요, 어떻게하면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는까 하는 포장의 역할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한국 장르소설에서 SF 스릴러는 일반 추리물에 비해서도 더 척박한 토대의 한계로 질과 양 모두 뜯어 먹을 살이 없는 치킨과도 같았음을 감안하면 이번 이 작품은 근래 보기 드문 성취감을 남긴다. 물론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면 누구나 접근 용이하며 궁극의 쾌거라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만 하거나 대단히 만족스럽거나 같은 구간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일 뿐,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외국, 특히 백인남성 작가라는 틀을 과감히 깬, 한국 여성작가의 인상적인 창작물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샤이닝 걸스>에게 "시간 이동" 어떻게 소재로 활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모범 답안을 보여주었다면 추리/스릴러물에 있어서 왜 여성 작가의 작품이 남성 작가의 작품에 비하여 산만한가에 대한 그 이유를 <달리는 조사관>에게 한 수 가르치고 있다고 간주된다. 이 작품이 결코 완벽해서가 아니라 방향 설정과 집중력에 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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