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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의 제주는 즐거워 - 심야 편의점에서 보고 쓰다
차영민 지음, 어진선 그림 / 새움 / 2016년 12월
평점 :
그 동네 편의점은 참 조용하고 한가로울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나보다. "차작가님"이 알바로 뛰고 있는 애월읍에 대해 아는 게 전무하다 보니 그런 착각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일단 관광특구 제주도에 속해 있다면 국내관광객은 물론이요,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득실할거라는 사실조차 간과해서 "차작가님"한테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그래서 우연히 글쓰기를 시작했다가 적성에 맞는 일임을 알게 되면서 계속 하고 싶은 일이 되었지만 우선 최소한의 벌이가 있어야 꿈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법, 그런 마음가짐에 꽃길만 걸으시라고 응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사무실 근처 편의점을 자주 들르는 편이며, 조용히 먹거리만 구입해서 돌아가는데 그때마다 항상 그곳은 편안하고 무탈해 보인다.
그러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게 세상일수도 있으니 멀쩡한 사람들도 낮밤이 바뀌면 정신 줄 놓은 채, 취객이라는 망나니로 돌변하여 애꿎은 알바들을 대상으로 진상 짓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술을 샀으니 굳이 편의점에 죽치고 앉아 마시고 가겠다고 바락바락 우기기부터 시작해서 뭐 그리도 궁금한 게 많은지 남의 신상 캐기, 동업요청 등 주저리주저리 말도 참 많다.
그중에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갑질 횡포 부리는 진상이 특히 꼴 뵈기 싫더라. “손님은 왕이다.”를 악용하는 진상 앞에서 아무리 신사적으로 달래보아도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진정 모른다. 게다가 물건에 손까지 댄다. 매일 같이 시재와 재고 맞추는 일이 만만치 않을 터인데, 모자란 부분은 알바 스스로 채워놓거나 영업 손실로 고스란히 떨어지는 일이 다반사라 하잖나.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느 진상 손님이 몰래 편의점 물건들을 옷 구석구석 숨겨 빼돌리려다 "차작가님"한테 들켜 파출소로 연행 되고도 적반하장 격으로 날뛰었던 건이다. 어찌나 꼼꼼히 짱박았던지 옷을 뒤질 때 마다 마치 밀수품처럼 끝임 없이 나오던 물건들. 이제 더는 뒤져 나올 게 없겠다 싶던 찰나에 그 남자 손님의 바지 앞섶 부분에 불룩 삐져나온 소시지가 또 발견되었다는. 헉스.
거길 잡고 어서 내놓으라고 실랑이를 벌이는 통에 경찰들 눈에는 "차작가님"이 남자 손님의 똘똘이를 잡아당기는 모습으로 오해 살 뻔 했었던 명장면이다. 아무리 화나도 거길 잡으면 안 된다고 뜯어 말리는 경찰들과 "이것은 소시지입니다."라고 항변하는 "차작가님", 도둑 손님 간의 해프닝은 포복절도 그 자체. 그러게 제발 정직하게 좀 삽시다. 민폐 끼치지 말고.
그리고 앞서 시골 편의점이지만 중국 단체관광객들 때문에 홍역을 치른다고 말한 적 있다.말도 안 통하는 그들로 인해 상시 유체이탈 할 정도로 혼이 들락날락 했다는데 어느 중국 여자손님이 술에 취해 "차작가님"한테 자꾸 추근대어 진땀깨나 흘린 뒤로는 중국 여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았다는 불쾌한 경험도 있는가 하면, 어느 한국 아가씨 손님은 "차작가님" 이상형에 가까운데다 오히려 그녀가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며 다가왔다는 일화가 꽤나 심쿵하게 만든다.
그녀와 다시 연락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평소 노안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 그에게 이성으로서 어필되는 면이 보이는 것 같아 실제로 보면 은근한 매력이 넘치는 청년인 듯하다. 그렇게 이런 저런 에피소들의 재미에 푹 빠지다보면 일면식도 없는 "김사장님"도, "띠동갑 누님"도 살갑게 느껴지기도 하니 인간미 풍풍 풍키는 조력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차작가님"은 수년에 걸친 편의점 알바 기간 동안 건강도 좀 해치고 알바식 말투와 꿈자리까지 구석구석 점령당한 편의점 알바 라이프에 때론 지치기도, 때론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삶은 조각조각 파편처럼 흩어졌다 다시 결합하기고 한다. 제주 애월읍에 갈 일이 있다면 지금도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을 성실 알바 "차작가님"에게 이 책을 내밀며 수줍게 싸인을 받고 싶은 꿈을 언제쯤이면 이루게 될까? “작가님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과연 소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