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치
로렌조 카르카테라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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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파치>는 무던히도 애를 태우며 언제 세상에 공개될까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연인이었다.

얼굴도 못 봤지만 이미 짝사랑에 빠져버린 내 고집을 꺾을 수 없었으니 그렇게 4년여란 세월이 흘러 버렸지.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우직하게 기다렸던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마침내 짠하고 등장한 이 므찐 양반들 또한 죽음을 불사하는 불나방이 되어 누가 봐도 승산 없는 절대 악과의 신명나는 전투를 치른다.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이런 무모함에 동참할 수 있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했을 터, 그 동기와 당위성에 확신을 갖고자 모인 여섯 명의 전사들, 부머, 데드아이, 짐 목사, 콜롬보부인, 제로니모, 핀스... 명사수, 도청, 폭파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으로 악의 무리들을 공포에 떨게 한 스타경찰들이었지만 현장에서의 불의의 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어 원치 않은 은퇴에 쓸쓸한 나날들을 보내던 불구자들이었다.

 

 

 

비록 몸은 망가지고 범죄를 온몸으로 막아내던 활극에서 멀어져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버린 그들이었지만 아직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고 있는 본능으로 인해 이들은 다시 뭉치게 된다. 그 시발점은 부머의 친구 딸이 실종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열두 살 소녀 제니퍼를 찾아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 못한 부머와 데드아이가 마침내 소재를 발견했을 때 이 소녀는 이미 유괴와 성매매를 알선하는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성폭행과 가학적인 변태행위에 시달리며 죽음보다 못한 처절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부머와 데드아이가 이들로부터 소녀를 구출한 후 본격적으로 악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전직 경찰 넷을 불러 모아 마약제국의 대모 루시아 카니와 목숨 건 전쟁에 돌입하기로 한다.

 

 

 

이 소설의 최대강점은 살아있는 캐릭터와 피 터지는 액션 쇼에 있다고 하겠다. 아파치 멤버들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자라서 경찰로서의 활약 그리고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던 사고, 무기력한 현실을 딛고 다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자 이 겁 없는 전쟁에 돌입하기 까지의 고민과 결단 등이 아주 효과적으로 설명된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마치 이현세의 인기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멤버들처럼 세상의 중심에서 내몰렸지만 끈질긴 자생력으로 부활한 자경단 버전이 된 셈이다.

 

 

 

또한 이들이 척결해야할 악의 무리들도 단순히 선악 이분법에 의한 역할분담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냥 나쁜 놈들이 아니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악의 절정을 선보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분노의 탑을 하늘 끝까지 쌓아 올리다 마침내 둑이 터지 듯 통쾌한 복수가 펼쳐지면서 카타르시스의 절정을 느끼게 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특히 아기를 매매 받아 키우다 6개월 후에는 배를 갈라 마약을 채워놓고 꿰매어 운반도구로 이용하는 마약여왕 루시아는 펄스의 전 출간작인 <난징의 악마>에 출연했던 오가와 간호사와 더불어 역대급 악녀캐릭터를 구축해내었던 것이다.

    

 

 

정사도중 남편으로 총으로 쏘아 죽이는 이 냉혈녀에게는 인간성이라고 눈을 씻고 찾아봐야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기타 다른 악당들 또한 악랄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아파치는 이들에게 총알 몇 방 먹이는 시시한 짓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렇게 정성을 한 올 한 올 담아 제대로 짓이겨주는데 성공하기까지 울분과 탄식, 환희의 감정들과 함께 하는 동안 책의 편집상 문제점(작고 빽빽한 활자)은 읽는 즐거움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때문에 브레이크 고장 난 폭주기관차처럼 거침없는 속도감과 불꽃 튀는 액션활극에 빠지다보면 한여름의 무더위는 온데 간 데 없게 된다. 단언컨대 올해 읽은 장르소설 중에서 재미는 단연 으뜸이라 하겠다. 내 취향을 완벽히 저격해버린 이 소설에게 어느 분처럼 별 여섯을 우선 부여하는 동시에 이 소설의 액션을 능가한다는 펄스의 차기작 <그레이 맨>의 출간임박을 두근대는 마음으로 다시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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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 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3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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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동부를 차지하는 수미다 구 Y동네는 두 강 사이에 들어앉아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운하가 두 하천을 연결하고 있다는 식의 배경설명으로 각 에피소드들이 소개될 때마다 무심히 넘겨버렸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변하는 게 세상이지만 또 한편으론 변하지 않은 것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사와 겐... 두 할배들 또한 그랬다. 칠십 삼년의 우정...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짱가 같이 동시에 나타나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그 정력들에 키득키득 웃을 수밖에 없다. 전쟁 중 대공습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한사람은 은행원으로 한평생 샐러리맨의 길을 걷다가 내려오니 정작 가족들은 무심했고 외면하기 일쑤, 한사람은 그 나이에 빨갛게 물든 머리에 일본 전통 비녀 "쓰마미 간자시"를 만드는 장인으로서 낙천이다 못해 늙은 건달 같기도 하지만 황혼의 고독을 비껴갈 도리가 없겠다.

 

그나마 겐 할배는 사정이 낫다. 제자도 두고 덤으로 제자의 짝도 곁에 두면서 항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으니 고독사할 염려가 없단 점에서 마사 할배는 늘 부러워한다. 그러다가 돌발적 요통에 의해 사경을 헤맬 때 오랜 죽마고우 사이에는 텔레파시가 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도움의 손길을 내미던 겐 할배에게서 마치 나 자신이 마사 할배가 된 것 마냥 고맙고 또 고맙다. 그 소동들을 읽어가며 미래를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사 할배의 처자식들 하는 꼬락서니에 울컥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끈끈한 정 앞에서 마음이 찡했을까  

 

누군가는 그랬잖아, 성공한 사람에게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가족이 없고, 친구가 없다고... 그렇다면 마사와 겐 할배는 적어도 절반의 성공과 실패는 남긴 셈이다. 가족을 잃었지만 우정을 오래도록 지속해 왔으니까. 로맨스보다 더 달콤한 브로맨스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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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 -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함현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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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린 시절 집집마다 아동용 위인전 한질씩은 사다놓질 않았던가? 내 생애 처음으로 책과 사랑에 빠졌던 그 시절에는 분명 위인전이 있었다. 동서양 고금 이래 많은 위인들이 역경을 딛고 위대한 업적을 성취했을 때 열렬한 박수로 추종의 뜻을 표현했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완전무결한 신적인 존재로 우러러 보였던, 그들은 영웅이자 어린 아들이 장차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하길 염원하셨던 부모님의 염원마저 반영된 셈이다.

 

 

성인이 된 지금, 과연 그들 모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문득 문득 든다. 우리가 주목했던 점은 단지 업적이었지 개인사까지 완벽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부정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김수영부터 달빛요정 역전만루 홈런까지... 대로변에서 아내를 구타하고 행여나 남들이 보고 뭐라 할까 봐 소심한 마음을 시로 표현한 위인, 자립심이라곤 눈꼽만치 없이 동생에게 구걸하며 살았던 위인,

 

 

모두가 평등한 세상,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지만 정작 위정자와 합종연횡하며 기회주의자냐,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의 벽과 일정부분 타협하며 파이를 얻어내고자 한 것이냐는 구설수에 오르내린 위인까지... 모두 찌질 하였더라.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이 위인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가면을 벗겨 모욕을 먹이기 위한 계획된 드잡이란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또 고개를 절레절레 젓겠다.

 

 

대단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제목도 한 몫 거들긴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사실상 자신들의 찌질함을 자인했단 점. 하지만 위대함의 일부로 승화해냈단 최종산물이었다. 인간적인 면모를 감추지 말고 속속들이 까발려 그들도 보통사람, 인생은 누구에게나 불합리하니까 나 자신을 다시 부축하여 용기와 희망이라는 불씨를 얻을 수 있도록 하라. 폭로 대신 힐링이라는 추천사는 그래서 마음에 와 닿는다.

 

 

김수영, 빈센트 반 고흐, 이중섭, 리처드 파인만, 허균, 파울 괴벨스, 마하트마 간디, 어니스트 훼밍웨이, 넬슨 만델라, 스티브 잡스, 달빛요정역전만호홈런.. 중에서 나치의 선전상 이었던 파울 괴벨스에 가장 주목해본다면 대놓고 악인으로 판명된 그가 이 사람들과 나란히 언급된 이유를 책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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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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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이 지겨워질 법도 할 찰나에 기적적으로 만난 <13.67>은 그야말로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와 읽게 만들, 전어 같은 풍미가 있다. 6편의 연작이 역순으로 거슬러가면서 홍콩 느와르라는 습하고 끈적끈적한 분위기가 향수도 불러일으키는데 엄밀히 보자면 각자가 단편도 장편도 아닌 중편 정도의 분량으로 봐야할 것이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타입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사실상 더 불리한 핸디캡에 놓여있는 관전둬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 남자는 과거 홍콩경찰에서 독보적인 전공을 올린 범죄척결의 명인으로 유명했다. 은퇴 후 고문 형식으로 독자적인 수사행보를 보이던 그는 법망과 두뇌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으며 날고 기는 범죄자들의 머리 속을 환히 들여다보기라도 하 듯이 한발 앞서 길목을 차단하고 섰다, 이쯤하면 아무도 여길 뒤지지 않겠지 라고 의기양양할 때 다른 관점에서 빈틈을 메꿔버리는 추리능력이야말로 가히 천재급이다.

 

 

그랬던 그가 암 투병으로 의식불명상태나 마찬가지인 병동이란 환경에서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 단지 예, 아니오로만 용의자들을 조사하는 기법 앞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해설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원하는 단서와 추리의 행방을 완성코자 절묘한 드라이빙 솜씨를 보이는 수제자 뤄샤오밍과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줄로만 알았지만 그 진실은 더욱 놀랍기만 하다.

 

 

2013년에서 1967년까지 연대별 사건에서 관전둬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승리만을 쟁취했고 그 과정에서 정해진 경로를 수시로 이탈해 교묘한 덫으로 함정을 팠지만 독자들은 감탄할 뿐이지 위법성 운운하는 지적을 하는 이는 결단코 없을 거라 본다. 그리고 그토록 범죄에 대한 가차없는 집행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그는 왜 그렇게까지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악이라는 샘물에 미련을 못 버리고 팔을 걷어붙였는가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진짜가 드러난다.

 

 

관전둬에 대한 격의 없는 오해에는 처음부터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을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을 수 있다. 누구나 젊어서는 지혜도 부족하고 위기와 맞닥뜨리게 되면 현명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순발력도 채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무수히 겪다가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보면 관전둬 또한 보통 젊은이라면 흔히 겪을 가치관의 혼선과 과오를 저질렀던 것이고 그 시점의 인연이 현재로 이어진다는 설정 앞에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이렇게나 인상적인 엔딩을 최근 만나본 적이 있던가? 아니다. 역대급이라 할 만 하다. 더불어 홍콩이란 도시가 특수하게 가지고 있던 역사적 문화적 배경, 그리고 혼돈을 밀도 있게 잘 그려내어 그런 점도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 시켜준다. 입이 아프니 더 말해 뭣하랴. 지금도 가끔 소설가 되는 헛된 망상에 혼자 실실 쪼갤 때가 있는데 실제로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런 스타일이란 말. 그래서 내게 없는 작가적 재능을 이렇게 멋지게 펼쳐버린 작가에게 질투나려 한다. 그리고 엄지손가락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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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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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기욤 뮈소스런 표지도 이쁘지만 원제부터 사별을 암시하는 듯해서 첨부터 코가 찡한 느낌으로 시작했다. 여주는 아직 나이가 창창하다. 지나고 보면 다시는 못 올 인생의 황금기 20... 데이지와 잭 커플은 그래서 늘 알콩 달콩 참기름 뿌려가며 햄 볶았더란다. 그렇담 결혼이 교통사고란 표현도 있는데 예정된 결혼이든 정신 차렸더니 웨딩드레스 입은 채 아빠 팔짱끼고 식장에 들어선 결혼이든 아무 상관없다. 솔로부대들이 보면 혈압 상승할 블링블링한 신혼이다.

 

 


그러다 슬슬 예감이 좋지 않다. 이 부부의 행복이 눈꼴시러웠던 것일까? 암이 갑자기 재발하여 온몸에 전이되었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은 비로소 미처 알지 못했던 어두운 먹구름이 진즉 드리워져 있었구나 하게 된다. 때문에 고쳐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단 보장이 있다면 이렇게 가슴 먹먹한 이야기는 없었을 게다. 이대로 여생을 사랑하는 남편과 잘 보내다 끝났다가 아니라 내가 죽고 나면 울 남편은 어쩌나... 걱정이다.

 

 

 

누구는 우주최강의 오지랖이랄지도 모르겠지만 남편의 짝을 찾아주기로 결심하는 대목에서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의 솔직한 심정이 그윽하게 뭉클하게 그려질 동안 순간순간 눈물을 쏟아내며 어느새 그 결정에 공감을 표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데이지에게 동화되어갔나 보다. 남은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맘처럼 쉽게 정리하기 힘든 것이 살아온 정이자 동료애 같은 정서이다.

 

 

 

그렇다고 남은 사람이 너무 희희낙락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질투도 나고 혹시나 나를 쉬이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생기기도 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결론도 내려 본다. 이렇게 웃고픈 로맨스를 다 읽고 나니 그래도 결혼은 할 만하다는 점. 경험해본 이는 안다. 솔로지옥 커플천국일지니. 약발 떨어지면 로맨스도 가끔씩 복용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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