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크라이 카오스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레너드 로젠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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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 크라이 카오스>는 이론과 캐릭터로 양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는 작품쯤 되겠다. 개인적으로 수학에 강한 알레르기가 있는 점을 감안했을 때 프랙탈 이론, 카오스 이론 등을 바탕으로 한 수학적 이론과 경제적 접근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 앙리 푸앵카레를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의 증손자로 설정해 놓고 육체적인 강인함 못지않게 지적탐구를 강조하는 미스터리로 창조해냈다.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는 실제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수학과 수리물리학, 천체역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했던 인물로 특히 카오스 이론의 정립에 지대한 역할을 한 유명인사로 알려져 있다. 대신 이 작품의 주인공 푸앵카레는 할아버지의 경력과는 상관없이 인터폴 형사로 30년을 누비고 다닌 노회한 베테랑이다. 성격이 진중하고 학구파 스타일인 그는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불의와는 결코 타협을 보지 않는 억척 형사로 명성을 날렸는데 정년을 앞두고 가족과의 단란한 노후를 꿈꾸어 왔다. 다만 몰아내고 또 몰아내도 악의 본질적 뿌리를 도려내지 못함을 아쉬워 할 뿐이었다.

 

 

푸앵카레의 마지막 전리품이 될지도 모를 범죄자는 기독교 원리주의에 입각하여 이슬람교 성인남자들과 소녀들을 대량 학살한 짓을 지시하고 동참한 죄목으로 인터폴의 국제 지명수배를 받아왔던 구, 유고 연방 출신의 스티포 바노비치였다. 장기간에 걸쳐 끈질긴 추적 끝에 마침내 체포하여 법의 심판을 넘길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이것으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노비치는 자신을 구금한 푸앵카레에 앙심을 품고 그의 가족들에 대하여 살해 위협을 한다. 아니 실제로 안타까운 희생양이 발생한다. “바노비치의 청부살인 사주를 피해 가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테러로 보호시스템에 균열이 일어나 손녀딸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는 바노비치의 위협에도 법과 이성에 호소한 대응으로 안주했던 이 노 형사는 비로소 복수심에 살의를 품는다.

 

 

하지만 푸앵카레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WTO 각료 회의 보안 총괄을 담당하게 되었던 그가 현지에 도착하였을 때 폭발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폭발원인으로 로켓 추진에 주로 사용되는 원료인 과염소산 암모늄'으로 밝혀지고 이 폭발에 의해 호텔 꼭대기 층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대형 참사였던 것이다. 다른 투숙객들은 무사했는데 폭발이 발생한 호텔방의 투숙객 "제임스 펜스터"라는 하버드대 교수이자 수학자만이 사망했다. 단 한사람만을 표적으로 노렸다는 심증이 굳어지는 가운데 희생자가 30세이고 WTO 회의에서 강연예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대체 수학자를 노린 암살이 발생한 동기가 무엇인지에 관해 갑론을박이 난무한다.

 

 

정치적 음모도, 애정문제도 아닌 불확실한 추측을 뒤로 한 채, 인터폴에 의해 수사를 맡게 된 "푸앵카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펜스터"가 연구했던 프랙털 이론을 근간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며 단서를 차근차근 수집하지만 가닥이 잡히지 않는 수학문제나 마찬가지 형국이다.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는데 조교, 약혼자 같은 케이스는 기본이며 동료 수학자 등도 만나면서 진척 없는 진행상황에 힘들어 한다. 이와 동시에 "바노비치""푸앵카레"의 가족들을 노린 청부살인에 복수까지 해야만 하는 이 남자는 세상의 중심에서 혼돈에 빠져 울 것 같은 최대난관에 빠진다.

 

 

중간 중간 프랙털 이론을 언급했는데 한 부분을 확대할 때 그 확대된 부분이 확대전의 성질이나 모양을 유지하는 그림이나 도형을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첨언하면 나뭇가지들이 일정한 비율이 되는 지점에서 두 가지로 갈라진다는 규칙 하에서는 가지의 어느 부분을 선택해 확대해도 전체 나무 모양과 같은 모양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성질을 자기 유사성이라고 한다. 자기 유사성을 가지는 기하학 구조를 뜻하는 프랙털 이론은 현대 수학부분에서 중요하며, 이 이론은 수많은 다른 학문 분야에도 응용되고 있는 아주 유용한 이론이라고 한다. 이 작품 속에서는 이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관련 사진들을 예시로 들며 비교하는 방식을 자주 쓰고 있다. “프랙털 이론에 대한 단면적인 이해가 물론 쉽지가 않거니와 수학자들이 숫자와 상징만으로 방정식을 만들어 인간행동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모형화 할 수 있다는 걸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개념들이 펜스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동기를 밝혀내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키포인트가 되리란 걸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관용을 모르는 아집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여 폭력을 선택하는 종교적 배격이 이제껏 관습화되었던 이슬람 원리주의를 뒤 집은 구도마저 상당한 오해를 무색하게 한다. 이것은 신종플루처럼 전염되는 병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면 수학은 서로 다른 것에 같은 이름을 부여하는 예술이라고 했던가? 일정한 패턴을 찾아 예측하는 것, 지식을 바라보는 순수한 사랑을 넘어서 재능은 경제적 탐욕을 충족시킬만한 방정식을 구현하였기에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목숨을 담보로 한 필사의 회피, 마침내 실체가 드러나며 반전으로 끝맺는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의 집대성을 통해 머리 쓰는 지적 미스터리, 이해하여 받아들일 것인가? 어렵다며 고갤 절레절레 저을 것인가? 순전히 독자의 개인적인 지적능력이 크게 좌우하게 될 것 같아서 상당히 격렬한 수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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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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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가와이 간지의 데뷔작이다. 읽은 지는 한참이 지났는데 이제야 감상을 남긴다는 건 기대에 못 미친 것에 대한 불만이 남았다는 반증이다. 서문을 여는 일기형식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과 동일한 패턴이다. 하지만 오마주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단순한 차용에 불과하다. 무엇이 문제였나?

 

 

도쿄 시내에서 여섯 번에 걸쳐 일어난 연속살인사건. 첫 번째 희생자는 머리가 없고 차례대로 발견된 총 여섯 구의 시체들은 머리 외에 팔, 다리 등 각각의 신체 부위가 사라진 상태로 발견된다. 단서라고는 머리카락 말고는 없으니 범인은 처음부터 치밀하고 완벽한 살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범인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나 분노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신체의 특정부위를 잘라내 사라졌을 뿐이었으니 이래서야 과연 범인의 살인동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될 리가 없다.

 

 

이 때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구원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일을 맡게 된 일원이 있었으니 바로 가부라기, 히메노, 마사키, 사와다로 구성된 수사팀이다. 사건을 전담하게 된 수사팀의 리더를 가부라기가 맡게 되는데 한 번도 남들을 통솔 지휘해 본 경험이 없는 그가 팀의 리더가 되어 스스로 긴장을 많이 하지만 허술해 보이는 팀원들의 팀웍은 생각보다 척척 잘 맞아 떨어졌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 낸 이들은 결국 실마리를 찾아낸다. 의미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가부라기 형사에게 보낸 의문의 이메일 한 통에서 시작한다. 발신자는 데드맨이라고 했다. 이 제보가 결정적 단서가 되어 40년 전 재판 기록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분명 죽은 여섯 사람들은 관계적 측면에서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였지만 누군가에 의해 한 맺힌 삶을 끝내야했던 원한을 산 접점이 발단이었음이 드러나는데 그 추리과정은 복잡한 룰이 아니라 가공된 사연이 만들어낸 프로세스의 답사이었을 뿐이다. 추측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대로 길을 따라가면 되니까 두뇌게임을 요할 일은 없어지는 것이다. 일단 술래의 그림자가 발견되면 이제 게임은 그것으로 끝이다. 무의미한 복수다. 복수해야 할 대상자가 없으니 애꿎은 희생양을 사냥한다는 그 의중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죄 라고.

 

 

추리가 아닌 스릴러가 되는 후반부는 초반의 아조트 살인이 아무런 의미가 없이 쓰잘 데 없는 사기적 농간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지경이다. 기껏 기대와 호기심을 최대한 부풀려 놓았으면 오리지날의 트릭에 맞서진 못하더라도 적당히 라도 잔재주를 부려 최소한의 재미라도 충족시켰어야 했다. 단지 눈 가리고 아웅 이라니... 게다가 범인의 발악은 흡사 구로다케 요의 <그리고 숙청의 문을 열고>를 연상시키지나 않나, 도무지 창의성과 기지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실망의 연속일 뿐이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미하리라. 근래 보기 드문 속도감 있는 가독성이 일순 무색할 정도로 비참하고 남루하다. 아이디어를 자신만의 것으로 재창조하지 못한 작가적 역량의 한계는 왜 미스터리를 읽는가에 대한 성의 없는 얼버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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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웰즈의 죄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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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결국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다.”

 

줄리언 웰즈의 죄는 네 번째로 만나게 된 토머스 H. 쿡의 작품이다. 첫 만남이었던 심문은 전형적인 미스터리물이었고, 현재의 그가 가진 정체성을 확인시켜준 달까, 각인되어 있는 쿡 스타일로 안내했던 것은 붉은 낙엽이었고 다시 채텀 스쿨 어페어로 정서의 깊이를 더해갔다. 점점 더 진화하는 것 같고, 더 어려워지는 것 같은 쿡의 작품세계. “줄리언 웰즈의 죄는 이제껏 읽은 그의 작품 중 대중성 측면에서 가장 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단순히 그 점만으로 가치를 폄하할 수 없는 고유의 완성도가 있다.

 

 

해결되지 않는 범죄보다 잊히지 않고 마음을 괴롭히는 이야기는 없다고 썼지만

의문이 풀리며 드러난 진실도 잊히지 않고 마음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발견한 진실도 그랬다.“ (P.14)

 

 

줄리언 웰즈의 작가적 재능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나 한창 작가로서의 전성기를 누려야 할 50대에 돌연 호수 한가운데에서 팔목을 긋고 자살로 생을 고한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절친 필립은 줄리언의 책을 따라 과거로의 여정을 따라 올라가게 된다. 하나 뿐인 진정한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던 필립은 황금 같은 청춘기와 작가라는 제2의 인생서막을 제대로 누리지도 않은 채 자살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헛된 기다림과 찰나의 고독을 감히 짐작조차 못했을 그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과거행적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줄리언이 죽음 직전 보고 있었던 남미 아르헨티나 지도로 시작하여 반인륜적 역사를 다룬 친구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의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불행한 실종사건에서 단서를 잡는다. 책의 헌정사는 이랬다. “내가 지은 죄의 유일한 목격자인 필립에게 이 책을 밝힙니다.”라고. 그랬다. 아직 민주화의 봄이 도래하지 않았던 남미 대륙은 정국이 혼란했다. 그 중에서도 아르헨티나는 소위 더러운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추악한 만행의 소용돌이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더러운 전쟁(Guerra Sucia)1976년에서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군사정권이 국가에 의한 테러, 조직적인 고문, 강제 실종, 정보 조작을 자행한 시기를 일컫는다. 학생·기자·페론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게릴라 및 동조자가 주 피해자이다. 1만명 정도의 몬토네로스와 인민혁명군의 게릴라가 실종됐고, 최소 9000명에서 최대 3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러운 전쟁은 콘도르 작전의 일부로 시작됐다. 이들 대부분은 억울하게 죄목을 뒤집어쓰고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러운 전쟁말기인 1980년대 당시 줄리언과 필립은 방관자적 위치에 서 있었다. 30년전 아르헨티나의 젊은 여성 마리솔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고 그것의 진실이 수면 위로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과거와 현재는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며, 기억의 모호함에 가려진 선악의 근간마저 뒤흔들게 된다. 위태롭게 흔들린 양심은 줄리언에게 죄를 물을 만큼 무겁게 짓눌러왔으니 감당하지 못한 그를 끝내 자살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이유를 속히 알아내고 싶지만 중반까지 는 그날의 기억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히 마리솔의 실종에 어떤 책임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더러운 전쟁에서 일어난 실종사건 중 마리솔의 경우는 왜 그랬던가? 에 대한 해답은 후반부에 비로소 제시되기에 거기까지 도달하는 여정은 모호한 안개 정국이다. 그래서 후반부에서는 막힌 속을 뻥 뚫어주려고 작정한 것 마냥 상세히 설명해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마저 든다.

 

 

아이들은 장남삼아 개구리에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는 진짜 죽는다는 것. 젊은 용기를 의도하지 않는 결과로 호도한 대가는 컸었다. 설마 그러할까? 싶었는데 순진한 청춘은 이를 고이 곧대로 새겨듣고 실천한다. 세상을 너무나도 낭만적으로 생각한 것인지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라는 조언의 이면에는 부디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랐던 기성세대의 무기력한 심술이 있는 줄 몰랐던 무지가 2차 책임이었다. 사내아이들의 장난 같은 망토와 단검이론에 넘어가 어리석은 수렁에 깊이 빠져들어간 후였으니, 선의의 피해자는 반인륜적 역사에 희생당하고 만 것이었다.

 

 

관건은 적에게 던져줄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야 한다는 거지.

사투르누스에게 잡아먹힌 자식들처럼 영문도 모른 채 잡아먹힐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다.“ 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래서 그런 술책을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라고 부르지.“ (p.318)

 

 

차라리 이 책의 제목으로 그대로 썼어도 좋았을 이 말, ‘사투르누스의 기습’. 사투르누스는 그리스에서는 크로노스라고 일컫는 고대 로마의 농경신으로 아들 중 한 명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을 차례로 잡아먹었다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시간의 의미와 함께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행위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는 인간성의 타락을 상징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그다. 때론 사람들은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는 약점이나 치부 같은 게 있기 마련이다. 그 내면에는 죄의식도 함께 들어있어 꽁꽁 숨겨 왔던 그것들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빗장을 몰래 열고 세상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산다.

 

 

믿음에 일순간에 배신당해 파멸당한 사투르누스의 자식들처럼 줄리언의 삶도 산산조각 났듯이 대부분의 사람들도 아차 하는 순간, 송두리째 달라진 변화를 겪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순간이 사투르누스의 기습이 된다. 인생의 불확실성을 이처럼 섬뜩하게 경고하는 표현이 또 있을까? 서정적이며 시적인 문장과 잔인한 원죄 의식은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해서 완전한 이해까지는 못했어도 여타 작가들과 그 심오한 경지가 다르다는 건 인정하게 된다. 이번에도 감탄했다.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같이 먹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짬짜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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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우치다 야스오 지음, 김현희 옮김 / 검은숲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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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는 민족답게 무속신앙의 본산 소재지나 각종 전설, 기담 등의 의미가 깃든 곳을 방문하여 참배하는 순례를 트래블 미스터리라는 형식으로 그려내는 방식도 거의 일본인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일 것 같다. 113, 누적 판매부수 1억 부, 120회 드라마화! 일본 추리소설의 살아 있는 거장 우치다 야스오의 아사미 미쓰히코시리즈 중 작가 스스로도 가장 정점에 이른 작품으로 일컫는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은 나라 현 요시노 군 내의 작은 촌락 덴카와의 신사와 노가쿠에 얽힌 이야기이다.

 

 

노가쿠는 예의 익살스런 흉내를 기본 소스로 한 가무극을 말하는데 가마쿠라시대 중엽에는 이미 노의 형태를 갖춘 가무극이 공연되고 있었다고 한다. 지붕이 있는 전용무대와 노멘이라는 가면을 사용하며, 각본 ·음악 ·연기 등도 독특한 양식을 사용하였다는 정도로 노가쿠가 소개되고 있는데 드물게나마 TV에서 노가쿠공연을 접할 때가 있었다. 단조음에다 알 수 없는 소리의 연발, 기이한 춤사위, 험상궂은 가면 등이 노가쿠에 대한 단면적 인상일 정도 인데 스모와 더불어 일본인이 아님 이해하기에 난해한 문화예술의 한 형태인 것 같다.

 

 

줄거리는 바로 이 노가쿠무대에서 공연을 시전 하던 배우 미즈카미 가즈타카가 무대 위에서 급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노가쿠의 대가이자 그의 조부인 가즈노리가 실종된다. 또한, 도쿄 신주쿠의 고층 빌딩 앞에서 한 남자가 군중들 속에서 원인불명으로 급사하는 일이 벌어진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사건들은 신주쿠에서 죽은 남자의 손에서 노가쿠의 주요 인사들만이 가진다는 덴카와신사의 부적 '이스즈'가 발견되면서 3건의 죽음이 어떤 고리로 연계되어 있음을 직감하는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아사미 미쓰히코이다. UFO처럼 생긴 이 방울을 노가쿠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이 소지하고 있었다는 게 의혹의 발단인데 노가쿠의 유래를 취재하던 아사미가 사건의 배후를 본격적으로 추적한다.

 

 

서두에서 아사미노가쿠의 한 대사인 사라졌도다.”는 결국 가문의 전통과 명예를 지키고 계승하고자 하는 의도이거나 가문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알력이거나, 가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떡고물을 노린 탐욕이던지... 추리의 향방은 이 중에서 거의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정작 원인과 관점은 다른 곳을 지향하고 있었다. 운명이 필연이 될 수밖에 없는 비극적 동기는 진지하면서 흥미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어서 좋았을 뿐만 아니라, 끝내 꽃망울을 피우지 못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시즈카 고젠사이의 안타까운 결말은 심금을 울리면서 인연과 순리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반면, 꽃미남에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드는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 아사미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과 별개로 서른 셋 나이에 집안에서 주선하려는 혼담이 오가는 전개를 더 적극 추진해나가지 않았음은 살짝 아쉽다. 추리는 추리고, 본격적인 로맨스가 진행되면 상당히 훈훈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을 터인데 사건 때문에 될 듯 말 듯 하다 흐지부지 되는 걸 봐선 아직 더 스타일리시한 독신남으로 염문설만 쫙쫙 뿌리고 다니라는 의미인 듯하다. 부러운 녀석. 게다가 아사미의 모친은 아들 녀석이 마냥 철부지 없는 캐릭으로만 인식되나 보다. 혼담처로 얘기되고 있는 집안의 아가씨와 견주어 지나칠 정도로 아들을 지나칠 정도로 헐값 취급해서 마뜩 잖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이쁘다는데 어미라는 사람이 너무 하지 않나?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치카와 곤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화했고 하야미 모코미치으로 주연으로 작년 TBS 골든타임 드라마로 방영되었다지. <절대 그이>에서의 꽃미남 이미지라면 하야미아사미역을 맡았다는 건 궁극의 캐스팅일 듯싶은데. 일단 비주얼로는 싱크로율이 만장일치에 육박하니까. “아사미의 이미지는 상상 속에서 그렇게 그려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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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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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과’... 라는 이름에 일단 불건전한 상상부터 먼저 하게 되지만(접대를 받아본 경험에 따르면) 실상은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진심을 다해 대접한다는 진정성을 듬뿍 담고 있다. 작명만큼은 센스만점이지만 일본 고치 현의 관광 발전을 위해 파격적이면서 창의적인 기획을 내놓고자 의욕적으로 출범한 조직이라서 유연함과는 거리가 먼, 뼛속부터 관료체제에 길들여져 온 터라 틀을 깨고 미지의 성과를 내려고 하니 처음부터 시행착오를 거듭하리란 건 예상 범위 내다.

 

 

첫 스타트로 접대과에서 기장 젊은 직원인 스물다섯 살 총각 가케미즈 후미타카는 타 지자체의 사례를 들어 관광 홍보대사의 도입을 제안한다. 현 출신의 유명 인사를 홍보대사로 임명해 현의 관광 상품을 홍보하게 하자는 취지인데 구체적인 방안으로 홍보대사명함의 쿠폰을 배포하도록 하여 현의 관광명소를 제한된 횟수와 기한 등을 정해 무료 이용케 하자는 거다. 그리하면 자연히 고치 현을 찾는 외지인들이 증가하지 않을까라는 순진한 발상이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실효성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한계에 부딪힌다.

 

 

이에 가케미즈는 돌파구로 홍보대사인 소설가 요시카도의 컨설팅을 적극 청하고. 이 소설가는 이제부터 관광접대과행정에 본격 개입을 하는데, 감 놔라, 배 놔라 식의 부당한 참견이 아니라 고정관념을 타파한 신성한 발상이구나. 그러기 위해 고치 현의 가장 큰 밑천은 무엇일지 아는 것이 우선순위겠다. 그건 단순히 천혜의 자연이라는 몸뚱이 뿐이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경제적 성장 도모를 위한 개발을 여건의 제약으로 실행하지 못한 탓에 결과적으로 친환경적인 자연과 그 속에서 레저스포츠를 즐길 최적의 입지환경이 강력한 차별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잠재적 강점을 기회로 삼고자 제시된 개선방안은 크게 2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 경직된 공무원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민간사원 채용. 그것도 좀 더 감성적이고 즐길 거리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용의가 있는 젊은 여성으로다. 두 번째, 20여년 시립동물원 이전과 현립동물원 신설이 논의되었던 당시, 신생동물원에 판다를 유치하자고 역설했다가 묵살당한 채, 사직하고 고치 현청을 쓸쓸히히 떠났던 기요토라는 남자를 찾으라는 것.

 

 

첫 번째 과제인 민간여성 사원으로 채용된 스물두 살 아가씨, “다키가케미즈의 의기투합은 마치 봄날에 꽃들이 흐드러지듯 흐뭇하고 기분 좋은 시너지 효과가 잘 전달되어 읽는 내내 즐겁게 한다. 답답할 정도로 우직하고 순진한 가케미즈가 놓치기 쉬운 꼼꼼하고 야무진 일처리는 다키의 장점으로 두 사람은 반대의 스타일인 것 같은데도 서로가 동료로서(아님 썸남썸녀로도) 참 잘 어울린다. 은은한 풋풋한 청춘 로맨스로도 적격이기에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비쳐질 수도 있는 스토리의 흐름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이다. 일이 전부 능사는 아니란 말이지. 순간순간 둘은 의견 충돌도 있지만 결국은 화해의 손길로 관광입현을 실천해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고치 현이 실제 고향이자 홍보대사로 활동방안을 모색하던 작가 아리카와 히로가 고향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과 채찍질이 동시에 투영된 산물이겠다.

 

 

어느 곳이나 조직은 존재한다.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소설처럼 내내 비판과 구박이 이어지면서도 모르는 점은 배우고 잘못된 관행은 머릴 숙여서라도 개선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관광접대과직원들의 땀과 열정은 현실의 관료시스템이 보고 느껴야만 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경직성, 거기에 일침을 가하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강력한 설득력을 보이는 요시카도와 기성세대도 타파 못한 벽에 도전하려는 실험정신과 깨어있는 사고는 복지부동이 만연한 공직사회에 한바탕 훈풍을 불어 넣을만한 신선함이 돋보인다. 공공부문이 민간에서 수혈해야할 젊은 피란 이런 것이다.

 

 

그렇게나 인간미와 더불어 극렬한 갈등과 대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 같은 편안한 재미가 인상적이어서 좋은 이 소설은 아니나 다를까 2013년 영화로 제작되어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고 한다. “니시키도 료가케미즈역을 맡았는데 항상 우중충한 그늘이 좀 보였던 그가 영화 포스터에서는 누구보다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긍정적인 기운을 발산하고 있어 의외다 싶기도 하다. 직접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원작의 따뜻한 감성을 충실히 재현해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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