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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웰즈의 죄 ㅣ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인생이란 결국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다.”
“줄리언 웰즈의 죄”는 네 번째로 만나게 된 토머스 H. 쿡의 작품이다. 첫 만남이었던 “심문”은 전형적인 미스터리물이었고, 현재의 그가 가진 정체성을 확인시켜준 달까, 각인되어 있는 쿡 스타일로 안내했던 것은 “붉은 낙엽”이었고 다시 “채텀 스쿨 어페어”로 정서의 깊이를 더해갔다. 점점 더 진화하는 것 같고, 더 어려워지는 것 같은 쿡의 작품세계. “줄리언 웰즈의 죄”는 이제껏 읽은 그의 작품 중 대중성 측면에서 가장 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단순히 그 점만으로 가치를 폄하할 수 없는 고유의 완성도가 있다.
해결되지 않는 범죄보다 잊히지 않고 마음을 괴롭히는 이야기는 없다고 썼지만
의문이 풀리며 드러난 진실도 잊히지 않고 마음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발견한 진실도 그랬다.“ (P.14)
줄리언 웰즈의 작가적 재능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나 한창 작가로서의 전성기를 누려야 할 50대에 돌연 호수 한가운데에서 팔목을 긋고 자살로 생을 고한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절친 필립은 줄리언의 책을 따라 과거로의 여정을 따라 올라가게 된다. 하나 뿐인 진정한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던 필립은 황금 같은 청춘기와 작가라는 제2의 인생서막을 제대로 누리지도 않은 채 자살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헛된 기다림과 찰나의 고독을 감히 짐작조차 못했을 그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과거행적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줄리언이 죽음 직전 보고 있었던 남미 아르헨티나 지도로 시작하여 반인륜적 역사를 다룬 친구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의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불행한 실종사건에서 단서를 잡는다. 책의 헌정사는 이랬다. “내가 지은 죄의 유일한 목격자인 필립에게 이 책을 밝힙니다.”라고. 그랬다. 아직 민주화의 봄이 도래하지 않았던 남미 대륙은 정국이 혼란했다. 그 중에서도 아르헨티나는 소위 “더러운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추악한 만행의 소용돌이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은 1976년에서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군사정권이 국가에 의한 테러, 조직적인 고문, 강제 실종, 정보 조작을 자행한 시기를 일컫는다. 학생·기자·페론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게릴라 및 동조자가 주 피해자이다. 약 1만명 정도의 몬토네로스와 인민혁명군의 게릴라가 실종됐고, 최소 9000명에서 최대 3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러운 전쟁은 콘도르 작전의 일부로 시작됐다. 이들 대부분은 억울하게 죄목을 뒤집어쓰고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러운 전쟁’ 말기인 1980년대 당시 줄리언과 필립은 방관자적 위치에 서 있었다. 30년전 아르헨티나의 젊은 여성 마리솔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고 그것의 진실이 수면 위로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과거와 현재는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며, 기억의 모호함에 가려진 선악의 근간마저 뒤흔들게 된다. 위태롭게 흔들린 양심은 줄리언에게 죄를 물을 만큼 무겁게 짓눌러왔으니 감당하지 못한 그를 끝내 자살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이유를 속히 알아내고 싶지만 중반까지 는 그날의 기억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히 마리솔의 실종에 어떤 책임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더러운 전쟁”에서 일어난 실종사건 중 마리솔의 경우는 왜 그랬던가? 에 대한 해답은 후반부에 비로소 제시되기에 거기까지 도달하는 여정은 모호한 안개 정국이다. 그래서 후반부에서는 막힌 속을 뻥 뚫어주려고 작정한 것 마냥 상세히 설명해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마저 든다.
아이들은 장남삼아 개구리에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는 진짜 죽는다는 것. 젊은 용기를 의도하지 않는 결과로 호도한 대가는 컸었다. 설마 그러할까? 싶었는데 순진한 청춘은 이를 고이 곧대로 새겨듣고 실천한다. 세상을 너무나도 낭만적으로 생각한 것인지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라는 조언의 이면에는 부디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랐던 기성세대의 무기력한 심술이 있는 줄 몰랐던 무지가 2차 책임이었다. 사내아이들의 장난 같은 ‘망토와 단검’ 이론에 넘어가 어리석은 수렁에 깊이 빠져들어간 후였으니, 선의의 피해자는 반인륜적 역사에 희생당하고 만 것이었다.
“관건은 적에게 던져줄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야 한다는 거지.
사투르누스에게 잡아먹힌 자식들처럼 영문도 모른 채 잡아먹힐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다.“ 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래서 그런 술책을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라고 부르지.“ (p.318)
차라리 이 책의 제목으로 그대로 썼어도 좋았을 이 말, ‘사투르누스의 기습’. 사투르누스는 그리스에서는 크로노스라고 일컫는 고대 로마의 농경신으로 아들 중 한 명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을 차례로 잡아먹었다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시간의 의미와 함께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행위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는 인간성의 타락을 상징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그다. 때론 사람들은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는 약점이나 치부 같은 게 있기 마련이다. 그 내면에는 죄의식도 함께 들어있어 꽁꽁 숨겨 왔던 그것들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빗장을 몰래 열고 세상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산다.
믿음에 일순간에 배신당해 파멸당한 사투르누스의 자식들처럼 줄리언의 삶도 산산조각 났듯이 대부분의 사람들도 아차 하는 순간, 송두리째 달라진 변화를 겪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순간이 ‘사투르누스의 기습’이 된다. 인생의 불확실성을 이처럼 섬뜩하게 경고하는 표현이 또 있을까? 서정적이며 시적인 문장과 잔인한 원죄 의식은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해서 완전한 이해까지는 못했어도 여타 작가들과 그 심오한 경지가 다르다는 건 인정하게 된다. 이번에도 감탄했다.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같이 먹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짬짜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