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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크라이 카오스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레너드 로젠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올 크라이 카오스>는 이론과 캐릭터로 양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는 작품쯤 되겠다. 개인적으로 수학에 강한 알레르기가 있는 점을 감안했을 때 프랙탈 이론, 카오스 이론 등을 바탕으로 한 수학적 이론과 경제적 접근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 “앙리 푸앵카레”를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의 증손자로 설정해 놓고 육체적인 강인함 못지않게 지적탐구를 강조하는 미스터리로 창조해냈다.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는 실제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수학과 수리물리학, 천체역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했던 인물로 특히 카오스 이론의 정립에 지대한 역할을 한 유명인사로 알려져 있다. 대신 이 작품의 주인공 “푸앵카레”는 할아버지의 경력과는 상관없이 인터폴 형사로 30년을 누비고 다닌 노회한 베테랑이다. 성격이 진중하고 학구파 스타일인 그는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불의와는 결코 타협을 보지 않는 억척 형사로 명성을 날렸는데 정년을 앞두고 가족과의 단란한 노후를 꿈꾸어 왔다. 다만 몰아내고 또 몰아내도 악의 본질적 뿌리를 도려내지 못함을 아쉬워 할 뿐이었다.
“푸앵카레”의 마지막 전리품이 될지도 모를 범죄자는 기독교 원리주의에 입각하여 이슬람교 성인남자들과 소녀들을 대량 학살한 짓을 지시하고 동참한 죄목으로 인터폴의 국제 지명수배를 받아왔던 구, 유고 연방 출신의 “스티포 바노비치”였다. 장기간에 걸쳐 끈질긴 추적 끝에 마침내 체포하여 법의 심판을 넘길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이것으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노비치”는 자신을 구금한 “푸앵카레”에 앙심을 품고 그의 가족들에 대하여 살해 위협을 한다. 아니 실제로 안타까운 희생양이 발생한다. “바노비치”의 청부살인 사주를 피해 가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테러로 보호시스템에 균열이 일어나 손녀딸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는 “바노비치”의 위협에도 법과 이성에 호소한 대응으로 안주했던 이 노 형사는 비로소 복수심에 살의를 품는다.
하지만 “푸앵카레”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WTO 각료 회의 보안 총괄을 담당하게 되었던 그가 현지에 도착하였을 때 폭발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폭발원인으로 로켓 추진에 주로 사용되는 원료인 “과염소산 암모늄'으로 밝혀지고 이 폭발에 의해 호텔 꼭대기 층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대형 참사였던 것이다. 다른 투숙객들은 무사했는데 폭발이 발생한 호텔방의 투숙객 "제임스 펜스터"라는 하버드대 교수이자 수학자만이 사망했다. 단 한사람만을 표적으로 노렸다는 심증이 굳어지는 가운데 희생자가 30세이고 WTO 회의에서 강연예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대체 수학자를 노린 암살이 발생한 동기가 무엇인지에 관해 갑론을박이 난무한다.
정치적 음모도, 애정문제도 아닌 불확실한 추측을 뒤로 한 채, 인터폴에 의해 수사를 맡게 된 "푸앵카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펜스터"가 연구했던 “프랙털 이론”을 근간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며 단서를 차근차근 수집하지만 가닥이 잡히지 않는 수학문제나 마찬가지 형국이다.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는데 조교, 약혼자 같은 케이스는 기본이며 동료 수학자 등도 만나면서 진척 없는 진행상황에 힘들어 한다. 이와 동시에 "바노비치"가 "푸앵카레"의 가족들을 노린 청부살인에 복수까지 해야만 하는 이 남자는 세상의 중심에서 혼돈에 빠져 울 것 같은 최대난관에 빠진다.
중간 중간 “프랙털 이론”을 언급했는데 한 부분을 확대할 때 그 확대된 부분이 확대전의 성질이나 모양을 유지하는 그림이나 도형을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첨언하면 나뭇가지들이 일정한 비율이 되는 지점에서 두 가지로 갈라진다는 규칙 하에서는 가지의 어느 부분을 선택해 확대해도 전체 나무 모양과 같은 모양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성질을 ‘자기 유사성’이라고 한다. 자기 유사성을 가지는 기하학 구조를 뜻하는 “프랙털 이론”은 현대 수학부분에서 중요하며, 이 이론은 수많은 다른 학문 분야에도 응용되고 있는 아주 유용한 이론이라고 한다. 이 작품 속에서는 이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관련 사진들을 예시로 들며 비교하는 방식을 자주 쓰고 있다. “프랙털 이론”에 대한 단면적인 이해가 물론 쉽지가 않거니와 수학자들이 숫자와 상징만으로 방정식을 만들어 인간행동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모형화 할 수 있다는 걸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개념들이 “펜스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동기를 밝혀내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키포인트가 되리란 걸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관용을 모르는 아집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여 폭력을 선택하는 종교적 배격이 이제껏 관습화되었던 이슬람 원리주의를 뒤 집은 구도마저 상당한 오해를 무색하게 한다. 이것은 신종플루처럼 전염되는 병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면 수학은 서로 다른 것에 같은 이름을 부여하는 예술이라고 했던가? 일정한 패턴을 찾아 예측하는 것, 지식을 바라보는 순수한 사랑을 넘어서 재능은 경제적 탐욕을 충족시킬만한 방정식을 구현하였기에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목숨을 담보로 한 필사의 회피, 마침내 실체가 드러나며 반전으로 끝맺는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의 집대성을 통해 머리 쓰는 지적 미스터리, 이해하여 받아들일 것인가? 어렵다며 고갤 절레절레 저을 것인가? 순전히 독자의 개인적인 지적능력이 크게 좌우하게 될 것 같아서 상당히 격렬한 수준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