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선서 법의학 교실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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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으로 의학소설은 매우 관심이 없다. 복잡한 의학용어에 휩쓸리다 보면 난해하게 느끼는 터라 가급적이면 기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이라면 차원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경이적인 속도로 작품을 집필해내는 솜씨가 히가시노 게이고랑 쌍벽을 이루는 것 같고(손가락에 모터를 단 게 아닌지 ㅋㅋㅋ) 본인이 쓰고 싶은 걸 쓰는 게 아니라 모두가 읽어보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니까 나조차도 그의 작품들에 하나하나 길들여지나 보다.

 

 

우라와 대학 법의학 교실에 연수의로 들어간 첫날에 마코토캐시로부터 당신, 시신은 좋아합니까?”란 말을 처음 듣는 순간에 꼭 나보고 하는 소리처럼 들린 것 같은 이유가 그래서였을지도. 그 질문이 꽤나 인상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캐시란 이 미국여자부터가 수상쩍다. 시신만 바라보며 연구하는 법의학이란 학문자체가 일반인에게도 생소한 것은 당연한데 살아 있는 환자를 살리는 일이 급선무라 생각되는 의료계 현장에서 시신은 이미 손쓸 겨를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인식 자체가 일반적일 테니까.

 

 

곧 이어 법의학의 최고권위자인 마쓰자키 교수와 사건현장에서 늘 사법해부를 주장하는 고테가와 순사부장을 만나게 되는데 이제부터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섯 건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히는 여정에 동참한다. 단순한 사고사가 아니라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사법해부를 통해 듣게 되는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몰입감 쩐다.

 

 

우리나라는 어쩌면 더 심할 지도 모를 부검의의 열악한 현실. 배정된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처리할 시간은 늘 부족해서 시신 대비 부검 건수가 현저히 적다 보니 정말 진실구명이 요구되는 억울한 죽음들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그냥 묻히는 시신들이 얼마나 많을까. 부검의와 경찰 관할권까지 묵살해가며 필요하다면 메스를 과감히 드는 마쓰자키 교수는 인간적으로는 까칠한데다 독설의 제왕이지만 귀신같은 실력과 의혹 앞에 타협 없는 순수한 양심 등이 늘 현실과 갈등을 빚으면서 놀라운 재미를 안겨주었다.

 

 

이미 고인이 된 시신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유족 측의 당연한 입장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설득을 통해 해부에 대한 의지를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법의학 팀의 분투가 늘 손에 땀을 쥐게 하니까 잠시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캐릭터 모두 맘에 들지만 캐시 팬들턴 조교수는 정말 엉뚱한 매력이 철철. 그 흔한 설정으로 미인이 아니어서 더 좋았고 미국인으로서 일본문화와 정서에 가끔씩 녹아들지 못해 일어나는 촌극들과 대사 모두가 사랑스럽고 익살스럽다는 ㅋㅋㅋㅋㅋㅋ

 

 

아직 읽어야 할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들은 좀 된다. 책태기가 생긴 요즘에 그나마 불씨를 남겨준 그에게 감사하여 부디 쓸데없이 현혹하며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책들은 없었으면 한다. 그에게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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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하라다 마하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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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별의별 대행업이 다 있다. 그런데 당신의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여행 대리점은 있어도 여행대리업은 금시초문이다. 여행은 본인이 직접 다녀와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지만 의뢰를 받아 대신 떠나는 인류 최초의 여행대리인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면 어떡할 텐가? 말도 안돼!!!

 

 

주인공 오카에리의 본명은 오카바야시 에리카. 훗카이드 최북단에 있는 레분 섬 출신인 그녀는 우연히 도쿄에 교류 학생으로 왔다가 지금의 사장인 연예기획사 요로즈야 엔터테인먼트 요로즈 텟베키에게 스카우트 되어 짧게나마 아이돌 시절을 거쳤다. 전직복서 출신에 네모난 대머리지만 은근 츤데레 라고 할 수 있는 텟베키 사장, 지금은 환갑을 눈앞에 둔 나이지만 한때 육체파 아이돌이었던 논노씨, 오카에리까지 소속임직원과 연예인이 단 세 명뿐인 영세 기획사에서 그들은 열심히 연예활동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맛이 간 퇴역 아이돌 출신으로서 유일한 일거리였던 TV 프로그램 토막 여행에서 진행자인 오카에리가 광고주의 이름을 잘못 발언하는 바람에 노발대발한 광고주의 노여움을 사 그만 방송이 폐지되고 만다. 이제 뭘 먹고 사나... 요로즈야 3인방의 고민과 한숨은 깊어지고 여기저기 방송사를 기웃거리지만 번번이 퇴짜. 어느 순간에는 노출화보라도 찍을까 살짝 언질받기도 하지만 삼십대 녀의 몸뚱이가 비싸게 먹힐 리가 만무하지.

 

 

그러던 어느 날, 오카에리에게 온몸의 근육이 차차 굳어져가는 희귀난치병으로 외출하지 못하고 병실에 갇히게 된 마요라는 아가씨로부터 자신을 대신해서 아버지와의 추억이 남은 어느 곳으로 여행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생전 처음으로 1인 방송을 하게 된 오카에리를 걱정해 촬영 노하우를 친히 알려주는 토막 여행스태프들의 재능 나눔이 얼마나 뭉클하던지. 연예계는 물 들어올 때만 노 젓다가 귀신 같이 빠져나가는 얌생이라고 나 스스로 경멸해 왔는데따스한 인간미가 이 정도로 촬촬 넘쳐흐를 줄야.

 

 

이후 본격적인 여행대리인으로서 일본 곳곳을 투어하게 된 오카에리가 겪게 되는 사연들은 절절하고 아름다웠다. 그동안 꽁꽁 숨겨 두었던 대머리 사장님의 안타까운 가족사, 온천여행에서 만난 꽃미남 사장님과의 찰나간 심쿵, 자신을 방송에서 끌어내리게 만들었던 무시무무시한 광고주의 의뢰 등등 눈물 없인 또는 미소 없인 차마 읽어 나갈 수 없는 휴머니즘 가득한 에피소드들에 흠뻑 빠져 버렸다. 진정한 악당은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아서 더 힐링 되었던 이 소설. 봄날의 아지랑이 만발하는 유쾌 상쾌한 여행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카에리(잘 다녀왔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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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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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절대로 범상치 않은 이 소설 띠지의 오른쪽은 이미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빨간 줄이 그어져 있다. 읽을 자격이 있으니 난 자랑스러운 틀딱인셈인가? 역자후기까지 읽고 나서 이런 확신마저 들었다. 만약 이 소설이 역겹다면 당신은 틀딱을 넘어 마스터 오브 꼰대스터라고 마땅히 불려야 된다고. 난 강력히 이 소설을 지지하겠다. 현재의 상식으로 이해하려들지 말자. “우리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들면 소설 쪽 세계가 왜곡돼서 이상한 소설이 종종 완성된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럼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편 살인출산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가까운 미래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살인의 의미가 달라져 오히려 용인되는 시대가 도래 한다. 연애, 결혼, 섹스, 출산이 지금까지의 단계였다면 지금은 섹스란 오직 애정, 쾌락만을 위한 목적으로만 바뀐 데다 자궁에 피임기구를 삽입해서 원치 않는 임신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가히 나쁘지 않은 기술도입인 것 같지 않은가? 충동이든, 강간이든 인과관계를 일절 무시한 채, 임신의 공포에서 해방될 테니까.

 

 

이제 아기가 갖고 싶으면 인공출산을 하거나 센터에서 반려견 입양하듯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당연히 지금보다 출산율이 바닥을 치게 되니까 인구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바로 10명을 낳으면 1명을 죽여도 된다는 출산자시스템이다. 출산이 무슨 2달에 1번꼴로 하는 헌혈주기도 아니고 10명을 낳으려다 임산부가 먼저 죽거나 사산할 수도 있고 고령출산도 문제가 된다. 그때는 인공자궁을 달자. 살인이 합법화 된다는 점에서 소설 <저지먼트>의 동해복수법이 연상되기도 한다.

 

 

남자도 출산자가 될 수 있어. 인공자궁을 달고 제왕절개로 출산하는 50대 남자도 등장한다.

불법살인을 저지르면 감옥에 갇혀 남자도 여자도 주궁장창 출산해야 하는 산형이야말로 최고의 극형이 되었다. 사형은 없다. 계속 출산하느니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렇게 10명 낳는 게 힘든 일인데도 살의가 유지된다는 게 참 대단하지 않은가? 살면서 날마다 살의는 번뜩이지만 우린 실행에 옮기지 않은데 말이다. 살의가 미래로 생명을 잇는다면.

 

 

트리플2명이 아니라 3명이 동시에 하는 신종연애 방식이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여자 둘에 여자 하나. 어제까지 친구였다가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 둘은 바로 연인이 되는 것으로 세 명의 동시 키스. 세 명이 동시에 하는 섹스. 이런 섹스를 흔히 쓰리썸이라고 부르지만 소설 속의 트리플 섹스는 읽다가 오줌 지릴 뻔 했다. 어찌나 말초적인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다리에 근육 배기는 현상이라면 믿겠는가? 소설 속 엄마가 도끼눈 뜨고 화냥년에 색녀라고 딸한테 거품 무는 장면은 정말 가관이더라는.

 

 

당신들 섹스리스라며? 여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아?

 난 그를 늘 만족시키고, 서로 사랑해.”

그렇죠,. 애인이니까 물론 그렇겠죠. 우리는 가족이라 섹스는 하지 않아요.

 저어, 휴식 시간이 끝나서 긴 통화는 못 하겠는데.”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섹스를 해 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 사람은 당신한테는 안 서!”

그래요. 그래서 가족이에요.”

 

 

청결한 결혼에 나오는 대화 장면이다. 난 이 장면을 수차례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었지만 그래도 질리지 않고 박장대소한다. 야릇한 쾌감에 기분이 묘하다. 어떤 내용인진 설명이 불가하다. 일단 읽어보시라. 이쯤해서 작가는 완전 천잰데. 결국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 덮으려 하지 않고 상식을 뒤엎는 대안을 제시할 줄 안다는 게 이 소설의 강점이 되겠다. 그 대안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의 몫이지만 확실히 환기는 된다. 이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만 하고 말 것인가!!! 비상식적이라고 욕하지 말고 제대로 나서라고 이 비겁한 독자들아, 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래서 오랜만에 제대로 감각적인 소설을 만나 독서가 즐거웠다. 그리고 이 작가 언니는 크레이지 사야카로 불린다는데 여중생이 대학원생 과외교사를 수유란 행위로 지배한다는 소설도 썼다고 한다. 국내에 출간해주지 않으려나?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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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랑한 소년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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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들의 정신세계는 언제 들여다봐도 극단적으로 죄책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데다 그들만의 범죄성향을 분석하여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지가 이런 소설의 관건이 되는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오년 전과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 이번 소설은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 벌벌 떨게 만들었던 일련의 어둠을 격리했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낮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음을 등골 오싹하게 증명한다고 볼 수 있겠다.

 

 

프로파일러 슈나이더가 한 남자의 교도소 수감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범인을 검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슈나이더의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 교도소는 오직 기차나 경찰 보트로만 갈 수 있는 외딴 섬에 소재하고 있는데 온갖 사이코패스 범죄자들만 가둬 놓고 어떤 교도행정 실험을 하고 있는 곳이란다. 교도소장의 설명을 듣자니 과연 그런 식으로 교화가 가능할까란 의구심이 처음부터 들 수밖에 없다.

 

 

일급보안을 자랑한다지만 그래도 으스스한 이 곳에 한나라는 여성 심리치료사가 방문하는데 경력일천한 그녀가 전임자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이 곳에 올 수 있었을까? 우연한 기회였나? 한나가 맡은 재소자는 세 사람. 하나 같이 상종 못할 정신이상 범죄자들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피트 판 론이라는 남자를 주목하라. 피트는 오년 전 슈나이더가 잡아넣은 연쇄살인마였고 다른 재소자들과 남다른 사악함, 영리함으로 한나와의 상담에서 숨길 수 없는 마각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바깥세상에서는 슈나이더와 일면식 있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살해당하기 시작하는데... 물론 오년 후의 이야기이다. 잔인하게 희생당한 시체들에는 어떤 기호인지 수식인지 알 길 없는 의문의 흔적들이 남아있고 이것들의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밝혀내려고 슈나이더자비네는 골머리를 싸맨다. 그러고 보니 살인패턴이 누군가를 연상케 한다. 감옥에 있는 그 남자? 설마??

 

 

오년 전과 현재가 왜 번갈아 교차되는 까닭은 바로 살인마가 누군지에 대한 단서를 독자들에게 친절히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그 방식이 아니라면 이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꽤 자연스럽게 섞었기에 한동안 다른 원인을 나름대로 찾아보려 애써야 했다. 한나자비네피트를 번갈아 면담하는 장면에선 특히 그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그렇게 속아 넘길 수가 있을까란 의문도 잠시 들기는 했지만. 사전작업 만큼은 오호라.

 

 

단지 연쇄살인마의 폭주였다면 시시했을지는 몰라도 살인패턴의 고리에 얽힌 비밀을 넘어 슈나이더의 특정 개인사와 연관된 기승전결이야말로 이번 시리즈의 하이라이트였다. 헉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의 반전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슈나이더란 이 남자에게 닥친 감당 못할 불행은 자비네의 생사와도 직결되니 예상 못한 행동이었고 선택이다.


 

이 최후의 선택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향후 슈나이더의 정신세계를 죽을 때까지 지배할 것이다. 시리즈는 계속될 터인데 두고두고 회자될 결말 이후 슈나이더는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그는 후회하지 않을까? , 정말 가엾다. 이 남자를 우째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다람쥐 양은 어린 조카들한테 제발 그러지 말자. 애들 정신건장에 해롭다. 이모가 되가꼬 이 무신 해괴망측한 짓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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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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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정희가 있고, 감명 깊게 읽은 이석원 작가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도 정희가 나온다. 더불어 이기호 작가의 이 단편 제목에도 정희가 들어있다. 이쯤 되면 정희 이름을 가진 세상 모든 여자들을 몽땅 사랑해 버려도 되지 않을까? 한 명도 남기지 말고 우동국물처럼 후루룩 마셔 버리겠다. 그럼 한정희란 어떤 여자인지 인물탐구에 들어가 보자 꾸나.

 

 

소설 속 의 집에 온 사연부터가 마냥 단순하지가 않던데 장인어른이 30년 전에 다니던 전 공장이 부도난 적이 있는데 악덕사장이 임금과 퇴직금을 체불해놓고 자기 몫만 쏙 빼돌렸더란다. 장인이 찾아가서 드잡이를 하다 폭력 죄로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 들어갔고 형편이 어려워진 장모님은 어린 아내를 지인에게 맡겼었대.

 

 

다시 데려오려고 했을 땐, 기른 정이 무섭다고... 지인 부부가 아내한테 정이 들어 보내고 싶지 않아 해서 실랑이 끝에 겨우 데려왔대.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지인의 사정이 어려워져 그 집 딸 정희를 맡아 키우게 되었다고. 한참 예민할 사춘기 시절, 남의 집에 더부살이 하게 된 것이 어린 정희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남겼을까. 겉보기에는 시크하게 학교도 잘 다니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학교로부터 나에게 호출이 떨어지네.

 

 

학교폭력 가해자래. 이럴 때는 보통 친엄마가 다녀가지 않나? 하물며 나는 친아빠도 아닌데.. 고모부라고 호칭은 정하고 있지만. 학교 가서 사정 듣고 피해 여학생 엄마를 찾아가 사죄하려다 문전박대나 당하질 않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방탄소년단방탕소년단이라고 잘못 부르면 한소리 정도 하는 보통 소녀일 뿐인데. 가해자로서의 뻔뻔함? 자기 합리화? 아무렇지 않대. 또래들끼리 그냥 장난친 것뿐이래.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의 특정기억이 산산조각 되어 떠오르더라. 비슷하다. 우리 집에도 위탁된 친척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잘 대해주었다면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만 반대로 심술 맞게 굴었다. 불쌍하다기보다는 우습게 보였던지 마구 괴롭히다 못해 너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기까지 했지. 걔는 견디다 못해 으앙 울면서 엄마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때 왜 그리 못돼먹었나 싶은 게 얼굴이 화끈거린다. 야만적이었어. 아직 이성적 판단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부끄럽고 미안하다.

 

 

소설 속 정희는 오히려 가해자지. 그 차이점은 대체 무엇일까? 한 번 읽고 나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어릴 적 기억이 교묘히 오버 랩 되면서 자꾸 마음에 걸리는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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