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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평점 :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정희가 있고, 감명 깊게 읽은 이석원 작가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도 정희가 나온다. 더불어 이기호 작가의 이 단편 제목에도 정희가 들어있다. 이쯤 되면 정희 이름을 가진 세상 모든 여자들을 몽땅 사랑해 버려도 되지 않을까? 한 명도 남기지 말고 우동국물처럼 후루룩 마셔 버리겠다. 그럼 한정희란 어떤 여자인지 인물탐구에 들어가 보자 꾸나.
소설 속 ‘나’의 집에 온 사연부터가 마냥 단순하지가 않던데 장인어른이 30년 전에 다니던 전 공장이 부도난 적이 있는데 악덕사장이 임금과 퇴직금을 체불해놓고 자기 몫만 쏙 빼돌렸더란다. 장인이 찾아가서 드잡이를 하다 폭력 죄로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 들어갔고 형편이 어려워진 장모님은 어린 아내를 지인에게 맡겼었대.
다시 데려오려고 했을 땐, 기른 정이 무섭다고... 지인 부부가 아내한테 정이 들어 보내고 싶지 않아 해서 실랑이 끝에 겨우 데려왔대.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지인의 사정이 어려워져 그 집 딸 정희를 맡아 키우게 되었다고. 한참 예민할 사춘기 시절, 남의 집에 더부살이 하게 된 것이 어린 정희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남겼을까. 겉보기에는 시크하게 학교도 잘 다니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학교로부터 나에게 호출이 떨어지네.
학교폭력 가해자래. 이럴 때는 보통 친엄마가 다녀가지 않나? 하물며 나는 친아빠도 아닌데.. 고모부라고 호칭은 정하고 있지만. 학교 가서 사정 듣고 피해 여학생 엄마를 찾아가 사죄하려다 문전박대나 당하질 않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방탄소년단”을 “방탕소년단”이라고 잘못 부르면 한소리 정도 하는 보통 소녀일 뿐인데. 가해자로서의 뻔뻔함? 자기 합리화? 아무렇지 않대. 또래들끼리 그냥 장난친 것뿐이래.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의 특정기억이 산산조각 되어 떠오르더라. 비슷하다. 우리 집에도 위탁된 친척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잘 대해주었다면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만 반대로 심술 맞게 굴었다. 불쌍하다기보다는 우습게 보였던지 마구 괴롭히다 못해 “너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기까지 했지. 걔는 견디다 못해 으앙 울면서 엄마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때 왜 그리 못돼먹었나 싶은 게 얼굴이 화끈거린다. 야만적이었어. 아직 이성적 판단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부끄럽고 미안하다.
소설 속 정희는 오히려 가해자지. 그 차이점은 대체 무엇일까? 한 번 읽고 나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어릴 적 기억이 교묘히 오버 랩 되면서 자꾸 마음에 걸리는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