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편의 이야기, 일곱 번의 안부
한사람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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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유기동물들에게 묻는 안부 

 -안락사회-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왜 데려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반려동물을 자신의 액세서리 그 이상 그 이하 취급도 안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시끄러워지면 버리고, 늙으면 버리고, 아프면 버린다.

 이 모든 과정을 부추기는 데는 펫샵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새끼일수록 비싼 값을 받고 유행에 따라 품종을 다르게 판매한다. 그 개는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당했고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했지만 결국 죽었다. 독일에서는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절차가 까다롭고 펫샵이 아닌 유기견 보호센터를 통해서만 입양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키우는 동물을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로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혼자가 편한 너에게 묻는 안부

 -코쿤룸-

 어떤 한 사람에게 진절머리가 나서 지친 나머지 모든 관계의 문을 닫아버렸다. 혼자 있는 게 편한 주인공의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쓰인 여러 장치들을 봤을 때, 나도 안도감을 느꼈다. 이렇게 계속 살고 싶다. 이소정 씨의 인생에 주 2회 사무 실근무와 지금 나의 인간관계를 추가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인생일듯하다. 혼자이고 싶은 나에게 부러운 인생이었다.



3. 불안정한 세상을 살아가는 너에게 묻는 안부 

-집구석 환경 조사서-

 숨이 턱턱 막혔다. 인생의 묘미는 불확실이라지만 그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불확실일 때 얘기다. 손바닥 뒤집히듯 휙휙 바뀌는 불확실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뭘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건지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남들이 다 그러고 사니까…. 라는 말보다 폭력적인 말은 없을 것이다. 모든 꿈과 희망, 미래를 저 말 한마디로 짓밟을 수 있다. 남들 다 얌전히 사는데 너도 좀 그래라.



4. 한 방을 노리는 너에게 묻는 안부 

-아름다운 나의 도시-

 한심 한심 한심 그 자체다. 겉멋 들어서 분수에도 안 맞는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주인공은 명품을 위해 빚과 카드 돌려막기 궁극에는 고객의 계약금까지 손을 댄다. 그는 마지막 계약 건이 그를 구해줄 동아줄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나중에 교도소에 사기죄로 갇힐 초석을 지금 다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만만한 사람들 골라서 등쳐먹을 생각하지 말고 본인 능력에 맞게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살길 바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도는 다르지만 나도 인풋 대비 큰 아웃풋을 바란다. (물론 저렇게 터무니없이 도박하면서 인생 역전을 꿈꾸진 않는다;) 지금 이런 사상이 심해지면 나도 저런 인생을 살게 될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아닐 것 같다. 저건 아니다.



5. 가정의 기억이 쓰라린 너에게 묻는 안부 

-기억의 제단-

 아픈 기억을 도려내고자 한 사람을 현재를 놓아버렸고 다른 한 사람은 미친 듯이 현재에 몰두하려고 한다. 가정에서 받은 폭력은 누구에게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그냥 현재의 내가 오롯이 다 감당해야 할 뿐이다. 받을 수 있는 거라곤 가해자의 사과인데 그마저도 안 받고 싶다. 그냥 기억에서 그 부분만 싹둑 잘라버리고 싶다. 기억의 제단이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6. 공허한 너에게 묻는 안부 

-조용한 시장-

 누군가는 평생을 일한 직장에서 잘려서 허무하고, 누군가는 입사조차 못 해 씁쓸한 현실. 일은 도대체 누가 하는 걸까. 쫓겨난 사람 수만 명,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람 수만 명인데 극소수만 일을 한다. 자아실현의 매개체가 주로 일이었는데, 다른 활동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 같다. 사회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는데 그 끝이 어디일지 궁금하다. 미래의 우리는 무엇을 양분 삼아 자아실현을 이룰까.



7. 엄마와 인간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너에게 묻는 안부 

-클라타임네스트라-

엄마란 단어는 참 잔인할 정도로 많은 것을 빼앗는다. 주인공은 엄마에게 모성애를 확인받고자 했고 결국 확인받았지만, 그 후 남은 건 비참함 뿐이었다. 엄마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그냥 자기 이름 세 글자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느끼고 싶은 감정을 느끼며 본인이 원하는 인생을 지금부터라도 살았으면 한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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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 - 나를 죽이는 바이러스와 우리를 지키는 면역의 과학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
신의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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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 출입 코드, 거리 두기는 특수 상황이 아닌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19가 일상에 자리 잡았다. 이런 생활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얻고 싶었다. 내 일상이 새로운 것들에 적응함과 동시에 건강했으면 좋겠다. 또한 사스, 메르스, 코로나 19 다 같은 코로나바이러스인데 왜 코로나 19만 유독 전 세계적으로 난리인지 궁금했다.



독감 백신은 매년 세계보건기구의 예측을 통해 범세계적인 시스템하에 생산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북반구에 위치하는 나라에서는 남반구의 독감 유행을 바탕으로 북반구에서 유행할 유형을 유추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매년 2월에 어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백신을 만들지를 결정한다.

신기하다. 독감 백신을 왜 매년 맞는지 궁금해 본적이 없었는데 이런 이유로 그런 거였구나. 세계가 연결되어있다는 게 실감 난다.



Q. 코로나 19를 겪으며 경험했듯이, 바이러스는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변이하고 잠복한다. (...) 공존가 승리, 인류는 어떤 결론에 다다를까?

 공존을 선택한다는 건 면역에 취약한 계층은 다 버리겠단 소리로 들린다. 바이러스와 공존했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신체 건강한 청년층이 대부분일 것이기에 어렵더라도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러나 마셜은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이를 입증하고자 스스로를 실험한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 배양액을 직접 마신 마셜은 자신에게 급성 위염이 발병했다는 것과 이것이 항생제를 통해 치료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너무 멋있다. 본인이 한 실험에 얼마나 자신이 있어야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있어서 설령 그곳이 남들 눈에 불구덩이처럼 보여도 기꺼이 뛰어드는 그런 인생.


기존에 관목 지대였던 곳들이 기후 변화로 박쥐들이 서식하기 좋은 초원 지대와 낙엽수림으로 변화했고, 그 결과 박쥐의 종 수도 늘었고 박쥐가 가지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종 수도 늘어났다고 한다.

 기후변화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와도 연관 있을지 몰랐다. 기후변화는 최악의 결과를 계속해서 가져오는 심각한 문제다. 더 큰 문제는 기후변화와 코로나 19의 연관성을 대다수가 못 떠올린다는 것이다.



Q. 인류의 문명이 고도로 발달할수록 전 세계 곳곳에서는 전에 없던 새로운 감염성 질환이 발생한다. 단순히 우연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필연. 누구도 이 정도 파급력을 예상하지 못한 필연이다.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 지구 기온 상승, 계속해서 녹는 빙하,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은 각각 야생동물과의 접촉 증가, 야생 동물의 서식지 이동,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연 가능성 증가, 슈퍼 바이러스 탄생을 야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그러니까 인간이 전에 본 적 없던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거기에 운송수단의 발달로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도 빨라졌고 다양한 곳에서 쉽게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바이러스가 생존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천적인 감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이미 꽤 많은 사람이 백신 접종 전부터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기억 T세포를 가지고 있을 테니, 백신 접종은 이런 사람들의 기억 T세포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종식 여부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렇게 과학적으로 설명해줘서 두려움이 조금 잠재워졌다.



Q. (...) 우리의 삶에서 특이성과 기억 현상은 또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특정 기억에 몸이 반응한다. 2차 침입 때 항체가 많이 생성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에 대한 몸의 반응도 거세진다.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내가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백신을 맞아야 할 이유를 몰랐는데 알게 되었다. 나는 타인의 환경이다.



Q. 백신은 내 몸을 지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백신은 개인적인가, 사회적인가? 내 몸의 통제권을 지키면서도 사회 전체를 위하는 방법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백신은 개인40 사회60 정도. 건강한 사회를 위해 개인이 맞는 거지만 그로 인해 건강한 몸과 환경에서 살 수 있으니까. 몸의 통제권을 지키면서 사회를 위하는 말은 모순처럼 보인다. 한참을 생각했는데, 건강검진이 떠올랐다. 딱히 내 몸에 피해오는 건 없지만 사회를 위한 거니까.



Q. '나와 남을 구분한다'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명제다. 나와 다른 것, 낯선 사람을 배척하는 것은 몸속에서 보내는 본능적인 신호일까?

 응. 본능적 신호일 듯. 외부반응 특히 인류는 긴 시간 식량 문제로 굶주렸고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근데 시간이 많이 흐르면 또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지금 일부 지역에서는 식량이 넘쳐나서 문제니 굳이 여기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다른 환경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종으로 진화할 것 같다.



Q. 몸속의 태아, 장내 유익균이 증명하듯 우리 몸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배척하거나 제거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보고 배우라는 뜻. 인종차별이 극에 다른 요즘 더 절실히 느낀다. 겉가죽만 보고 사람에게 모욕을 주고 심하면 죽이기도 하는 이런 멍청한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할까. 천박하고 한심하다.



이처럼 면역 시스템에서 복잡하게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면역 조절망이라고 한다. 의사 소통망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고, 이를 통해 양성 및 음성 조절이 다채롭게 이뤄지기 때문에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것이다.

 교양 시간에 흘러가듯 배웠던 면역을 여기서 이렇게 자세히 만날 줄 몰랐다. 복잡한 내 몸의 구성을 볼 때마다, 내 몸이 참 열심히 일한다 싶은 감정과 그에 비해 게으른 내 모습이 상반돼서 약간 자괴감도 든다.



Q. 내 몸의 면역 시스템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복잡한 의사소통을 통해 작용하고 있다. 만약 우리 몸속 네트워크를 모두 발견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최소한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은 없을 듯. 노화로 인해 삶이 버거워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나 존엄사가 허용되는 사회가 될 것 같다.



우리 모두 경험해봤듯이, 입술에 생긴 헤르페스 바이러스 물집은 잘 자고 잘 먹는 등의 기본적인 안정만 취해도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가.

 면역력 하면 바로 비타민이랑 홍삼이 떠올랐는데 상술 때문이었구나. 면역력이 단순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단지 식품 하나로는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코로나 19 팬데믹은 미래에 올지도 모를 더욱 심각한 신종 바이러스의 백신일지도 모른다.

 와 너무 끔찍하다. 근데 지금 인간이 살아가는 형태를 보면 근거 없는 말 같이 안 보여서 더 무섭다.



Q. 이 책을 읽은 당신에게 '면역의 의미'는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방어자들의 세계


감상

 바이러스를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본 책일 줄 알았는데 그렇다기보단 면역학 관점에서 바라본 책이라 신선했다. 낯선 면역 용어를 여러 번 되풀이해줘서 책을 읽을수록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면역 과정도 잘 이해됐다.

 면역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치밀한 시스템이었다. 인간 한 명이 살아있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일상이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는 건 다른 책에서 찾아야 할 문제 같고, 건강해지려면 백신은 꼭 맞아야겠다.

 백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내 차례가 온다면 맞을 생각이다. 나는 타인의 환경이고 타인은 나의 환경이라는 말이 와닿았고 내 환경이 누구보다 깨끗하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환경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질문이 주어졌는데, 질문에 대답하면서 내 생각이 많이 정리됐다. 책을 읽을 때 한 챕터가 끝나면 멈춰서 생각하는 습관을 더 견고히 다져야겠다.


<도서를 제공받았지만 포스팅은 의무사항이 아닌 제 기록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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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대한민국
김주해 지음 / GDN BOOK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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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와 세대 그리고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라고 해서 흥미가 갔다. 또한 작가가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했는데, 그런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썼을지 궁금했다.



벌써 설레였다. 머그잔을 옆 테이블에 내려놓은 보원은 노트북을 가지러 일어섰다. 한남동에서 최대한 멀리 떠날 작정이었다.

 역시 떠나려면 자본이 여유로워야 한다. 훌쩍 떠나버릴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보원이 되게 부러웠다.



은실은 자신의 인생을 뒤흔드는 폭풍에 익숙했고 그런 은실에게 보원의 거짓말은 흩날리는 바람조차 되지 않았다.

 이 한 문장으로 은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티고 또 버텼는지가 이해됐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모든 것에 무뎌지게 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은실의 빈곤이 은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대가와 결과물일 수는 없었다.

 결과가 같다고 원인이 똑같진 않다. 이런 문제에 대해 원인을 찾으려고 할수록 나만 머리 아프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남편이 죽었는데?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보원이 LA에서 은실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불법 체류자셨어요."

"...그게 왜요?"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는 경찰에 신고하는 게 쉽지가 않죠. 잡혀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현재의 보원이 은실의 선택을 이해 못 했듯 과거의 은실도 미래의 자신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내가 본다면 경악을 저지를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련님 아니면 미국에 갈 이유도 없어요... 돈을 벌 이유도 없고요."

 인생을 살 때, 살아가는 의미를 나 자신에게 두어야 한다. 내가 나를 실망시키면 개선을 내가 직접 할 수 있지만, 타인이 나를 실망시켰을 때, 타인을 개선하는 건 불가능하다.



감상

 이승만, 김일성의 권력욕에 수많은 국민이 희생되었다. 역겹고 잔인하다. 아직 누군가는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갈 텐데 그 상처는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는 건지 되물어도 답을 쉽사리 낼 수 없었고, 보상받는다고 한들 그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을 게 자명해서 더 화가 났다.

 과거와 현재의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만난다. 예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누군가 미래의 나에게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고르라고 했을 때, 고른 게 지금 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이 좀 살아갈 만 하지 않을까? 지금은 미래의 내가 고른 가장 돌아오고 싶었던 순간이야. "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내가 이 순간을 골랐다면 행복해서가 아닌 너무나 불행했던 순간이어서 바꾸고 싶어서 온 것일 거라고 했고, 그 친구는 자신은 아마 행복한 순간이라 지금을 꼽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 대화가 생각났다. 보원이 마주한 과거의 은실과 현재의 은실. 보원은 은실 대신 은실의 순간을 골라줬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당신들의 고생으로 뒤덮인 대한민국 땅을 감히 내가 밟고 서서 잘살아 보겠다고,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누군가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그 시대를 거쳐온 모두에게.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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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폭언 - 누가 나 대신 나를 슬퍼하겠느냐
나도윤 지음 / 연지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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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넘어가는 새벽에 묻고 싶습니다

나는 밤이 슬픈 게 아니라

내가 슬픈 것입니까? 

-'검은 우편' 중 일부-

설렘, 고요, 우울, 공허. 저마다 새벽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심지어는 때에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새벽을 느낀다. 내가 슬프니까 밤이 슬픈 거겠지.



눈을 감으면 세상이

도무지 평온할 수 없이 밝아

증오하던 게 굴러다녀

안달 나도록 환해, 잠을 잘 수가 없어, 

-'흑백령' 중 일부-

눈을 감으면 평온할 줄 알았는데 기다렸다는 듯 오감이 생생히 살아난다. 기묘한 감각이다.



가만히 있기 위해 아니,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아서 이 시가 유독 참 와닿았다.



아비는 억지로 나를 토해낸다 

"사랑해.".라고 했는데

"우리 그냥 죽어버릴까."

로 뱉어졌다 

-'밤바다. 아니 눈물이다' 중 일부-

 상대가 한 말과 다른 뜻을 찾아 헤메는 일은 슬프고 외롭고 비참한 일이다.



눈이 녹으면

눈이 품었던

다정의 도시가 드러나요

지극히 다정해서 되려 쓸쓸한

-'눈 물' 중 일부-

 눈이 녹은 물을 눈 물이라고 표현한게 신선했다. 다정해서 쓸쓸하단 말이 와닿을 듯 말듯 와닿았다.



고혹스러운 미술관에 걸린 그림들

무심히 지나치듯 하루를 또 지나

-'오만함의 본질' 중 일부-

화가는 의도하고 그렸지만 나에겐 의미가 와닿지 않아 내가 그 그림을 무심히 지나쳤다면, 그 그림의 의미는 어떻게 되는 걸까. 분명 찾아보면 의미가 있을텐데 하루속에서 그걸 발견해내기가 버거워 그림을 지나치듯 슥슥 매일이 지나간다.



그런데요

이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져요

-'행복해요, 그런데요, 이제 나는 아무것도' 중 일부-

어떤 밤은 유난히 정신이 맑고 또 다른 밤은 이래도되나 싶을 정도로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시인에게 이날의 밤은 후자였나보다.



감상

 우울. 시집 전체가 우울 그 자체다. 세상 모든 것이 우울과 연관될 수 있음을 알았다. 시인이 우울할 때 바라보는 세상을 잠깐 엿본 기분이었다. 특히 죽음을 다양한 언어로 표현했는데, 시인이 죽음에대해 많이 고민하고 자주 생각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별을 유심히 살펴보는 게 시집 곳곳에서 느껴졌다. 깨어있는 모두가 바라보는 새벽별도 대부분이 휙 지나치는 대낮의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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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도 있었다
조한선 지음 / 메이킹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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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서 무뎌지고 둔해지는 서슬 퍼렇던 가윗날처럼 그렇게 마음도 감정도 둔해진다 

-'세미나장에서' 중 일부-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이 메말라간다. 모든 것에 무뎌진다는 건 양날의 검이다.



 난 앞으로도 이렇게 따지지 않고 계산 안 하고 살 예정이다

알아서 해 주세요 하고 손바닥을 온전히 내보이고 

-'계산' 중 일부-

 이렇게 살다간 손모가지 잘릴 것 같다.



멈추고 가만히 있는 게

내 숨통을 틔우는 길이라고

-'파란 하늘이' 중 일부-

 이쯤에서 숨 한 번 고르고 가야 하는 걸 아는데,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는 쉼 없이 어디론가 움직인다. 덩그러니 서 있는 게 뒤처지는 것 같아 선뜻 멈추고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



그러니 지금 투정할 것이 아니라

치열하고 고단한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기라고 

-'국화차 한 잔에' 중 일부-

 이런 얘기는 그 힘든 시간이 다 지나가고 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치열의 중심 서 있었던 과거의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그 쉼표가 나를 다시 살려

지금의 나로 살게 하였다 

-'쉼표' 중 일부-

쉼표를 찍는 위치가 참 중요한데 어디에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잘못 찍으면 마침표가 될까 봐. 지금의 내가 영영 살아질까 봐.



이 힘들고 고단한

앞으로도 험준한 가시밭일지도 모르는 그 길을

피하지도 않고 스스로 선택한 젊고 어린 그녀들

 -'꽃무늬 마스크' 중 일부-

스스로 선택했다기엔 사회적인 제약이 너무 많다. 임신 중단에 대한 개정이 절실히 느껴지는 시였다.



무효야 무효

지금껏 살아온 내 삶에도 외쳐본다


지금까지는 다 무효야

이제부터 진짜야 

-'첫눈, 이거 무효야' 중 일부-

이게 되면 좋겠지만 인간은 또렷한 과거를 질질 끌고 어딘지도 모를 현재를 지나 어렴풋이 보이는 미래를 향해 가는 존재다.



 시인의 시에는 흐린 날도 있었고 맑은 날도 있었다. 인생도 흐린 날과 맑은 날의 연속인 걸 아는데, 참 간사한 게 흐린 날은 오감으로 느껴지고 맑은 날은 잠깐 아주 잠깐 느끼고 만다. 어떤 날이든 날에 구애받지 않는 초연한 내가 되었으면 한다.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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