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고집불통 철학자들
강성률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베이컨, 공자, 정도전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철학자들 각자의 독특한 고집을 설명한다. 우정, 경쟁, 출세와 같은 다양한 보편적 감정에 알맞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결국 이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이런 인간적인 면모들을 극복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자가 되었음을 재미있는 일화들과 함께 나열하면서 그들의 사상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크리톤은 "돈은 얼마가 들든지 관리들을 매수할 테니, 탈출하게 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제까지 나는 아테네 시민으로서 아테네 법이 시민에게 주는 특권과 자유를 누려 왔네. 그런데 그 법이 이제 내게 불리해졌다고 하여 그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 하며 단호히 거절하였다. 바로 이 장면이 오늘날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다. ('악법도 법이다 - 소크라테스' 중 일부)

 이렇게 굳은 의지는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걸까.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정도의 사상은 내가 뭘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수천 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거겠지.


1860년 9월 21일, 쇼펜하우어는 폐렴 증세로 인한 폐 경련으로 소파의 구석에 등을 기댄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의 묘비에는 그의 유지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가진 생각)에 따라 이름 이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법으로 유산을 타내 다 - 쇼펜하우어' 중 일부)

 좋아하는 철학자인데 이렇게 또 다른 얘기를 알 수 있어서 좋은 부분이었다. 묘비에 자신의 이름 외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것조차 그 다웠다.


베이컨은 36세 때에 '수상록'(-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을 출간하여 문필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는데, 이 수필집은 실로 세계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도 남았다. 여기서 한 가지, 셰익스피어가 실제로는 베이컨이었다는 설이 있다. ('런던 탑에 갇힌 권모술수 - 베이컨' 중 일부)

철학자로만 알고있었는데 문학적인 면모도 뛰어났구나. 수상록을 읽어보고 싶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란 가설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하이데거는 이 작품에서 지금까지 제기되어 왔던 모든 철학적 물음들을 자신의 사유 세계 안에서 새롭게 걸러 내었다. 그 때문에 당대의 철학적 문제들은 모두 껍데기로 전락하였고, 모든 형이상학은 마치 번갯불을 맞은 것처럼 새롭게 조명되어야 했다. ('나치 정권 아래에서 대학 총장을 - 하이데거' 중 일부)

지금까지 제기되어온 물음들을 다 정리한 것도 대단하고, 답을 내린 건 뭐 말이 더 필요 없을 만큼 대단하다. 이렇게 여러 사상을 관통하려면 하나의 큰 줄기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을 길러낸 사고의 힘을 나도 가졌으면 한다.


엥겔스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대자는 많았으나 개인적인 적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의 이름은 수백 년이 지나도 살아 있을 것이며 그의 저서도 그럴 것이다." 마르크스 사후에는 그가 미처 다 쓰지 못한 '자본론'의 2권과 3권의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하는 일로 한동안 바쁘게 지냈다. ('친구의 죽음 이후까지 - 마르크스와 엥겔스' 중 일부)

엥겔스가 사랑한 것은 마르크스란 사람일까, 아니면 마르크스의 사상일까. 죽은 친구의 원고를 정리해 책을 낼 정도면 사람보다는 사상이지 않을까. 무언갈 얼마만큼 좋아해야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놀랍다.


감상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재미있는 책이었다. 철학책이면 사상들이 줄줄 나열되어 있어서 읽기 어렵고 이해도 잘 안 되는데 이 책은 그들의 일화 사이 사이에 사상을 소개하고 있어서 편하게 읽혔다. 저자의 다른 도서인 '철학 스캔들'도 읽고 싶어졌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처 퍼즐 맞추기 - 타인의 슬픔을 들여다보는 여자들이 건넨 위로 맞불
이현정.하미나 지음 / 동녘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미나 작가와 이현정 교수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둔 책이다. 우울증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와 인류학자인 교수의 만남이라 내용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지만 내가 기진 고민을 남들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되는 책이었다.

 편지를 주고받을수록 서로 나누는 대화가 깊어지고 편해지는 게 느껴졌고 특히 한 주제에 대해 첨예한 대립이 오갈 땐 논리가 탄탄한 토론을 지켜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계기

하미나 작가님의 전작인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인상 깊게 읽고 작가님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타인과 주고받는 편지로 하미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 싶었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던 까닭은 미나의 너그러움 덕분이기도 하지만, 더 깊숙이는 둘 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언어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온 궤적과 말로 환원될 수 없는 마음속 세계를 글자만으로는 충분히 표현해내기 어려웠다. ('인사말' 중 일부)

 

모든 게 다 불만투성이로 보이고 사람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가 돋친 것처럼 버거울 때 떠올리고 싶은 문장이다. 아무리 현실이 형편없어도 분명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부분이 있을 거라는 믿음, 이 믿음은 참 따뜻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게 그것 외에 많지 않기 때문에 서로 부단히 연습하며 마음을 전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 같아요, ('부단히 연습하며 마음을 전하려 애써야 해요.' 중 일부)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양날의 검이다. 그런데도 그 검을 부지런히 갈고닦아야 하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도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나 말고도 학문적으로든 생활적으로든 더 훌륭한 사람들이 많으니, 굳이 나여야 할 이유도 없고요. 종교를 갖고 있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삶의 의미를 신에게서 찾기도 어렵고, 젊은 시절 목표였던 세상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했던 꿈은 허물어진 지 오래였어요. 오히려 살면서 세상의 숱한 고통, 세세한 잔인함과 냉혹함이 점점 더 커지는 것만을 목도해 왔으니까요. 무력감과 좌절이 엄습했고, 궁극적으로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고통을 겪었고 눈물을 흘렸고 괴로워했다고' 중 일부)

 막연히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면 인생을 사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문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난제인가보다. 막막하지만 왜인지 모를 위안이 든다.



"우린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지금도, 그리고 늙어서도 안식을 잊은 채 일할 거예요. 그러다 언젠가 우리의 때가 닥치면 불평 없이 죽어갈 거예요." 특히 이 부분에서 저는 위로를 받았어요, 나 자신만을 바라본다면 노동과 고통 속에 사는 삶은 무의미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시련과 괴로움이 조금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고통을 겪었고 눈물을 흘렸고 괴로워했다고' 중 일부)

 내 인생도 누군가가 한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일까. 형편없이 낭비하기엔 아깝긴 하다.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으니 나아지기 위해 애쓰지만,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이상적인 지향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꼭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요. 우주는 너무도 크고 나는 티끌 같은 존재니까요. 바다에 갈 때마다 그걸 느껴요. '나'라는 경계가 얼마나 허상인지도 생각하고요. ('저는 또 다른 모래성을 쌓고 싶어요.' 중 일부)

 나는 티끌같이 작은 존재. 그래서 아무거나 아무렇게 해도 괜찮은 존재라는 생각으로 살 수 있다면 사는 게 조금은 더 쉬워질 것 같다. 본받고 싶은 태도다.


제가 대선을 겪으며 가장 두렵다고 느꼈던 것은 윤석열이나 이준석, 젠더 갈라치기를 일삼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제 SNS 타임라인 속에 윤석열 지지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그 날카롭게 양분된 세계가 가장 두렵게 느껴졌어요. 서로가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서로를 향한 이해를 시작할 수 있을까 아득해졌거든요.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싶다구요!' 중 일부)

 이 부분을 읽자마자 놀랐고 큰 공감이 갔다. 세상이 내 생각보다 더 빠르게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끼리끼리 모여서 다른 집단을 아예 배척해버린다.



선생님...... 저는 주제넘게 이렇게 여쭙고 싶습니다. '결코 나아지지 않는 세상'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지 않나요?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견제하고 감시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나요? 어려운 말로 가득한 정치를 좀 더 쉽게 대중에게 전달할 책임이, 교육의 기회를 가졌던 우리에게 있지 않나요? '다 똑같은 놈'이 아니라 정말로 이상한 놈이 누구인지를 가리킬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나요?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누구도 답을 하지 않을 때, 전문가로서 대중에게 최선의 답을 제시할 책임이 지식인에게 있지 않나요? .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싶다구요!' 중 일부)

 멋있다.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그걸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저는 우리가 행동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이 나아진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이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보지 않거든요. (중략) 행동이란 "언젠가 좋아질 것이다'라는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없어도 직면한 상황에 맞서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라 결단하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이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중 일부)

 직면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서 사회변화가 온다고 믿는 거라면,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세상을 바꿀 순 있겠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한 거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명예남성' 이라고 일컫는 '가부장적' 여교수도 있어요. 그들도 젊었을 때는 여성으로서 차별을 느끼거나 힘들어했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남성화'됨으로써 그런 차별을 극복하려고 시도해왔다 보니 어느새 사회적으로 '남성'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학계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 중 일부)

 괴물과 싸울 땐 나도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직접적인 폭력이 줄어드는 만큼 더 교묘한 수법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건 꼭 성폭력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그런듯해. 우리 인간은 결국 그런 수준밖에 안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는 농담처럼 학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해.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하면, 아마도 인간들의 모습이 지긋지긋해서라도 침략이고 뭐고 그저 빨리 지구를 떠나고 싶을 거라고. ('우리의 삶은 늘 삶을 넘어서고' 중 일부)

 신선한 발상이다. 일상의 대부분은 이미 지긋지긋한 모습에 스며들어 그것이 문제인지 인지조차 못 하는 나조차도 지긋지긋한데, 이 모든 걸 아무 필터 없이 마주하는 건 너무나 지치는 일일듯하다.



감상

 편지마다 있는 소제목이 찰떡같다. 한 통의 편지를 다 읽고 앞으로 돌아가 소제목을 다시 읽었을 때 생각이 정리되면서 편지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1. 슬픔을 연구하는 슬픔

슬픔을 얘기하는 것만큼이나 듣는 것도 힘들고, 돌봄을 주는 것만큼이나 받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다시금 와닿았다. 상대가 가진 마음이 진심일수록 그 정도가 커진다는 게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건데 당연해서 그런가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깊은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행동은 주기도 받기도 어렵다.


3. 나아지기 위해, 나아지지 않더라도

같은 주제에 대해 상반되는 두 생각이 재밌었다. 둘 다 주장하는 논리에 대한 근거가 설득력 있었지만 나는 이현정 교수님 쪽이 더 공감 갔다. 지식인들이 아무리 앞장서서 계몽을 시도하려 해도 결국 일반 대중이 움직이는 건 본인들 스스로 자각할 때이고, 그 순간은 누군가의 설득으로부터는 오지 않는다.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실천하는 순간 사회는 조금씩 변하지 많이 배운 것이 꼭 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진 않는다. 우리가 사회를 망치는 주범이라고 욕하는 정치인들(구. 지식인)도 학업성취도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1호 : 기후와 마음 - 2021.여름호
재단법인 여해와함께 편집부 지음 / 여해와함께(잡지) / 202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기후 변화를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낸 잡지다. 인터뷰, 현 상황을 적은 에세이, 해결책을 담은 글, SF, 그림책 등등 다채로운 형태만큼이나 그 안에 담긴 생각들도 다양하다. 특히 여러 기후변화 해결책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집에 들어와 노트북을 켰다. 싼값의 비결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가격은 '진짜 가격'이었고, 옷을 만드는 데 드는 '진짜 비용'은 다른 이들에게 전가됐다. 주 7일 12시간씩 일하며 한 달에 4만 원도 받지 못하는 방글라데시 여성 의류 산업 노동자에게 조금, 비정상적인 목화 수요를 감당하느라 땅에 화학비료를 들이부어야 하는 농부에게 조금, 유전자조작 목화로 파괴되는 생태계에 조금, 옷 제작·유통·폐기하는 과정에서 오염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에게 조금. 그렇게 조금씩 나눠 부담하면, 내가 한여름에 뽀송뽀송한 털이 달린 패딩을 1,7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사고 야무지게 적립금까지 챙길 수 있는 것이다. (22쪽)

기후 문제가 이렇다. 행동하는 주체가 책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지 힘이 없고 의사 표현할 능력이 없으면 책임을 떠안는다.


트래쉬 버스터즈의 고객은 '어쩔 수 없이 일회용품을 쓸 수밖에 없던 기업'이에요. 기업이 쓰니까, 어쩔 수 없이 시민들도 일회용 플라스틱에 노출돼 있던 거고요. 저희가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면, 시민들은 원래 살던 대로 편하게 살면 돼요. 사는 대로 사는 걸 도와주는 거죠. 환경에 나쁜 영향 안 주면서요. (74쪽)

기업이 바뀌어야 시민들도 바뀐다는 말이 생각났고 그 말을 창업으로 녹여낸 대표님이 대단하다.


채식을 시작했을 때의 즐거움이 답답함으로 바뀌기도 했고요. 그런 시간을 거쳐오며 느낀 것은 결국 비건은 지향하는 가치와 나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자유롭게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라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선택할지를 연습하는 '되기(becoming)'의 과정을 반복하며 망설임이 줄어들고 더 쉽게 해낼 수 있는 근육이 커졌습니다. (84쪽)

내가 원하는 내 삶과 그것을 위해 선택을 하는 나. 내가 한 선택에 궁색한 변명이 아닌 확신이 있는 나. 기후변화 책을 읽다 이런 생각을 만나게 될 줄 몰라서 되게 반가웠다.


프리츠커의 변신, '예술'에서 '사회'로의 전환은 일종의 당위로서 존재해온 '도덕'(자연과 공동체를 보호하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이 급박한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여졌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0쪽)

건축에 문외한인데, 이런 상은 보통 난해해 보이는(건축가의 의도를 한 번에 파악하기 힘든) 건물들이 받는 건 줄 알았는데 현실 문제를 반영한 건물들이 수상해서 놀랐다. 근데 이 말을 보고 기후 위기가 정말 심각하긴 하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탄소에 값이 매겨지지 않던 과거에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이제 탈탄소의 비용을 감내할 여력이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탈탄소 시대의 기틀이 만들어지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다. 탈탄소 시대로의 전환이 이미 가진 자와 아직 가지지 못한 자, 새로운 기회를 얻은 자와 누리던 것을 잃을 자를 섬세히 가르며 설계되지 않는다면, 지구온난화만이 아니라 더욱 심각해진 불공정이 더 큰 문제로 우리를 가로막을지 모른다. (148쪽)
탄소에 값이 매겨지지 않던 시절에 발전한 국가들은 그들이 오염시킨 대가를 어떤 형태로든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상
기후변화라는 주제 하나로 꽤 두꺼운 책 한 권이 뚝딱 나오는 건 봤지만, 이 책은 잡지라는 특성상 여러 형태의 글과 그림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인상 깊었다.
해결책과 관련해서 기술을 도입을 놓고 일어나는 찬반논쟁을 다룬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나도 어떤 입장에 설지 모르겠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긴 부분이었다.
기후변화에 대해 생각을 다시금 정리해볼 좋은 기회였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때 미국에 가지 말 걸 그랬어
해길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아메리칸 드림? 명문 외국 대학교? 더 높은 연봉의 직장?

 미국 이민에 대한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솔직한 에세이다. 나도 막연히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환경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 책이었다.


계기

미국 이민 생존기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미국에 이민을 간다고 하면 아메리칸 드림이나 명문대학교 유학, 더 나은 조건의 직장으로 이직이 떠오르는데 그 이면은 많이 접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외국에서는 다른 말을 쓰는 다른 인종이 아닌 같은 말을 사용하는 같은 동족을 조심해야 한다고. 사기도 말이 통해야 칠 수 있는 법이다. (20쪽)

말이 통해야 사기도 칠 수 있다는 말에 화가 났다. 해외에서 한국인한테 사기당한 여행 후기들이 수없이 떠올랐다. 저렇게 저급한 방식으로 먹고살고 싶은지... 한심스럽다.


나 역시 현관을 나서면 '을'이 되었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서 내 권리를 찾지 못했고 말문이 막힐 때마다 친구와 통역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73쪽)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권리가 없는 건 아닌데 이런 상황이 이해가 가면서도 씁쓸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건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답답하고 화나는 일일 것 같다.


부끄러워서 숨기기 급급했던 과거의 실패도 이제는 덤덤하다. 비록 사회에서 빛나는 삶은 아닐지라도 내게는 남이 가지지 못한 7년의 삶이 있으니까. (Epilogue 중)

숨기기 급급한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주신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감상

Chapter 1. 미국으로 직진

한국을 떠나 미국에 도착하기까지를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표현했다. 한국인을 상대로 사기 치는 한국인부터 인종차별을 일삼는 곳곳의 사람들까지 골이 지끈거리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총기 소유가 합법화인 곳이라 총기 사고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게 충격이었다. 도심지나 새벽 한적한 거리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낮에 아파트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례가 기억에 남았다. 국가적으로 조치가 필요해 보이는데 쉽지않을 것 같아 답답했다.


Chapter 2. 경로 이탈, 재검색

한국인과 안 어울리라 했지만 결국 어울려서 망하고, 치킨집 차렸다 망하고... 절망 절망 또 절망... 계속되는 절망에 내가 다 진이 빠질 정도였다. 미국 이민, 더 나아가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남기 초현실 버전을 보는듯했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기 빨려….'였다. 뒤로 넘어져도 재수가 없으면 코가 깨진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일이 잘 안 풀리는 연속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본인의 인생을 살아내고 계신 작가님과 가족분들이 대단하시다. 한국에서는 두 발 뻗고 편히 주무실 일만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치동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벌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학원가의 역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부동산 신화'의 민낯을 보여주는 그 역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책이 채워져 있었는데, 학원가와 부동산 신화가 교묘하게 맞물려 있는 지점을 작가님이 잘 설명하셨다.

 학원가 때문에 부동산이 형성됐고 부동산이 형성되는 과정에 학원이 있었다. 대한민국 어디서도 보기 힘든 유례없이 대단한 동네였다.



입시 컨설팅을 하며 마음이 편치 않은 순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처럼 외부 활동에서 얻은 스펙과 결과를 규제와 금지를 피해 학생부에 기재할 방법을 찾아줘야 할 때였다. (중략) 거짓 기록을 만들어낸 적은 맹세코 없지만, 그런 상담을 마치고 나면 편법을 위한 방편을 찾아주는 사람이 된 듯하여 자괴감이 들곤 했다. ('1부-5장. 학종, 가장 이상적인 입시 제도가 초래한 비극' 중 일부)

 어... 되게 자괴감 들 것 같다. 원래 취지가 교육 격차 해소인데 그 간극을 벌리고 있으니 원... 물론 고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이긴 할 것 같다.



그러나 학종은 입시만이 아니라 학교의 일상 자체를 경쟁의 지옥으로 바꿔놓았다. 이곳에서 일부 교사와 학생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무시하며, 고독 속에서 스스로 정신 승리하는 법을 익혀나간다. ('1부-5장. 학종, 가장 이상적인 입시 제도가 초래한 비극' 중 일부)

학종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말 안 들어서 들러리 역할도 못 시키는 학생1이었어 그런가... 아니면 내가 학생 때보다 지금 더 심해져서 저 지경이 된 건지, 지방은 덜했던 건지, 어쨌든 어디에선가는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란 게 끔찍하고 기괴하다. 저렇게 학생부를 채운 애들이랑 나랑 경쟁을? ㅋㅋㅋㅋ 지나가던 개도 알만한 결과다.


어디선가 사람의 가치는 분명 같다고 배웠는데. 사람이 가치가 다 같다는 건 말뿐이고 현실에서는 그렇지가 않구나. 사람마다 가치를 다르게 치는구나. 소위 '못 배운 사람'과 '배운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전혀 같지 않았다. ('1부-6장. 대학 입시가 불행을 낳는 이유: 학벌주의와 교육열' 중 일부)

사람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한 게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한 거 아닌가. 본인과 노동을 왜 동일시하는지 의문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능력주의로 고상하게 포장되고 진화된 불평등이 아니라 학벌주의라는 노골적인 차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부-6장. 대학 입시가 불행을 낳는 이유: 학벌주의와 교육열' 중 일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막 능력주의로 발돋움하려는 상태다. 단 한 번도 능력주의의 부작용을 겪은 적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 학벌을 욕망하는 기이한 현상이 초래된다. (2부-5장. 불안한 행복을 꿈꾸는 공포의 회전목마)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웃기네. 다음 화는 절대 안 본다고 댓글 창에 욕이 난무했지만, 최고 시청률을 찍은 부부의 세계가 생각난다. 다 거짓말쟁이들이다. 물론 나도. 학벌을 믿진 않는데, 그 학벌을 가진 나는 믿고 싶다.

이들은 대치동에서 출강하고 있다는 경력을 내세우며 주중의 낮에는 각 지역의 재수종합반이나 기숙 재수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대치동에 출강하지 않는 평일이나 주말의 다른 날에는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은 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진행한다. 대치동에 출강하는 강사라는 커리어는 이들에게 현재와 미래의 자산이다. ('3부-5장. 대치동 학원가 사람들 - 강사' 중 일부)
대치동, 대치동, 대치동. 입시판 전체가 대치동에 미쳐있는 느낌을 책을 읽으며 계속 받았는데 이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인간의 욕망이 이다지도 투명하게 보일 수 있을까.

시간이 갈수록 입시를 위한 컨설팅이 아니라, 브로커로서 과외나 학원 강의를 영업하는 컨설팅으로 변질되어갔다. ('3부-6장. 대치동 학원가 사람들 - 상담실장의 진화와 입시 카페의 등장' 중 일부)
역겹고 추하다. 대한민국 입시 판 속 수험생들이 어떤 심정으로 상담 의자에 앉는지 뻔히 알면서 그걸 볼모로 억지스러운 돈을 벌고 싶을까? 본인에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러나 2015년을 기점으로 하여 대치동의 중대형 종합 학원들이 1층에 입시 센터를 오픈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대치동 곳곳에 스터디 카페가 늘어나고 있었다. ('3부-6장. 대치동 학원가 사람들 - 상담실장의 진화와 입시 카페의 등장' 중 일부)
진짜 빠르다. 내가 살던 동네는 2015에는 스터디카페가 없었고 나는 스터디카페를 2019에 대치동에 올라가서 처음 봤다. 내가 살던 동네도 이제 스터디카페가 대거 깔려있으니까 대치동은 다른 동네보다 5년 빠르다.


감상
 신기하다. 집값 비싸고 학원 많은 동네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 이렇게 깊은 역사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학벌 지상주의를 경험한 세대가 한 동네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로써 나는 다시 한번 학벌 지상주의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걸 느꼈다. 자신이 경험한 것보다 더 큰 재산은 없는데 그걸 지금 2대에 걸쳐 했으니 3대까지 아니 4대 5대 그 후로도 공고하지 않을까.
 대치동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했다. 내가 무심코 스쳐 지났던 그 건물이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학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종국에는 되돌아오게 하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니... 강의를 선택한 데 내 의지는 얼마나 반영된 걸까. 뭐 난 저런 컨설팅을 안 받아서 그나마 자유롭겠지만, 인터넷상으로도 그들은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알수록 신기한 동넨데 다른데 선 보기 힘든 특이한 직업군이 모여있어 그런 것이었다.
 아무튼 대단한 동네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