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불통 철학자들
강성률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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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베이컨, 공자, 정도전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철학자들 각자의 독특한 고집을 설명한다. 우정, 경쟁, 출세와 같은 다양한 보편적 감정에 알맞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결국 이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이런 인간적인 면모들을 극복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자가 되었음을 재미있는 일화들과 함께 나열하면서 그들의 사상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크리톤은 "돈은 얼마가 들든지 관리들을 매수할 테니, 탈출하게 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제까지 나는 아테네 시민으로서 아테네 법이 시민에게 주는 특권과 자유를 누려 왔네. 그런데 그 법이 이제 내게 불리해졌다고 하여 그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 하며 단호히 거절하였다. 바로 이 장면이 오늘날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다. ('악법도 법이다 - 소크라테스' 중 일부)

 이렇게 굳은 의지는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걸까.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정도의 사상은 내가 뭘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수천 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거겠지.


1860년 9월 21일, 쇼펜하우어는 폐렴 증세로 인한 폐 경련으로 소파의 구석에 등을 기댄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의 묘비에는 그의 유지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가진 생각)에 따라 이름 이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법으로 유산을 타내 다 - 쇼펜하우어' 중 일부)

 좋아하는 철학자인데 이렇게 또 다른 얘기를 알 수 있어서 좋은 부분이었다. 묘비에 자신의 이름 외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것조차 그 다웠다.


베이컨은 36세 때에 '수상록'(-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을 출간하여 문필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는데, 이 수필집은 실로 세계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도 남았다. 여기서 한 가지, 셰익스피어가 실제로는 베이컨이었다는 설이 있다. ('런던 탑에 갇힌 권모술수 - 베이컨' 중 일부)

철학자로만 알고있었는데 문학적인 면모도 뛰어났구나. 수상록을 읽어보고 싶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란 가설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하이데거는 이 작품에서 지금까지 제기되어 왔던 모든 철학적 물음들을 자신의 사유 세계 안에서 새롭게 걸러 내었다. 그 때문에 당대의 철학적 문제들은 모두 껍데기로 전락하였고, 모든 형이상학은 마치 번갯불을 맞은 것처럼 새롭게 조명되어야 했다. ('나치 정권 아래에서 대학 총장을 - 하이데거' 중 일부)

지금까지 제기되어온 물음들을 다 정리한 것도 대단하고, 답을 내린 건 뭐 말이 더 필요 없을 만큼 대단하다. 이렇게 여러 사상을 관통하려면 하나의 큰 줄기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을 길러낸 사고의 힘을 나도 가졌으면 한다.


엥겔스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대자는 많았으나 개인적인 적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의 이름은 수백 년이 지나도 살아 있을 것이며 그의 저서도 그럴 것이다." 마르크스 사후에는 그가 미처 다 쓰지 못한 '자본론'의 2권과 3권의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하는 일로 한동안 바쁘게 지냈다. ('친구의 죽음 이후까지 - 마르크스와 엥겔스' 중 일부)

엥겔스가 사랑한 것은 마르크스란 사람일까, 아니면 마르크스의 사상일까. 죽은 친구의 원고를 정리해 책을 낼 정도면 사람보다는 사상이지 않을까. 무언갈 얼마만큼 좋아해야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놀랍다.


감상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재미있는 책이었다. 철학책이면 사상들이 줄줄 나열되어 있어서 읽기 어렵고 이해도 잘 안 되는데 이 책은 그들의 일화 사이 사이에 사상을 소개하고 있어서 편하게 읽혔다. 저자의 다른 도서인 '철학 스캔들'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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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 - 2022 올해의 청소년교양도서 선정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6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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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여러 시대와 나라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 당연한 사실을 책 한 권을 통해 서술한다.
유물을 왜 박물관에 놓고 전시와 관리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여러 시대를 이보다 더 잘 집약할 방법이 있을까.

계기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박물관에 갔었다. 뭐가 뭔지도 몰랐고 당연하게도 지금 기억나는 건 거의 없지만 반가사유상은 봤던 기억이 난다. 어두컴컴한 독방에 놓여 있던 조각. 왜 그 유물만 따로 독방에 전시되어있는지 그때도 몰랐고 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그 가치들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박물관에 갔을 때 즐겁게 박물관을 돌아보고 남는 게 있었으면 좋겠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지금도 초등학교 때 지점토로 그릇이나 화분을 만들어 보고, 그중 일부는 전문 공방에 맡겨 구운 것을 가져와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 준다. 인류가 수만 년에 걸쳐 깨달은 것을 집약적으로 교육시키는 모습이라 하겠다. ('청동기의 시작' 중 일부)
지점토로 그릇을 만들고 굽는 걸 수업 시간에 왜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역사가 우리 생활 곳곳에서 교훈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까지 정보를 종합해보면 무덤에 주인공은 북방, 그러니까 부여에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세력이자 낙랑과도 깊은 관계를 지닌 인물일 수도 있겠다. ('금의 시작' 중 일부)
이렇게 여러 유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추적해 보는 게 박물관의 매력인 것 같다. 여러 유물을 보면서 연결 지을 수 있는 능력은 참 신기하다.




그런데 1959년 발견된 부식이 심한 유물은 경주에 두고, 1996년 발견된 금빛이 여전히 잘 남아 있는 유물은 서울로 옮겼다. 덕분에 서울에서는 통일신라 시기에 제작된 황금빛이 영롱한 사리장엄구를 만날 수 있는 반면, 경주에서는 부식이 되어 청동빛이 강한 사리장엄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신라와 고구려' 중 일부)
서울공화국을 이런 현실로도 체감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수도가 중요하긴 한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진 나 역시도 이해가 안 된다.



보살이 물론 중요하긴 하나 아무리 그래도 불교 조각의 꽃은 부처인데, 완전한 형태의 A급 부처 조각이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없다는 것은, 글쎄다. 솔직히 소더비스, 크리스티 등 메이저 경매에서 매년 출품되는 것이 간다라 미술 부처 조각이거든. 가격 역시 생각보다 비싸지 않음. 솔직히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만큼 최소한 간다라 미술 중 다양한 디자인의 부처 조각을 3~5점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말 최소한으로 말이지. ('불교의 도입' 중 일부)
솔직한 작가님의 생각을 책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전문가가 말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사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감상
작가님의 머릿속의 생각을 그대로 글로 적은 문제였다. 한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 보는 듯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또한 곳곳에 유물 사진이 있어서 좋았다. 특히 두 유물을 비교할 때, 두 개의 사진이 나란히 오게 배치되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 단편적으로 끊어서 배웠던 것들이 사실은 서로 인과관계로 얽힌 사이라는 걸 알았다. 청동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철이 나온 것과 같이.
유물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나올지 상상도 못 했다. 반가사유상의 형태가 나오기 위한 시대적 배경, 재료가 나오기까지의 배경 등 이런 다양한 뒷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는 어떤 유물을 놓고 유추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스마트폰이나 책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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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에로틱한 이야기가 필요해
궁금한 민지 지음 / 도파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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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

특정 주제에 대한 누군가의 생각을 가끔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책을 만났는데, 주제가 특이해서 관심이 갔다. 성과 관련한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걱정이 돼서 말을 안 하는 게 사실이라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닌데, 작가님이 그 소재로 책 한 권을 내셨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작가님이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하다.



서평

성을 떠올렸을 때 다룰 수 있는 주제인 연인, 장소, 판타지 등 여러 소재로 매 챕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단순한 야한 농담이 아니라 이야기의 주제기 성에서 인생으로 확장된다. 작가님의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현실 속 섹스란 그럴까요? 섹스는 가볍게 떠들 수 있는 웃음거리도, 정답이 정해진 지식도 아닙니다. 성은 몸의 설계도를 담은 해부학 서적에도, 섹스 테크닉 영상에도 담기지 못합니다. 성은 결국 개인의 이야기니까요. 성에는 한 사람의 욕망과 상상력, 취약함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곧 성은 한 사람의 입을 빌릴 때만 본 모습을 드러내죠. ('prologue' 중 일부)

 공감한다. 이런 부분이 성 관련해서 이야기 꺼내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호했는데 작가님이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성은 오롯이 내 입을 통해 나오는 나의 가치관이 덕지덕지 발린 내 사상의 집약체니까.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닙니다." 이 같은 표현은 서로 껄끄럽게 느껴지는 거주와 섹스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 줍니다. 한 집에 부대끼는 사람 사이에는 성적 긴장감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역으로 있던 성적 긴장감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집이라는 공간이고요.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중 일부)

 집이란 게 참 신기한 게 있던 성적 긴장감도 사라져 버린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닙니다.' 의 가족인 부부도 한때는 누구보다 뜨거웠을 연인 이었을텐데... 이쯤되니까 집이란 게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감히 짐작하건대, 누구도 성에서 고통과 쾌락을 명징하게 나눌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섹스 이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갈비뼈와 등 근육이 뻐근하고, 하반신 깊숙한 곳에 근육이 아린 느낌에서 은밀한 희열을 느낍니다. 고통과 즐거움은 오랫동안 같은 선상에 있었습니다. '고통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이 있죠. 이런 관념은 고통 속에서도 심리적 안정감을 부여합니다. ('그들 각자의 흥분, 우리 각자의 사정' 중 일부)

 섹스에서만 쾌락과 고통이 분리되기 어려운 거로 생각했는데, 저 속담을 보니 우리 일상에서도 두 감정은 두 감각은 분리되기 어려운 것 같다. 섹스가 일상의 감정들을 압축시켜 놓은 행위라는 게 와닿았다. 그 순간도 일상의 한순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지도.



당신만의 고유한 매력을 발견해 주는 사람과 만나세요. 기왕이면 그냥 꽃 말고 어떤 꽃인지 봐주는 사람이 좋겠습니다. 적어도 그와의 연애가 뻔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들 각자의 흥분, 우리 각자의 사정' 중 일부)

표현이 참 예쁘다. 단순히 꽃에 사람을 비교하는 표현도 너무 애정 어린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꽃의 종류까지 생각해내는 건... 이런 애정을 받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지는 문장이었다.



구글에 데이터 과학자로 활약한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미국 18세 이상 성인 남자는 1년에 63회 섹스를 하며 이 중 23%는 콘돔을 착용합니다. 단순 셈법으로 16억 개의 콘돔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여성의 답변을 맞춰도 콘돔 11억 개가 팔려야 하지만, 매년 팔리는 콘돔은 단 6억 개. 보수적으로 셈해도 사라진 5억 개의 콘돔은 해명이 안 됩니다. ('우리 사이엔 낮은 벽이 있어' 중 일부)

 설문 조사를 익명으로 했을 텐데 거기서도 이렇게 수치가 오류가 크게 날지 몰랐다. 섹스는 진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은밀한 영역인 거 같다. 데이터 수치가 재밌어서 작가님이 자료조사에 참고하신 '모두 거짓말을 한다.' 책을 한번 읽어 보고 싶다



감상

성 관련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작가님의 인생 가치관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인상 깊고 흥미로웠다. "성은 개인의 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문장이 왜 이 책을 표현하는 한마디인지 책 곳곳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작가님의 입을 통해 나온 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님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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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퍼즐 맞추기 - 타인의 슬픔을 들여다보는 여자들이 건넨 위로 맞불
이현정.하미나 지음 / 동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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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미나 작가와 이현정 교수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둔 책이다. 우울증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와 인류학자인 교수의 만남이라 내용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지만 내가 기진 고민을 남들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되는 책이었다.

 편지를 주고받을수록 서로 나누는 대화가 깊어지고 편해지는 게 느껴졌고 특히 한 주제에 대해 첨예한 대립이 오갈 땐 논리가 탄탄한 토론을 지켜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계기

하미나 작가님의 전작인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인상 깊게 읽고 작가님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타인과 주고받는 편지로 하미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 싶었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던 까닭은 미나의 너그러움 덕분이기도 하지만, 더 깊숙이는 둘 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언어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온 궤적과 말로 환원될 수 없는 마음속 세계를 글자만으로는 충분히 표현해내기 어려웠다. ('인사말' 중 일부)

 

모든 게 다 불만투성이로 보이고 사람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가 돋친 것처럼 버거울 때 떠올리고 싶은 문장이다. 아무리 현실이 형편없어도 분명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부분이 있을 거라는 믿음, 이 믿음은 참 따뜻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게 그것 외에 많지 않기 때문에 서로 부단히 연습하며 마음을 전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 같아요, ('부단히 연습하며 마음을 전하려 애써야 해요.' 중 일부)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양날의 검이다. 그런데도 그 검을 부지런히 갈고닦아야 하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도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나 말고도 학문적으로든 생활적으로든 더 훌륭한 사람들이 많으니, 굳이 나여야 할 이유도 없고요. 종교를 갖고 있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삶의 의미를 신에게서 찾기도 어렵고, 젊은 시절 목표였던 세상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했던 꿈은 허물어진 지 오래였어요. 오히려 살면서 세상의 숱한 고통, 세세한 잔인함과 냉혹함이 점점 더 커지는 것만을 목도해 왔으니까요. 무력감과 좌절이 엄습했고, 궁극적으로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고통을 겪었고 눈물을 흘렸고 괴로워했다고' 중 일부)

 막연히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면 인생을 사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문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난제인가보다. 막막하지만 왜인지 모를 위안이 든다.



"우린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지금도, 그리고 늙어서도 안식을 잊은 채 일할 거예요. 그러다 언젠가 우리의 때가 닥치면 불평 없이 죽어갈 거예요." 특히 이 부분에서 저는 위로를 받았어요, 나 자신만을 바라본다면 노동과 고통 속에 사는 삶은 무의미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시련과 괴로움이 조금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고통을 겪었고 눈물을 흘렸고 괴로워했다고' 중 일부)

 내 인생도 누군가가 한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일까. 형편없이 낭비하기엔 아깝긴 하다.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으니 나아지기 위해 애쓰지만,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이상적인 지향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꼭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요. 우주는 너무도 크고 나는 티끌 같은 존재니까요. 바다에 갈 때마다 그걸 느껴요. '나'라는 경계가 얼마나 허상인지도 생각하고요. ('저는 또 다른 모래성을 쌓고 싶어요.' 중 일부)

 나는 티끌같이 작은 존재. 그래서 아무거나 아무렇게 해도 괜찮은 존재라는 생각으로 살 수 있다면 사는 게 조금은 더 쉬워질 것 같다. 본받고 싶은 태도다.


제가 대선을 겪으며 가장 두렵다고 느꼈던 것은 윤석열이나 이준석, 젠더 갈라치기를 일삼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제 SNS 타임라인 속에 윤석열 지지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그 날카롭게 양분된 세계가 가장 두렵게 느껴졌어요. 서로가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서로를 향한 이해를 시작할 수 있을까 아득해졌거든요.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싶다구요!' 중 일부)

 이 부분을 읽자마자 놀랐고 큰 공감이 갔다. 세상이 내 생각보다 더 빠르게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끼리끼리 모여서 다른 집단을 아예 배척해버린다.



선생님...... 저는 주제넘게 이렇게 여쭙고 싶습니다. '결코 나아지지 않는 세상'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지 않나요?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견제하고 감시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나요? 어려운 말로 가득한 정치를 좀 더 쉽게 대중에게 전달할 책임이, 교육의 기회를 가졌던 우리에게 있지 않나요? '다 똑같은 놈'이 아니라 정말로 이상한 놈이 누구인지를 가리킬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나요?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누구도 답을 하지 않을 때, 전문가로서 대중에게 최선의 답을 제시할 책임이 지식인에게 있지 않나요? .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싶다구요!' 중 일부)

 멋있다.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그걸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저는 우리가 행동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이 나아진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이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보지 않거든요. (중략) 행동이란 "언젠가 좋아질 것이다'라는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없어도 직면한 상황에 맞서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라 결단하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이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중 일부)

 직면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서 사회변화가 온다고 믿는 거라면,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세상을 바꿀 순 있겠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한 거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명예남성' 이라고 일컫는 '가부장적' 여교수도 있어요. 그들도 젊었을 때는 여성으로서 차별을 느끼거나 힘들어했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남성화'됨으로써 그런 차별을 극복하려고 시도해왔다 보니 어느새 사회적으로 '남성'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학계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 중 일부)

 괴물과 싸울 땐 나도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직접적인 폭력이 줄어드는 만큼 더 교묘한 수법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건 꼭 성폭력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그런듯해. 우리 인간은 결국 그런 수준밖에 안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는 농담처럼 학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해.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하면, 아마도 인간들의 모습이 지긋지긋해서라도 침략이고 뭐고 그저 빨리 지구를 떠나고 싶을 거라고. ('우리의 삶은 늘 삶을 넘어서고' 중 일부)

 신선한 발상이다. 일상의 대부분은 이미 지긋지긋한 모습에 스며들어 그것이 문제인지 인지조차 못 하는 나조차도 지긋지긋한데, 이 모든 걸 아무 필터 없이 마주하는 건 너무나 지치는 일일듯하다.



감상

 편지마다 있는 소제목이 찰떡같다. 한 통의 편지를 다 읽고 앞으로 돌아가 소제목을 다시 읽었을 때 생각이 정리되면서 편지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1. 슬픔을 연구하는 슬픔

슬픔을 얘기하는 것만큼이나 듣는 것도 힘들고, 돌봄을 주는 것만큼이나 받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다시금 와닿았다. 상대가 가진 마음이 진심일수록 그 정도가 커진다는 게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건데 당연해서 그런가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깊은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행동은 주기도 받기도 어렵다.


3. 나아지기 위해, 나아지지 않더라도

같은 주제에 대해 상반되는 두 생각이 재밌었다. 둘 다 주장하는 논리에 대한 근거가 설득력 있었지만 나는 이현정 교수님 쪽이 더 공감 갔다. 지식인들이 아무리 앞장서서 계몽을 시도하려 해도 결국 일반 대중이 움직이는 건 본인들 스스로 자각할 때이고, 그 순간은 누군가의 설득으로부터는 오지 않는다.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실천하는 순간 사회는 조금씩 변하지 많이 배운 것이 꼭 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진 않는다. 우리가 사회를 망치는 주범이라고 욕하는 정치인들(구. 지식인)도 학업성취도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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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이는 밤 - 달빛 사이로 건네는 위로의 문장들
강가희 지음 / 책밥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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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안부, 사랑, 쓸쓸함, 위로 4퍼트 각각 적절한 곳에 배치되어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과 접목해 책을 소개하는데, 읽다 재미없어 덮었던 책들도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필력이었다. 앞으로 읽을 책을 두둑이 건넨 책이었다.


끝까지 '나'를 위해 살았던 뫼르소를 보며 '과연 나는 얼마나 내 감정에 귀 기울였을까?' 자문했다. (중략) 나는 뫼르소와 같은 이방인을 갈망하면서도 이방인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무의식이라 부르는 마음의 사각지대를 애써 외면했다. ('당신의 생각은 옳았다' 중 일부)

이방인이 되길 원하면서도 막상 되기는 무서운 그런 심정을 느껴본 적 있었어서 공감이 많이 가는 구절이었다.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회의 틀은 늘 내 예상보다 견고했고 그 틀 밖으로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 시끄러운 참견들이 함께했다. 자신이 옳았고, 옳고, 옳을 것이라 믿었던 뫼르소처럼 나도 내가 그랬으면 한다.


다만 찰스가 그러했듯 내 선택에 후회는 없어야 한다. 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원하는 길을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 중 일부)

달과 6펜스. 동그란데 성질은 정 반대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내가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게 정말 옳은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말로가 참 비참한데 그래도 이걸 끝까지 후회를 안 할까? 오기와 객기는 아닐까, 란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뭐 내 인생도 아닌데 내가 왈가부할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생각하길 그만뒀다.


생성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권위를 내세우며 셈에 집착했고, 술에 취하느라 자신이 한때 아름다운 꿈을 품은 아이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조종사 역시 사막에 불시착하기 전에는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로운 외계인' 중 일부)

인생을 왜 사는 걸까. 나를 다 잡아먹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이 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생각이 많아지는 구절이었다. 어린 왕자를 책장에만 꽂아두고 안 읽었는데 읽어보고 싶은 때가 드디어 왔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실은 괜찮지 않은 사람, 자신만의 외로운 지하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 사는 이가 있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에 혼자 살며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외치는 남자, 스스로 아픈 인간이라고 지칭하면서도 치료를 거부하는 남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주인공이다. ('비에 젖은 외톨이에게' 중 일부)

너무 내 얘기 같아서 꼭 읽어보고 싶다. 축축한 지하실에 스스로를 가두고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막상 알아채면 더 깊이 숨어버린다. 주인공의 인생이 궁금하다. 자살이 그 답일 것 같은 이유는 뭘까. (근데 아니었음)


19세기에 출판된 소설이 오늘날에도 영화, 뮤지컬 등으로 각색되어 사랑받는 이유는 책 속에 묘사된 프랑스의 현실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칠흑 같은 밤에 별은 더 반짝인다' 중 일부)

사회가 어쩌면 저 때보다 더 살기 팍팍해졌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님도 같은 생각이셨나보다. 보이지 않는 견고한 사회 계급의 틀을 무엇으로 부숴야 할 지조차 모르는데, 이건 상황의 악화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레미제라블이 왜 아직도, 심지어 지구반대펀 한국에서 각종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어서 씁쓸했다.


주인공은 행동했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다. 파우스트는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난봉 짓을 일삼으며 살인마저 서슴지 않았던 그가 천상으로 간 것은 한 번도 인생을 방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패할지라도 일어서기만 한다면' 중 일부)

살인보다 방관을 더 큰 죄로 여긴 괴테의 생각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욕망에 충실해 매 순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그렇게 사는 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 함께 앉아주는 사람, 펑펑 우는 내가 창피할까 봐 같이 울어주는 사람, 기꺼이 우산 밖으로 나와 나란히 비를 맞아주는 사람, 그 사람들로 인해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중 일부)

가끔 주변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면 내가 이 행동들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란 의문이 들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고 빚을 진 것 같다. 받을 줄 아는 것도 능력이란 말이 떠올랐다.


죽을 각오까지 했으면서 왜 고도를 찾아 나서지 않는 것일까? 발걸음이라도 한 번 옮길법한데 일체의 움직임도 없다. 언제 올지도 모를 고도를,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두 사람은 읽는 이에게마저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며, 누구의 기다림인가' 중 일부)

고도 고도 고도 고도... 고도는 나에게 무엇일까. 찾으러 가야 하는 걸 알지만 선뜻 몸이 안 움직여지는 걸까 움직일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는 걸까. 이도 아니면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내 능력 밖의 일일까. 고도는 뭐고 나는 뭘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감상

 작가님은 책 추천의 귀재셨다. 인간의 존재는 뭔지,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읽으며 고민해보고 싶은 '이방인', 인생을 왜 사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 같은 '어린 왕자', 너무 내 얘기 같아서 읽어보고 싶은 '지하로부터의 수기', 살기 팍팍한 당시 사회상을 그렸지만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고 보여지는 '레 미제라블', 욕망에 충실한 삶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나를 설득시킬 수 있을지 궁금한 '파우스트', 내 인생의 고도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자세로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싶은 '고도를 기다리며'. 이 중 다수는 예전에 읽다 재미없어서 덮었던 책인데 작가님 덕분에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 추천하는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랑, 위로같이 요즘 시대에 먹고 살기 바쁘다고 등한시되는 감정들에 집중해 쓰인 책이다. 저런 감정들을 유치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었다.
여러모로 생각할 것을 많이 남긴 책이었다. 고전이 왜 고전인지 작가님 덕분에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 이제 나는 소개받은 책들을 읽고 온전히 나만의 것을 느낄 시간만 남았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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