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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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정권에서 예술을 탄압하는 이유를 몰랐는데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책 전체가 울부짖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상황이 베네수엘라 그 자체다.


다른 사람의 장바구니를 훔쳐보고 공급이 달리던 무언가를 이웃이 가지고 있다면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캐고 다니며 살았다. 우리는 모두 수상한 사람, 경계하는 사람이 되었고, 연대를 약탈로 둔갑시켰다. (24쪽)

생존의 위협 때문에 돈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심정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생존의 위협까지는 아니지만 여유가 없을 때 나도 가끔 연대가 약탈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내 행동에 자괴감이 들지만, 여유가 없을 땐 자괴감을 느낄 여력도 없다. 시간이 지나 숨을 고를 수 있을 때쯤 그땐 그랬지, 라며 회상하는 게 전부다. 그래서 더 별로다.


나는 잘 지내지 못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상황이 더 나빴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빈사자들의 행렬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입을 다물어야 마땅했다. (66쪽)

재난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도 느낄 새도 없이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주인공이 느끼는 죄책감이 와닿았다. 작가님이 덤덤하게 사람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잘 쓰신다.


산티아고는 대학 입학시험에서 상위 열 번째에 들었다. (중략) 국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않았어도, 저 애는 아마 중앙은행 관리자가 됐을 거야, 아나가 말하곤 했다. (166~167쪽)

국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표현이 인상 깊다. 베네수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



감상

일상 속에 죽음이 아무렇지 않게 스며든 광경이 소름 돋았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서로를 때리고 죽이는지 멍해지는 장면들이 많았다. 욕망이 이 모든 비극의 시작과 연료라는 게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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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의 심리학 - 냄새는 어떻게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가
베티나 파우제 지음, 이은미 옮김 / 북라이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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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지만 그 어느 기관보다 우리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코'. 관련 연구가 많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수십 년간 연구해온 저자의 노력이 책에 담겨있다. 이유 없이 느꼈던 감정이 코 때문이었을까…? 란 의문을 남긴 책이다.



전적으로 후각에 의존하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시각과 청각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중략) 하지만 의식적으로만 그렇다. 처음 가 본 곳인데 들어서자마자 욕을 하지는 않는다. 우선 주변을 한번 훅 훑어본다. 하지만 코는 솔직하다. 불편한 냄새가 나면 되돌아가라고 말한다. (53쪽)

 후각이 비이성적(짐승에 가까운)이라 후각으로 느꼈음에도 이성적 근거를 찾는 모습이 되게 이질감 들었다. 나도 어떤 공간이 이유 없이 싫었던 적이 있는데, 내 코가 뭘 감지해서 그랬던 걸까.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성의 뇌가 남성의 것보다 작으니 여자가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도 뇌의 영역별 크기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진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질과 양의 개념을 잠시 혼동한 걸까? 참 어이없는 발상이지 않을 수 없다. (77쪽)

 차지하는 자리가 크면 중요한 거 아니가, 란 생각을 나도 무의식중에 했는데 질과 양을 혼동하지 않게 항상 주의해야겠다.



그런데 성당에서 부엌 냄새가 나고 부엌에서 병원 냄새가 난다면? 아뿔싸! 이때는 종소리가 아닌 경고음이 울린다. (181쪽)

 근데 이건 후각뿐만 아니라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 아닌가? 시각, 청각, 촉각, 미각 전부 무의식중 기대했던 것과 다르면 우리는 신경을 곤두세운다.



관련 증거를 요약해 보자면 생존에 필수적인 냄새는 꼭 학습할 필요가 없다. 추측건대 우리 코에는 특성화된 수용체, 즉 TAARs가 있고 후각뇌에는 특정 세포군이 있어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무엇이 위험한지를 이미 알고 있다. (193쪽)

 신기하다. 이런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을 거니까 지금은 진화의 결과 모든 생물이 감지할 수 있게 된 건가?



우리 인간이 우수하게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망치로 못을 박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간단한 도구는 동물도 사용할 줄 안다. 인간이 월등하게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적으로 아주 똑똑하고 융통성 있기 때문이다. (269쪽)

 공감 능력이 지능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을 믿었지만, 근거는 딱히 못 찾았었는데 이제 찾았다. 각 사람,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내놓는 건 지능이 높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코가 싫어하는 사람은 좋아할 수 없다. 이 모든 게 후각 세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러한 상황을 때로는 좀 더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더는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된다.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니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288쪽)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는데, 그게 사실은 코 때문이었을까? 잘 믿기진 않는데 신기한 발상이다.


감상

 코와 관련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다룬 책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해서 읽는 내내 신기했다. 코가 생각보다 더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단 사실을 여러 근거를 들어가며 저자가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인간이 쉽게 바뀌지 않듯 아직은 잘 믿기지 않는다. 이런 연구가 좀 더 대중화되고 관련된 내용을 여러 번 접하다 보면 언젠가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유 없는 감정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는데, 그게 코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빨리 더 많은 관련 연구가 나오길 기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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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얼로그 - 전시와 도시 사이
유영이 지음 / 효형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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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와 전시가 무슨 관계가 있을지 궁금했는데 도시는 전시 그 자체였다. 다만 너무 일상이라 우리가 모르고 지나칠 뿐. 의미를 부여하면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는 말이 와닿는 책이었다. 작가는 전시와 도시 그 경계에 있는 꽃을 가꾸고 피워나가는 중이다.



이런 길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이미 짧고 편리한 길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만나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개구멍의 공간 너머, 장면 너머를 보면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 (66쪽)

개구멍 뒤에도 사람이 있다는 말이 인상 깊다. 주변의 모든 것이 의도를 가지고 설계된 게 와닿고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중동, 이집트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뿐만 아니라 건축물까지 분해하여 가져온 후 독일에서 재조립한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에 건물 안에 있는 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71쪽)

와... 유물을 훔쳐 간 것도 모자라 건물을 분해해 가져가 재조립이라니... 진짜 상상을 초월하게 무식하다. 건물 안에 있는 건물이 멋있게 느껴졌는데, 이젠 끔찍하다.



유심히 찾아보면 도시 곳곳에 시간이 녹아 있다. 공간을 어떠한 깊이로 보는가,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장소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93쪽)

공간에 시간이 녹아있다는 말이 인상 깊다. 내가 방금 걸었던 길도 수천 년부터 누군가가 걸었을 길일 텐데 그때는 흙길이었겠지. 이렇게 생각하니까 도시가 조금 새롭게 보인다.



유명한 예술가의 집이나 작업실이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어쩌면 한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 살았던 환경 예술적 영감의 원천, 창작을 위한 노고,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모든 정보를 함께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 말이다. (105쪽)

누군가의 생가, 묶었던 곳, 방문한 곳이 왜 유명명소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공간에 투영된 것이었다.



더군다나 전시품의 이름과 설명이 놓여 있지 않아 작품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지식층은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전시품과 엮어 이해하고, 귀족층은 개인 교사를 동행하며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었으나 일반인에게 박물관은 엘리트주의의 대표적 상징으로 그저 두리번거리다가 출구에 도착해 나오게 되는 장소에 가까웠다. (121쪽)

이래서 박물관, 미술관을 떠올리면 어렵고 난해하단 생각이 드는 거였구나. 사실 설명이 적혀있는 지금도 딱히 작품이 잘 이해되진 않는다.



감상
코로나로 인해 전시의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 상상했을 때, 온라인 전시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는데 '도시' 그 자체가 전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해 밖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도시에 이미 나와 있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 자체를 전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일 아침에 걸을 거리가 어제와는 달라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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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in 쿠바 - 쿠바에서 한류를 찾다
홍지영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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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와 한류. 낯설어 보이는 이 조합을 발견한 작가는 본인이 쿠바에서 겪은 일을 글과 사진으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한류가 유행이라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어떤지는 처음 봤는데, 상상 이상으로 잘 퍼지고 있었다. 정말 한국문화 르네상스가 올지도 모르겠다.



다시 정리하자면, 쿠바에서는 학교를 졸업하며 대부분이 직업적성 테스트를 거쳐 직장을 가지게 되며, 한번 직장을 가지면 그 안에서는 경쟁이 없다. (중략) 직무를 대충 수행해도 정해진 임금은 받으며, 일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없다. (67쪽)

 사회주의 직장을 처음 보는데 이러면 이윤이 발생하는지 궁금하다. 다 같이 적당히 아니 적당히도 안 하고 대충해서 망할 것 같은데... 너무 무한경쟁 자본주의에 찌든 사상인가? ㅋㅋㅋㅋ


올해 초 3월, 쿠바는 봉쇄를 하고 자가 격리를 했다. (중략) 그래서 의대생들과 함께 집집마다 방문하여 아픈 환자가 있는지, 혼자 집에서 앓고 있는 환자는 없는지 찾아내는 동시에 마스크 착용법, 손 씻는 법 등의 청결 교육을 겸하였다. (79쪽)

 의사가 환자의 집을 찾아간다는 게 신기하다. 심지어 여러 관련 사항을 교육해주는 것도 여기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2010년 이후 한국 드라마를 쿠바 국영 방송으로 시청하면서도, 한국 것인지 모르고 중국드라마라고 여기며 시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172쪽)

 이게 뭐니 도대체. 좋은 걸 실컷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그 공은 정작 이상한 데로 가버린다.


"(가수들의 잇따른 자살을 보면) 솔직히 한국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나라다. 내 친구들이 한국 아티스트들을 팔로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친구들의 심리적 안정을 걱정하고 있다."

 -K-POP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인식과 생각이 바뀌었는가? 에 대한 답변 중 일부- (181쪽)

 팔로우하는 것까지 걱정하는 건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을 곱씹을수록 내가 사회에 너무 찌든 것 같았다. 너무 오래 잘못된 환경에 노출돼서 뭐가 잘못된 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 사실 지금도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어서 혼란스럽고 답답하다. 하나를 고친다고 고쳐질 게 아니라, 하나를 고치자고 달려들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다 딸려 나올 것 같다. 솔직히 무섭다.


"사람답게 살려면 좋은 직장과 엄청난 공부가 필요한 나라이다." 

-한국 사회의 현실이 K-DRAMA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나? 에 대한 답변 중 일부- (191쪽)

 드라마는 많이 미화된 편이고 현실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드라마에서 이 정도를 느끼는 거면 우리 사회가 참 팍팍하긴 하구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되지.'라고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여행객들도 신용카드 사용을 못 하는 나라인데, 쿠바인들에게 온라인의 결제수단이자 자본주의 시스템의 상징물인 신용카드가 있을 리가 없다. (213쪽)
 아... 인터넷으로 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감상
 한국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이 처음에 일본 문화를 좋아하다 한국 문화로 넘어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류가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한 줄 알았는데, 그 전부터 이미 일본 문화는 퍼져있었다. 우리나라도 한류를 알리는데 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으면 좋겠다.

 서로 돕는 정 문화와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를 다들 본받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되게 부끄러웠다. 정문화도 공경도 딱히 크게 실천을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일상에 스며들어서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버스 요금이 없어서 당황하고 있는 사람 대신 요금을 내주거나 길거리에서 폐지 카트를 끌고 가는 어르신들을 가끔 도와드리는데 이런 게 저들이 부러워했던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데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되게 별거다. 우리 문화가 다른 나라 사람의 눈에 비친 모습이 새로웠고 신선한 자극이었다.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때 공통으로 아쉬워했던 점이 앨범, 음식이었다. 앨범을 구하기가 어렵고 음식을 해먹을 재료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부분이 빨리 해결되어 한류가 이들 사이에 더 깊이 스며들었으면 한다.

 쿠바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남미에 있는 나라밖에 없었는데, 공공의료, 사회주의같이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하다고 하지만 큰 체제 속에서는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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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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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허기는 자기 부정에서 비롯된 자기혐오에서 출발해 결국은 자기파멸에 이른다. 다양한 자기부정의 원인과 다채로운 자기파멸의 방법이 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 내 의지는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고민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름 붙이지 못한 허기는 무시무시한 허기가 되고 자기 불신의 근원이 된다. (91쪽)

 작가가 느끼는 허기를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는데, 작가 역시 '이름 붙이지 못한 허기'로 수식했다. 이름이 없는 건 대개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뭘 원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작가의 혼란스러움을 나도 느껴본 적 있어서 자기 불신의 근원이 된다는 말이 공감 갔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당신의 아이를 더 이상 돌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어머니는 있는 용기를 모두 끌어 모아야 했다. (123쪽)

 내 자식도 키우기 버거운데, 남의 자식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아빠라는 작자에 치가 떨린다. 이게 사회가 만든 틀이다. 어머니는 이 말을 하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자신의 성격, 가치관을 의심했을 것이다.


진정한 열정과 독립적인 욕망을 지닌 여자, '먹이다'라는 말의 모든 의미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먹이는 것만큼 자신에게도 충실하고 한결같이 먹이는 여자는 거기 없다. (136쪽)

 내가 나를 우선시 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일을 하면 죄짓는 것 같고 주변에서도 이기적이라는 눈길을 보낸다. 그러면 내 가치관이 또 흔들린다. 나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일까?


현대적 의미에서 섹시해 보이는 것-노출되고, 순종적이며, 공격에 취약하며, 심지어 폭행당한-은 무기력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며, 이것은 대체로 욕구를 자극하기 보다 잠재운다. (182쪽)

 이딴 왜곡된 성인식을 심어주는 것들을 그만 생산했으면 좋겠다. 가만히 있던 여성들이 너무 많은 피해를 본다.


각자 정반대의 위치에서 바라보았지만 레슬리와 내가 둘 다 똑같이 이해하게 된 사실은, 자기의 가치를 외모와 결부시키는 일은 매일 한순간도 빠짐없이 경계하고 조심해야만 하는 외줄 타기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231쪽)

 말라도 문제, 뚱뚱해도 문제... 외모와 자신의 가치를 결부시키는 게 쉽지 않다. 뚱뚱하면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살이 빠지면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나도 이런 구역질 나는 생각을 하는 내가 싫어서 그냥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강박적 도둑질, 자해, 폭식증은 서로 무관하고 전혀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이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징들에 깊이 의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332쪽) 

 말을 할 줄 모르는 건지 알면서 안 하는 건지 한참 생각해봤는데, 할 줄 모르는 것 같다. 한 번도 누군가 표현하는 걸 본 적이 없고 애초에 내가 뭘 표현하고 싶은지 조차 모르니까 그게 행동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자해하는 이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살갗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344쪽)

 내가 원인이 아닌 일로 화가 났는데, 그 분풀이 대상이 자신이 되는 건 너무 슬프고 아픈 일이다.



감상

1장: 케이크 더하기, 자존감 빼기

 표현은 다른데 내용은 같다. 알게 모르게 여성의 욕구를 억압하는 사회에서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체중이다. 나도 이것저것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는 사람으로서 읽으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문화의 노예구나 싶었다. 속이 답답했다. 내가 체중 뒤에 숨어서까지 숨기고 싶은 욕구는 뭐고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할까 고민해봤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더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3장: 내 배가 싫어, 내 허벅지가 싫어

 자기 몸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내 주변에서 본 익숙한 장면들이라 읽으면서 참 씁쓸했다. 가정, 학교에서 시작된 외모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사회로 나가면서 더 견고해진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나는 무엇에 허기를 느끼는지 고민했는데, 역시 대답하기 어려웠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했다. 내가 그간 무의식중 한 행동들이 무언가에 허기를 느껴서 한 행동들이었다면 나는 이제 그것들을 채워줘야 하는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받아들이기'였다. 내 모습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걸 받아들일 마음을 가지는 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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