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로그 - 전시와 도시 사이
유영이 지음 / 효형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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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와 전시가 무슨 관계가 있을지 궁금했는데 도시는 전시 그 자체였다. 다만 너무 일상이라 우리가 모르고 지나칠 뿐. 의미를 부여하면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는 말이 와닿는 책이었다. 작가는 전시와 도시 그 경계에 있는 꽃을 가꾸고 피워나가는 중이다.



이런 길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이미 짧고 편리한 길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만나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개구멍의 공간 너머, 장면 너머를 보면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 (66쪽)

개구멍 뒤에도 사람이 있다는 말이 인상 깊다. 주변의 모든 것이 의도를 가지고 설계된 게 와닿고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중동, 이집트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뿐만 아니라 건축물까지 분해하여 가져온 후 독일에서 재조립한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에 건물 안에 있는 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71쪽)

와... 유물을 훔쳐 간 것도 모자라 건물을 분해해 가져가 재조립이라니... 진짜 상상을 초월하게 무식하다. 건물 안에 있는 건물이 멋있게 느껴졌는데, 이젠 끔찍하다.



유심히 찾아보면 도시 곳곳에 시간이 녹아 있다. 공간을 어떠한 깊이로 보는가,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장소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93쪽)

공간에 시간이 녹아있다는 말이 인상 깊다. 내가 방금 걸었던 길도 수천 년부터 누군가가 걸었을 길일 텐데 그때는 흙길이었겠지. 이렇게 생각하니까 도시가 조금 새롭게 보인다.



유명한 예술가의 집이나 작업실이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어쩌면 한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 살았던 환경 예술적 영감의 원천, 창작을 위한 노고,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모든 정보를 함께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 말이다. (105쪽)

누군가의 생가, 묶었던 곳, 방문한 곳이 왜 유명명소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공간에 투영된 것이었다.



더군다나 전시품의 이름과 설명이 놓여 있지 않아 작품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지식층은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전시품과 엮어 이해하고, 귀족층은 개인 교사를 동행하며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었으나 일반인에게 박물관은 엘리트주의의 대표적 상징으로 그저 두리번거리다가 출구에 도착해 나오게 되는 장소에 가까웠다. (121쪽)

이래서 박물관, 미술관을 떠올리면 어렵고 난해하단 생각이 드는 거였구나. 사실 설명이 적혀있는 지금도 딱히 작품이 잘 이해되진 않는다.



감상
코로나로 인해 전시의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 상상했을 때, 온라인 전시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는데 '도시' 그 자체가 전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해 밖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도시에 이미 나와 있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 자체를 전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일 아침에 걸을 거리가 어제와는 달라 보일 것 같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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