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이는 밤 - 달빛 사이로 건네는 위로의 문장들
강가희 지음 / 책밥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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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안부, 사랑, 쓸쓸함, 위로 4퍼트 각각 적절한 곳에 배치되어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과 접목해 책을 소개하는데, 읽다 재미없어 덮었던 책들도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필력이었다. 앞으로 읽을 책을 두둑이 건넨 책이었다.


끝까지 '나'를 위해 살았던 뫼르소를 보며 '과연 나는 얼마나 내 감정에 귀 기울였을까?' 자문했다. (중략) 나는 뫼르소와 같은 이방인을 갈망하면서도 이방인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무의식이라 부르는 마음의 사각지대를 애써 외면했다. ('당신의 생각은 옳았다' 중 일부)

이방인이 되길 원하면서도 막상 되기는 무서운 그런 심정을 느껴본 적 있었어서 공감이 많이 가는 구절이었다.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회의 틀은 늘 내 예상보다 견고했고 그 틀 밖으로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 시끄러운 참견들이 함께했다. 자신이 옳았고, 옳고, 옳을 것이라 믿었던 뫼르소처럼 나도 내가 그랬으면 한다.


다만 찰스가 그러했듯 내 선택에 후회는 없어야 한다. 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원하는 길을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 중 일부)

달과 6펜스. 동그란데 성질은 정 반대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내가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게 정말 옳은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말로가 참 비참한데 그래도 이걸 끝까지 후회를 안 할까? 오기와 객기는 아닐까, 란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뭐 내 인생도 아닌데 내가 왈가부할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생각하길 그만뒀다.


생성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권위를 내세우며 셈에 집착했고, 술에 취하느라 자신이 한때 아름다운 꿈을 품은 아이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조종사 역시 사막에 불시착하기 전에는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로운 외계인' 중 일부)

인생을 왜 사는 걸까. 나를 다 잡아먹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이 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생각이 많아지는 구절이었다. 어린 왕자를 책장에만 꽂아두고 안 읽었는데 읽어보고 싶은 때가 드디어 왔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실은 괜찮지 않은 사람, 자신만의 외로운 지하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 사는 이가 있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에 혼자 살며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외치는 남자, 스스로 아픈 인간이라고 지칭하면서도 치료를 거부하는 남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주인공이다. ('비에 젖은 외톨이에게' 중 일부)

너무 내 얘기 같아서 꼭 읽어보고 싶다. 축축한 지하실에 스스로를 가두고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막상 알아채면 더 깊이 숨어버린다. 주인공의 인생이 궁금하다. 자살이 그 답일 것 같은 이유는 뭘까. (근데 아니었음)


19세기에 출판된 소설이 오늘날에도 영화, 뮤지컬 등으로 각색되어 사랑받는 이유는 책 속에 묘사된 프랑스의 현실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칠흑 같은 밤에 별은 더 반짝인다' 중 일부)

사회가 어쩌면 저 때보다 더 살기 팍팍해졌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님도 같은 생각이셨나보다. 보이지 않는 견고한 사회 계급의 틀을 무엇으로 부숴야 할 지조차 모르는데, 이건 상황의 악화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레미제라블이 왜 아직도, 심지어 지구반대펀 한국에서 각종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어서 씁쓸했다.


주인공은 행동했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다. 파우스트는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난봉 짓을 일삼으며 살인마저 서슴지 않았던 그가 천상으로 간 것은 한 번도 인생을 방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패할지라도 일어서기만 한다면' 중 일부)

살인보다 방관을 더 큰 죄로 여긴 괴테의 생각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욕망에 충실해 매 순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그렇게 사는 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 함께 앉아주는 사람, 펑펑 우는 내가 창피할까 봐 같이 울어주는 사람, 기꺼이 우산 밖으로 나와 나란히 비를 맞아주는 사람, 그 사람들로 인해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중 일부)

가끔 주변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면 내가 이 행동들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란 의문이 들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고 빚을 진 것 같다. 받을 줄 아는 것도 능력이란 말이 떠올랐다.


죽을 각오까지 했으면서 왜 고도를 찾아 나서지 않는 것일까? 발걸음이라도 한 번 옮길법한데 일체의 움직임도 없다. 언제 올지도 모를 고도를,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두 사람은 읽는 이에게마저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며, 누구의 기다림인가' 중 일부)

고도 고도 고도 고도... 고도는 나에게 무엇일까. 찾으러 가야 하는 걸 알지만 선뜻 몸이 안 움직여지는 걸까 움직일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는 걸까. 이도 아니면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내 능력 밖의 일일까. 고도는 뭐고 나는 뭘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감상

 작가님은 책 추천의 귀재셨다. 인간의 존재는 뭔지,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읽으며 고민해보고 싶은 '이방인', 인생을 왜 사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 같은 '어린 왕자', 너무 내 얘기 같아서 읽어보고 싶은 '지하로부터의 수기', 살기 팍팍한 당시 사회상을 그렸지만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고 보여지는 '레 미제라블', 욕망에 충실한 삶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나를 설득시킬 수 있을지 궁금한 '파우스트', 내 인생의 고도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자세로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싶은 '고도를 기다리며'. 이 중 다수는 예전에 읽다 재미없어서 덮었던 책인데 작가님 덕분에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 추천하는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랑, 위로같이 요즘 시대에 먹고 살기 바쁘다고 등한시되는 감정들에 집중해 쓰인 책이다. 저런 감정들을 유치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었다.
여러모로 생각할 것을 많이 남긴 책이었다. 고전이 왜 고전인지 작가님 덕분에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 이제 나는 소개받은 책들을 읽고 온전히 나만의 것을 느낄 시간만 남았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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