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에로틱한 이야기가 필요해
궁금한 민지 지음 / 도파닌 / 2022년 11월
평점 :
품절


계기

특정 주제에 대한 누군가의 생각을 가끔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책을 만났는데, 주제가 특이해서 관심이 갔다. 성과 관련한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걱정이 돼서 말을 안 하는 게 사실이라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닌데, 작가님이 그 소재로 책 한 권을 내셨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작가님이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하다.



서평

성을 떠올렸을 때 다룰 수 있는 주제인 연인, 장소, 판타지 등 여러 소재로 매 챕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단순한 야한 농담이 아니라 이야기의 주제기 성에서 인생으로 확장된다. 작가님의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현실 속 섹스란 그럴까요? 섹스는 가볍게 떠들 수 있는 웃음거리도, 정답이 정해진 지식도 아닙니다. 성은 몸의 설계도를 담은 해부학 서적에도, 섹스 테크닉 영상에도 담기지 못합니다. 성은 결국 개인의 이야기니까요. 성에는 한 사람의 욕망과 상상력, 취약함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곧 성은 한 사람의 입을 빌릴 때만 본 모습을 드러내죠. ('prologue' 중 일부)

 공감한다. 이런 부분이 성 관련해서 이야기 꺼내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호했는데 작가님이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성은 오롯이 내 입을 통해 나오는 나의 가치관이 덕지덕지 발린 내 사상의 집약체니까.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닙니다." 이 같은 표현은 서로 껄끄럽게 느껴지는 거주와 섹스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 줍니다. 한 집에 부대끼는 사람 사이에는 성적 긴장감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역으로 있던 성적 긴장감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집이라는 공간이고요.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중 일부)

 집이란 게 참 신기한 게 있던 성적 긴장감도 사라져 버린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닙니다.' 의 가족인 부부도 한때는 누구보다 뜨거웠을 연인 이었을텐데... 이쯤되니까 집이란 게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감히 짐작하건대, 누구도 성에서 고통과 쾌락을 명징하게 나눌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섹스 이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갈비뼈와 등 근육이 뻐근하고, 하반신 깊숙한 곳에 근육이 아린 느낌에서 은밀한 희열을 느낍니다. 고통과 즐거움은 오랫동안 같은 선상에 있었습니다. '고통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이 있죠. 이런 관념은 고통 속에서도 심리적 안정감을 부여합니다. ('그들 각자의 흥분, 우리 각자의 사정' 중 일부)

 섹스에서만 쾌락과 고통이 분리되기 어려운 거로 생각했는데, 저 속담을 보니 우리 일상에서도 두 감정은 두 감각은 분리되기 어려운 것 같다. 섹스가 일상의 감정들을 압축시켜 놓은 행위라는 게 와닿았다. 그 순간도 일상의 한순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지도.



당신만의 고유한 매력을 발견해 주는 사람과 만나세요. 기왕이면 그냥 꽃 말고 어떤 꽃인지 봐주는 사람이 좋겠습니다. 적어도 그와의 연애가 뻔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들 각자의 흥분, 우리 각자의 사정' 중 일부)

표현이 참 예쁘다. 단순히 꽃에 사람을 비교하는 표현도 너무 애정 어린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꽃의 종류까지 생각해내는 건... 이런 애정을 받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지는 문장이었다.



구글에 데이터 과학자로 활약한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미국 18세 이상 성인 남자는 1년에 63회 섹스를 하며 이 중 23%는 콘돔을 착용합니다. 단순 셈법으로 16억 개의 콘돔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여성의 답변을 맞춰도 콘돔 11억 개가 팔려야 하지만, 매년 팔리는 콘돔은 단 6억 개. 보수적으로 셈해도 사라진 5억 개의 콘돔은 해명이 안 됩니다. ('우리 사이엔 낮은 벽이 있어' 중 일부)

 설문 조사를 익명으로 했을 텐데 거기서도 이렇게 수치가 오류가 크게 날지 몰랐다. 섹스는 진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은밀한 영역인 거 같다. 데이터 수치가 재밌어서 작가님이 자료조사에 참고하신 '모두 거짓말을 한다.' 책을 한번 읽어 보고 싶다



감상

성 관련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작가님의 인생 가치관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인상 깊고 흥미로웠다. "성은 개인의 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문장이 왜 이 책을 표현하는 한마디인지 책 곳곳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작가님의 입을 통해 나온 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님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