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된 후 15년 - 부모, 아이의 마음을 열다
박경남 지음 / 북씽크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내 아이가 사회에서 한 인격체로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부모 역시 불필요한 권위를 벗어라. 권위는 상대의 복종이 있어야 가능하니 말이다. 내 아이가 생명과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먼저 부모부터 학습이 되어야 한다.

가정은 인권교육의 자장 중요한 현장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비난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욕하는 걸 배우고, 조롱 속에서 자란 아이는 부끄러움을 배우고, 책망 받으며 자란 아이는 죄의식을 배운다고 한다. 반대로 용기를 얻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배우고, 공정함 속에서 자란 아이는 정의감을 배우고, 인정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고 한다. 이것이 부모가 새겨야 할 인권교육의 중요성이다. 194쪽


매번 자녀 양육 관련 책을 읽으면 후회합니다. 반성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하게 된다. 왜 책을 읽는 순간엔 내 잘못을 확실하게 깨닫고 지금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지만 막상 상황발생시엔 말짱 도루묵인 형국으로 버럭 고함을 치고, 아이의 말을 듣기보다 부모로서 하고 싶은 말을 먼저 내뱉고 마는지, 돌아서서 후회하고, 시행착오의 거듭으로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부모의 전형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또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부모된 후 15년은 정말 내게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부드럽게 말하는 책이다.

올해로 큰 녀석이 만 15세가 되었으니 시기상으로도 저자와 나의 경험은 일치하나 단 외동딸을 키우는 것과 형제를 키우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답이 없는 것일지라도 첫단추부터 준비없이 덜컥 부모가 되었고 그저 모든 일이 아이들 잘되라는 마음에서 하는 행위였다고는 하지만 초보 운전자가 범하는 문제처럼 아이들도 나의 무지로 인해 많은 시달림을 당하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다시한번 재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딸 아이를 키우면서 체득한 노하우와 경험담, 다른 부모들의 사례들을 아주 쉽게 이야기 하나 결코 허투루 들어서는 안될 내용들이 빼곡하다.

 

문제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 아이의 미소, 짜증, 화냄, 말없음, 이상행동 모두가 아이는 부모에게 뭔가 할 말이 있어요, 관심을 받고 싶어요, 사랑을 받고 싶어요, 뭔가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고 반응을 하는데. 부모는 다른 일을 하느라 알았어, 나중에 이야기해, 그것도 못하니, 어디서 짜증이야, 다짜고짜 니가 잘못했네라는 반응을 하는 것이 일상화 되면 질풍노도의 시기엔 대화단절, 더 나이가 들면 대화 없는 가족의 전형이 되어 신문에 화제가 된 냉장고는 내게 먹을 것을 주는데 아버지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일기를 쓰는 자녀를 만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아이가 불완전하다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부정적인 접근엔 용케도 이용하다가 아이를 이해하는 대목에선 부모가 완전 옳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으면 잘못이단 잣대를 쉽게 들이댄다. 불완전한 존재라 하더라도 아이 역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을 해야 하는데도 마치 부모의 소유물이라도 되는 냥, 아이의 의사나 선택은 고려하지 않고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게 되고, 아이의 꿈이 아니라 부모의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보상책으로, 부모가 원하는 꿈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지나 않은지~

 

불행한 부모 아래서 자라면 불행한 아이로 성장하고 행복한 부모 아래서 자라면 행복한 아이가 된다. 부모가 모범을 보이고, 부모라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부모, 책을 읽고 공부하는 부모의 모습, 사회적 약자를 돕고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까지도 아이는 부모로부터 배운다. 옆걸음난 걷는 어미게가 자식게에게 백날 바로 걸어라해도 바로 걸을 수 없는 것처럼 부모는 문제행동을 일삼으면서 아이더러 바로 자라라고 해서는 아니될 말씀이다.

 

어느 책에서 보면 아이가 부모에게 뭔가 할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하던 일을 일단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절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은 삼가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외치던 부모가 어느 순간 돌변하여 다른 아이와 아이를 비교하고 아이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남들이 하니까, 너만 뒤처지면 안되지 하는 생각으로 부모 욕심이 지나치는 순간에 이른다.

 

저자의 딸은 자기 주관이 확실하고, 엄마와 대화를 많이하고 사교육에 몰입시키지 않아 성적은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질지라도 부모로 인한 스트레스 지수는 0에 가깝고 다른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는 정도, 약자를 위하는 마음씀으로 우등상보다 더 좋은 감사장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는 질책, 비교, 잔소리보다는 칭찬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때로는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 경우 꾸중도 필요하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게임이나 만화 읽기를 강제로 못하게 해도 아이는 그것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 공부를 해도 효과가 없음에도 부모는 강권으로 못하게 막아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온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고,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아이, 행동을 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할 줄 아는 아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남의 입장을 헤아릴줄 아는 아이, 자기 주도적인 아이로 성장해야 하는데!

부모의 의중과는 다르게 부모의 마음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아이가 있다면 먼저 부모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주변에도 홈스쿨을 하거나 친구와의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보는 아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싶어도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에 정말로 조기교육이 필요한 인성교육보다는 학교 성적을 올리는 지식교육에 몰입하게 된다.

 

우리의 교육체제가 바뀌지 않는데 우리집만 바뀐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저자 가족 수준은 아니라도 아이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느낌을 이해하는 친구 같은 부모 좋은 부모가 되어 꿈을 이루고도 불행한 아이가 아니라 꿈은 이루지 못해도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에이 말만 그렇지 속으론 성공한 자녀를 원하고 있지 않나~ 이승긴 올해만 80억을 벌었다네~ 허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구려 3 - 미천왕, 낙랑 축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동이족이란 이름보다 단군의 피를 물려받은 단일민족이란 신화를 고집하다 보니 우리와 한뿌리였던, 하나의 역사를 이어온 갈레라 할 수 있는 부족(말갈, 숙신 등)을 중화주의의 눈으로 우리 역시 그들을 오랑캐라 칭하는 역사를 바른 역사라고 배워왔다(한족에겐 그들을 제외한 모두가 오랑캐였음에도 조금 나은 대접을 받는 오랑캐라는 지위를 좋게 보는 시각이 아직도 남아있다. 삼국시대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 우리와 한족은 그럴싸하고 다른 부족은 아주 무식하게 그려진다. 인의예지신도 모르는 미개한 족속)

 

그래서 우리가 얻은 것은 한반도 갇혀버린 역사라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광활한 대륙을 호령하는 역사란 생각이 든다. 발해가 우리 민족사에 편입된 것도 그리 오리되지 않았다(암기시험에 나오는 지배층은 고구려유민, 피지배층은 말갈족.. 우리의 심층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얼보다는 타민족을 지배하는 침략자의 얼이 강하게 묻어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것이 개인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중화를 욕하면서 소중화를 자처하는 우리의 모순은 무엇이란 말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우리들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우리 역사 이야기과 현실의 문제를 소재로 독자들을 사로잡아온 작가 김진명이 10년의 준비끝에 내놓은 고구려사 복원을 위한 팩션 시리즈 미천왕편을 첫편으로 내놓았다. 을불이란 이름도 창조리라는 이름도 생소하고 단순히 암기위주로 배운 낙랑군을 몰아낸 미천왕이 내가 가진 지식의 전부다.

 

한나라가 조선을 무너뜨리고 세운 한사군(낙랑, 임둔, 현도, 진번군)이 무려 400년 가까이 우리 민족의 운명을 쥐락펴락한다. 한4군이 일제 식민사관이 심어놓은 대로 한반도내에 있다는 설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한 우리 민족의 상고사는 제대로 복원하기 어렵다는 설을 근거로 이 소설은 대륙에 낙랑군이 있었고 이를 사이에 두고 모용선비, 고구려, 백제가 다툼을 벌였다는 것을 전제로 활동무대가 펼쳐진다.

 

한나라가 망하고 위,촉.오 삼국의 분열이후 사마씨의 진이 이어받으나 오호16국의 득세로 진나라는 유명무실해져가고 최비가 낙랑태수로 부임하면서 모용씨의 선비족, 낙랑군, 고구려가 세력 다툼을 하는 시기에 을불은 고구려 부흥이란 소명을 받은 인물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고 창조리의 지략으로 상부를 몰아내고 고구려의 태왕이 된 을불은 서진 정책(한4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면, 도저히 펼칠수 없는 정책이다)을 추진하려 하지만

 

상부가 전쟁보다는 평화 전략으로 고구려에서 나는 철을 모두 조공으로 낙랑에 바친 결과 고구려의 군사력은 형편없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을불은 군사력을 키우고 선비족과 낙랑군을 동시에 상대해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는 상황하에서 지략을 발휘하여 낙랑군을 몰아내겠는가? 내가 만약 을불이라는 가정을 하고 주어진 과업을 파악하고 상상을 한다음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 정말 재밌어진다.(전부 맞힐 순 없었지만 하나는 어림짐작으로 맞힌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3편에서도 역시 역사의 소명에 목숨을 바치는 소우, 저가, 그리고 고노자 대장군과 고조선의 유민들이 등장한다. 작은 나를 버리고 큰 나를 살리는 길이 바로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소명의식이다. 몇해전 유관순열사 기념관에서 발견한 문구. 2천만 동포가 한마음 한뜻으로 싸운다면 독립은 그만큼 빨라질 것이라고.처럼 눈앞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않고 자손을 보듬을 줄 아는 나라가 강성한 나라이다.(북한 괴뢰집단으로부터 조국을 지킨 참전용사의 보상금이 5천원,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독립지사를 모심에도 반쪽인 나라와 한명의 포로가 된 병사를 위해 천명이상의 팔레스타인 정치범을 맞교환하는 이스라엘에 견주면 대한민국은 부끄럽다.)

 

10년을 하루같이 최비의 낙랑군을 격파하기 위해 을불이 채택한 것은 최비가 하는대로 따라하여 그의 마음을 온전하게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관구검이 고구려의 개마무사를 패퇴시킨 그 전술을 깨트릴 방법만 찾을 수만 있다면 을불이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천하의 지략가 최비도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했을터~

 

을불과 창조리의 지략, 모용외와 원목중걸의 지략, 최비의 지략, 주아영의 지략~

그 모든 지략의 으뜸은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백성, 내 병사의 생명을 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지략이 으뜸 지략이다.

싸움에 크게 패해도 나라가 바로 망하지 않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 권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지막 일전에서 패한 다음 낙랑성을 부하들에게 넘기고 몰래 빠져나가는 최비의 마지막 말을 우리 위정자들이 깊이깊이 새겨듣는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내일은 지금과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임을..

 

미천왕 다음편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미천의 아들인 사유, 근초고왕에게 목숨을 잃은 고국원왕일까? 아니면 국광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일까? 다음편이 몹시도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구려 2 - 미천왕,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80년대 만화 열풍을 몰고온 작가 이현세가 우리의 상고사를 다룬 천국의 문이란 만화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고 음란성을 이유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 적이 있었다.

무슨 이유일까? 우리의 상고사는 아주 단편적으로 언급된 중국 사서의 기록과 신화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만이 접근이 가능한 아주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우리의 삼국시대보다 삼국지가 더 익숙하고 단군신화보다 그리스 로마신화가 우리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에게까지 더 익숙하게 보이는 것이 올바른 현상일까?

 

대륙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한족과 동이족, 그리고 숱한 유목민족(흉노, 거란, 선비.)의 역사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한족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움에도 우리는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주체적인 역사의 세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중국을 천하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역사관과 그들의 사상을 고스란히 육화시킨 우리네의 정서가 그리 만든 것은 아닐까?

 

요순황제가 동이족이요 황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한족은 염제와 황제를 자신의 비조로 받아들이며 은나라보다는 주나라를 이상적인 국가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황제와 패권을 다툰 치우천황이 모든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마지막 싸움에서 패했다는 기록의 신빙성은 어디까지인가? 패한 치우천황의 무덤은 평야지대에 승리한 황제의 무덤은 산 능선에서 위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치후천황이 최종 승리자는 아니었을까? 경극에 전신으로 등장하는 연개소문~ 우리 민족은 한족보다 더 유구한 문화의 주인공이었고 고조선의 패망이후 사분오열하였지만 고구려가 대륙을 벌벌 떨게 할만큼 한족과 유목민족과 더불어 패권을 다툴 정도의 힘을 가진 민족이었다는 것을.. 상기 시키기 위해 작가는 고구려 시리즈를 기획하고 그 첫편으로 미천왕편을 3권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역사의 대의명분, 부름앞에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자신이 있는가? 그런 물음표를 고구려 미천왕편은 우리에게 거듭거듭 묻는다.

 

을불의 성장기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아 역사적 소명을 혈혈단신의 소년의 어깨에 맡길때! 을불처럼 망설임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태왕의 자질을 타고났다는 말로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긴 다소간 어려웠다.

 

이 소설의 전편에 흐르는 기조는 손자병법의 천시, 지리, 인화중 인화가 으뜸이요 임금, 사직, 백성중에서 백성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어렵게 낙랑에서 구한 철전을 상부의 학정으로 이웃사람과 죽은 자식의 시신을 바꾸어 먹는 전식을 할 정도로 피폐해진 숙신의 백성을 위해 내어 놓고 도망가기도 바쁜데 자신이 타던 말을 죽여 일용할 양식으로 제공하는 을불의 모습에서 과연 이 나라의 위정자들은 자신의 안위나 권력보다 앞자리에 백성을 내세우고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절대로 그런 뻔뻔스러운 짓거리를 할리가 없을 터인데.

 

아주 오랫동안 예정된 태왕의 운명의 타고난 을불이지만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을 버리는 선택과 전략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킨다.

싸우지 않고도 선비족의 재사 원목중걸을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고, 상부의 직할대 골구를 사로잡았다가 풀어주기를 거듭하고 살려보내는 전략은 제갈공맹의 칠종칠금을 뺨치고고 남는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을불이 그에게 닥친 시련을 이겨내고 상부의 학정으로부터 어떻게 고구려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낙랑과 선비를 굴복시키게 될까? 

한번 잡으면 내려 놓지 못하는 빠른 전개, 을불이란 사내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완득이! 우리네 청춘소설의 전형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오늘 우리네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단면과 다문화가정, 성적, 경쟁 위주의 교육시스템하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만 같은 아이들의 악전고투가 눈에 보이듯 선하다.

 

'하나님 제발 똥주를 죽여 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완득이!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똥주는 과연 어떤 인간이길래 신성한 교회에서 학생이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을까?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시작하는 신진작가 김여령의 완득이는 신선한 충격으로 시작된다.

입에서 욕지기가 나오는 사회선생 동주, 겉보기론 문제 선생님의 전형으로 보이지만 성적위주의 현 교육시스템을 비판하는 이면엔 야자를 빼먹는 학생들에겐 일벌백계의 불호령을 내린다. 그러나 그의 처벌방식은 집행유예를 둔 만큼 겉보기보다는 합리적인 처벌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원하지도 않는 수급대상에 올리고 수급품을 가져가라고 호통치면서 자신은 완득이게 준것을 빼앗아 먹기까지 한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똥주, 양념으로 등장하는 앞집 아저씨의 맞고함~ 비속어가 남발하여 이런 소설을 아이에게 읽혀도 될까도 싶지만. 미사여구로 치장한 대한민국의 어느 곳엔 완득이 보다 더한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철들어 접하고 받을 충격보다 이런 사실적인 묘사로 충만한 소설이 온실속 화초처럼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더 훌륭한 사회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겉보기와는 달리 똥주는 완득이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밀착지도를 하는 스승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 이런 선생님이 내게도 있었던가? 나보다 나를 더 잘알고 있는 선생님이란 존재가 가지는 무게감이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동주, 이주노동자들의 문제해결에 발벗고 나서는 좌충우돌형 선생이지만 누구라도 감싸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인간미가 풍긴다.

 

신체적인 콤플렉스를 타고난 키 작은 아버지와 남민구(난닝구라는 발음으로 들려 웃음을 자아내는 장애우)삼촌은 변두리 캬바레에서 돌리고 돌리고로 먹고 살아가나 그 직장도 잃어버리고 시골 장터를 전전하며 웃음을 팔고 물건을 파는 장똘뱅이가 된다. 속아서 결혼한 필리핀 어머니는 젖먹이 완득이를 두고 가출해 완득이는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씩씩한 싸움군으로 자랐지만 어느곳 하나에도 정을 두지 못해 철저하게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든 아이. 아버지 역시 아들과 비슷한. 자신의 콤플렉스에 갖혀버린 사람이다. 똥주를 통해 부자간의 마음을 열고, 엄마를 만나고, 킥복싱을 배우면서 완득이는 진정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나간다.

 

범생이와 문제학생의 차이는 종이 한장 차이나 사회의 편견이, 성적 위주의 경쟁체제로 몰린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아이들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최소한의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나 경쟁에서 밀려버린 아이나 부모들의 삶이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 혁주, 범생이 윤하와의 만화 스캔들로 전학가는 모범생, 완득이를 좋아하게 된 윤하와 개입하는 엄마의 모습은 지금 우리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축소판이란 생각이 든다.

 

말끝마다 욕지거리를 완득이에게 쏟아내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완득이를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줄곧 유지하는 똥주! 알 껍데기를 깨고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보게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어른의 눈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보고 어른들의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이해하려 해서는 절대로 우리 아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점과 고민을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다는 것을 완득이를 통해 배운다.

 

시시껄렁하게 보이는 동주선생과 싸움꾼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극하지 않는한 절대 싸우려 하지 않는 완득이가 보여주는 유쾌발랄한 이야기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아픔은 나의 가슴을 두드린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아무에게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기억을 반추하면  문득 그 시절 동주선생이 있었다면 지금과 다른 학창시절을 보내고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이룰 수 없는 가정법으로 과거를 반추하게 될지도 모른다.

 

완득이보다 더 나은 환경에 살고 있다고 우리 아이들은 위안을 삼을지도 모른다.  완득이와 같은 친구를 만나거든 손을 내밀어 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

 

완득이가 영화로 나왔다.  책과 기본 골격은 동일하겠지만 소설과 달라진 영화! 소설을 읽은 느낌을 잃어버릴 것 같아 두렵지만 조만간 온가족이 손잡고 완득이를 보러 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
조한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이비드 필드하우스라는 역사가는 제국주의란 근대화 되어가는 불가피한 과정이니 도덕성을 빼고 보자고 제시한다. -중략-

 

'제국주의를 수행했던 국민으로서의 양심의 가책을 회피하려는 방법이 역사를 수치 놀음으로 환원시키는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역사학에서 가치를 빼고 보자는 사람들이 있다. 그 전제에 동의를 해준 바가 없는데, 스스로 그 전제에 맞추어 논리를 펼치는 그들 역시 역사를 숫자 놀음으로 바꿔 일제 강점기가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켰다고 오도한다.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도적이 침입하여 내 집에서 나를 내쫓고 구박하고, 자신이 살면서 스스로 편하자고 시설을 갖춰놓았다. 그러다가 공권력에 의해 내가 집을 되찾았다. 좋은 시설 갗춰줬다고 그 도적에게 감사하라고 말하는 것이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얘기인가? 어떻게 도달한 역사학의 정체성인데, 가치를 버리라고 요구하는 무례함이라니. 그들에겐 '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하다. 어떻게 이름을 바꿔도 그들의 원초적 무례함은 변함이 없다.  157쪽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 제국주의에 의해 침탈을 당한 피해 당사자인데 어떻게 역사의 이름을 달고 일제시대를 한반도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역사관을 입에 올리는 뉴라이트, 심지어 아이들이 보는 국사 교과서에까지 그 물을 들이려 하는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독재는 했으되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공이 크므로 부정적인 표현은 모두 제외하고 긍정적인 면만 보여주자는 국사 교과서가 제대로 된 교과서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조한욱의 서양史覽이란 칼럼을 책으로 올김것이다. 서양사를 통해 인간의 모습, 우리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어떤 의미와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은 탐욕, 위선과 기만, 강압, 차별, 몽매, 분노라는 장으로 나누어 서양사의 중요 장면, 이슈가 된 인물들의 일화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연결하여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아주 짤막한 서양사의 장면을 이야기 하지만 역사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 문제가 된 사건들, 그리고 당대의 편견으로 인해 큰 기여를 했음에도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회의 부정의에 항의하려는 연대의 힘을 보고 나면 그래서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그 과거사를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는 말은 우리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아직도 유효함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만들어낸 박사의 이름이라는 것을, 로마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란 콜롯세움이 반인간적인 장소였다는 것, 사회의 소중한 가치를 위해 희생된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우리 사회에서 되찾아야 할 소중할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드레퓌스 사건과 같은 사건이 얼마나 많았을까? 지금 과거 정부에게 간첩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핍박받은 사람들이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소송에서 승소한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놀로 에스코파리 - "나는 주교직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교직에 임명된 사람은 의례적으로 2번 거부의 의사를 표현한다고 한다. 3번을 표현하면 정말 그런 것으로 받아들인다고...실제 그런 일은 없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숱한 인물들이 고소영, 강부자로 임용탈락이 된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그들중 단 한명도  놀로 에스코파리를 말하지 않았고 낙마후 법범행위에 대해 법적 조치를 보았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국은 자국 스포츠의 휴지기를 이용하여 혹서기에 올림픽과 월드컵 경기를 열지만 우리의 경우 미관 작업을 위해 철거민 노점상을 쫓아내고 G20 정상회의 한번으로 국격이 아주 높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감성의 야만보다 이성의 야만이 더 무섭다. 지금 진행되는 국가 프로젝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목소리들이 아주 높음에도 다수결의 힘을 믿고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과연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추산하기 힘든다.

 

과거의 역사에서 당대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하는가? 경제적인 수치로 선진국의 문턱에 올랐다고 하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나 지금의 방향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서양사의 한장면을 통해 우리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준거를 제시하고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해도 대한민국이란 배를 공통의 함의를 담은 목적지로 항해시키기 위한 방법론의 차이가 아니라 상대를 배제하고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상대에게 강요하는 일은 없어져야 하리라 믿는다. 그 어떤 가치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배우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