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얻는 기술 - 상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끌림의 순간 74
레일 라운즈 지음, 이민주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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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라.
사람들이 스스로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당신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물어라.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26쪽

~ 하는 기술이란 제하의 책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 저자인 레일 라운즈의 사람을 얻는 기술(How To Talk To Anyone, 토네이도간)이란 책을 읽고 두번째 접하는 책이지만 '기술'이란 이름을 달기엔 조금 인간관계를 극단으로 몰고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How to Instantly Connect with Anyone을 마음을 얻는 기술로 직역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쨋든 이 책은 인간관계를 잘 맺어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고 마음을 얻어 내 사람으로 만드는 순간순간의 행동요령 74가지가 담긴 책이라 각각의 에피소드가 어느 장소, 어느 시점 바로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 장면들이 연출된다. 물론 잘 한 것보다는 실수를 한 것이 더 많았다는 것이 나에 대한 평가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한 답을 외양가꾸기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다. 대중의 시선을 먹소 사는 연예인은 물론이요 일반인들까지 성형에 목숨을 거는 상황은 시대유감이다. 저자는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무기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물론 첫인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소통, 교감이 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 아닐까?


블로그, 소셜네트워크(SNS), 트위터, SMS, 채팅, 카페, 동호회.. 우리는 아주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유무형의 네트워크가 열려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천부적으로 인간관계에 능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라 그렇지 못하다고 스스로 자승자박이란 굴레를 씌워놓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유명한 연사나 성공 기업인들중에서도 내성적이거나 소심한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 모두는 인간관계에 능한 사람이라고 한다. 어떻게 그들이 성공했을까란 비밀이 바로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란 이야기다.

 

저자는 서두에 감정예측과 빅캣이란 단어를 들고 나온다.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인간관계, 내가 얻을 것만 주목하다 보면 도저히 볼 수 없는 상대방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거나 반응하고 말을 하라는 이야기다.

 

감정예측(Emotional Prediction)
어떤 말이나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그 즉시 느끼거나 나중에 느끼게 될 감정을 사전에 미리 예측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다음 예측된 감정에 맞추어 상대방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세워주는 쪽으로 행동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을 느끼게 되고 그건 다시 당신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빅캣(big cat)
인간 정글에 있는 사람들도 정글에 사는 사자와 호랑이 또는 퓨마와 마찬가지로 두마리가 마주치면 천천히 탐색을 하다가 누가 더 강한 생존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하는데 어떤 사람은 의식적으로 어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하는데 인간정글에서 중요한 생존요소는 다른 고양이들과 잘 대화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다. 빅캣은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감정 예측을 모두 섭렵한 사람들로 벌거벗은 CEO처럼 빅캣은 항상 자기 자신과 주변, 현재상황, 그리고 다름사람들을 의식하며 이 네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이다.


실험실에서의 CEO와 청소부의 이야기, 손해사정인을 선발하는 면접장에서 이전의 사람들과 마지막 면접자의 차이가 바로 상대방의 감정을 예측한 아주 보잘것 없다고 할 수도 있는 말 한마디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렛대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것이다.

 

어떤 장면에서든 나를 높이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을 높이는 말이나 행동이 기본이 되어야 하고 상대방의 마음자리를 미리 헤아리는 작은 배려가 상대방의 자존심이나 자존감을 높여줌과 동시에 나의 자존감도 높아져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역지사지의 정신, 황금률에 입각한 처신을 잘 하면 좋겠다.
특히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파티나 컨퍼런스에 참석할 경우 나중에 쭈볏거리며 갈 것이 아니라 미리 참석하여 한 사람이라도 먼저 만나게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계가 형성되고, 약속이나 회의에 늦었을 경우 바로 변명을 하지 않고 발언기회가 돌아왔을때 자연스럽게 하는 것은 내게 꼭 필요한 행동요령이라 가슴에 와 닿았다.


마음을 얻는 기술에 담긴 74가지 장면 혹은 74가지 기술은 친구, 가족, 직장, 비즈니스 관계는 물론이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금칙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미국사회의 특징이 내포된 장면도 있겠지만 인간이 인간을 만난다는 공통분모를 두고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반드시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므로, 습관적으로 자동응답기나 이메일 부재시 자동 회신 메시지는 이 책에서 예시한 것과 대동소이한 나 중심의 메시지 혹은 기계어처럼 들리는 메시지로 당혹했던 경험이 있으면서도 나 역시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복잡다단하게 얽히고 설키는 인간관계에서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이 책을 통해서든 다른 경로를 통해서든 사람의 마음을 얻은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서든 각광받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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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글쓰기 습관 정직과 용기가 함께하는 자기계발 동화 8
어린이동화연구회 지음 / 꿈꾸는사람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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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나를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어 블로그나 카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글 쓰기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부단히 연습을 하고 자기 주변의 일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또 쓰고 책을 읽고 또 읽는 과정을 거치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렵지 않지만 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는 것은 여간한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란다. 매일매일 써야하는 일기도 부담스러운데 글이라니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 어린이들을 위해 여러 선생님들이 모여  함께 지은 자기계발동화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 습관은 바로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책이다.

 

6학년이 된 창비, 한반이 된 소꼽친구 나라와 신나게 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신문에 실을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유명 작가인 아버지를 둔 내가 글을 잘 못쓴다는 것은 말인 안된다는 강박관념, 아무리 해도 글을 씌여지지 않아 낙담을 하고 결국은 포기를 하게 된다. 창비대신 평소 말이 없이 조용하기만 한 유리의 글이 실려 다소 충격을 받게 된다.

 

도서관에 살다시피하는 헤세선생님의 주선으로 글쓰기 모임을 하게된 창비, 유리, 민준 그리고 말썽을 피우다 교장선생님이 내린 벌로 합류하게 된 강새까지~ 모임의 이름도 만들면서 한층 더 가까워진다. 성적을 중요시하는 유리 엄마가 유리를 못다니게 하지만 친구들의 우정으로 다시 함께 해 그들은 멋진 문집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창비에게 아버지가 주신 엄마의 육아일기를 보고 엄마에게 쓰는 편지를 쓴다.

글을 잘 쓰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몇분씩이라도 꾸준히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것, 글 쓰기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그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들처럼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생활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발견해가는 것이 가장 좋은 가르침으로 보인다. 이오덕선생님과 김용택선생님이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문집이나 시집을 함께 만들었던 것도 이런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어른들이 그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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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김성민 글, 이태진.조동성 글 / IWELL(아이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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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고판 사이즈, 120페이지도 안되는 분량.

책이 크고 두텁고 화려하다고 울림이나 가르침이 큰가. 작은 책 한권이지만 내 가슴이 울린 메아리는 한반도 산천을 울리고도 남는 책이 이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을 다 읽으시면 책장에 꽂아두는 대신 다른 이들에 선물해 주셔으면 한다는 저자의 당부글.

선물은 사서 하고 도서관에 몰래 꽂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으로 만들고 싶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이토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라는 책과 영화명을 본 기억탓인지 경기들리게 하는 묘한 끌림. 아닐거야. 그럴리가 없어 무슨 충격타를 주려고 책 이름을 요렇게 뒤집었을까?

 

새끼손가락의 한마디가 없는 수인, 붓글씨, 일제국주의 하면 떠오르는 이름 이등박문을 1909년 10월 26일 하얼삔역에서 척살한 우리민족의 영웅 안중근의사. 동북아평화론,  가톨릭교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파문. 복권이 최근에 이루어졌다.는 정도가 내가 아는 단편적인 지식이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성이 태교를 위해 독립영웅 호치민의 사진을 애지중지하던 농촌드라마를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이땅의 해방을 위해 목숨바친 애국지사를 그토록 숭앙하는 이 몇이나 될까.

 

10월 26일은 독재자가 수하에게 총맞아 목숨을 잃은 기념일로 추도를 하는 국립묘지의 모습은 TV로 보았어도 안중근장군 이등박문 척살 100주년이란 사실은 나도 몰랐음이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라 위해 목숨걸지 말라 삼대가 고생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바친 이들을 보살피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앞장서지 마라 너만 다친다, 모난돌이 정맞는다 둥글둥글 호박처럼 살아라. 이것은 일제시대를 거치고 독재시대를 경험한 세대들이 80년대를 거친 우리 세대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하신 말씀이다. 주변에서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든 애국지사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한다.(독립지사 이시형선생 일가족, 석주 이상룡 선생 일가족, 김좌진장군의 후손들 등)
이상룡 선생의 고성이씨 종택인 임청각과 군자정의 현실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좌익계열의 독립지사는 애국자 대접도 하지 않는 나라.

 검색을 하니 친인척들중 5.16군사정권에서 영어의 몸이 된 분들이 많았다는 충격적인 글을 보았다.(해방된후 친일파가 득세하고 친일파인 장관이 과반수 이상이었고 5.16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이가 바로 혈서를 쓰고 만주사관학교와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니 오죽하랴)
왜 이 책은 이런 말은 하지 않고 안준생에게만 초점을 맞추었을까. 좀 더 강한 울림을 위해 5.16정권하에 후손이 당한 피해상을 담아주었더라면,.우리말도 못하는 손자의 모습 가슴이 아리다.

 

이 책은 물음표를 던진다.
당신이 안중근이라면 어떻게 살겠는가?
당신이 안준생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안중근장군은 민족의, 동양의 영웅이었는데 그 아들은 虎父犬子로 이등박문 척살 30년이 되는 해 박문사에서 이토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사죄의 예를 올린 안준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나라를 팔고 아비를 판 더러운 자식..
친일파..
변절자..


우습지 않나요?
영웅의 아들은 개 같은 삶을 살고
그 변절자의 자식은 다시 성공하고.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죠.
나는 나라의 재앙이지만 내 가족에겐 영웅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두기전엔
안중근장군의 삶을 따라 살고, 안준생과 같은 선택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내 삶을 지배했지만...지금은 자신이 없다. 내 가족 중심의 생각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천만이 목숨을 바쳐 싸운다면 독립이 바로 된다는 의미의 류관순열사 기념관 화장실에 새겨진 글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못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친일부역하고 우리가 독립지사로 알고 있는 이들중에 변절하여 친일행위를 일삼았던 이들도 너무나 많았다.

안준생을 미워할 수 없다. 조국 위해 목숨 바친 선열의 가족을 우리나라, 우리가 보살피지 않은 죄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선택을 하고도 남았으니 말이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라는 책을 읽었는데 우리가 일제, 친일잔재의 역사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우리 안에 일제와도 동일한 강자의 원칙이 내재되어 이주노동자를 박해하고 강자에겐 비굴하고 약자에겐 군림하는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다는 글을 보고 깜짝 놀란 것처럼 과거사 정리는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될이다. 친일파 인명사전에 맞서 친북인명사전을 발간하겠다는 뉴라이트(이들은 일제가 한반도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역사관을 가진 어르신들??)계열의 우익의 모습이 오늘의 우리 모습이니 한숨이 커진다.

또 하나 아프리카 대통령이 독일방문시 식민지 피해 보상을 요구했는데 이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의 대부분의 서구국가들의 죄악에 해당되는 사안이라 발뺌을 하는데 대한민국은 5.16정권이 야합해서 받아버렸으니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1,000회가 다되도록 우리 정부도, 일본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안중근의사가 아니라 안중근장군이다.

안중근장군의 하얼빈대첩으로 부릅시다.
하니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이란 질문글이 많았다. 뉴라이트의 의도가 베여있나싶을정도로.. 살해란 죄없는 사람이살인범이 죽인 경우에 쓰는 단어라??
개인의 의분으로 이등박문을 척살한 것으로 호도하려는 일제의 노림수를 우리가 은연중에 받아들여 테러리스트로 잘못알려지는 빌미를 제공하였고(이것을 가톨릭에서도 인간을 죽인 살인행위로 간주하고 파문을 했다).
독립군의 장군이었던 신분, 법정진술에서도 당당히 전쟁포로의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했던 장군, 마지막 한발을 남겼다.
"자살용인가? 홀로 적진에 잠입해 적장을 죽이는 대승리를 거뒀다는 전투에 이긴 군인이 자결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궤변이다.' 내 행동의 당당하고 떳떳함을 보여주기 위해 마지막 한 발을 남겼다."

김좌진장군의 청산리대첨, 홍범도장군의 봉오동전투(대첩?)처럼 안중근장군의 하얼빈대첩이라 불러야 한다는 문제제기 100만번 지당하다.


또 하나 동북아평화를 위해 일본제국주의의 화신 이등박문을 척살한 안중근장군은 동북아의 영웅임도 분명하다.(심지어 이등박문을 기리는 일본인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안중근장군을 숭모하는 일본인 모임도 있다는 것과 중국에서도 숭모하지 않았던가.)

 

'장한 아들 보아라.
의로운 일을 해냈다. 많은 이에게 용기를 주었다.
가족의 자랑이요 겨레의 기쁨이 되었다.
이제 너는 죽을 것이다. 사형을 언도받으면 항소하지 마라.
네가 벌한 이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는 없는 법.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지 마라.
작은 의에 연연치 말고 큰 뜻으로 죽음을 받아들여라'


是母是子란 제목으로 朝日新聞(아사히신문)에 대서특필된 안중근장군의 모친 조마리아여사님이 보낸 편지글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농담삼아 이런 말들이 오간다.

네가 80년대로 돌아가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네 자식들이 대학생이 되어 학생운동을 한다면? 머뭇거리는 사람이 늘어가고 해가 지날 수록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하셨던 말씀.. 앞장서지 마라 너만 다친다.란 말을 우리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안중근장군의 어머니 조마리아여사의 마음으로 답하는 부모가 많아야 되지 않겠는가?

 

작은 책의 울림이 울림으로 그쳐서는 안되겠다.

지난 역사의 멍에를  청산하지 못하고 후손에게 넘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고, 조국이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변절의 멍에를 뒤집어쓰고 가족의 미래를 지키려 했던 인간 안준생의 비극을 더 이상 우리 대한민국에서 두번 다시 재연되는 일이 없어야 하는 대한민국으로 만들어야하지 않겠는가? 그 일이 바로 안중근 장군이 목숨바쳐 이등박문을 척살한 뜻 아니겠는가?

 

아래 글은 안중근장군 가문의 비극이란 제하의 뉴스입니다.

 

 



     




 

 

안중근 '가문의 비극' 아시나요?

동생 정근·공근 유해 찾을 길 없고 여동생 성녀의 묘도 방치 큰아들 분도는 독살당해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는 현수막이 서울 시내 곳곳에 걸리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학술회의가 국내외에서 열리고 있다. 안 의사의 유해를 찾는 작업도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안 의사에게 쏟아진 관심에 비해 독립운동 명가인 안중근 가문의 비극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26일과 27일 안중근·하얼빈학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하는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안중근 가문의 백세유방(百歲遺芳)과 망각지대〉에서 안중근의 형제 자매와 안중근 직계 유족이 하얼빈 의거 여파로 겪은 비극에 주목한다. 독립운동 와중에 이역 땅에서 숨을 거둔 안중근의 동생 정근(1885~1949)과 공근(1889~1940)의 유해는 찾을 길 없고, 부산에 있는 여동생 안성녀의 묘도 방치돼 있다는 것이다.

정근은 형이 순국한 1910년 봄 동생 공근과 함께 가족을 이끌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망명했다. 1920년 청산리전투에도 참여한 정근은 해방 직후 한국적십자회 회장을 지내며 상하이에 머물렀다. 그는 1949년 뇌병이 재발해서 상하이 만국묘지에 묻혔는데, 그해 5월 상하이가 인민해방군에 점령되면서 묘의 행방은 찾을 수 없게 됐다.

안공근은 임시정부 외무차장을 지냈고, 이봉창·윤봉길 의거에도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39년 5월 충칭(重慶)에서 의문의 실종을 당해 시신의 행방도 찾지 못했다. 안정근의 딸 미생은 김구의 큰아들 김인과 결혼했으나 남편이 1945년 충칭에서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미생은 1947년 미국에 건너간 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고, 묘가 어디에 있는지, 김인과의 사이에서 난 딸이 살아 있는지 불투명하다.

도 교수는 안 의사 큰아들 분도는 7살 때 일제 밀정에 의해 독살당했고, 차남 준생도 일제에 의해 '정신적 살인'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상하이에 살던 준생은 1939년 총독부 주선으로 경성을 방문했을 때 이토 아들과 만나 "아버지를 대신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화해하는 장면을 연출, '민족 반역자'로 지목당했다. 해방 후 귀국길에 오른 안준생은 1952년 부산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도진순 교수는 "안중근 의거로 산산이 흩어진 유족의 삶과 죽음을 수습해주는 것은 안중근 유해 발굴 못잖게 중요한 일이다"고 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고종황제〉를 통해 고종의 하얼빈 의거 개입설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이 교수는 지난 8월 고종이 밀사를 파견, 안중근 구출작전에 나섰다는 사실을 일본 외교문서를 통해 밝혀낸 바 있다. 이 교수는 하얼빈 의거를 1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스티븐스 총격사건과 연결시켰다. 저격, 총살 대상이 모두 보호조약을 강제한 주동자라는 점, 스티븐스 총격을 주도한 정재관이 고종의 시종무관 출신으로 블라디보스토크 대동공보사에서 이토 저격 모의를 주도한 점, 고종이 1902년에 만든 비밀 항일 정보기관 익문사 요원이 샌프란시스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 점 등이 고종의 하얼빈 의거 개입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 [특집] 대한국인 안중근의 삶과 꿈

 

 

 

“난 安의사 집안 사람” 치마 올 풀어 수놓은 태극기 감옥에 걸어

 

 


‘안중근 의사 조카며느리’ 안노길 할머니 파란만장한 삶中 당국의 압박-회유에도 독립군 모자 쓰고 ‘항일’ 표시“安의사 의거 있던곳 못떠나” 어려운 삶에도 터전 지켜中국적 받는 것 거부하자 세례명 음역해 억지 등재

중국 땅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반혁명 분자로 몰려 40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던 안 의사의 종질부 안노길 할머니.

1913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난 안 할머니는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등 4명이 1929년 헤이룽장 성 하이룬 현 하이베이 진으로 갔다. 이듬해 그곳에서 마을 사람의 소개로 안 의사의 사촌 동생인 홍근(洪根) 씨의 3남 무생(武生) 씨와 결혼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됐다.

결혼 생활 14년 만인 1944년 남편이 일제의 앞잡이들에 의해 억울하게 구타당해 사망하면서 일제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졌다. 그는 일제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 가문의 며느리라는 데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터에 남편까지 친일 분자들에게 사망하자 원래 차(車)씨였던 성도 안(安)씨로 바꾸고 안 의사 활동 알리기와 ‘항일 활동’에 나섰다.

남편이 사망한 뒤 하이룬 현에서 하얼빈으로 이주해 온 안 할머니는 삯바느질 등으로 어렵게 살았다. 하지만 안 의사의 공적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손수 태극기를 만들어 집에 걸어놓고 독립군을 상징하는 군복에 별을 새긴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13일 기자가 안 할머니가 사는 하얼빈 집을 방문했을 때 평소에 입지 않던 독립군복과 별을 새긴 모자를 꺼내 입어 보여 주었다.

안 할머니의 안 의사 알리기와 태극기 사랑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탄압 대상이 됐다. 결국 1958년 1월 하얼빈역 광장과 하얼빈 다오리 구 공안분국 앞에서 태극기와 안 의사 초상화를 앞세우고 1인 시위를 하다 체포됐다. 당시 적대국이었던 대한민국의 국기를 흔들며 시위를 벌인 안 할머니의 행위는 중국에서는 반혁명죄에 해당됐다. 안 할머니는 무기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게 됐다.

하지만 옥에서도 할머니는 투옥될 때 입고 들어간 한복의 치마에서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등의 실을 풀어 수를 놓아 태극기를 만들어 감옥 벽에 걸어놓고, 독립군복과 모자도 만들어 입었다. 개조 불능의 불순분자로 낙인찍힌 안 할머니는 1972년 네이멍구(內蒙古)의 오지 전라이 노동교화 감옥에 넘겨져 6년간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1978년 이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안 할머니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없었다. 이 감옥에서 운영하는 농장에서 또 20년을 갇혀 일하도록 했다.

중국 내 개혁개방 바람이 불고 한국과의 수교가 이뤄진 뒤에도 억압된 상태에 있었던 안 할머니는 1998년 9월에야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85세 때였다. 하얼빈으로 돌아왔지만 아무 친인척이 없어 동가식서가숙했다.

그러다 한국에서 온 최선옥 수녀(72)를 만났다. 우연히 안 할머니의 딱한 사연을 알게 된 최 수녀의 도움으로 그의 아파트에 방 한 칸을 얻어 함께 생활하면서 안 할머니는 비로소 안식처를 찾을 수 있었다. 최 수녀가 집을 마련하는 데는 신부이기도 한 동생(현재 경기 여주군 옹기동산 청학박물관 관장)의 도움이 컸다. 또 강제노역을 시켰던 전라이 감옥농장에서 뒤늦게 매달 지급하고 있는 200위안(약 3만7000원)의 보조비도 그나마 생활에 보탬이 됐다.

그녀는 광복 후 마을 사람들이 한국으로 갔지만 중국에 남기를 고집했다. 안 의사의 의거가 있었고 남편의 뼈가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국민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 간 협정에 따라 재중 동포들에게 중국 국적을 부여할 때 호구를 찢어 버리기도 했다. 안 할머니는 호구에 올리는 이름으로 천주교 세례명을 고집하며 본명을 밝히지 않았다. 중국 당국은 하는 수 없이 ‘안 누시아’로 불리던 그녀의 세례명을 중국어로 음역해 ‘안노길(安路吉)’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호구에 올렸다.

뒤늦게 그녀의 출옥 사실을 알게 된 친척들은 한국 당국이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고 있다. 반평생의 옥살이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를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인정해 조국의 따뜻한 품을 느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얼빈=구자룡 bonhong@donga.com

 

 

 

 

 

"고국서 모여살고 싶어.." 힘겨운 안중근 자손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그렇듯이 안 의사의 후손들도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져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안중근 의사의 증손자 보영 씨.

46살인 보영 씨는 증조 할아버지의 의거 100주년 기념식장에서 난생 처음 친척들을 만났습니다.

[안기수/안 의사 조카손녀 : 아버지는 어떠세요.]

[안보영/안 의사 증손자 : 정말 오고 싶어하셨는데 못왔습니다.]

안 의사 의거 이후 형제와 후손들은 비운의 삶을 살았습니다.

안 의사의 뒤를 이어 독립 운동을 해온 두 동생 정근, 공근 형제는 안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애쓰다 모두 하얼빈에서 숨졌습니다.

안 의사 직계 후손들은 광복후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미국으로 쫒겨가다시피 건너갔고, 막내 공근 선생의 후손들은 고향인 황해도로 갔습니다.

[안보영/안중근 의사 증손자 : 많은 가족들이 모두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선조들이 겪은) 고난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는 둘째 정근 선생의 두 손녀 기수 씨와 기려 씨만 남아있습니다.

기수 씨 자매는 10평 남짓한 월세집에서 근근히 살고 있지만 힘든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독립 운동가 자손이라는 자부심입니다.

[안기수/안중근 의사 조카 손녀 : 우리 조상님들이 겪으신 거에 비하면 사실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 아니에요?]

후손들은 하루빨리 고국에서 모여살 수 있기를, 또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 편안히 쉬게 해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손으로서 할 도리를 못하고 있는거죠. 이렇게 유해를 못찾는 게.]

 

심우섭 shimm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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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촌에서 -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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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면 고층 빌딩이 올라가고 길이 넓혀지고 상전벽해란 말이 무색해질 정도 서울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주거개선이란 명목으로 삶의 질 향상이란 명목으로 서울은 전통이나 문화의 보존보다는 개발이 우선인 시대를 숨가쁘게 건너고 있다. 한반도의 중심도시가 된지 600년이란 역사를 지닌 서울은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유럽의 도시를 보면 고색창연함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주 오래되고 유서깊은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도시 자체가 문화유적이란 생각이 들정도의 화면을 자주 보게 된다. 과연 선진국이라 다른군! 우리도 자칭 선직국이라 하고 20개국인가 22개국인가 하는 클럽에 가입하고 회의를 유치한 것을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들떠 알랑방구를 끼지 않았던가. 그럼 우리도 선진국 다운 안목으로 개발과 보존의 공존을 모색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하지 않은가 이말이다.

 

 세계적인 문화유산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수장되어도 대책이 없고,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피맛골이 사라졌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아주 많이 사라지고 있고 명목하에 흙담이 시멘트 담이 되고 흙길이 포장도로 바꾸는 것을 보존이라고 해도 맞는 말인가? 추억이 사라지고 문화가 사라지고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나면 박제화되지 않을까?

 

한옥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려는 영국인 킬번, 미국인 바도로뮤씨와 같은 한옥지킴이 문화지킴이의 안타까운  뉴스를 보면 정말 너무 흔해서 우리는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모르고 시멘트로 지은 집을 선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인으로 20년간을 발품을 팔아 서울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취재하면서문화인, 주민들을 만나고 관련 문헌을 수집하는 저자의 땀이 행간마다 베여 나온 책이 '서울 북촌에서'라는 책이다.

 

북촌은 행정구역상으로 삼청동과 가회동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저자는 그 범위를 인근의 평창동, 성북동은 물론이요 한양 도성안의 전 지역으로 그 시야를 확대한다.

 

서울 하면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경희궁, 남대문, 동대문 식으로 로 보존된  명소만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서울에 이런 아름다운 골목길이 있구나. 일제시대, 전쟁, 개발독재를 거치며 하나둘 헐리고 잘리어나가고 시멘트로 포장되어 원모습을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실하게 묻어난다. 수 많은 골목길을 오갔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체취, 나라의 정국을 논의했던 수많은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집들은 사라지고 겨우 표지석으로 남은 곳도 많지만 나름으로 보존하려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켜켜이 담겨 있어 안타까움과 흐뭇함, 북촌의 골목길을 아이들과 손잡고 거닐고 싶은 마음이 흠씬 베어나게 한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는 이유가 그들 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려고 찾는 것이 아닐진대 우린 명소위주의 관광아이템에만 눈길을 주고 있는지.

 

저자가 발품을 팔면서 성돌이를 하면서 다닌 한양도설의 도보여행길, 영산대제, 종묘제례 등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관광자원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나올정도의 편벽고루함의 상징이었던 성균관의 오늘이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고향의 한옥마을이 문화마을로 지정되면서 고색창연했던 기와를 걷어내고 흙담길을 시멘트 돌담길로 새단장한 것을 보면 어릴 적의 추억이 모두 지워지고 전시물이 되어버린 안타까움이 서울 북촌이란 책에도 담겨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는 정책, 사람의 온기가 흐르는 유적이 되어야지 사람의 온기는 사라진 문화유산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남들이 보기엔 고루한 사람이란 말을 들어도 북촌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려는 보이지 않는 그분들과 함께 하는 이들과 함께 우리 서울도 또 다른 꿈을 꾸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몰랐던 서울의 아름다움,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알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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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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