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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학 -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ㅣ Wisdom Classic 3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학교에서 배운 도덕책처럼 세상이 굴러간다고 믿었다가 대학에 진학하고 보면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요즘은 더 빨리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친구들도 많겠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선 勸善懲惡이 당연한 것처럼 그려지지만 사회에선 진짜 나쁜 짓을 한 악인과 큰 도둑은 오히려 호의호식을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한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수천, 수만명을 죽이면 지배자가 된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다. 특히나 난세엔 仁義 道德의 기치론 절대 승리를 할 수가 없다. 난세에서 승자가 되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상의 비조가 된 서양의 마키아벨리가 있다면 중국엔 리쭝우(李宗吾)가 있다.
저자의 후흑학 번역본을 읽은 터라 후흑학이란 용어가 낯설지 않아서인지 참 재밌게 읽었다. 공자, 맹자, 주자의 성리학을 만고불변의 사상으로 받들어 모셔온 조선이 왜 일제에게 패망하게 되었는가도 후흑학을 통해 해석을 하면 그 원인이 보다 명확해진다.
서양의 리더십, 제왕학으로 그 태생적 뿌리가 다른 대한민국이 독자적인 목소리가 어렵다고 보면 우리도 우리만의 후흑구국의 사상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일본에도 후흑학에 역대 수상의 스승 역할을 수행해 ‘일본의 국사(國師)’로 불린 야스오카 마사히로(安岡正篤)의 ‘제왕학'이라는‘야스오카학(安岡學)이 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인의도덕, 주변국의 전략전술에 휘둘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매 일반 아닐까?
후흑은 뻔뻔함(面厚)과 음흉함(心黑)을이르는 것으로 후흑학을 처세술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구미열강들이 서세동점하던 시기에 나라를 구하기 위한 厚黑求國이 후흑학의 본령이다. 마키아벨리가 조국 피렌체의 독립과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 군주론를 저술한 것과 같다.
리쭝우는 제자백가서는 물론이고 24史를 두루 섭렵하고 공자와 맹자가 아닌 순자와 한비자의 철학을 기초로 난세의 승자와 패자를 두루 고구하여 후흑학을 제창하게 된다. 현대의 중국의 위정자들이 후흑학을 공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오저뚱과 장개석, 등소평, 후진타오 등 오늘의 중국의 대외정책을 보면 후흑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후흑의 실제 모델로 유비와 조조, 손권과 사마의, 유방과 항우, 부차와 구천, 장개석과 모택동 등을 비교분석하여 그들의 승패의 요인을 분석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후흑을 겸비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상대방보다 낮은 단계의 후흑이라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리쭝우가 구분한 후흑은 3단계가 있다고 한다.
후흑 1단계 :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시꺼먼 단계
후흑 2단계 :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딱딱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맑은 단계
후흑 3단계 :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꺼먼데도 색채가 없는 不厚不黑의 경지에 오른 단계
저자는 리쭝우의 관직을 얻기 위한 여섯가지 요령[求官六字眞言, 쿵(空), 꿍(貢), 충(沖), 펑(捧), 쿵(恐), 쑹(送)]과 관리가 지켜야 할 여섯가지 요령[做官六字眞言, 쿵(空), 꿍(恭), 뻥( 繃), 슝(兇), 룽(聾), 눙(弄)]중 현세에도 통용될 九字眞言을 소개한다.
공空 - 위기에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어라
공貢 - 반룡부봉하되 역린을 조심하라
충沖 - 호언장담으로 기선을 제압하라
봉奉 - 박수갈채로 자부심을 만족시켜라
공恐 - 솜에 바늘을 숨기고 때를 노려라
송送 - 비자금을 활동자금으로 활용하라
공恭 - 사람을 가려 때에 맞게 칭찬하라
붕繃 - 큰 인물로 포장해 신뢰케 만들라
농聾 - 귀머거리 흉내로 속셈을 감추라
후흑을 기치로 하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서는 仁義 도덕을 기치로 왕도를 추구하는 薄白으론 도저히 이길 수가 없고 그들의 전략에 휘말려 쌍코피를 흘려야 될지도 모른다. 한때 돌돌핍인(咄咄逼人, 기세등등하게 호통치고 상대방을 윽박지름) 내지 화평굴기(和平崛起, 평화스러운 가운데 우뚝 일어선다)로 G2급에 이른 중국의 힘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정책을 주창했으나 등소평 이래 중국의 국가전략인 도광양회(韜光養晦, 실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를 100년 이상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도 모두 후흑학에 달통한 중국이 향후 남북한의 긴장강화 국면을 이용하게 될지, 우리 정부의 대응방식도 귀추가 주목된다.
태생적으로 후흑에 능한 이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대통령이 취임이후 행보를 보면 오히려 중국이 그의 후흑에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중국을 방문하면서 그가 보여준 인사법, 중국을 추켜세우는 발언 등으로 중국은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고 득보다 실이 많은 행보로 미국에 놀아났다는 평가를 내린다.
이 책은 리쭝우의 저작을 기초로 쉽게 해석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 재해석하여 보다 쉽고 재밌게 후흑학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고 현대 사회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구자진언과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후흑이 필요한 이유와 직장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상사의 리더십과 부하의 생존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낯짝에 철판을 까는 뻔뻔함!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음흉함이란 무기를 마음속에 감추고 세상을 해석하고 상대방의 후흑에 휘둘리지 않는 처세술을 넘어선 21세기 대한민국의 기업 CEO는 물론이고 위정자들이 주변국들의 후흑에 휘말리지 않고 우리가 꿈꾸는 통일된 대한민국을 위해서 후흑을 연마해야 하는 이유를 저자는 피력한다.
남과 북,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의 판도는 구한말의 정세에 비견할만한 정세다. 그럼에도 우리의 역대 대통령을 후흑으로 평한 것을 보면 득국에 이르기까진 성공하나 치국엔 성공할 경지엔 이르지 못했다는 분석이고 보니 2012년 대선주자들의 후흑 급수가 얼마나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후흑학은 난세를 극복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만든 철학이라곤 하나 모든 이들이 후흑을 연마하여 뻔뻔스럽고 음흉하기 그지 없는 인간들로 득시글거린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인의도덕이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강자 어두운 면을 감추기 위해 약자들을 세뇌하기 위한 방편은 아닐까?
지금 후흑의 2단계 내공을 지닌 인간으로 인해 10년 가까이 공들인 탑이 무너질 지경이다. 그래도 믿고 싶다.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그래야 이 고난을 딛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나도 후흑을 처세술로 살아가고 싶기도 하다.
도덕책과 다른 세상~ 그런 세상을 해석하는덴 후흑학만큼 탁월한 사상은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