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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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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갈수록 기억력이.. 아니 원래부터 좋은 머리는 아니었지만;; ㅋㅋ
여태까지 우리 집에 있는 코맥 매카시 책이 <로드>랑, <울분>인 줄 알았다 ㅋㅋㅋ
근데 이제 막 검색해보니 <울분>은 ㅋㅋ 코맥 매카시 작품이 아니라 필립 로스고, ㅋㅋㅋ
아무튼 집에쟁여둔 쟁쟁한 대가들의 책 수백 권을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305권까지 하면;; ㄷㄷ 과장이 아니라 진짜 수백 권 맞음;) 뒤로하고 <선셋 리미티드>를 먼저 읽어야지! 마음먹게 된 건 아무래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얇은(ㅋ) 책 두께 때문이었는데, 총 144쪽!! 뭐 이 정도면 ㅋㅋㅋ 하루 바짝 읽으면 뚝딱 완독하겠구나! 하는 얄팍한 꼼수 때문이었는데..
브라보! 코맥 매카시의 신간 <선셋 리미티드>는 그까이꺼 대~충 하루만에 뚝딱 읽기에는 그 깊이와 울림이 대단해서, 며칠을 곰곰 생각하며 꼼꼼하게 읽게 되더라.
나는 팔랑귀에 속물이라 ㅋㅋ 유명 작가의 책은 이름과 책 제목, 표지만 보고 덥썩 구매를 하는 편이라서 ㅋㅋㅋ
선셋 리미티드가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처음엔 흑 / 백 대화 형식의 흐름이 너무 생소해서 이건 또 뭥미?? 했었다.
흑 : 그래 교수 선생, 내가 선생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백 : 왜 댁이 뭔가를 해야 하는 겁니까?
흑 : 말했잖소. 내가 이런 게 아니라고. 오늘 아침에 일하러 나갈 때만 해도 선생은 내 계획에 있지도 않았어. 그런데 지금 여기 이렇게 와 있잖소.
백 :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일어나는 모든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
흑 : 음 흠. 그런 건 아니다.
백 : 그래요. 그런 건 아니지요.
흑 : 그럼 이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백 : 아무런 의미가 없다니까요. 누구나 우연히 사람들을 만나고, 그중에 어떤 사람은 곤경에 처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우리가 그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흑 : 음 흠.
백 : 어쨌든, 생면부지는 늘 잘 챙기면서 정작 자기가 챙겨야 할 사람은 보살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요.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영웅이 되려고 하지 않아요.
흑 : 내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네.
백 : 나야 모르지요. 댁이 그런 사람인가요?
♣ 선셋 리미티드 - 코맥 매카시 :p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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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략 20쪽까지 아무 생각 없이 읽고서야.
이 둘의 대화가 심상치가 않아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살짝, 줄거리를 컨닝해보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선셋 리미티드>는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달리는 급행 열차이름이고,
백인 교수가 달리는 <선셋 리미티드>에 몸을 던졌고, 때마침 그 역에 서 있던 흑인 남자에게 구출 된 상태.
오! 이쯤 되니 사회적 지위, 지식, 외모, 돈! 어느 하나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만 같은? 백인 교수가 왜 달리는 급행열차에 몸을 던질 수 밖에 없게 된 걸까? 게다가? 범상치 않은 이 흑인 남자는 또 뭐지?
머릿속에 온갖 물음표가 마구마구 그려지면서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는데.
개뿔 아는 것도 없는 내가 이런 소리 해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와!! 역시 코맥 매카시! 읽을 수록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150쪽도 안 되는 이 작은 책속에 그 많은 이야기를 다 담을 수가 있는지?
단순하게 얇아서 골라 읽게 된 책이었는데 그 깊이는 어마어마해서,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그러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이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등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만들고 ㅋㅋ
그리고 중간 중간 흑인과 백인의 대화는 어찌나 웃기는지 ㅋㅋ
흑 : 이거 영락없는 문화 약쟁이로군.
백 : 뭐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아니 전에는 그랬지요. 어쩌면 댁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나는 아무런 믿음이 없는지도 몰라요. 내가 믿는 건 선셋 리미티드지요.
흑 : 젠장, 교수 선생.
백 : 정말 젠장이네요.
♣ 선셋 리미티드 - 코맥 매카시 :p 29
흑 : 그 사람한테 편지나 그런 걸 남기지도 않았고? 선생이 그 기차를 타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말이야.
백 : 그래요.
흑 : 최고의 친구인데?
백 : 그 사람은 내 최고의 친구가 아닙니다.
흑 : 방금 우리가 그렇게 딱 결론내린 줄 알았는데.
백 : 방금 댁 혼자 그렇게 딱 결론 내렸지요.
흑 : 선생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걸 그 사람한테 말한 적도 없고?
백 : 없습니다.
흑 : 젠장, 교수 선생.
백 : 내가 왜 말해야 합니까?
흑 : 나야 모르지. 어쩌면 그 사람이 최고의 친구니까?
백 : 말했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가깝지 않다고.
흑 : 그렇게 가깝지 않다.
백 : 그래요.
흑 : 그 사람은 최고의 친구인데 다만 선생에게 그렇게 가깝지 않을 뿐이야.
백 : 뭐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흑 : 죽은 것 같은 시답잖은 얘기로 성가시게 하고 싶을 만큼 가깝지는 않은 거지.
♣ 선셋 리미티드 - 코맥 매카시 :p 31~32
문화 약쟁이, 젠장! 교수 선생, 개똥같은 소리 ㅋㅋ 이런 말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도 떠올리게 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둘다 진짜 말빨 좋다! ㅋㅋ 하며 혼자 큭큭 거리며 다 읽었다.
그나저나 백인 교수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