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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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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이 책을 제일 먼저 찾았다. <눈먼 자들의 국가>를 작년에 사놓고 아직도.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 한 페이지도 못 열어보고 있었던 게 늘 걸렸다. 왠지 미안했다. 오늘은 그동안 미뤄왔던 벌로 이 책을 하루 종일 다 읽기로 작정했다. 이제 65쪽까지 읽었다. 그런데 더 미안해지게 읽으면 읽을수록 와, 작가들은 진짜 글 잘 쓴다! 감탄하며 문학 작품처럼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참 미안하다. 하지만 꼭 기억하겠습니다. 꽃다운 그대들 그곳에서 부디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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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첫날, 외국 언론에서 조난자의 수온별 생존시간을 따져보는 사이 한국에서는 사망시 보험금을 계산했다. 사람들은 권력이 생명을 숫자로 다루는 방식에 분개했다. 한쪽에서는 ‘재난의 계급화’나 ‘책임의 외주화’ 같은 말이 돌았다. 기업과 정부는 세월호에 탑승한 인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지금도 바다 속에서는 숫자조차 되지 못한 이들이 차갑게 굳어가고 있다.
♣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 김애란 :p17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었어요.”
그 말 앞에서 나는 좀 놀랐다. ‘놀랐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철저히 그녀의 고통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그 고통이 담긴 타인의 몸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자영씨는 여기서 어떻게 더 노력하라는 건지, 어떻게 더 힘을 내라는 건지 알 수 없어 때때로 절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녀의 대답 속에선 황량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육체적, 정신적, 금전적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세상의 무관심과 폭력 속에 홀로 버려진 느낌을 받을 때 그 시간에 잠겨본 자만 알 수 있는 외로움이었다.
♣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 김애란 :p16
뜨겁지 않게 이 글을 마칠 수 있을까. 차갑지 않게 지금을 말할 수 있을까. 지난달 16일,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배 안에서 한 여고생은 불안을 떨쳐내려는 듯 친구에게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
그러곤 그 농담을 끝으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했다. 요즘 나는 자꾸 저 말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간 질문이자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 경사(傾斜 기울 경, 비낄 사)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
♣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 김애란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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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사고다, 라는 명제로 돌아가보자. 자꾸 사고, 사고, 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다. 이제 겹쳐진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할 때가 되었다. 세월호는 애초부터 사고와 사건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쳐진 참사였다. 말인즉슨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이제 이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해야 한다. 겹쳐진 필름이 이대로 떡이 질 경우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프레임. 즉 ‘세월호 침몰사고’로 기억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아직도 이 타이틀을 쓰고 있다. 별다른 오류가 없어보이지만 여기엔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함정이 있다. 명사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를 ‘사고’로 인지하기 마련이다. 사소한 문제인 듯하나 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자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반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데 거기엔 또 다음과 같은 해석이 뒤따른다. 주로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하에 발생하는 일이며 범죄라든지 역사적인 일 등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 부르지 않으며, 살인사건을 살인사고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실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나는 후자의 비중이 이루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한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 눈먼 자들의 국가 - 박민규 :p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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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선박이 침몰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정말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서슴없이 했다.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앞에서도, 야 거짓말하지 말라고 씨발 년아 소릴 들어가면서도(KBS <굿모닝 대한민국>),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 다 바꾸겠다고 거짓말을 했고, 성역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구조에 최선을 다한다는 거짓말을 했고 구조대원 726명과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가 집중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전을 벌인다는(연합뉴스) 사상 최대 규모의 거짓말을 했다. 304명의 무고한 죽음 앞에서 그러니까 당신들은 이루 열거하기 힘든 많은 거짓말을 했다. 왜냐고는 묻지 않겠다. 더는 거짓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의도에서 비롯된다. 아니, 거짓말은 그 자체가 의도이고 사건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토록 많은 거짓말이 필요했던 사고 수습은 없었다. 당신들은 어떤 의혹을 받아도 싸다. 역시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얘기로 못을 박자면
사고로 위장된 사건은 있어도
사건으로 위장된 사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 눈먼 자들의 국가 - 박민규 :p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