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물의 이력 - 평범한 생활용품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
김상규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8월
평점 :

평소 취미가 쇼핑이라 그런지 나는
늘 물건. 사물들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책 제목에 ‘사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일지 미처
살펴보기도 전에. 이 책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근데 친절하게도 책표지에 이런 간단한 요약 문구가 적혀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소한 생활 에세이’호오! 안 그래도 책 표지,
제목까지 다 좋은데 거기에 한 술 더 떠 평소 무신경하게 바라보고 지나치는 물건들을 나 같은 조무래기는 상상도 못할 새로운 시각으로 내 시야를
확장시켜 줄 것만 같은(?) 이런 책이라니! 아!! 완전 끌려서 읽게 되었다.

간단히 어떤 책인지 소개를 하자면
이 책은 일상 속에서 매일 마주하는
리모컨과 양은 냄비부터, 이제는 사라지고 없거나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는 카세트테이프나 타자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 늘 그렇게 놓여 있었던
다양한 사물들을 전지적 작가 (디자이너 김상규) 시점으로 줌인해서 이것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왜 이런 모양을 하고
있는지? 세세하게 살펴보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발굴해나가는 일상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일상)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싶은 이유는 어쩌면 딱딱한 잡학사전이 될 뻔한 이 책을 현직 디자이너의 일상과 함께 맛있게 잘 버무려서 누구나 별 거부감 없이 술술 읽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랄까?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디자이너를 비롯하여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새로운 작업을 위한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앞선 세대들의 지식과 경험이 쌓인 결과를 누리고 있고
그것이 창작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따라서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안목은 오늘날 마땅히 갖춰야 할 역량일 것이다. 이렇게
사물의 이력을 아는 것은 교양으로서 가치도 있다. 매일 새로운 상품을 쏟아내는 자본의 힘에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시민을 '소비자'로 국한시켜 무엇을 소유해야만 할 것 같고 그 때문에 얼마를 더 벌어야 하는가에 매달리게 하는 구조에서 한걸음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만큼 뭔가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거나, 창의력을 마구마구 샘솟게 해주거나, 그동안 듣도 보도 생각지도 못 했던 새로운 시야를
활짝 열어주는 그런 책은 아니었지만;;; 현직 디자이너 겸 디자인학과 교수님의 날카로운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사물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안목이라던가? 사소한 것도 결코 사소하게 지나치지 않는 삶의 태도랄까가 굉장히 귀감이 되어서. 괜히 나까지 덩달아 그래! 나도 아무리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나만의 소신으로 깊게~ 오래~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 보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겠다는 엉뚱한 다짐도 해보고...

이번 책도 역시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에 알록달록 수많은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며 열심히 읽었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디스켓과 카세트 챕터였는데..
 |
모니터에서 아이콘으로만 보던 디스켓, 카세트테이프를 만져볼 기회가 있는데 바로 이사를
할 때다. 이때마다 셰리 터클이 엮은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의 자료 보관소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중 수잔이 Susan Yee라는 건축 전공자가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의 자료 보관소에서 설계도 원본을 봤을 때의 상황을 기록한 내용이 있다. 돌돌 말린 도면을 큰 탁자 위에 펼쳐
놓고 그 주변을 맴돌면서 얼룩과 지문이 묻은 도면을 한참 보고 있으니, 담당 큐레이터가 힘들게 도면을 직접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고
귀띔해주었다. 도면을 전부 디지털화시켜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큐레이터의 말대로 르 코르뷔지에의 도면이 그의 컴퓨터에서
아이콘으로 떠 있었고 클릭하면 확대해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디지털 도면과는 아무런 교감을 할 수 없었고 건축가의 존재조차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도면을 직접
볼 기회가 생겼다. 수잔 이가 자료 보관소에서 했던 것처럼 도면을 만질 수 없었지만 어떤 느낌이었는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빛바랜 도면에서 지우고 고친 흔적, 깨알 같은 메모와 구겨진 부분을 보면서 르 코르뷔지에가 고민한 과정을 실감했다. 아마 내가 디스켓과 카세트테이프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기록 매체에 대한 미련 때문일 것이다. ♣ 사물의 이력 - 김상규 :p 48~49
|
하아.. 돌돌 말린 도면을 큰 탁자
위에 펼쳐 놓고 그 주변을 맴돌면서 얼룩과 지문이 묻은 도면을 살펴보는 장면도 너무 눈에 선하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이라는 책도 너무너무 궁금해지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기록 매체에 대한
미련. 이란 말도 너무 멋지고 ㅎㅎㅎ
아무튼. 찬찬히 읽은 내용들 되짚어
보며 이런 허접한 리뷰라도 끄적이고 있자니. 새삼, 아무리 사소한 사물도 결코 사소하지 않구나! 싶어지는 게.. 이 리뷰를 쓰는 와중에도
수없이 흔들어 대고 있는 내 무선 마우스까지도 특별하고 소중한 뭔가처럼 느껴져서 괜히 한 번 더 어루만져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