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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ㅣ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슬라보예 지젝, 강신주, 고미숙, 김상근, 최진석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 7인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와 인문학적 통찰을 담았다.” 이 한 줄의 책 소개를 읽고. 오! 대박, 지방 촌년이 언제 이런 유명한 분들의 강의를 들어보겠냐?며 대번에 이 책을 골랐다. 그런데. 막상 책이 도착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을 땐 헐; 철학이 어떻고, 자본주의가 어떻고 금세 골치가 아파지는 거다. 그렇게 책을 펼쳤다 닫았다만 여러 번.
그런데 어느 순간 '슬라예보 지젝'이라는 이름이 반짝, 눈에 들어오는 거다. 누구지? 애플 -스티브 잡스나, 페이스 북 - 마크 저커버그 정도는 나도 아는데, 지젝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다시 책을 펼치고 슬라예보 지젝 파트부터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냥 철학 박사님.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도 굉장히 많고, 제목만 봤을 땐 몰랐는데 찾아 보니까 나한테도 이미 낯익은 책표지도 많고 그렇더라) 안타깝게도 슬라예보 지젝 편에서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대 "잊어버리자. 그러나 절대 용서하지는 말자"는 문구밖에 기억 남지 않지만 여튼 슬라보예 지젝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기 시작한 <나는 누구인가>는 읽으면 읽을수록 진국인 것이다. 언빌리버블!

제 1부는 너무나 유명한 강신주님 강연으로 시작이 되는데. 첫머리가 이렇다. "한 신문 칼럼에 냉장고를 없애자는 내용의 글을 써서 주부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처음 이 문장 읽었을 땐 이게 뭔 호랑말코 같은 소린가? 황당하고 읽기 싫었는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강신준데! 뭔가 내가 놓친 게 있나? 하고 추후에 강신주쌤 꼭지를 또 한 번 읽으니. 이제야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고. 오! 역시 진국 외치게 되더라.
스펙과 조건을 우선으로 배우자를 골랐는데
그 배우자가 직장도 그만두고 벌이도 없어진다면 그때도 여전히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제법 공부 좀 하던 자녀가 점점 성적이 떨어져 의대는커녕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가기 힘들어진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 아이가 자랑스러울까?
인간과 인간의 관계 위에 돈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자본가를 비난한다. 그러나 그 비판의 끝에는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짙게 깔려 있다. 30만 원 가진 사람과 1억 원을 가진 사람이 계획하는 여행은 다를 수밖에 없다. 돈의 액수만큼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매개가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세상,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성적이나 취업에 목숨 걸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세상, 큰 대가 없이도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자본주의에 맞서고 대응할 수 있는 인문학적 태도는 무엇인지 살펴봐야 할 때이다.
♣ 나는 누구인가 - 강신주 :p 16
그러게 말이다. '돈을 못 버는 아버지와 남편을 우리는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갑자기 카프카의 소설 <변신>도 떠오르고, 강신주쌤의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스스로 잠깐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가 참 기특(?) 했는데.
이어지는 고미숙 선생님 강의도 역시 진국. 줄줄이 밑줄 그은 문장만 수두룩한데...
가끔 중.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감옥 같은 곳에서 하루에 열몇 시간씩 공부를 하느냐고 물으면 전부 다 좋은 대학 가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라고 말합니다. 그 액수도 어마어마해서 몇 억도 아니고 몇 십억, 몇 백억을 벌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 욕망과 능력을 연결시켜야 하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유도 없습니다. 과정도 없이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욕망과 능력에 간극이 생길 때 우리 몸은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는 모든 질병과 번뇌의 원천이 됩니다. 뇌의 능력과 욕망이 한 계단, 한 계단 함께 올라가야 하는데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저 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기준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고, 무슨 일을 해도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지금 내가 버는 단돈 100만 원은 60억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돈이니까요.
♣ 나는 누구인가 - 고미숙 :p 56~57
정말. 뇌의 능력과 욕망이 한 계단 한 계단 맞물리며 올라가야 하는데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저 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기준에 지배당한다는 말도 정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요즘은 하다못해 TV 드라마만 보더라도 재벌 2세, 의사 아니면 검사, 그것도 아니면 현실세계에선 보기 드문 초 미남미녀고, 암튼 어디서 보고 들은 건 점점 많아져서 정신은 엄청난 비만인데. 막상 현실은 시궁창. 그러니 이런 시대를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 이런 것들도 한 번쯤 생각하게 해주고. 암튼 이 책 보면 볼수록 진국이라는. 아. 자꾸 진국 진국 했더니 진국명국 뼈다귀 해장국이 먹고 싶어진다.
리뷰요약 : 강신주, 고미숙, 슬라보예 지젝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 7인의 예리한 통찰을 이 한 권에 담았다.
유독 철학 인문학 서적에 약한 나같은 독자라면 초반부터 버거울 수 있겠지만. 보장한다. 이 책은 읽을수록 진국이다. 두 번 세 번, 읽으면 읽을수록 밑줄이 많아지는 책.
자본은 항상 내일을 꿈꾸게 합니다. 돈을 더 많이 모으면 더 좋은 삶이 펼쳐질 것 같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정작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도 없는 친구에게 돈 한 푼 쓰는 데 인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원리, 사랑의 가치는 다 쓰는 데 있습니다. 반면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어떻게 부자가 되냐."면서 참으라고 말합니다.
♣ 나는 누구인가 - 강신주 :p 42
우리가 흔히 듣는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그런데 제가 알기로 한국 사람들은 '잊어버리자. 그러나 절대 용서하지는 말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존 가치, 표준화된 공식을 전도하는 니체의 철학을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의 이 같은 태도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용서하지만 잊지 말자."라는 말 자체가 조금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어쩌면 그 문구 자체가 교묘하게 인간들을 조종하는 논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당신의 만행을 용서는 하겠지만 당신이 한 짓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영원히 기억하겠다."라는 사고가 담겨 있으니까요."
♣ 나는 누구인가 - 슬라보예 지젝 :p 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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