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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읊조리다 - 삶의 빈칸을 채우는 그림하나 시하나
칠십 명의 시인 지음, 봉현 그림 / 세계사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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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시집을 내 돈 주고 구매해 본 적은 없는것 같다. 아니다, 가만가만 다시 생각을 해보니 짧은 글 모음 집인 줄 알고 시집을 잘못 구매한 적도 있고, 언젠가 문득 '나도 시집 읽는 우아한 여자가 될테야' 하며 큰맘 먹고 구매한 시집이 기대치에 못미쳐 에이씨 돈 아까워 씩씩거리며 욕을 한 바가지 한 적도 있고, 중고샵에서 간보기용(?) 시집도 몇 권인가 구매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모두 까마득한 옛 일이다. 시집 제목 하나 온전히 기억해 내지 못할 만큼. 오래전.
나는 요즘 또 다시. 시집 읽는 우아한 여자에 꽂혀서. 틈틈이 시집도 아이쇼핑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바로 이 책 <순간을 읊조리다>가 내 레이더에 걸렸다.
이 책을 나는 무식하게 '짬뽕시집'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아무래도 짬뽕시집 따위의 표현은 품위가 너무 떨어지는것 같아서 다시 고쳐 본다. <순간을 읊조리다>는 70명의 시인들의 짧은 시, 혹은 시의 일부분을 묶어 놓은 시 모음집이다.
무려 '70명의 시인'이라는 말에 급 멀미가 날것 같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호, 이시대를 대표하는 감성 시인들의 필살기?를 이 한 권에 모아서 볼 수 있나 보다 기대도 되었다.
제일 처음 나오는 시는
아침이 되면 우리가 친절해지는 이유는 외롭게 잠을 잤기 때문이야. 「네 이웃의 잠을 사랑하라 - 김행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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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삼 십 세 - 최승자」
와 같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시 도 보인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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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공에 세워진 바닥을 닦고 있었고
너는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개새끼 라는 말을 발음했다
「태영칸타빌 - 지옥의 문 ㅣ 임승유」
와 같은. 도대체 뭔 소린지? 이해 안 되는 시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시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네.
뭐지? 뭐지? 무슨 뜻이지? 혹은 이 문장들 앞 뒤로 또 다른 내용이 있는 건 아닐까? 하며
계속 계속 생각에 생각을 더할 수 있다는게 재미 있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시에 "ㅅ" 도 모르는내가 갑자기 번쩍 시의 매력에 눈뜬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나는 계속 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한 조각이라도 가져보기 노력할테다.
끝으로 <순간을 읊조리다>에서 가장 내 맘에 드는 시는 바로 이 거.
눈에 밟힌다는 건
마음을 찌른다는 것
「속눈썹의 효능 - 이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