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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킬링필드 - “나”와 “우리”와 “세계”를 관통하는 불평등의 모든 것
예란 테르보른 지음, 이경남 옮김 / 문예춘추사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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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사전을 켜고 킬링필드를 검색해 봤다. killing field [명사] 대량 학살 현장, 인간 도살장.
지식 백과사전에는 “캄보디아에서 1975∼79년 4년 동안 폴 포트의 급진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주가 양민 200만 명을 학살한 20세기
최악의 사건 중 하나”라는 결과가 나왔다.
불과 며칠 전에 다 읽은 자기 계발서에서도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그것을 인정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읽었고,
공감했고, 나 스스로도 인간이란 원래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불평등할 수밖에 (타고나는 외모라던가? 부모의 소득 수준이라던가) 없다고, 불평등이란
단어 자체를 어쩔 수 없는 일 정도로 무심하게 여겨왔는데. 불평등과 대량 학살이라니? 심지어 이 책은 첫머리부터 “불평등은 사람을
죽인다.” 라는 말로 시작이 된다.
불평등은 사람을 죽인다. 1990년부터 2008년 사이에 대학 졸업장이 없는 미국 백인은 기대수명이 3년 줄었고,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여성은 5년 이상 수명이 짧아졌다. - 17쪽
세상에. 불평등이 사람을 죽인다니? 심지어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년 일찍 죽는다니? 충격적이지 않나? 불평등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한번도 없던 나는 그저 충격이라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저자는 호소한다. 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그리고 왜 누군가는 항상 무엇으로부터 배제되고 차별받는지? 세상의 모든 불평등을
우리 눈앞으로 가지고와 똑똑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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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 뒤표지엔 이런 추천사가 실려있는데.
"한마디로 대단한 책이다. 테르보른의 경쾌한 필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불평등의 킬링필드>는 모든 중요한 차원의 불평등을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사회 정의에 대한 막중한 책임 의식과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주요 개념을 차근차근 짚어간다. 이 책은
사회의 진보 그 자체를 말리려 한다. 예리한 논리와 방대한 자료라는 물증으로 촘촘하게 엮어 내는 저자의 불평등 담론은 더 평등한 미래를 향한
다음 단계의 비전을 제시하며 끝을 맺는다." - 리처드 윌킨슨, 노팅엄 대학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 말이 형식적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진짜구나!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이 어떤 책인지? 한 줄로 요약하자면 “예리한 논리와 방대한 자료들로 촘촘하게 엮은 불평등 담론” 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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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 내용보단 비주얼에 더 집착을 하는 나는 이 책이 표지부터 마음에 들었고, 간지와 편집까지 이렇게 예쁘니 더 호감이 갔는데 의외로? 밑줄도 많이 긋게 되고, 무엇보다 내가 모르고 있던 용어들이 많이 나와서 사전 찾다 보면 은근 공부도 되고 좋더라.
물론. 말랑말랑하고, 잘 넘어가는 책들만 골라 읽던 나는 요즘 이 책을 읽느라 식겁;; 하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 책 안목에 근육을 키워준다는 느낌으로? 한 장 한 장 열심히 넘겨가고 있다. 역기처럼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읽을 만하다. 헤헷 :)
불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다. 불평등은 누구나 계발할 수 있는 역량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불평등은 유형도 다양하고 그런 만큼 굴욕, 굴종, 차별대우, 조기사망, 건강악화, 지식습득, 주류 사회로부터의 소외, 빈곤, 무기력, 스트레스, 불안, 근심, 자신감이나 자존감의 결여, 기회 박탈 등 다양한 결과를 낳는다. 불평등은 지갑의 두께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불평등은 사회적 문화적 서열과 직결되어, 대부분의 경우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자원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의 역량, 우리의 건강, 우리의 자존감, 우리의 자아의식을 손상시킨다. -9
불평등은 사람을 죽인다. 1990년부터 2008년 사이에 대학 졸업장이 없는 미국 백인은 기대수명이 3년 줄었고,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여성은 5년 이상 수명이 짧아졌다. 클린턴과 부시가 정권을 잡았던 호경기 시절에 조성되었던 미국의 사회적 양극화보다 더 치명적인 영향을 준 것을 찾자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에이즈와 러시아의 자본주의로의 전환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미국의 흑인들은 백인보다 원래 수명이 짧았지만, 1990년부터 2009년까지 20년 동안 그 간격은 20세기 초에 비해 크게 좁혀졌다. 2008년에 인종과 교육이 결부된 불평등(12년 미만의 교육을 받은 흑인 대 16년 이상의 교육을 받은 백인)은 약자의 수명을 12년 줄였다. 이는 미국과 볼리비아의 차이와 같다. -17
불평등은 누군가를 무엇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평등이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이거나 사람들의 생명력을 저해한다면, 그 불평등은 곧 배제를 의미한다. 즉 인간 개발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으로부터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배제에는 두 개의 커다란 문이 있다. 하나는 가난한 자의 면전에서 사정없이 쾅 닫히는 문으로 가령 영국과 인도에서 판이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조건이 그런 경우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보편적 의미를 갖는 조건이기도 하다. 가난하다는 것은 많은 동료 시민들과 부대끼는 일상 생활에 제대로 참여할 만한 자원이 없다는 의미다. 또 다른 배제의 문은 엘리트를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격리시켜 보호하는 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엘리트는 0.1퍼센트나 1퍼센트, 많으면 5퍼센트 정도의 부자들이다. 국가 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독재 체제에서 '엘리트'는 독재자 주변의 소수 '이너 서클'이거나 공산당 국가의 경우처럼 위계조직의 최고위층이다. 이 두 경우 모두 두 번째 문은 명령을 내리는 자와 명령을 받는 자, 정책을 입안하는 자와 정책을 적용받는 자를 갈라놓는다. -35
빈곤에는 관심이 많아도 불평등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빈곤과 불평등은 개념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 빈곤은 1980년대의 중국과 베트남처럼 하향 평준화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고, 그후에 서서히 나타나는 불평등은 빈곤에서 풍요로 건너가는 계곡의 일부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그 계곡에 갇힌 채 올라가는 길목이 차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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