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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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아~~~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 다 읽은 지가 벌써 일주일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 할배의 마력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 아 정말 이 사랑스러운 책을 어쩌면 좋을까? ㅎㅎㅎ 

 

남사스럽게 노인네가 웬 연애소설? 듣자마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제목은 둘째 치고, 나는 무작정 이 책 표지가 너무 좋았다. (막상 실물로 접하고 나니 표지가 더 노랗고 파랗고 초록 초록하면 좋겠다는 미련이 남긴 하지만;) 예쁜 책 표지에 끌려서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위시리스트에 담아 두고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아 억울해. 이렇게 예쁘고, 웃기고, 생각만 해도 마음 따뜻해지는 소설을 나는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 내가 책 보는 눈이 그렇게 없었나 한심해졌다. 그러다가 이내 지금이라도 만난 게 어디냐고 책을 껴안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어졌다. 심지어 내가 읽은 책은 책모임에서 빌려 온 책이라 당장 소장용으로도 한 권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아니 아니 선물용으로 한 두 권쯤 더 살까? 엄청나게 고민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최근에 읽은 소설책 중에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최고 였다는 이야기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는 중요한 인물 2명이 등장하는데 한 명은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 <연애 소설 읽는 노인> 풀네임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줄여서 호세 노인, 그리고 또 한 명은 호세 노인에게 책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는 치과 의사 ‘루비쿤도 로아차민’줄여서 치과 의사. 

원래 다른 나라 책들 특히 중남미나 러시아 책들 읽다 보면 한동안은 등장인물들 이름 외우느라 혼이 쏙 빠지기 마련인데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딱 2명만 기억하면 돼서 너무 쉽게 읽혔다. 심지어 쪽수도 총 181쪽 밖에 안 돼서 나중엔 아껴 아껴 읽느라고 정말 힘들었다.

 

책소개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아마존 부근 엘 이딜리오에 살고 있다.

문명은 서서히 이 고장에 침투하여 노다지 꾼들과 술병이 몰려들고, <양키>들은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며, 원주민들은 조금씩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정글을 잘 아는 사람인 노인이 원한 것은 오직 오두막에서 조용히 머나먼 곳에서 일어나는 달콤한 연애담을 탐독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소망은 정글의 맹수를 화나게 한 누군가에 의해 방해받는다. 노인은 자연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암살쾡이를 만나기 위해 숲으로 향한다.

- 책 뒤표지에서

 

 

책소개를 대충 읽을 때만해도 이 책이 이렇게도 내 마음을 사로잡을 줄은 몰랐다. '최고의 환경 소설'이라고도 하고, 뭔지도 모를 (1989년 티크레 후안상) 상까지 받았다고 해서 혹시 골치 아픈 책이면 어쩌나? 도리어 걱정이 됐는데 이런 노파심을 말끔하게 날려준 문장을 39쪽에서 만났다.  

이 책 속의 소중한 글

이번에도 소설책으로 두 권 가져왔소.”
그 순간 노인의 눈이 빛났다.
“연애 소설인가요?”
치과 의사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아픈 얘긴가요?”
노인이 다시 물었다.
“영감은 목 놓아 울고 말걸.”
치과 의사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오나요?”
“이 세상에서 어떤 연인들도 그들만큼은 사랑하지 못했을 거요.”
“서로가 슬픈 일을 겪는가 보군요.”
“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차마 견딜 수가 없었소.”
치과 의사는 노인의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책장조차 넘기지 않았다.
루비쿤도 로아차민은 노인이 책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자 처음에는 그저 아무거나 가져다주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고통과 불행을 겪다가 결국은 행복하게 되는 내용을 원한다는 노인의 독서 취향을 듣게 되자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과야킬에 있는 서점에 들러 <연인들이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만 결국은 해피 엔드로 끝나는 소설책을 주시오>라고 말하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보나마나 그를 주책없는 노인네라고 비웃을 게 틀림없었다.  

♣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p 39

 

 

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게 말이다. 보통의 남자 사람이라면? 치과 의사처럼 생각하기 마련인데 우리의 호세 노인은 어쩌다가 그 많은 책 중에 유독 연애소설만을 고집하게 된 걸까? 너무 궁금해졌고,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고 나서는 도저히 호세 노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거다. 아 이런 마음 따뜻한 할배 같으니라고 ㅠㅠ 

 

 

그리고 아직도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문득문득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장면은 바로 여기.   

이 책 속의 소중한 글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 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가 틀니 다음으로 아끼는 물건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p 44~45

 

 

​아 어쩜 ㅠ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도 저토록 소중하고 알뜰하게 오래오래 반복해 읽고, 심지어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그렇게아름다울 수 있는지 깨달을때까지 읽고 또 읽는 노인의 ​독서법에는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지만, 그리고 소설이 마지막으로 달려갈 무렵에는 혹시라도 노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봐 간이 덜컥 내려 앉기도 했지만. ​아. 정말 아직도 이 책을 품에 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이 책이 나는 너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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