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 - 샛길 산책자 김서령의 쫄깃한 일상 다정한 안부
김서령 글.그림.사진 / 예담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왜? 이렇게 멋진 분을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거침없고, 쿨하고, 때로는 다정다감하고, 섬세하고, 심지어 글 쓰는 작가님이시고!!  

이런 언니가 내 주변에도 한 분 계신다면 얼마나 인생이 풍성하고 재밌어질까 혼자 상상도 해보았다가. 흐흐흐 물론 이렇게 책으로 알게 된 것만 해도 나쁘지 않아. 좋아 좋아.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는 십 년간 이야기만 만들어내던 작가님의 첫 산문집이라고 한다. 

제목만 봐도 짐작되듯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지쳤을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좋겠고, 한 여름휴가지에서 선글라스 낀 눈으로 슬렁슬렁 봐도 좋겠고, 몰래 숨겨둔 맛난 간식 먹듯이 야금야금 꺼내 읽어도 좋을 일상 에세이.

 

자고로 일상 에세이집이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ㅣ 그림 ㅣ 사진 ㅣ 김 서 령

이 얼마나 떳떳하고 멋진가?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책에 함께 실린 사진이나 그림이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린 거라면 나는 어쩐지 김이 빠져버리던데, 

이 책은 글도 사진도 그림도 모두 작가님 본인이 쓰고 찍고 그리신 거라 내가 괜히 자랑스럽고 막 -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처음 밑줄 그었던 문장은 이거다.

 

2002년 가을, 밤

나는 스물아홉 살이었고,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 역시 당연히 스물아홉 살이었다. 둘 다, 코앞으로 다가온 결혼 문제에 진저리를 치고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너무 오래된 연애에 더 할 것이 없어서 결혼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친구는 아버지의 정년퇴직을 앞두고 무조건 해치워버려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아마도 투다리쯤에서 염통 꼬치나 그 비슷한 안주를 앞에 두고 한숨을 쉬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가 갑자기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하지 마. 내가 할게.”

“그럴까. 나는 하지 말까?”

친구가 결연해도 나는 여전히 심드렁했다.

“내가 일단 먼저 해보고, 괜찮으면 그때 너도 해.”

친구는 진지했지만 소주잔을 홀짝이며 내가 웃었다. 그러다가 내가 물었다.

“우린 어떤 여자로 살게 될까.”

친구가 곰곰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우리 엄마들처럼 살게 되겠지.”

우리의 엄마들을 잠시 떠올렸지만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 그냥 엄마들일 뿐.

“그냥 엄마. 우리가 딸을 낳으면 그 애들은 우리를 그냥 ‘엄마들’로 떠올리겠지?”

“그래도 네 딸은 너를 참 재능 있는 엄마로 기억할 거야. 걱정 마.”

“재능은 개뿔.”

“아, 우리 엄마는 글을 참 잘 썼어. 그렇게 기억할 거 아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소설가도 되지 못했어.”

“못 되면 어때. 네 딸은 너를, 정말 재능 있는 소설가 지망생으로 기억해줄 거야.”

아아. 나는 그날, 그 친구와 투다리에서 소주를 마시지 않았다면 어쩌면 결혼을 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친구는 그때 나에게,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를 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우리 아빠를, 시인 지망생이었지만 결코 시인은 아니었던 아빠로 기억하듯이 내가 나의 아이에게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엄마로 기억될 수 있다는 엄연한 팩트가 나를 얼마나 두렵게 했는지 그녀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고(어쩌면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하나하나 이별의 과정들을 진행했다. 아무것도 아닌 여자가 될까 봐 애가 마르던 시절이었다.

♣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 - 김서령 :p 38 ~ 39

 

 

 

​하아! 이 대화 정말 공감 되지 않나?? 

'아무것도 아닌 여자가 될까 봐 애가 마르던 시절이었다' 마지막 문장은 내 마음까지 후벼판다.

 

 

 

 

▲ 위에 사진 3장은 진짜? 김서령 작가님이 직접 그리신 거 맞을까? 너무 실사 돋아 안 믿기는 술병 일러스트.

 

그리고 또 이런 문장도 너무 멋져서 옮겨 적었다. 

 

 

“여행 가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휴가 또 내기 좀 그런데.”

“연차가 남았잖아.”

“연차가 남아도 그렇게 마음대로 막 쓸 수가 없어. 진행하는 일도 있고.”

여전히 난감해하는 그에게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인생을 그렇게 살아? 회사는 충성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네가 먹고 즐기고 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려고 다니는 거야, 너 좋자고 회사를 다녀야지 회사가 좋자고 네가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게 말이 돼? 인생 그렇게 살 거야?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덧붙였다.

“어차피 네가 회사 다녀서 월급을 나한테 가져다줄 것도 아니니까, 그냥 그만두자.”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걸 알지만 계속 우겼다. 나는 여행을 꼭 가고 싶었고, 또 같이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러마고 했다. 곧바로 항공권을 예약했다. E-티켓을 받아든 그가 나에게 말했다.

“도대체 우린 커서 뭐가 될까?”

할 말이 없어서, 또 미안하기도 해서 나는 헤벌쭉 웃고 말았다.


♣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 - 김서령 :p 40~41 

 

 

 

하하, 무슨 인생을 그렇게 살아? 인생 그렇게 살거야?라니! 소심한 나는 이 에피소드에서 화들짝 놀랐는데,

꼭 여행이 가고 싶고, 또 같이 가고 싶었다는 문장을 읽고 소심한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인생 뭐 있나? 까짓거 하고 싶은 게 생기면 하고 싶을 때 해야지! 세월 지난 후에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다며 혼자 격하게 공감도 했다가.   

 

이 책을 혼자 읽다 보면 미친년 같이 된다. 혼자 격하게 공감했다가, 눈물도 핑 돌았다가, 미친 듯이 또 막 웃다가, 갑자기 진지하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도 세우게 되고,  ㅋㅋ  암튼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은 작가님이 또 한 명 생겨서 신 난다.

 

───────♥──♥──♥─

* 위즈덤 하우스 퍼플 소셜 평가단으로 출판사로부터 지원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문학·책 오늘의 Top에 소개되었어요!!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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