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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평점 :
엊저녁부터 신 나게 읽고 있는 책은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다.
아앜! 이렇게나 좋은 김연수 작가님의 글을 나는 왜 이제야 만나게 된 건지! 안타까워 미치겠을 정도로, 아주 흠뻑 빠져서 읽고 있다.
일단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출간된 직후부터 제목이 너무 독특하고 예뻐서 무조건 좋았는데, 표지까지 되게 괜찮아서 우와! 했었다. 그런데 막상 실물을 받아보니 저 소년 실루엣이 띠지였다니!! 반전 매력에 깜짝 놀랐고 말이 나온 김에 말이지만.. 책 띠지라는게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물건인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나는 책을 무척 곱게 읽는 사람이라, 책 읽을 때는 띠지를 벗겨서 잘 모셔두었다가 다 읽으면? 새책처럼 예쁘게 띠지까지 입혀 진열해 놓기도 하는데. 책꽂이에 책을 꽂다가 띠지가 찢어지거나, 띠지에 걸려서 책이 잘 안 꽂힐 때는 우씨 짜증이 확 솟구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띠지는 튼튼한 재질이기도 하고, 면적도 넓어서 음.. 이 정도 띠지는 너그럽게 봐줄 수 있다는 마음마저 들었는데 띠지를 벗겨낸 진짜 표지도 이렇게 보니 뭔가 아련함이 느껴지는 것도 같은 게 좀 심심하긴 하지만 마음에 들기도 하고..
소설가 김연수의 다섯 번째 소설집. 소설이 결국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면, 소설에서 언제나 가장 새로운 것은 바로 그 인물 자체이다. 각 개인의 역사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어떤 고유명사를, 하나의 인물을, 이곳을 데려와 소개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작가의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인물들을 대하는 작가 김연수의 태도는 더없이 신중하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열한 편의 소설은, 작가(혹은 작중 화자)의 개입 없이 소설 속 인물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엄마가, 누나가, 이모가, 들려주는 제 삶의 이야기들. 이상문학상 수상작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벚꽃 새해', 표제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등 열한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김연수 :p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책소개 중에서 특히
“소설에서 언제나 가장 새로운 것은 바로 그 인물 자체이다. 각 개인의 역사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어떤 고유명사를, 하나의 인물을, 이곳을 데려와 소개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작가의 일일 것이다. ”라는 말에 무한 공감을 하며.. 이번에는 또 어떤 인물을 데리고와 소개해줄까?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싶어진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는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나는 지금 막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까지 읽었다. 이제 남은 건 6편, 먼저 읽은 <벚꽃 엔딩>과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정말로 너무 좋아서 할 말이 잔뜩인데!!
“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 벚꽃 새해 :p 29~30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니!! 어쩌면 이렇게 예쁜 표현을 생각해낼 수가 있는 걸까? 처음으로 눈에 하트를 그렸던 문장도 나는 너무너무 좋고,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아내는 '세상에!'나 '어머나!'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맞장구를 쳤다. 때로는 많이 피곤했던지 어느 틈엔가 잠든 아내가 코를 골기도 했는데, 그런 날에도 노인은 혼자서 중얼중얼 마저 얘기를 끝냈다고 했다. 못 배운 설움은 아내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있었으니까. 그건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 벚꽃 새해 :p 27
아내가 잠들고 나서까지도 혼자서 중얼중얼 마저 얘기를 끝냈다는, 그건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는 노인의 이야기가 짠하기도 했다가 아주 따사롭게 느껴지기도 했다가.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이르러서는 대박!! 소리가 육성으로 터져버렸다.
그렇게 서귀포시 정방동 136-2번지에서 바다 보면서 3개월 남짓 살았어.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 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았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 석 달 동안 밤이면 감독님 품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누워 있었지.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p 81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 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라니!! 아니 어떻게 빗소리에 계이름을 붙일 생각을 다 할 수가 있는 걸까? 작가란 역시 위대하구나! 진심으로 존경심이 솟아올랐고.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아리송한 제목의 책을 읽을 때 ‘아!! 그래서 책 제목을 그렇게 붙였구나!’ 깨닫게 되는 지점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 문장이 더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암튼 계속 계속 쓰다듬어 주고 싶어졌다. 고나 할까? 이제 남은 6편의 단편은 정말 아껴 아껴서 읽어야지.
마지막으로 그동안 미처 몰랐는데 내 블로그에서 김연수를 검색해봤더니. 유독 김연수 추천글이 많이 나와서 깜놀랐는데.
아.. 맞다. 그랬었지? 요즘 내가 최고로 읽고 싶어하고 있는 책 <작가란 무엇인가>도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에서 한번 더 흔들렸고. 중고로 구입했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도 김연수의 추천사를 읽고서야 비로소 얼굴이 환해졌던 기억도 나고, <완벽한 날들>도 김연수의 추천사 때문에 더 읽고 싶어졌었는데…. 싶어지는 것이다.
아! 내 마음을 순식간에 앗아가고 마는 멋진 작가를 알게 되는 일은 이렇게 알듯 모를 듯 서서히. 천천히. 다가오기도 하는구나. 새삼 난 좀 으쓱해졌고, 나도 이제 드디어 그 유명한 김연수 작가 이야기가 나와도 쫄지 않고 나도 그작가 좀 안다고 너스레를 떨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