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만약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어마어마한 바람둥이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한참 혈기왕성하던 20대 때는 특히나 거의 매일 정체 모를 확신에 차서 아! 나는 정말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며 한탄하곤 했는데 ㅋㅋ “여자도 하루 12번 섹스를 꿈꾼다"라는 책 띠지 문구를 보고 잊고 있던 그때가 불쑥 떠올랐다.
굉장히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스스로도 은연중에 여자는 무조건 조신해야 한다며.. 내 속에 아주 사소한 욕망조차 싹둑싹둑 거세 시켜야 했던 스무 살 그때.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하는 내 엉뚱한 한탄도 그 반작용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ㅎㅎ
<욕망 하는 여자>는 일단, 표지부터 되게 마음에 들었는데 욕망 / 여자 이 두 단어를 샛노란 글씨로 선택한 것도 마음에 들고, 욕망 하는을 품고 있는 핑크색 동그라미는 심지어 올록볼록 엠보싱 처리가 되어 있어서 손으로 만져보면 촉감까지 아주 좋다. 물론 글씨보다 잘 빠진 여자 다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다리 라인을 따라 매끈하게 올라가다가 초 미니스커트에서 딱 떨어지는 저런 표지라니.. 어찌 눈길이 안 갈 수가 있겠느냐 말이다.
이쯤 해서 <욕망하는 여자>는 어떤 책인지 책소개 잠깐 살펴보자.
기존에 진화심리학과 통념이 말해온 것은 “남자는 동물에 가까워서 쉽게 성욕이 일지만, 여자는 친한 감정이 생겨야 섹스를 하고 싶다”였다. 로맨틱한 감정이 사라진 섹스리스 부부나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들은, 파트너가 좀 더 잘해 준다면 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욕망하는 여자>의 저자 다니엘 버그너는 그런 생각이 거짓이었다고 말한다.
저자 다니엘 버그너는 과감하게도 기존의 두터운 벽인 진화심리학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한다. 방대한 연구 자료와 더불어 명망 있는 행동과학자, 성과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과의 심층적인 인터뷰를 기반으로 여성의 성욕에 관한 케케묵은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아직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감도 안 잡혔던 초반에.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다 보니 ‘시버스’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자주 보이던지? 시버스?? 시에서 운영하는 버스인가? 도대체 버스에서 어떤 실험을 했길래?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글씨를 읽어 내려가니 아뿔싸, 버스가 그 bus가 아니라 성과학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과학자 이름이었구나;; 그나저나 성과학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도 굉장히 신기하고 더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예문들은 어찌나 야하던지 정말 집중이 잘 되더라 ㅎㅎㅎ
살짝 맛보기로, 시버스의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한 혈류 측정기 이야기를 잠깐 옮겨볼까?
대머리에 날카로운 콧날, 교활한 감시장치처럼 보이는 커다란 귀를 가진 프로인트는 체코 출신의 정신과 의사였다. 50년 전, 체코 군대는 동성애자로 가장하여 병역을 기피하려는 청년들을 잡아내기 위해 정신과 의사였던 그를 연구원으로 발탁했다. 프로인트는 이때 남성용 혈류측정기를 개발했다. 여성용 혈류 측정기가 개발되기 한참 전이었다. 그의 일은 음경의 기부까지 완전히 감싸도록 만들어진 유리관 모양의 측정기를 페니스에 끼운 청년들에게 이미지를 보여주고 압력과 팽창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만약 프로인트가 도발적인 젊은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는데도 압력이 증가하지 않으면 체코의 청년은 군대로 직행해야 했다.
♣ 욕망하는 여자 - 대니얼 버그너 :p 25~26
내 블로그엔 중 고등학생들도 가끔 오는 것 같으니 너무 야한 실험 장면은 신고 당할 것 같고… 암튼, 처음엔 헐;; 연구비 받아서 저런 실험이나 하고 앉아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는데 점점 갈수록 아 정말, 성과학이라는 학문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구나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끝으로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이기만 했던 성과학이라는 학문을 여성의 입장에서 풀어 헤쳐주는 이런 책이 더 널리, 더 많이 읽히기를 응원한다. 이 책 암튼 대박, 야하고, 재밌고, 파격적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