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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 세이지 1 -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
고선미 지음 / 스프링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결혼이란 남자가 여자를 희생과 봉사의 도구로 써먹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결혼하기 전 내가 툭하면 되뇌어 보곤 하던 영화, 그대안의 블루 명대사다. 아 벌써.. 그때가 언제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봤었는지? 어느 휴일 TV에서 방영해주던 영화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저 대사가 내 마음을 뚫고 들어와 꽂히던 그때의 그 기분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정말 충격이었는데.. <클라리 세이지> 이 책을 보고 있으니 유독 그때 그 영화가 떠올랐다.
우선 예쁘장한 <클라리 세이지>라는 제목보다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목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니 햐 - 벌써부터 좀 짠하지 않나? ㅠㅠ
어떤 책인지 책 소개부터 잠깐 살펴보자.
결혼을 앞둔 당신에게, 결혼을 되돌릴 수 없는 당신에게 꼭 한 번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소설의 제목 ‘클라리 세이지’는 허브의 한 종류로, 향이 깊고 부드러워 마음의 안정을 돕고 피로를 달래주는 식물이다. 통통 튀는 문체가 매력적인 신예 고선미 작가는, 결혼한 네 여인들의 비밀 이야기를 비단보자기 풀어놓듯 조심스레 들려준다. 전혀 낯설지 않은 네 개의 이야기는 각각의 플롯을 가지고 있지만, ‘클라리 세이지’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성에게 좋은 클라리 세이지의 향처럼 깊고 은은하게 결혼한 여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이 책은, 우아한 삶을 꿈꿨지만 매순간 우악스러운 현실에 치여 자신의 이름 석 자도 잊고 사는 그녀들을 위한 위로의 랩소디이자, 찬란한 미래를 응원하는 축배와도 같은 소설이다.
♣ 클라리 세이지 - 책소개 중에서
결혼 한 4명의 여자 이야기가 차례차례 교차되는 형식인데, 주인공이 4명이라는 게 나는 특히 마음에 들더라.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하지도 않고 공평한 시선으로 네 여인의 삶을 차례차례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 같은 책.
그리고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작가님 프로필인데,
저자 : 고선미 / 소개 : 1973년 8월생으로, 《클라리 세이지》는 그녀의 첫 소설이다.
와우! 대박 73년생이시면 만으로 40이신데 나이 마흔에 첫 소설을 탈고하셨다니! 짝짝짝!!!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어진다. 너무 멋지심.
첫 페이지는 친절하게 인물 소개부터 시작한다.
다들 왕년엔 잘- 나가던 멋진 아가씨들이었지만.. 지금은 육아에 찌들려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인 여자도 있고, 절대 사랑을 믿지 않다가 대충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무난한 남자와 결혼해 그럭저럭 살고 있는 여자도 있다, 그리고 모든 여자들이 우러러보고 동경하는 멋진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남편은 딴 여자랑 바람이나 피우고 있는 여자도 있고, 한때 국민요정 아이돌이었지만 이제는 돌싱 게다가 비호감 생계형 연예인으로 하나뿐인 딸을 위해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억척 싱글맘도 있다.
차례차례 네 명의 여인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햐 ~ 정말 사람 사는 거 다 고만고만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쩌자고 삶은 이렇게 한순간도 호락호락하지가 않냐 싶은 게 한탄도 나왔다가, 또 한편으로는 그러니 나는 지금 얼마나 행복에 겨워 살고 있는 거냐며 새삼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가..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1226/pimg_775219146944475.jpg)
특히 밑줄 벅벅 긋고 싶었던 구절은 307쪽에 나왔는데..
10센티 하이힐 : 그러게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요. 불행하게도 절대 존경할 수 없는 인격이거든요. 제 남편이라는 남자는 ㅠㅠ
내조만 여왕 : 그러니까 척하세요. 존경하는 ‘척’이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 호기심이 조금 발동된다.
10센티 하이힐 : ‘척’이요?
내조만 여왕 :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에겐 현실적인 생존법이죠. 무시당하지 않고 원하는 걸 받아내면서, 존중받으면서 살 수 있게 된답니다.
10센티 하이힐 : …근데 님은 그게 가능하세요? 척하는 거요. 어우… 생각만 해도 저는…
내조만 여왕 : 그게 어떻게 쉽겠어요. 다들 처음엔 너무 힘들어하지요.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남자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생각하면 좀 나아져요. 남자들이 툭하면 잘난 척해대는 것도 아내를 무시하는 것도 다 마음속에 철없는 남성 본능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10센티 하이힐 : …
내조만 여왕 : 남자들은, 여자 특히 자기 아내한테 대해서는 군림하고 싶어 해요. 그런 허세 유전자를 잘 공략해보세요. ‘이 여자가 정말 나를 존경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게, 마치 진짜처럼 그렇게 느끼게 하는 거죠. 그럼 게임 끝이에요! 그 심리를 잘만 이용하면 분명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10센티 하이힐 : 여왕님… 그런데 저한테 왜 잘해주시나요?...
내조만 여왕 : 실은… 저도 비슷하게 살아서…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우리 나이 세대에… 자기 아내 무시하면서 사는 남자는 제 남편밖에 없는 줄 알았거든요… 10센티님, 무심하고 무시하는 남편 때문에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도 잘 몰라요… 그러다가 애들 예쁘게 커가는 모습도 제대로 못 보고 살게 돼요. 저는 첫 애 낳고 8년이나 지나서야 깨달았어요. 그걸 진작 알았더라면 애들 좀 더 많이 느끼며 살았을 텐데… 그 생각에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언제고 기회 되면 님께도 얘기해 드리고 싶었어요.
♣ 클라리 세이지 1 - 고선미 :p 307~9
아!! 진짜 나 저 대목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당장 나도 저 채팅방 속으로 들어가 한 마디 거들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ㅎㅎ
책 뒤표지에 적혀있는 결혼을 앞둔 당신에게, 결혼을 되돌릴 수 없는 당신에게 꼭 한 번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말이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다. 정말.. 나도 아가씨 때는 이런 결혼한여자들 책 엔 관심도 없었는데;; 나도 결혼 하고, 삼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접어들고 보니 오히려 이런 책은 어릴 때 많이 읽어 두었어야 하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일 년에 제사가 열 번인 종갓집으로 시집갔다는 지인의 지인, 정말로 별 - 해괴한 시어머니를 만났다는 옛날 친구, 또 결혼 후 180도 바뀌어버린 남편 때문에 속 터져하는 지인의 지인 이렇게 알음알음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같은 여자로서 내가 다 안타깝고 숨이 꽉 막혀 오는 게.. 그러게 우리는 그때, 왜 아무것도 모른 체 덜컥, 결혼이라는 굴레를 짊어져 버렸을까? 그 겁 없던 순진함에 뒤늦게 어이없어하고.. 그래서 그런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동생들에게 더 권해주고 싶은 책 <클라리 세이지>
웬만한 드라마 한 편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결혼 삶의 현장!
4명의 캐릭터에 빗대어 미래의 내 결혼생활을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암튼, <클라리 세이지>속엔 치정도 있고, 근사한 로맨스도 있고, 삶도 있고, 죽음도 있고, 가십도 있고 유머도 있고, 웬만한 드라마 뺨치는 가독성도 있다.
리뷰를 쓰면서 가만히 저자의 말을 다시 읽어본다. 나 역시도 서태지에 열광하던 신세대 였기에 남 얘기 같지가 않고 그래서인지 한때는 신세대였던, 그러나 지금은 아내, 주부, 엄마가 된 여인들의 고단함을 알아주고 싶었다는, 쏟아지는 분주함과 충격들을 자기 안으로 견뎌내며 살아가는 그녀들을 위한 작은 위로라는, 저자의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