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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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때로 이렇게 터무니가 없다. 사랑인가.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톨스토이처럼 사랑을 가리켜 '자기희생'이라 말하고 싶지 않고, 오스카 와일드처럼 '성찬이니 무릎꿇고 받아야 한다'고 떠들고 싶지 않다. 아내와 연애할 때에도 알고보면 미적지근한 관계였다. 만나면 따뜻하고 안 보면 조금 쓸쓸한, 그것이 내 사랑이다. 사랑은 본래 미친 불꽃, 불가사의한 질주의 감정이라고 말한 건 선생님인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어찌하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에 데거나 다리를 부러뜨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꿈꾸는 사랑은 오래 앉아본 듯한, 편안한 의자 같은 것이다.-185쪽

"오지 말라면 안 올게요. 그러니깐요, 저 땜에 할아부지, 감옥에 가둘 필요는 없어요." 그 애의 목소리가 어머니의 그것처럼 따뜻이 들렸다. "젊으실 때도 십 년이나 감옥에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할아부지 이렇게 감옥에 있으면요, 저도 공부 안 돼 대학 못 들어갈지 몰라요. 은교 안 올 테니까요, 내일은 문 열고 나오세요."-232쪽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 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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