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도 실험이 필요하다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할 때였다. 한눈에 봐도 외모가 출중한 한 여성이 난감하다는 듯이 질문을 했다. 그녀는 우선 자신을 작은 기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CEO라고 소개했다. 과연 그렇게 보였다. 재산과 외모를 모두 잘 관리하고 있는 성공한 여성처럼 보였다. 


그녀 말의 요지는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이 먼저 계산을 한다는 것이었다. 남자와 만나도, 바이어와 만나도, 친구들과 만나도 ‘떠밀리듯이’ 자신이 계산을 한다는 것이다. 딱히 돈을 내는 것이 아까워서도 아닌것 같았다. 오히려 자신의 찜찜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듯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남자와 만났을 때 가장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지불하는 자신이 왠지 자신감이 없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경우 돈이 많아서 돈을 지불하고 그 상황에 어떤 자의식도 없다면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가진 사람은 당연히 베풀 수 있다. 문제는, 그 계산에 자신이 불편함을 느낀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자신이 계산대로 먼저 향하는 행동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인데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실험하기’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이 실험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 한번 계산을 안 해보자, 라고 ‘편하고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진지하게 생각 말고, 장난치듯이 가볍게. 아니, 그냥 장난을 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면 된다.  


이것을 일종의 ‘현장 체험 학습’으로 봐도 좋다. 체험 학습은 시뮬레이션 상황이고, 크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앞의 여성과 같은 경우에는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을 체험해본다’고 가정하면 어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이 실험 혹은 현장 체험 학습을 해보면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 자신에게는 매우 격심한 불안을 안겨주었던 일이 상대에게 실은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할 때나 너무 중요한 자리라서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이 체험 학습 능력은 더욱 필요하다. 물론 상황 전체를 체험 학습의 장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어떤 습관이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보다는 훨씬 쉽다.


♣ 여자의 문장 - 한귀은 :p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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