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생리적이라면 분노는 사회적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면 분노도 생기지 않는다. 분노는 정의의 관념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혐오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즉 동물적인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혐오감에 사로잡힌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차별과 부조리에 대해 혐오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차별과 부조리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분노의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혐오와 달리 분노는 말이 통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혐오의 입은 ‘입’이 아니라 토해내는 ‘주둥이’에 가깝다. 분노에서 말을 제거하면 혐오가 된다. 혐오에는 ‘왜’나 ‘이유’가 없다.
♣ 혐오, 감정의 정치학 - 김종갑 :p 9~10 / 채널예스 > 칼럼 > 대중문화 > 솔직히 말해서 > 눈을 피하는 혐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