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한 오늘
문지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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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되었다.
차분하고 따뜻한 짧은 글들을 봐왔던지라 반가웠다.

읽고 보던 것과 비슷한 호흡과 감정들이 하나로 묶인 것.
가만하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점은 좋았고,
기대보다 짧아 조금 아쉬웠다.

- 닿아있는 시간이 따사롭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 19

- 우리가 그다지 알뜰살뜰 개를 보살피는 사람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종종 저런 개에 뭐 그리 공을 들이냐는 말을 듣곤 한다.
‘저런’이라는 기준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나, 당신, 혹은 우리는 하루 세번 공들인 밥을 먹을 만큼 가치있는 존재가 맞는지 얘기가 복잡해진다. 그러니 그런 말은 말기를. - 31

- 삶에 허락된 운의 커다란 부분을 호두를 만나는 일에 써버렸다 해도 아쉬움이 없다. - 44

- 후줄근한 오늘을 보냈을지언정 모든 날들이 그렇지는 않으리라 가만히 믿어본다. - 163

2019.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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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뺀 세상의 전부 - 김소연 산문집
김소연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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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호흡과 산문의 호흡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시를 쓰는 나에 대한 깊은 사유가 곳곳에서 느껴지고, 그래서 시어 인듯한 산문이 조용하고 가만하게 다가온다.

천천히 길을 걷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느낌으로.


- 나를 뺀 세상의 전부, 내가 만난 모든 접촉면이 내가 받은 영향이며, 나의 입장이자 나의 사유라는 걸 믿어보기로 했다. - 10

-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아니라 잘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든든함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하고 싶은대로 했고 다행히 엉망이 되지 않았다. - 21

- 내가 처음 시를 썼던 1990년대에는 속임수임이 분명한 희망들이 노골적으로 도처에 전시되어 있었다. 절망은 꼭꼭 숨어 복병처럼 안 보였다. 시가 안 보이는 것을 노래해야 하니까, 그 시절 시인들은 당차게 절망을 노래했다. 이제는 절망이 노골적으로 도처에 전시된 시대를 살고 있다. 가장 안보이는 것은 희망이다. 그러나 시가 안 보이는 걸 노래해야 해서, 안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는 것은 멍청한 짓 같다. 그러나 멍청한 시인의 멍청한 시를 나는 은밀히 기다린다. 사람을 둘러싼 풍경 중에서 가장 희망에 가까운 풍경을 가장 멍청하고 가장 오롯하게 제시하는 시를 나는 기다린다. - 27

- 썼던 문장이 내 귀로 되돌아오는 것에 대하여 자문하고, 했던 말이 나를 지우고 있다는 것을 자백하고, 종내는 말을 포기할 때를 기다린다. 말의 무력함과 말의 무용함과 말의 허구성과 말의 폭력성에 대하여 대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버리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해 이상한 발명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 45

- 빛나는 경험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이제는 안 믿는다. 경험이란 것은 이미 비루함과 지루함, 비범함과 지극함을 골고루 함유하기 때문이다. - 252

2019.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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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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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연구할 만한 것들.
학교, 회사, 개인의 훈들에 대해, 말의 힘에 대해 간과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 선언만 반복하는 개인은 그 어떤 변화를 추동할 수 없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 9

- 인용된 교훈과 교가를 살펴보다가, 나는 ‘이래도 되나’하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순결함은 우리의 자랑”, “어여쁜 겨레의 딸”, “겨레의 참된 어머니”, “알뜰히 부덕을 닦아”, “순결 검소 예절바른 한국 여성”이라는 훈의 노래는 몹시 민망한 것이었다. 착한 딸과 어진 어머니와 참된 일꾼에 불편을 느낀 것에 대해 아내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고작 그런 걸로 내가 또 뭘 복잡한 표정을 지었을까, 하고 미안해졌다. 이미 생명을 다한 줄 알았던 언어들이 학교에 모두 모여 있었다. - 44

- 한 시대의 언어는 그 시대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몸보다 뒤처져서는 안된다. 훈은 개인보다 후행하면서 그들을 퇴보시키기 보다는 선행하며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해야한다. 학교라는 현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 65

2019.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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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른 아버지
이주란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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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라고 말하는 모든 이야기들.

불행은 평범하고 사소하다. 시작도 끝도 그렇다.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엄청 마음에 들어버렸다.
앞으로의 책도 무척 기다려질.

- 조금만 더 하고.
딸이 말하면 윤희는 괜히 걱정이 앞섰다. 공부라도 잘해야 나중에 밥은 먹고 살텐데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넌 엄마처럼 살면 절대 안 돼. 윤희는 속으로 생각했는데, 그 말을 딸에게 직접 듣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15

- 나도 꿈을 갖고 싶다. 나만 꿈이 없다. - 79

2019.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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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52
오스카 와일드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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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주변을 병들게 하는 마성의 캐릭터, 도리언 그레이.

아름답고 순수하던 젊은이는 기꺼이 그의 트리거가 되어주는 헨리의 도움으로 내면의 사악함을 극한으로 끌어낸다. 자신이 원인이 된 불행들을 태연하게 관망하는 어린아이의 악의같은 면들이 강도와 횟수를 더해가며 펼쳐진다.
과연 도리언 그레이는 그의 생 어느 한 순간 후회와 속죄의 마음을 가진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봤지만,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편리하게도 죄책감과 내면의 추함을 쭉쭉 흡수해주는 자신을 꼭 닮은 초상화가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든든한 뒷배가 있으면 인간이란 오만해지고, 시야가 좁아져 자신에게 씌워지는 불명예를 알아보지 못하니까....
실제하는 사람인 도리언과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초상화에 이중성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초상화는 순순히 본체의 악과 추를 야운삼아 충실히 늙어가고 흉해지기만 했을 뿐이었고,
그보다는 도리언, 바질, 헨리의 관계가 흥미로운데,
범인과 악인에 대한 가차없는 환상으로 읽기보다는 세명에게 골고루 위임되어 있는 인간의 못나고 모자란 면면들이 퍽 공감된다.

당시의 사회와 문화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나 콕 찝어 남는 지점은 아무래도 ‘완전무결한 생에 대한 욕망’인 이야기다.

- 당신만의 삶을 사시오! 당신 안에 있는 경이로운 삶을 살란 말이오! 무엇하나 잃지 마시오. 항상 새로운 감동을 찾아 나서시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오.... 또 하나의 새로운 쾌락주의, 이것이 우리 세기가 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당신은 그 쾌락주의의 가시적인 상징일지 모릅니다. (...) 헨리 워튼 경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젊음에 대해 이상한 칭찬의 말을 늘어 놓더니, 이어서 그것이 얼마나 짧은지 경고하는게 아닌가. 그 말이 그를 흔들어 놓았다. - 42

- 도리언, 그게 차이야. 아무렴 큰 차이지. 사람들은 대부분 산문 같은 삶에 너무 과도하게 투자하는 바람에 파산하지. 그러나 시로 인해 파멸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명예로운 일이야. - 87

-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잘못 이해하며, 더욱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경험은 윤리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저 사람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에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대체로 도덕론자들은 경험을 교훈의 양식으로 간주해왔으며, 인격 형성에 특정한 윤리적 효력을 지닌다고 주장했으며, 우리가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무엇을 피해야하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칭송해 왔다. 그러나 경험에는 행동을 유발하는 힘이 없다. 그것은 양심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계기가 되지 못한다. 경험이 실제로 증명해 보이는 것은 고작해야 우리의 미래가 과거와 똑같은 것이 되리라는 사실이고, 한 때 우리가 저지른 죄를 혐오하면서도 그 죄를 거듭하고, 그것도 기꺼이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 95

- 난 지금 그 어떤 것도 인정한다, 인정 못한다, 이렇게 말할 수 없어. 그건 인생에 대해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가 아니거든. 우리가 지닌 도덕적 편견을 내세우자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것은 아니잖나. - 120

- 영원한 젊음, 다함이 없는 열정, 은밀하게 찾아오는 쾌락, 미친듯한 기쁨과 거침없는 죄악. 그는 이 모든 것을 다 누려야 했다. 그리고 그의 불명예의 모든 짐은 초상화가 대신 짊어지고 가야했다. 이것이 선택의 전부였다. - 167

- 바질 홀워드가 모욕적인 언사로 그에게 퍼부었듯이 정말 그 젊은이의 파멸이 자기 탓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고, 잠시 그의 두 눈에 슬픈 표정이 고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젊은이의 파멸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너무나 짧은 인생인데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각자는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고, 그 삶에 대한 대가도 각자가 알아서 치러야 하는게 아닌가. 다만 한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단 한 번의 잘못에 대해 너무 자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거듭해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인간과 거래하면서 운명의 여신은 결코 손해보는 법이 없었다. - 293

- 사람은 자신의 가장 나쁜 습관이라도 그걸 잃고 나면 후회를 하는게 보통이야. 어쩌면 나쁜 습관을 버리고 나면 더 애석해 할 걸세. 그 나쁜 습관들이 인간 성격에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니까 그런거야. - 326

- 세상이 우리 둘 다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때가 있었지만 그럴 때도 세상은 늘 자네를 숭배했다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걸세. 자네는 이 시대가 찾고 있는 그런 유형의 존재야. 그리고 찾아낸 것이 오히려 두려운, 그런 존재야. 난 자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조각도 안하고, 그림도 안 그리고, 자네 자신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인생이 자네의 예술이었네. 자네는 스스로를 음악에 맞췄어. 자네가 지낸 나날이 자네의 소네트였네. - 334

2019.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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