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ㅣ 창비시선 405
이설야 지음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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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걸리는 조등을 그저 바라보는 심정.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겠지만,
흰 빛들을 끌어 모을 것이다.
그 빛들은 눈송이들을 끌고 다닐 것이다.
마침내 눈은 쌓여 어둠을 덮을 것이다.
생의 골목골목은 광장이 되고
광장은 시가 될 것이다. - 시인의 말 중.

2017. Jan.

조등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꽃은 시들고
나비는 죽었다

내가 인생의 꽃등 하나 달려고
바삐 길을 가는 동안
사람들은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먼저 사랑한 순서대로
지는 꽃잎
나는 조등을 달까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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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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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스로 밝혔듯, 옥타비아 버틀러는 근본적으로 장편 작가다.

단편이 담아 낼 수 있는 것 보다 많은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권두에 밝혔는데,

읽으면서 완벽하게 와닿았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존재와 현상을 다루는데 단편은 너무 촉박하다.

그래서 7편의 단편과 2편의 에세이 말미에는 후기가 짧게 붙어 있다.

단편 중엔 ‘말과 소리‘가 좋았다.

에세이 두편도 좋았고.

2017. Jan.

"얘야...... 검둥이는 작가가 될 수 없어."
"왜요?"
"그냥 안 돼."
"아니에요, 될 수 있어요!"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를 때 제일 단호했다. 열세살이 되도록 읽은 인쇄물 중에 흑인이 썼다는 글은 단 하나도 없었다. - 265, 긍정적인 집착 중.

미국 문화의 현실과 상충하는 마음 아픈 불문율이 하나 있는 것 같다. 당신이 흑인으로서, 흑인 여성으로서 정말로 열등 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의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다. 충분히 똑똑하지 않을지도, 충분히 빠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할 만큼 뛰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선 안 된다...... 그러나 물론 당신은 의심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 못지 않게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다 해도 그 점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근처에 있는 누군가가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 얼른 그들의 자신감을 북돋아서 입을 다물게 해야 한다. 난감한 대화가 되겠지만 말이다. 다부지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자신의 의심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의심을 상대해본 적이 없다면 영영 의심을 없애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모두를 속여라. 자기 자신까지 속여라.
나는 나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나는 내 의심에 대해 많이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나는 조급한 위로와 칭찬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을 많이 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또 했다. 그런데 내가 누구란 말인가? 내가 글을 통해 하는 말에 왜 누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나? 나에게 할 말이 있기는 한가? 맙소사, 나는 sf와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었다. 당시 직업으로 sf를 쓰는 작가는 거의 백인 남자였다. 아무리 sf와 판타지를 사랑한다 해도, 내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글쎄, 어쨌든 그만둘 수 없었다. 긍정적인 집착이란 두렵다거나 의심이 가득하다는 이유만으로 멈출 수 없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집착은 위험하다. 그것은 아예 멈출 수 없다는 뜻이다. - 271, 긍정적인 집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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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7.1.2 - no.010 ㅣ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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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잡지는 꽤 여러 종류를 구독, 구매해서 읽었었는데.

아무래도 자꾸 밀리는 데다 집중도가 좀 떨어지는 편이어서 구독은 모두 그만 두었다.

악스트와 릿터는 매번 사보는 편이고, 가격면에서 부담이 없으니 책 주문하면서 주문하게 되고...

그러나 밀리는 경향성은 언제나 마찬가지.

이번 호에는 존 버거의 특별기고가 있어 우선 읽었다.

가장 와닿는 기고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에 대한 김영주의 리뷰였다.
당장 문을 읽고 싶어질 만큼.

정이현의 새 연재 <그 밖의 사람>도 좋다.

2017. Jan.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속수무책으로 휘말려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달리던 트랙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 일어나서 달리던 트랙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고 살아내야 할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았을 때,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
소스케와 오요네는 함께 산 6년 동안 말다툼 한 번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금슬이 좋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에는 외부가 없다. 간혹 그들의 대화에 타인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타인의 삶은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거나 지나가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두 사람의 삶은 서로의 내부로 깊이 침잠하고 얽혀들어서 "두 사람의 정신을 구성하는 신경계는 최후의 섬유에 이르기까지 서로 껴안고 있는" 상태이다. 그들은 함깨 고립되었기 때문에 일상을 겨우 견딜 수 있다.
(....)
많은 것들을 잊었다. 인생을 걸고 싶었던 일을 포기하던 순간을 잊었고, 평생을 같이 하고 싶었던 사람을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잊었다. 이제 그런 일들은 소설을 읽는 것보다 훨씬 희미하다. 이제 나는 소설의 인물들을 실제 인물처럼 느낀다. 나의 인생과 그들의 인생이 다르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구원은, 소설을 읽고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서 얻는 정확한 위로와 가장 가깝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도 나는 구원받을 수 있다.
- 나쓰메 소세키 <문> 리뷰, 김영주 ‘벼랑 아래의 삶‘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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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7-01-1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스트와 릿터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문학잡지는 한번도 사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hellas 2017-01-15 17:10   좋아요 1 | URL
글쎄요. 일단 전반적인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리뷰와 에세이 단편 연재 로 구성되니 각자의 색깔이랄까 그게 조금 다른데 아무래도 디자인에서 일단 크게 드러나는듯. 디자인면에선 릿터가 명료한 편이라면 악스트는 좀 모던한편? 애매하죠? 결국 접해보고 결정하시길 추천할수밖에.... 기존의 계간 잡지에 비해서 볼륨이 부담스럽지 않은건 좋은데. 전 계간지도 좋아요 훨씬 묵직한 이야기들을 감당하기도 하니까. :)

북깨비 2017-01-15 18:06   좋아요 0 | URL
하아. 이거 결국 두 권 다 한번씩은 사봐야 하겠군요. ㅎㅎㅎ

hellas 2017-01-15 18:16   좋아요 1 | URL
결국은 그런 이야기로 ;ㅂ;
 
메갈리아의 반란
유민석 지음 / 봄알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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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에 대응하는 언어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는 책.

주디스 버틀러의 난해한 문장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 듯한 글.

이미 페미니즘 연구에 있어 존재하는 이론과 분석철학을 메갈리아와 연결지어 이야기 했다.

침묵 당하고(발화효과행위적 좌절),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여성들의 발화를 강제하고 있다는 것.
혐오의 메세지가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있다는 것.
증오를 선동하기 위한 혐오발언에 대한 이야기들.

일베식의 여성혐오 발언이 언어의 사용(use)임에 반해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이미 사용되어진 언어를 언급(mention)하는데 이용되었다는 차이 설명이 두 집단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다는 단서가 된다.

양성간의 혐오는 모두 지양되어야 하지만, 남성혐오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여성혐오와 같다고 기계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젠더 권력의 비대칭을 간과하는 것이고, 여성 혐오에 대한 강도와 범위가 비교할 수 없게 차이가 나는 것을 은폐하는 행위라는 것.(p78)

여성 혐오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고 여성혐오의 권위를 교란하는 방식으로 여성혐오를 약화시키는 것이 미러링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다.

메갈리아에 대한 뜨악한 시선 이전에 여성혐오 발화자에 대한 반성과 각성이 필요하며, 침묵으로 상황을 외면하는 행위 또한 여성혐오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있음을 이야기 한다.

혐오가 권력적 위계관계에서 비롯되며, 혐오발언의 특정 메세지가 작동하는 기제,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 혐오발언의 사용과 언급의 차이, 마이트라의 분석철학 이론, 메갈리아의 화법이 전복시키는 젠더 체계, 혐오발언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설득이 이 책의 구성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볼륨에 이론적인 부분도 어려움 없이 다가온다.

한번 읽어볼 만 한 책.

2017. Jan.

여성혐오발언의 수산자들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대응에 나선 듯 보이는 것은 이들이 혐오에 의해 침묵당해왔지 때문, 혹은 권력의 차이로 인해 이들의 대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이 이미 여성혐오의 메시지에 반발했으며, 실제로 혐오발언에 반박하고 화자를 일깨우는 목소리를 내오기도 했다. 단지 그들의 목소리는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혔고,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여성혐오에 맞서려는 의지는 항상 존재했다. - 55

상처를 주는 말의 미학적인 재연은 그 말을 사용함과 동시에 언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어떤 효과를 낳고자 상처를 주는 말을 활용할 뿐 아니라 그런 사용을 동시에 언급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말이 인용이라는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그런 사용을 인용적인 유산 내에 위치시킴으로써, 그런 사용을 당연시된 일상 언어의 작동이 아닌 성찰되어야 할 명시적인 담론적 항목으로 만듦으로써 말이다. 아니, 미학적인 재연은 그런 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또한 그것을 진열하며, 지적하고, 어떤 일종의 효과를 낳기 위해 활용되는 언어의 자의적인 실례로서 개괄하는 것일 수 있다. - 75, 주디스 버틀러

메갈리아의 미러링, 아니 남성 혐오발언이 여성혐오발언처럼 과연 역사적으로 억압당한 남성 집단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고 열등하게 재종속시키는가? 공론장에서의 남성의 발화 권력을 박탈하고 침묵시키는가? 아니면 젠더 권력 불평등을 강화하고 성차별을 공고하게 영속화하는가?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메갈리아와 일베는 전혀 같지 않은 것이다.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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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는 야옹 ㅣ 문학동네 시인선 87
길상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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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는 있으나, 비극은 아닌.

채도가 낮은 초록의 표지처럼 가만가만하고 차분한 관찰이다.

시가 되지 않은 문장들은 당신에게 교감으로 가닿길 바란다는 시인의 염려?가 있었지만.

내겐 넘치게 시로 다가왔다.

파도는 아무리 뽑아 써도
쉽게 채워지곤 했으므로
너와 나 사이에 드나들던
거짓말도 참말도 점점 희미해졌다 - 물티슈 중

습기 가득한 명찰을 목에 걸고
아침이 두통처럼 무거워졌다
깨끗한 이름으로 살고 싶었으나
희미하게 번지기만 하던 날들,
젖은 이름을 빼 말리려다
나는 그만 찢어지고 말았다 - 아침에 버린 이름 중.

2017.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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