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
정지음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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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는 못 미쳤다.
소소하게 풋 하게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을 기대했지만...

애초에 글쓰기론에 대해 기대한 게 아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정지음 작가의 데뷔작 느낌의 재치를 기대했었는데.
그보다는 강의의 한 토막을 떼어내 보여주는 느낌.

부정적 감정을 회복하는데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단어를 수집하면서 단어들 간의 미묘한 뉘앙스를 찾아가는 재미를 설명한 부분도...
무엇보다 술이 꽐라가 된 후 부모님께 쓴 작가의 반성문은 재밌었다.

- 흩어진 생각을 모아 질서를 만들고, 말로 표현할 수 없던 감정에 언어를 부여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과 세상 사이의 무수한 연결점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9

- 때론 아무에게도 읽히지 못할 잡문이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읽히지 못하는 글이란 없었다. 쓰는 즉시 없애도 나 자신, 단 한 명만큼은 그 글의 주인이자 손님이고 증이이었다. - 21

- 괴리감에는 양면성이 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그걸 감각하는 것만으로 고통이 되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창작의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선명한 괴리감이란 선명한 지향점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 점을 확실히 인지하면 헤매는 과정에서도 시행착오와 실망이 덜하다. 낙담할 에너지를 아껴 다시 정진하는 것만으로도 글쓰기는 많이 발전한다. 중요한 건 괴리감을 인식하되 그것에 잡아먹히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 141


2026. feb.

#글이안써지세요저도요 #정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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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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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의 겨울정원은 노년의 담담함, 단단함, 관조하는 시선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이별에도 굴하지 않는 그러나 쓸쓸한 비애가 느껴지는 그런.

그동안의 정의도 좋았다.

가만히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오히려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라는 심사평이 맘에 남는다.

- 소설을 쓸 때 나는 그런 사람의 작은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보다 큰 그리움에 대해 생각했다. 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꽉 찬 사랑,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면 '너무 작은데'라고 할 것만 같은, 그런 사랑과 여전한 그리움 말이다. 누군가 조금 슬프다고 말할 때는 분명 어떤 류의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 수상 소감 중

- 우리는 뭐 매일 저녁을 같이 먹거나 자기 전에 잘 자란 말을 하거나 하지 않고 각자 생활하는 편이기 때문에 안 들어온 줄도 몰랐다. 그래도 안전을 위해서 말만 좀 해주면 좋으련만 바랄 걸 바라야지, 하면서 다시 긴 베개를 이불로 덮는 사이에 미래가 들어온다.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해놨어?
응? 이거 내가 그런 거 아녜요. 나 당당하게 외박한 거야!
당당이라니, 내세울 일일 것까지야, 싶지만 그래도 난 나와 다른 미래가 좋다. 아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았다가는......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죽을지 모르니까. 말로는 당연하고 어디 카톡이나 노트북에 가끔 일기를 쓸 때에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쉽지 않다. 미래가 바리바리 짐을 싸 이 집에 들어오던 날, 내게 오래 쓰던 노트북을 줬다. 그래 노트북 열어보는 게 재밌어서 네이버에 뭘 검색하다 보니까 지난 검색어가 떴는데 환멸, 체념, 적응, 포기라는 단어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 딸이 그런 단어들을 검색한 흔적을 목격하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외박하는 편이 훨씬 좋은 것이다. - 23, 이주란, 겨울정원

2026. feb.

#겨울정원 #이주란 #김유정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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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 ㅣ 교유서가 시집 3
리산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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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공감이 생기지 않은 채로 읽었고, 2편 정도는 꽂혔다.

교유서가의 시선집은 어떤 무드인지 궁금해져서 사봤는데
큰 인상을 남기는 데는 부족한 듯.

- 오래된 마음은 가라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는 뛰어드네
다시
맨 처음으로 - 시인의 말

- 끝내 가닿지는 못하고 날마다 밤마다 길을 떠나는 꿈 길을 떠도는 꿈, 연고도 시기도 없이 여기 서 있다 뭉개져가는 무덤은 누구의 것이며 이 형태는 어디서 와서 어디까지 가나 하는 생각들을 하며 밤을 지새우는 것이었다 - 사월에는 서역 중

- 그 때 우리는 슬픔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 우리의 슬픔은 증폭되고 슬픔 외엔 관심이 없었지 우리의 슬픔은 주말이면 무럭무럭 번성하고 우리는 우거진 슬픔 속에서 잠이 들고 음악을 듣고, 이를테면 그 시절 우리는 휴일 저녁 슬픔의 전문가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웠네 - Veinte Anos 중

- 빗물에 적은 하나의 이미지만을 바라보고 바라보느라
남은 생을 다 쓴다 - 앤틱한 마음 중

- 무장야 무장야 눈이 내리고
세상의 모든 폐허 위에 눈이 내리고
누가 밤새 파편들을 모아
폐허를 떠받치는 소리 - 위무위 -술에 취한 나는 무슨 이유로 그리 슬피 우는가(전문)

- <산책에서 돌아오지 않기>
전나무는 옛날식 정원처럼 무성하게 그림자를 피워내고, 정원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라고, 나무란 이렇게 낭만에 찬 바람을 모두 불러내 지붕과 첨탑 위에서 풍향계가 쉼없이 돌아가게 하는 거라고 너는 말한다

내내 나빠질 수 있지만, 기가 막히게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하는 그런 생각

반쯤 주문에 걸린 것처럼, 지금 영혼은 삶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황혼처럼 물들어 결연히 어딘가로 가려 하나, 살을 에는 꽃들의 슬픔으로 가득한 겨울의 숲 저녁 무렵

전나무가 길게 늘어선 숲, 꽃들은 눈처럼 향기롭게 떨어집니다, 발밑으로 길어지는 당신의 낭만,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건, 꿈꾸는 이상적인 울적한 하루가 전부여서, 마른 꽃들은 발밑으로 떨어지고,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허밍을 하는, 이 낡고 오래된 집에서도, 왜 꿈은 오래 꿈꾸던 꿈일 수가 없는지

하나의 애도 하나의 기념 하나의 취향, 애호가들을 위해 천재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우로 제외되는 기회들, 그러나 개구리를 해부하는 방식으로 나를 파악할 수는 없어요

끊이지 않는 중얼거림 땀에 젖은 머리카락, 오늘도 펜을 손에 쥐고, 끝없이 드러나는 고귀함을 보이며 정원을 거슬러가며 이끼로 뒤덮인 벽을 넘어 바다를 건너, 무엇이든 물들여보겠다며 씨앗은 날아갑니다
(전문)

- 폐허 속에서 쉬는
쉼
지나 간다 - 아프리카의 해 중

2026. jan.

#우리의슬픔은전문적이고아름다워 #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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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혁명 -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ㅣ 이상문학상 작품집
예소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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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소연... 그 개와 혁명.
2, 3 페이지마다 감정을 깊이 건드리는 지점이 있어서 코끝이 찡해지는 위험요소 범벅인 소설이다.
죽음에 임박해 고통과 싸울 때 딸인 내가 상주라는 확답을 녹음하는 대목에서 가장 크게 멈칫했다. 
세대의 무엇과 삶의 무엇이 담긴 담백하지만 약간은 전복적인 대상작이라고 생각한다.

대상작이 좋으면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결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읽게 되는 면이 있다.
취향이 아닌 해도 있지만 2025년은 취향의 작품집이 되었다.

- 나는 태수 씨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왜냐하면 태수 씨는 자식이라곤 나를 포함해 딸만 둘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꾸 요즘 여자들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요즘 여자들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태수 씨는 가까이 있는 나를 두고도 저 멀리 있는 요즘 여자들을 보는 식이었다. 그래서 유연한 노동 문제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불가산인 가사 노동 시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사회는 조리 있게 굴러가야 하지만, 가족이라는 제도 안의 조리는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 17, 그 개와 혁명, 예소연

- 다 알면서도 참고 사는 거야. 그런데 너네는 왜 그러니? 태수 씨는 내게 이렇게 물어 온 적이 있었다. 나는 태수 씨의 삶도 치열하면 치열했지 참고 견디는 방식으로 이어져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태수 씨를 사랑했다. 인셀은 사랑하지 못해도 그런 태수 씨 정도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역사를 알면 그 사람을 쉬이 미워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18, 그 개와 혁명, 예소연

- 있잖아, 수민아. 그냥 죽고 싶은 마음과 절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일매일 속을 아프게 해. 그런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온갖 것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걱정돼.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돈이 더 많이 들어서. - 28, 그 개와 혁명, 예소연

- "니들 진짜 미쳤니?"
나는 수첩을 펼쳐 엄마에게 해야 할 말을 찾았다. 그리고 해오던 것과 같이 최대한 태수 씨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공 여사, 자중하시오. 우리의 적은 제도잖아."
그러자 엄마, 공 여사가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자는 태수 씨의 바람대로 길길이 날뛰었다. 화환과 국화 꽃을 물어뜯고 이곳저곳 냄새를 맡고 사람들을 향해 짖어댔다. 나와 수진은 서로 은근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장례식장 직원들이 성식이 형을 끌고 나갔다. 성식이 형은 끌려 나가면서도 유자의 만행을 끝까지 지켜보려고 했다. 나는 비록 눈물이 차올랐지만, 활짝 웃고 있는 태수 씨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같이 웃어 보였다. 수진도 그랬다. 그것이 태수 씨의 마지막 지령이었기에. - 35, 그 개와 혁명, 예소연

- 속수무책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쓰는 편입니다. 삶은 정말이지 속수무책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해할 수 없음을 또 들여다보면, 무언가 보이기도 합니다. 그 이해할 수 없음 속에 존재했던 분명한 선택과 의지, 체념, 미약한 사랑 같은 것들이요. - 41, 예소연

- 사람들은 참 신기하다. 우리의 무의식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파선 위에서 먼저 뛰어내리는 건 쥐뿐만이 아니다. 우리도 우리의 미래를 안다. 그저 모종의 이유로 망각하고 있는 척할 뿐. 우리가 하는 말은 결국 자기실현적 예언이거나 결과를 이미 알고 치는 점괘로 판명된다. - 159, 허리케인 나이트, 문지혁

2026. jan.

#이상문학상수상작품집 #예소연 #그개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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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4
박서영 지음 / 민음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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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파국으로 끝난다고? 싶은 당혹감이 좀 있다.
짧은 장편이라서일까?

동물원에서 탈출한 동물의 딸이 주인공인 설정.
약간의 이물감이랄까. 불편감이랄까. 그런 지점도 분명 있다.

나무에게 치명적인 병을 옮기는 존재인 엄마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벌목.
아무래도 우울한 설정일 수밖에 없지 싶다.
그래도 조 단장이라는 기댈 구석이 있어 다행일까.

지독한 증오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처음 알게 된 표현.
'윤몰하다' 물 속에 가라앉아 빠지다. 어떤 세력이나 현상 속에 휩쓸려 없어지다.

- 나는 그 말을 알지 못했고 늘 익숙한 침묵을 택했다. 항상 이래 왔다. 무엇에도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그저 살아 숨 쉬는 것에만 최선을 다할 뿐인 인상으로...... 어디서나 겉돌 수밖에 없는 뚱한 표정......
나를 수식하는 건 나무 벌목이라는 생계 수단과 서른이라는 애매한 나이, 그리고 여자라는 성별이다. 하얀 피부와 주근깨투성이인 얼굴, 15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키, 누리끼리한 손발톱..... 이것만으로도 남들과 구분되는데 어눌한 발음까지 그대로 드러내면 내가 짐승의 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기분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저 숫기 없이 나무 베는 여자로 각인되고 싶다. 이것이 사람 집단에 동화되기 위한 나의 최선이다. - 38

- 나는 버려진 것이다. 다나가 연리재에서 들려주었던 처절한 경험을 나도 똑같이 겪게 되었다. 버려진다는 건 이런 것이었다. 사람의 규칙 바깥에 내던져지는 것. 사람의 규칙을 알고도 그와 무관한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 것. 버려졌다는 것보다 다나의 마음을 내가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 - 76

- 어떤 딸은 엄마에 대한 분노를 먹으며 자란다. 나는 엄마와 다르다는 믿음이 비로소 나를 자유롭게 한다. - 82

- '미워하거나 미워했던 것들을 쓰시오.'
시험지를 내민 삶의 뻔뻔한 표정.
사실 내가 가장 미워하는 건
이 시험지를 내민 삶이다.
내가 미워하는 모든 것으로 빚어진 삶.
도망치려 들어선 모든 길목마다 마주친 삶의 그림자.
삶에게 몸이 있다면 장기를 모조리 꺼내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벌을 삶이 받았으면 좋겠다. - 작가의 말 중


2026. mar.

#다나 #박서영 #오늘의젊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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