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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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싸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나라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반려와 함께 독립군에 가담하고, 남편이 죽어 삶의 터전을 등지고,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며 부조리에 저항하는 강주룡의 일대기는 우리 역사 안에 적지 않게 볼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인데 그럼에도 읽는 내내 뱃속이 일렁거렸다.

정해진 결말을 향하는 강주룡을 보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나, 이 책에서 다시 태어나 생명을 얻은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감동을 준다.

거센 변화의 물결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을 때도 그녀의 마음속 불꽃을 알아보는 동지들이 있어 기뻤달까.

고공농성이 사라지는 날이 오길... 마음이 무겁고 무거웠다.

모든 것이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게 보인다. 작고 우습다. 무엇에 그토록 성이 났었는가도 잊힐 만큼 만사만물이 멀게 느껴진다. 다시 저 아래로 내려가면 나 또한 그렇게 작아지겠지. 다시 사소한 것에 화가 나고 사소한 일에 울고 웃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그 좋은 서방 생각도 나지 않는다. 주룡은 그것이 외로움인 줄도 모르고 외로움을 곱씹는다. 오래 골몰할 수는 없는 생각이다. - 33

왜 울고 그러시오. 내가 잘못했습니다. 울지 마십시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달헌을 등지고 옷고름으로 눈을 가린 채 주룡은 답한다.
운다고 우습게 보지 마시라요. 내 말로 달헌 씨 이길 수가 없어서 분해서 우는 거이지 다른 뜻 없습네다.
우습지 않습니다. 내가 이겼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당신 아주 탁월한 사람입니다. 싸우려고 태어난 사람 같습니다. 본때를 보여주시오. 나 따위 것 우습게 여겨버리시오. 알겠소?
여전히 달헌을 등진 채로 주룡은 고개를 끄덕인다. - 210

해가 동쪽으로 기울어 주룡은 광목천을 타고 을밀대 누대에서 내려온다. 달헌은 감은 눈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그 광경을 본다.
거기서부터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달빛이 흰 광목을 훑는다. 그 빛나는 줄을 잡고 지붕 위로 올라가려는 주룡은 마치 선녀 같다. 달헌은 그 아름다운 광경을 감히 해칠까 봐 잠시 망설이다가 힘겹게 말을 건덴다. 올라가지 말아요. 거기 올라가면 죽게 됩니다.
주룡은 답한다. 알고 있다고.
달헌은 제 머릿속에서조차 말을 듣지 않는 그 여자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하늘로 올라가는 길처럼 빛나는 광목을 주룡은 단단히 붙든다. 사실은 두려워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이면서. 사실은 살고 싶어서, 그 누구보다도 더 살고 싶어서 활활 불타고 있으면서.
지분 위에서 잠든 그 여자를 향해 누군가가 외친다.
저기 사람이 있다. - 242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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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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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와 분위기가 겹치는 단편집.

조금은 불투명하고, 고민스럽지만, 따뜻하고 조용한 그런 분위기.

작가가 지나온 유년의 기억들이 담겨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래서 약간 숫기없는 청년의 이미지인지도...
그들이 온전히 자신의 자리를 찾기를 바라게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

다들 그렇게 혼자 서 있는 게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차라리 그게 좋아. 그렇게 서 있는 거지. 몇 시간이고 앞을 보면서. 대체 얼마나 많은 괴로움이 지나야 삶이라는 걸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요즘 해. 지나가기를 바라는 시간이 많았어. - 154, 모래로 지은 집 중

화학에 대해 풀어 설명하면서 내가 왜 처음 화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변형될 뿐, 산화되어 재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물질은 아주 작은 부분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 그 과학적 사실은 어린 나에게 세상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다정하게 다가왔었다. - 161, 모래로 지은 집 중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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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ㅣ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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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침이 고인다’에 실렸던 글이 일러스트를 더해 작은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미 읽은 글인데 왜인지 천천히 되새기게 되는 것은 김애란 작가의 단아한 문장들 덕이다.

‘안일하고 긍정적인’ 아버지를 대신해 국숫집 맛나당을 꾸려나가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억척과 생명력과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그려져 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배곯아 본 적 없는 주인공의 유년의 기억은 온전히 어머니의 칼질에서 마술처럼 태어나는 음식에 빚져있다. 그 칼자국이 온 몸 , 온 내장에 아로새겨져 한 인간을 무럭무럭 자라나게 하는 것. 그런 충만함이 단어 하나하나에 포개졌다.

새삼 머리카락 끝까지 폭신폭신한 좋은 기운을 폭 뒤집어 쓴 기분이 되었다.

어머니는 순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다시 카트를 밀고 주위를 헤맸다. 어머니는 초보 운전자처럼 다른 카트에 치이고 밀리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얼마 후 주방용품 코너에 섰을 때, 부엌칼을 어떤 걸로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내게, 어머니는 독일제 칼 하나를 불쑥 내밀며 “이걸로 해라”라고 말했다. 내가 칼을 쥐고 갸웃거리자 어머니는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
“내가 칼 볼 줄 안다.” - 34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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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와 로라 ㅣ 민음의 시 249
심지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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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도착했습니다
‘잘’ 이라는 부사가 생략하는 것들과 함께 - 작가의 말

새벽 무렵 눈을 뜨면 잠긴 건물들 사소하고 쓸쓸해 지평선은 사라지면서 나타나고 우리는 걷는다 마땅한 인사를 건네지만 우리가 말아 쥐고 있는 것은 목화솜 이불,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는 유일하게 싫증 나지 않아 - 모든 침대는 일인용이다 중

12월이 죽었다
잠에서 깨어 그것을 들었다
풀이 가늘게 자랐다
슬픔은 더 얇아질 수 없어서
그림자로 남았다
더 얇아질 수 없는 옷을
걸친 물체들이
12월을 지나고 있다
건널 수 없는 것을
건너고 있다 - 물체들의 밤 전문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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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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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어본 듯한 ‘대구 희망원’, ‘전주 봉침 여목사’ 사건들을 하나로 묶어낸 소설.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는 편이 아닌데도, 종교와 연루되어 있는 경우 혐오감 탓일까 더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 그래서 자세한 사건 개요등은 알고 있지 못했었나 보다.

공지영 작가가 언급하듯 날것, 정글 같은 느낌, 그것들의 아주 부정적인 부분들이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그려진다.

어쩌다 보니 말끝에 ‘상식’이라는 단어를 자주 붙이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어떤 팬덤과 관련된 부정적 이미지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권력과 그 권력이 만드는 부조리, 그런 것들이 너무 뻔한데 뻔하면 안되는 방식으로 현실에 반영되어 있는 것... 으...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공지영 작가. 불의라고 생각하는 것에 거침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그녀의 모든 행보에 수긍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정의로운 어떤 것을 갈망하는 목소리에는 힘을 보태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사고, 열심히 읽었다.

신부하고 싸워서 이긴 평신도는 한 사람도 없어. 그들은 한 사람이 아니야, 그들은 그 전체야. - 121

원래 세상은 이렇다, 는 말은 무섭다. 어떤 노력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다 그렇고 그런 놈들이란 말도 무섭다.
결국 가진 자가 더 큰소리를 치며, 부당한 권력이 부정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세상이 당연하단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잔혹한 시대에 신앙이란 무엇인가. - 198

나는 마르크스의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종교는 번민하는 자의 한숨이며 인정 없는 세계의 심장인 동시에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그것은 민중의 아편......’ 너무나 정확했어요. 적당히 쓰면 고통을 덜어주고 사람을 쉬게 하면서 스스로 가진 저항력을 북돋아주지요. 그러나 그것에 빠지면 그땐...... 중독자가 되는 거지요. - 254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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